If you can't play soccer, you die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완결
[ 월리 보이 기자= 러시아 가스프롬 아레나에서 경기장 펜스가 주저앉는 사고가 발생했다.사고는 6월 2일, 첼시 vs 바르셀로나 간의 UEFA 챔피언스 종료 직후 블루스들이 한 펜스에 밀집되면서……
(중략)
이 사고로 7명의 관중이 골절상을 입었으며 최소 40명에 달하는 관중이 부상을 당했다.
러시아 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 조사 중이며……
(중략)
선수 중엔 유일하게 호마리우가 펜스가 무너지는 순간에 동료들에게 던져져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중략)
한편 첼시는 가스프롬 아레나에서 기나긴 승부차기 끝에 11 : 10으로 빅 이어를 차지해……]
“…….”
손에 든 휴대폰 속 기사를 오늘 하루만 서른 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흐으.”
내 입에선 요상한 신음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스윽.
슬쩍 눈알을 굴렸다.
내 왼팔에는 석고붕대가 짱짱하게 감겨 있었다.
사고 후 겨우 하루가 지난 상태라 여전히 뼈는 쓰라렸다. 다행히 아주 잘 부러져 수술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3일 간은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모든 검사 간 팔 이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내 스스로 3일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확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사의 최하단 내용이 다시 내 두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한편 첼시는 가스프롬 아레나에서 기나긴 승부차기 끝에 11 : 10으로 빅 이어를 차지해…….]“빅 이어…….”
그렇다. 나는 결국 승부차기 끝에 빅 이어를 차지했다.
이미 첼시 소속으로만 2차례 빅 이어를 차지한 바 있으나 감회부터가 달랐다.
자그마치 4관왕을 달성했다.
카라바오컵, FA컵, 프리미어 리그컵, 빅 이어까지……!
그 과정에서의 팀 스탯 역시 최고였다.
최다 승점, 최소 실점, 무패 우승이라는 웬만한 우승컵 들어 올리기보단 힘든 삼대장 스탯을 모두 클리어했으니.
선수별 개인 기량 또한 역대급이라 칭할 만했다.
케빈 더 브라위너는 유럽 4대 리그에서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쌓은 선수가 됐다.
오늘 기사를 보니.
“에단 아자르. 이 자식도 피파울 1위네.”
상대의 파울을 끌어낸 횟수가 유럽 4대 리그에서 최고였다.
손흥빈은 스프린트 횟수에 있어 최고를 달렸다.
패트르 체흐는 최다 클린시트.
티아구 실바는 최다 인터셉트.
그리고 나는 최다 득점 부분에서 정상에 올랐다.
모든 대회를 통틀어 74골을 기록했으니까.
당연 유러피언 골든슈는 내 차지였다.
몇 개월 뒤 시상하게 될 발롱도르도 따놓은 단상.
올 시즌만큼은 확실히 네시와 로날두를 압도하는 커리어를 작성한 나다.
그래서일까.
“흐흐흐흐.”
자꾸만 웃음이 샜다.
아주 병신처럼.
거울을 보지 못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분명 바보처럼 풀어진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뻔했다.
사실 이 웃음의 원인은 우승컵이나 개인 스탯에서 정점을 찍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단순하고 원초적인 것이다.
“살아남았어……!”
그래.
난, 살아남았다.
펜스에 던져지는 순간 나는 이 빌어먹을 시스템과 이름 모를 신을 1초 동안 수천 번이고 저주했다.
또 절망스러웠다.
미션에 실패했나 하고.
의문도 어렸다.
대체 하이 커리어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얼마나 큰 업적을 쌓아야 하는 건지를.
리그 시즌에 월드컵 시즌까지 맞춰야 하는 건가 싶었다.
정말 그런 거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도 했고.
냉정히 보건대, 한국의 전력으로는 결단코 유럽 강호와 남미 강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모든 마음을 접고 초연한 표정으로 눈을 스르르 감은 순간이었다.
딸랑.
청명한 알람음이 울렸고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동시에 펜스가 무너졌고, 팔이 비틀리는 듯한 격한 통증과 함께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곤 순식간에 몇 초간 기절.
다시 눈을 떴을 때에야, 눈앞에 떠오른 팝업창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스템 오류로 인해 정산 시간이 잠시 지연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딱 세 문장의 팝업창이었다.
