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세례식 당일.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야외 예배당을 우러러보는 가운데, 라이오스와 휘스테론은 요이델 주위를 얼쩡거리는 키베르크를 철저히 몸으로 차단했다.
“저 미친놈은 왜 얼쩡거려. 물이나 맞고 꺼지지.”
“동감이다.”
“우웅냐.”
플로테스도 요이델의 품에 안겨서 싫은 기색을 팍팍 뿜어냈다.
“퉷!”
잠시 귀빈의 자리 이동이 이루어진 때, 키베르크가 요이델의 근처에 오자 플로테스가 침을 캭 뱉었다. 의사 표현이 부쩍 는 플로테스는 요이델에게 해가 되는 것만 보면 송곳니를 드러냈다.
“플로, 고마워.”
“무앙!”
요이델의 감사 인사에 플로테스는 방긋 웃었다. 키베르크는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서슬 퍼런 낯의 호위기사들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젠장. 제까짓 게 뭐라고.’
그렇지만 저 건방진 얼굴들도 오늘 이후로는 볼 일이 없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는 오늘 이 임무만 해내고 나면 숙부에게 인정을 받아 가장 유력한 후계자가 될 테니까.
한 번의 모멸쯤 너그러이 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대신전의 인정이 뭐라고 머리를 숙여야 하는지.
‘세례를 받는 척은 좋지만, 브리칼트 대제국의 차기 황제가 될 이 몸이 머리를 조아려서야 쓰나.’
숙부님의 생각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주위의 잔가지 같은 국가들이 발악한다 한들 며칠 가지도 않을 텐데.
참, 이럴 때 보면 숙부님도 퇴위하실 때가 머지않은 듯했다.
‘너를 믿는다, 키베르크. 세례식에서 아주 간단한 일만 하면 돼. 그 누구도 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황제는 그렇게 당부했다.
‘하지만 브리칼트의 미래를 이끌 내가 대신전의 세례 따위를 받아야 한다니…… 뜻을 모르겠군.’
장기적으로 볼 때 대신전과 관계를 회복해서 나쁠 일은 없으니 받아들였으나 썩 내키지 않았다.
키베르크는 황제의 조카 중 하나로, 현 황제가 형제들을 모두 숙청할 때 빌붙어 살아남은 황족 일가 중 한 명이었다.
현 황제는 가장 능력 있는 자에게 황좌를 물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말과 달리 브리칼트의 후계 구도는 황제의 마음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되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번에 시키는 대로 하면 자신을 계승 서열 1위로 승격시켜 주겠다 약속해 주셨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런데 저 백치 같던 게 말문 좀 트였다고 제 위치를 모르고 날뛰는군.’
요이델 요보힐데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많이 바뀌긴 했다. 남자만 아니었다면 첩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외모가 취향이기도 했고. 앙칼진 것을 길들여도 재밌을 것 같다.
키베르크는 음흉하게 웃으며 요이델을 훑었다.
황제는 또 하나의 은밀한 명령을 내렸다.
‘요보힐데 공자를 가능한 한 죽여 없애라.’
죽인 척하고 데려가 자신의 저택에 들여놓을까.
“저 새끼 이상한 생각 하는 것 같은데. 눈빛 뭐야?”
“참아, 휘스.”
“으응…….”
요이델은 힘이 들어간 휘스테론의 주먹에 손을 올렸다. 키베르크는 생각보다 훨씬 멍청해서 기분 나쁜 속내가 다 티가 났다.
‘지금 엄청 신났겠지. 계획이 성공할 생각에 기뻐하고 있을 거야.’
요이델은 그의 성격을 알았다.
“성하!”
“성황이시여!”
세례식이 시작되고,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받으며 율리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래서 시종들이 녹화한다고 영상구를 사들인 거구나.’
오늘 율리시스는 유독 빛났다.
머리는 달 같은 은발이었으나, 달처럼 해의 빛을 반사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자체로 찬란한 영광을 흩날리고 있었다.
축제 때와 비슷한 복장이지만 보석 등의 화려한 장식은 대부분 빼고 옷감과 자수의 품질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수수한 느낌 하나 없이 웅장하고 경외감을 갖게 했다. 압도적인 지배력이었다.
그때 식을 주도하는 최고위 신관이 좌중을 훑어보았다.
