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라보르비치 만찬홀의 늦은 저녁. 라보르비치의 신하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아, 폐하. 훌륭한 국왕 노릇을 하고 계시는군요. 성하께 결례를 저지르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우리 폐하도 못하시는 게 아니라 안 하시는 거였어!”
그동안 어땠길래 저러지? 요이델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성국의 사람들도 두 국가 원수의 훈훈한 모습에 미소 지었다.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거기에 껴 있는 요이델의 감상은 달랐지만.
“영애는 더 귀여워졌네. 나는 더 멋있어졌는데.”
아카코스는 대각선에 있는 요이델을 보며 능글능글한 시선을 던졌다.
“아뇨, 폐하. 영애가 아니라 신관이에요. 세례신관으로 부르셨잖아요.”
“이것 봐, 계속 폐하래. 서운하네……. 언제는 친구라더니.”
“그때는 여자인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 유효 기간 끝났어?”
“오래전에요.”
“하, 단호하긴. 그럼 뭐라고 부를까? 신관님은 딱딱하고 별로 로맨틱하지 않아.”
자신의 머리 색과 똑같은 붉은 와인이 들어 있는 잔을 휘휘 저은 아카코스는 유혹하듯 술잔을 기울였다.
“어쨌든 나는 과거 친구로 인정받은 사이 아닌가? 그런데 친구는 너무 편하고 흔하니 친우로 하지. 같이 산맥에 올라 피크닉 도시락도 나눈 사이이니.”
탁! 그때 콩 요리가 느닷없이 튀어 올라 아카코스의 뺨따귀를 후려쳤다.
“하, 하하…… 어디서 콩이…….”
걸쭉한 콩 요리가 고소한 향을 풍기며 아카코스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주범인 율리시스는 태연하게 타국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성하를 뵙게 되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한데 초대된 것이 크나큰 기쁨일 따름입니다.”
라보르비치의 만찬 자리에는 근방의 주요 국가 원수들도 참석해 정세 교류와 친목을 나누었다. 이건 성국 측 뜻이었다.
“연을 맺으셨다더니 사이가 무척 좋아 보이셔서 부럽습니다.”
“과연 반려님께서는 엄청난 신성력을 가지셨다는 그분이시군요. 두 분이 천상배필이십니다!”
“반려님, 괜찮다면 저희 왕국에도 세례 초청을 드릴 수 있을는지요?”
아카코스는 상황을 떨떠름하게 지켜봤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표면상으로는 ‘지상 대륙 내 많은 나라의 수장들과 정세를 논하고 싶다.’ 같은 외교적 의견의 피력이었지만 실은 달랐다.
‘내가 영애에게 접근할 틈을 안 주겠다는 더러운 속셈이군.’
아카코스는 지난번의 일로 그의 실체를 똑똑히 알았다. 목을 졸려 본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하지.
성황 본인이 바빠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다른 남자가 들이댈 기회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요이델만 초대했는데 불청객이 딸려 온 이유가 뭐겠나.
‘진지한 놈이 미치면 이렇게 성가시군.’
라보르비치의 대신 중 하나가 웃음을 띠고 말했다.
“하하, 폐하와 성하께서 이렇듯 긴밀하시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런데 왜 토할 것 같지?
대신들은 이상한 기분에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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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자리가 파한 후, 요이델과 율리시스는 다시 오게 된 정원을 거닐며 웃음을 나누었다.
“저쪽 방이었나요? 성하께서 저를 발견하신 게.”
이렇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니, 너무 신기해. 예전에는 꿈도 못 꿨을 상황인데.
“두 번 다시 저를 안 보실 줄 알았어요. 그만큼 많이 화날 일이었고 정말 화가 나셨는데…… 벌써 예전 일이 됐네요. 혹시 기억하세요?”
“당신은 눈물을 흘리셨죠.”
율리시스는 부드러운 손길로 요이델의 뺨을 살짝 훑었다.
“후회했습니다.”
“왜요?”
“당신을 울게 만들어서.”
“아…….”
“요이델 님이 제 꿈을 지배하신 게 언제부터인지 아십니까.”
그가 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 맞출 듯 고개를 들게 한 찰나.
짝! 큰 박수 소리가 났다.
“아, 여기 날벌레가 날아다녀서 그만.”
아카코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율리시스를 직시했고 율리시스는 그를 벌레 보듯 깔아봤다. 하지만 아카코스는 실수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두 분이서 대화하는 중에 끼어들어 유감입니다만, 저도 자리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주시겠습니까?”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하하, 처음부터이지요.”
서로의 민낯을 본 두 남자는 적의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번개가 칠 것 같아.’