그 순간은 정말 팔이 타들어 갈 듯 아팠다. 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와 머리를 울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처럼 빙구 같은 웃음만 흘렸을 뿐이다.
처음 뜬금없이 시스템창이 나타났을 때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뜬금없이 나타났다가 확인을 끝으로 서서히,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딱 그 세 문장으로, 내 140년의 감옥 같은 일생에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꽈악.
휴대폰을 쥔 한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부들부들.
너무 심하게 줘 손이 다 떨릴 정도였다.
화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설레……!”
설렘뿐만 아니라 복잡미묘한 희열과 여러 가지 감정이 얽히고설켰다.
그때 이후로, 더는 내 눈앞에 팝업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혹여나 싶어 그간 모은 아이템 항목을 띄우고자 했지만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오늘도 잠에서 깨자마자 수십 번이고 확인했다.
“아이템!”
지금도 혹시 몰라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다.
…….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쿵쿵!
갈수록 내 심장은 쿵쾅 날뛰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발가락을 연신 오므리고 펴 보았다.
코가 계속 벌렁거렸다.
140년간 나를 옥죄던 시스템이 나를 온전히 떠났다는 확신이 거의 99.9퍼센트까지 차올랐다.
이제 남은 00.1퍼센트를 위해……!
“아이템창!”
나는 한 번 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고 10초간 기다렸다가 말고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100퍼센트!’
크흥!
통렬한 콧방귀가 절로 새어 나왔다. 한순간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이 해맑게 벌어졌다.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루가 지나서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모든 게 끝난 게 맞겠지!
“흐헤어……!”
나는 빙구 같은 얼굴로 생각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침도 주르륵 흘렀다.
자유가 도래했도다.
* * *
2017년 7월.
프리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는 한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나랑 결혼하자, 미정아. 손에 물은 묻히겠지만, 몇 번 정도 눈물은 흘리겠지만, 행복하게 해 줄게.”
남강 촉석루에서, 미정이 앞에 무릎을 꿇고 4캐럿 다이아반지를 내밀며 청혼했다.
미정이는 울먹이며 내게 대번에 안겼다.
* * *
2017-2018시즌이 종료됐다.
첼시는 또 한 번 리그 정상에 올라섰다.
카라바오와 FA컵에서 좌절했으나 2연속 UCL 정상에 오르며 최강의 자리를 지켰다.
단연, 나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어서 두 번째 발롱도르를 손에 넣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미정이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제 무리뇨가 주례를, 에단 아자르와 손흥빈, 무팅뉴, 로이스가 그룹 노래를 부르면서 내 결혼식보다 화제가 된 건 비밀도 아니었다.
* * *
다음 해.
내겐 자식이 생겼다.
4.3kg에 아주 튼튼한 똘똘이를 갖춘 사내 녀석이었다.
난 아들의 이름을 ‘호나우도’라 지었다.
나를 뒤이어 축구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라고.
그다음 해.
또 미정이는 임신을 했고 둘째를 낳았다.
이름은 ‘호나우지뇨’.
브라질 지뇨처럼 입이 튀어나온 건 아니다. 다행히 날 닮아 떡잎부터 잘생겼다.
‘흐흐흐.’
이쯤 되자 나는 욕심이 났다.
안데르송 퐁가를 뒤잇는 자식왕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 * *
2020-2021.
첼시에서 나는 여전히 핵심 공격수였다.
적어도 블루스들은 나를 첼시 역사상 최고라 생각할 거다.
하지만 이때쯤, 나는 구단 및 코치진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무리뇨를 뒤이어 새롭게 부임한 안토니오 콘태가 내 훈련량에 대해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나는 언론을 통해 하등 문제 될 게 없다는 저격성 발언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라운드에서, 콘태는 나를 아예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징계성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에.
실제로 그날 하루는 가족들과 즐겁게 보낸 뒤 밤중에 집을 나서 술에 진탕 빠졌다.
확실히.
시스템이 사라진 이후로 내 삶엔 평안함이 내렸다.
생각 이상으로 시스템은 나를 크게 억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개입도 없는 지금, 나는 또 콘태와 입씨름을 벌였다.
직후 징계성 결장을 했고 아예 포르투갈로 날아가 옛 친구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
옛 친구라 함은, 은퇴한 뒤 코치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야닉 드살로다.