세례식은 커다란 원형 예배당의 중앙, 물이 고인 곳에 순서대로 한 명씩 들어가 세례를 받고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물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은 성황과 세례자.
그 외의 관계자들은 언덕 위 파테라를 둘러싸며 양옆으로 서 있었고, 구경꾼들은 예배당 밖의 얕은 언덕길을 수두룩하게 채웠다. 사람들은 경외를 담아 위를 바라봤다.
“첫 세례자께서는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본래대로라면 키베르크가 1순위였다.
기가 막히게 운이 좋은 그는 배정 순서 추첨에서 1등을 골라잡았었다.
“카렐로 님.”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이름이 호명됐다. 키베르크는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웃다가 요이델을 돌아보았다.
“네 말에 신빙성은 있는 거겠지.”
“당연히요. 원래 모든 일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니까요.”
“그렇지. 최고가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요이델은 며칠 전 키베르크를 찾아갔었다.
‘이전의 일은 죄송했어요.’
사과하는 요이델을 보며 키베르크는 픽 웃었다. 그럼 그렇지.
요이델은 신경 쓰이는 게 있다고 말했다.
‘세례식의 첫 순서는 가장 볼품없는 자리예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다니. 1등이 가장 볼품없다는 게 말이 되나?’
‘세례식은 시간이 길게 소요되어서, 가장 앞서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제일 적은 시간이 할애돼요. 사람들의 기억에서 빨리 잊히고 말죠. 그래서 가장 좋은 순서는 맨 마지막이거든요.’
그의 콤플렉스는 1등, 최고라는 말이었다.
수많은 후계자들 중에서 그는 딱히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대공이라는 직위와 부모의 배경이 뒷받침해 주기에 상위를 유지했으나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걸 그도 매우 잘 안다.
그래서 요이델은 그의 열등감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거짓말 마. 무슨 헛수를 쓰려는 거지?’
‘정말이에요. 브리칼트 제국에서도 기사단의 상위 수련생은 마지막에 발표하고 포상을 주죠. 황제 폐하를 보세요. 연회장에 언제나 늘 마지막에 등장하시잖아요?’
‘황제 폐하라…….’
그러고 보면 그랬다.
황제는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쩌다 등장할 때면 연회의 끝물에 나타나 모두를 복종시키곤 했다. 키베르크는 그 모습을 동경했다. 미래의 자신이 서야 마땅한 자리니까.
‘그런데 브리칼트 제국의 적이나 다름없는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안 믿으시면 말아요. 하지만 이번 세례식의 마지막 세례자로 대원로님의 종손인 카렐로 님이 뽑혔어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런 분의 혈육이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거죠.’
‘…….’
‘키베르크 님이 딱 한 번, 굶고 있던 제게 빵을 주신 게 떠올라서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장차 황제가 되실지도 모르는데 볼품없는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될까 가여워서요.’
‘하지.’
키베르크는 단숨에 말을 바꾸었다.
‘내가 대미를 장식하겠다.’
그는 정말로 카렐로를 찾아가 순서 변경을 요청했다.
원칙으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정을 미리 들은 카렐로와 율리시스로 인해 식순이 변경되었다.
“아름다운 기운이야…….”
“성하!”
끊임없는 환호가 율리시스를 향했다.
예배당에서 세례식을 지켜보던 이들은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경건한 의식을 경배했다.
그리고 드디어 키베르크의 차례였다.
“키베르크 슈바르트, 브리칼트의 대공께서는 앞으로 나오십시오.”
키베르크는 자신의 당당한 모습에 취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세례 이후 일어날 대참사를 생각하며 히죽 웃었다. 그의 발에는 특수한 마수의 피가 묻어 있었다.
아무리 무장을 해제하고 맨발로 참여한들 뭘 하겠는가?
이런 방법이 있는 것을.
무색, 무취의 이상한 액체를 황제는 마수의 피라고 칭하며 그에게 건네주었다.
효과는 10분 후부터 발현될 거라고.
세례는 한 사람당 5분 정도였으니 자신이 세례를 받고도 시간이 충분했다.
혹시 몰라 실험을 먼저 해 봤더니, 효과가 굉장했다.
평범한 물과 투명한 액체가 만나자 10분 후부터 피처럼 거무죽죽하고 악취를 퍼뜨리는 괴이한 물이 만들어졌다. 꼭 피라고 착각할 만큼.
게다가 근처의 새를 잡아다 넣었더니 몸부림치다 죽는 게 아닌가?