* * *
술에 진탕 빠지고 어느 순간부턴 담배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140년간 선비처럼, 부처처럼 살아와서일까.
고삐가 한 번 풀리니 세찬 파도처럼 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21-2022시즌이 도래했을 때, 내 몸무게는 98kg까지 육박했다.
물론 188cm의 큰 키와 애초에 타고난 근육 덕에 뚱뚱해 보인다기보다는 덩치만 더 커졌다.
무엇보다 경기력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리그 개막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도.
툭, 탓!
[호마리우!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한 명!] [이어서 인프런트로 다시 한 명을 제치며 순식간에 박스 안을 파고드……!]뻐엉-!
[고오오오오오올! 골키퍼, 다비드 대 헤아가 바짝 얼어 버릴 만한 강력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냅니다아아아!] [인크레더블 헐크를 보는 것 같군요!] [아예 수비진을 찢어 버렸어요!]다만 아쉬운 건, 언론에서 내 뱃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일부 언론에선 곰, 혹은 멧돼지, 헐크를 꼭 내 이름 앞에 붙였다는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의 자유로운 삶은 내가 140년간 꿈꿔 왔던 일인걸.
실전에선 열심히.
그라운드 바깥에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게 내 철학이라고.
훈련 간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는 건…… 솔직히 딱히 훈련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도 있었다.
이제 아이템이 없더라도 나는 정상급 기량을 뽐내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즐길 거 다 즐기며 살아도, 나는 사람들에게 월드클래스라 불렸고 말이다.
* * *
2022-2023시즌.
서른한 살이 됐을 때쯤.
나는 몸에서 이상 신호를 느꼈다.
“흐헉! 흐헉! 흐헉!”
전반전만 소화했을 뿐인데 호흡이 생각 이상으로 거칠어졌다.
그뿐인가.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타앙-!
[아아! 홈런볼!] [호마리우! 결정적인 순간에! 완벽한 노 마크 찬스에서 홈런볼을 때리며 날려 먹네요!]결국, 나는 후반전 시작과 함께 평소 날 달갑게 여기지 않던 콘태의 호통을 들으며 교체당했다.
그래도 40경기에 출전해 22골 14도움을 올리며 여전히 월드클래스란 소리를 들었다.
그중 70분 타임에 교체 아웃된 것만 17경기나 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반대로 결정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 * *
2023-2024시즌.
첫 개막전 경기를 나는 벤치에서 시작했다.
신성, 이그니시우스라는 브라질 스트라이커가, 프리 시즌 간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던 탓이다.
반면에 난 프리 시즌 중 절반을 빼먹었다.
자잘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그래서 이렇듯,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17세의 이그니시우스가 데뷔전 데뷔골을 기록하는 걸 보며 아빠 미소를 지어 주었다.
‘짜식, 스포르팅 시절의 날 보는 것 같네.’
그리고 그해 나는 고작 27경기에 출전해 11골 7도움을 올리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 * *
2024-2025시즌.
33살.
첼시에서 나는 설 자리를 잃은 게 확실하다.
세 시즌 전부터 출전 횟수가 조금씩 까이기 시작하더니 12월이 도래하기까지 선발로 출전한 횟수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 이그니시우스는 펄펄 날았다.
제2의 호마리우라 불리며.
언론은 어느덧 이런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저물어가는 호마리우, 비상하는 이그니시우스.]착한 이그니시우스는 한 언론을 통해 내가 유럽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또 나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물론 일부 언론과 몇몇 날 탐탁지 않게 여기는 레전드들은 날 닮으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술과 담배로 인해 스스로의 재능을 죽인 케이스라며.
그래도 여전히 부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았다.
또 출전만 하면 가끔 번뜩이는 플레이도 보여 주었고 말이다.
* * *
2024-2025시즌.
서른네 살.
시즌을 앞두고 반월판 부상을 당했다.
이쯤 되자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더는 내 몸이 이전만 못 하다고.
유럽을 호령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슬프지 않았다.
누구는 술과 담배가 나를 이렇게 헤쳤다고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잖아. 자연스러운 거야.”
내 반월판 수술을 앞두고 울고 있는 미정이를 향해 나는 멋쩍게 웃으며 위로했다.
축구 선수의 수명은 짧은 편이니까.
34살이면…… 충분히 은퇴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아쉽지도 않았다.
‘모든 걸 이뤘는걸.’
지금의 언론은 나를 비판하나 내 커리어만큼은 깎지 못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마리우.] [리오넬 네시, ‘내가 본 최고는 호마리우야. 그다음이 디에구 마라두나.’]여전히 크리스티아누 노쇼만이 자기가 최고라 떠들어 댈 뿐이다.
거기다 내겐 이제 가족이 있잖아.
폭풍 성장하고 있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가정에 더욱 집중할 때가 왔다.
그런데.
“여보. 흐흡.”
“응?”
“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어.”
“……응?”
반월판 수술을 앞두고, 나는 울고 있는 미정이의 등을 토닥여 주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 * *
불륜과도 같은 막장드라마는 정말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정원사랑 바람이 났다는 거지?”
“응……. 그이를 사랑하게 됐어.”
“…….”
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정원사와 바람이 났단다.
그리고는 대뜸 내게 이혼을 요청했다.
한동안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함께 살자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미정이는 마음이 떠난 뒤였으니까.
또 그녀는 말했다.
‘내가 사랑했던 당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
그렇게 미정이는 짐을 싸 떠났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추후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내 테이블엔 이혼 서류만이 덩그러니 놓였다.
* * *
2024-2025시즌.
전반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자유계약 대상자로 풀려났다.
블루스들은 원성을 터뜨렸다.
레전드 대우를 이딴 식으로 하냐며.
몇몇 팀들은 내 이름값을 보고 접근했다.
때마침 반월판 부상에서 회복했으나…… 나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당분간 칩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술과 진탕 빠지며.
2024-2025시즌이 종료됐을 시점.
울며불며 설득했지만, 결국 미정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술에 취한 김에 홧김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내 결혼 생활은 참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내 축구 커리어도.
* * *
2026년.
[호마리우가 1년째 자취를 감췄습니다.] [호마리우가 돌아올까요?]35세가 된 나를 찾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몇몇은 옛 향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얼른 내가 재기하기를 바랐다.
즐라탄 이브라히무비치만 하더라도 만42세까지 유럽 빅리그에서 호령한 만큼, 나 역시 가능할 거라고.
[돌아온다 할지라도…… 더는 유럽 4대 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는 없겠죠.] [첼시에서 자유계약 대상자로 풀려났을 당시, 호마리우는 몸 관리에 완전히 실패한 상태였습니다. 축구 선수가 100kg이 넘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요?]물론 여전히 경멸하는 놈들도 있다.
[한때 저와 함께 최고라 불리던 호마리우는 아드리아노, 호나우도, 호비뇨 같은 전철을 밟았습니다!]척!
나는 가볍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패널로 출연한 크리스티아누 노쇼를 향해.
짝!
더불어 술로 찬 배를 찰지게 때리며 픽하니 웃었다.
의미 없는 웃음이다만.
그때였다.
끼이익-!
잠그지 않은 현관문이 열리며.
또각. 또각.
갑작스레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술병과 음식 쓰레기들로 어지러이 널린 거실 소파에 퍼지게 앉아 TV를 시청할 뿐.
두 눈을 뜨고 있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감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거의 매일 이렇게 보내다가 잠에 드는 것 같았다.
“우선 좀 씻어야겠네요.”
귓가로 고운 미성이 들려왔으나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목까지 다 덮은 수염을 한 손으로 문대며 길게 하품할 뿐.
그러나 이어진 말에 내 손짓은 불시에 멈췄다.
눈두덩이는 잘게 떨렸다.
“아저씨.”
“…….”
가만 보니 익숙한 목소리였다.
설마 싶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내 내 두 눈은 미약하나마 커졌다.
금발을 포니테일로 내려 묶은, 몸의 굴곡이 선명히 드러나는 정장을 입은 미모의 여인이 다섯 걸음 앞에 서 있었다.
이윽고, 커다랗고 서늘한 눈을 지닌 그녀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미끈한 입매를 살짝 벌려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청아한 눈을 마주한 나는 입을 달싹이다 말고 범람하듯 떠오른 이름을 꺼냈다.
“소피아……?”
소피아는 놀란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계약하러 왔어요. 그러니 재기 준비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