‘과연 폐하께서는 현명하시군.’
시가지에서도 몇 번 실험을 했으나 꼬리를 잡힌 적이 없었다. 매우 희귀한 독극물이라 검출할 만한 자료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세례를 받고 자리를 뜬 뒤, 성황이 폐회를 선언할 때부터 대참사가 펼쳐질 것이다.
가장 성스러운 자에서 저주받은 자로 추락할 터.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믿음이 흔들릴 게 분명했다,
“브리칼트의 대공께서는 앞으로 나오십시오.”
재차 호명되자 키베르크는 걸음을 옮겨 주었다. 이 멍청한 신관놈들, 잘 보라지.
철벅.
그러나 물에 발을 들인 순간.
“아아악!”
키베르크는 다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
불에 지져지는 듯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낀 그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의 주변으로 붉은 물이 퍼져 나가고 다리는 살이 파이듯 빨갛게 발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리! 내 다리! 이 빌어먹을!”
키베르크는 당장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다리를 들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발이 돌처럼 굳어 고통은 그대로 느끼고 벗어날 수도 없었다.
“살려 줘! 젠장!”
그러나 율리시스는 똑같이 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친 곳 하나 없이 평온한 낯으로 키베르크의 광기 어린 몸부림을 지켜보았다.
“저, 저게 무엇인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빨간 물이……!”
피처럼 붉은 물이 키베르크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계획과 달리 분수는 잠긴 지 오래였다. 고로 붉은 물은 키베르크 외의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저주를 받은 듯 피처럼 붉은 물이 펼쳐지는 광경에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재앙이다! 이건 재앙이야!”
“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사람들이 삽시간에 더 가까이 모여들었다.
직접적인 위해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진풍경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자 했다.
“대공이 들어가자마자 물이 탁해졌다!”
“저주를 받은 거야, 저 브리칼트 놈이!”
“맙소사, 봐! 성하께서는 멀쩡하셔.”
“브리칼트의 대공을 끌어내 주십시오! 성하! 죄인이 신성한 세례를 탐하여 주신께서 노하셨습니다! 브리칼트가 성국을 망치려 합니다!”
키베르크는 뒷걸음질 치며 물가에서 물러났다.
“이게…… 이런 미친, 무, 무슨 짓을…… 이럴 리가 없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당황해 버벅거리던 그때, 대신전의 기사들이 그를 포획했다.
그들도 발진에 고통받지 않았다.
“브리칼트에 망조가 들었군……. 성국 사람들은 멀쩡해. 정말 저주가 틀림없어.”
“그 소문이 사실이었어. 이번 세례식에서 부정한 자에게 주신의 분노가 내릴 거라는 말이!”
“파멜라 신관님의 말이 사실이었군…….”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비슷한 말로 술렁거렸다. 일부러 퍼뜨린 소문이었다.
이번 세례식에서 흉흉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저주받은 사람이 세례를 받자마자 오염된 물이 퍼지고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 거라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요이델이 속삭였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파멜라.”
“아니에요, 제 예언은 헛소리고 제가 미쳤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어서 이득인데요, 뭐.”
요이델은 라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소문을 흘렸다. 그래야 확실히 망신시킬 수 있으니까.
예언을 한 사람이 파멜라라는 말도 덧붙였기에 처음에는 미친 소리라며 모두 꺼렸다. 그녀의 오명은 대단했기에.
‘하지만 앞으로는 아니겠지.’
요이델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역시 요이델 신관님께 꼭 붙어 있을래요.”
파멜라는 요이델의 손을 꽉 붙잡고 끈끈한 눈빛을 보냈다.
“이것 놔!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더러운 손을 함부로 대느냐!”
아직도 키베르크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난동 부렸다.
“키베르크 슈바르트 대공 전하, 잠시 독극물 검출 관련하여 증언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하! 웃기지도 않는군. 설마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사태를 자초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가서 말씀해 주십시오.”
키베르크는 다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불결하다는 듯 기사들의 손을 쳐 냈다.
“나는 슈바르트 대공이다! 브리칼트를 대표하여 온 자란 말이다. 지금 내게 손을 대는 행위는 브리칼트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 전부 감수하고 지껄이는 거겠지!”
“송구하지만 슈바르트 대공 전하, 브리칼트 측에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이를 보낸 적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뭐?”
키베르크의 표정이 아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