그들의 열기를 느낀 요이델은 뒷걸음질 치며 쓱 빠져나왔다.
“넘어지십니다.”
“어디 가, 친우?”
둘이 동시에 요이델을 부르자 두 번째 불꽃이 튀었다. 아카코스를 무표정하게 본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향해 다정한 눈빛을 했다.
“이미 발에 생채기가 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 뛰시면 아물 틈도 없어 더 따가우실 겁니다.”
“어떻게 아셨…… 혹시 성하의 발도 욱신거리게 만들었나요?”
“조금도 아프지 않습니다만, 반려로서 요이델 님의 고통이 걱정되어 말씀드렸습니다.”
“허…….”
그들의 대화에 황당해진 아카코스는 율리시스를 쳐다봤으나, 그는 보란 듯이 요이델을 챙겼다.
“저희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운명이니. 요이델 님의 모든 것은 곧 저의 일 아니겠습니까.”
“친우, 그대의 얘기 좀 들려줘. 어쩌다가 모두에게 정체를 들켰는지 궁금해서 잠이 안 오더군. 나만 아는 줄 알았는데 섭섭하기도 하고.”
그때 대화에 끼어든 아카코스가 율리시스의 맹점을 찔렀다.
그 오랜 시간을 같이 있어 놓고, 다른 남자보다 늦게 눈치챘다는 점.
율리시스는 차갑게 웃었다.
둘의 시선이 사납게 부딪치던 그때.
“성하. 폐하.”
요이델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가운데에 낀 요이델은 인상을 단단히 쓰며 둘의 손을 끌어와 악수시켜 버렸다.
“둘이서 싸우는 거죠? 저도 다 알아요. 얼른 화해해요.”
“…….”
“……우욱.”
두 남자는 동시에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제게서 멀리 떨어져요.”
요이델의 말에 율리시스는 뭐 하냐는 듯 아카코스를 쳐다봤다.
“떨어지라고 하셨습니다.”
“둘 다요.”
“…….”
“풉…… 따르지요, 친우님.”
둘은 어마어마하게 험상궂은 얼굴로 멀리 떨어졌다.
“좋아요. 잘하셨어요, 성하.”
요이델의 칭찬에 율리시스는 조금 안심하듯 미소 지었다. 아카코스는 눈뜨고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노려보던 짐승 같은 눈빛은 어디 가고 강아지처럼 순종하다니. 진심으로 속이 메스껍다.
게다가 그가 요이델을 살짝 끌어안아도 그녀가 화들짝 놀라지 않는 걸 보고 깨달았다.
저런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사라는 걸.
‘속 쓰리네, 이거…….’
하지만 포기는 이르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변할 줄 알고?
“친우님.”
아카코스는 진지한 목소리로 요이델을 불렀다. 농담은 이쯤하고, 진짜 해야 할 말은 따로 있으니까.
“사실 친우님을 초청한 이유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지만, 사실 다른 부탁도 있어.”
“제게요?”
“이전에 친우가 찾아 줬던 구덩이, 기억하나?”
요이델도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신원을 찾아 주기 힘들었던 그 백골들.
아카코스는 진지한 얼굴로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그 신원을 찾기 위해서 신관으로서 친우님의 도움이 필요해.”
━━━━⊱⋆⊰━━━━
다음 날 아침, 요이델은 라보르비치 왕궁 내의 연구실로 향했다.
거기엔 이전에 보았던 백골들이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연회홀의 두 배는 될 듯한 거대한 크기의 방 안에 수두룩한 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이렇게 많다니…….’
이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와닿았다. 긴장감에 가득 찬 요이델을 다독거린 아카코스가 말했다.
“이들의 신원을 하나하나 찾는 데에는 상당한 힘이 필요하지. 내 마법으로도 찾기 힘들어서 보통 어려운 게 아니더군.”
“그래도 이들 중 세례 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찾기 쉬울 테니까 절 부르셨군요.”
“이런 이용해 먹는 부탁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가족을 찾아 주고 싶어. 그것도 못 한다면 명색이 국왕이라고 하기 창피하지 않나.”
요이델도, 잠자코 듣고 있던 율리시스도 그의 말에 수긍했다.
“최근 근방의 작은 나라를 흡수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그쪽 사람들의 민심까지 잡을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한 건가요?”
“맞아, 그 이유도 있어. 제물로 희생된 사람은 라보르비치 국민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아카코스는 눈을 찡긋거렸다.
“역시 친우는 똑똑해. 이래서 또 반한다니까.”
말투와 다르게 눈빛만은 진지했다. 그는 요이델의 손을 잡고 낮게 속삭였다.
“친우, 우리는 왕후도 초혼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어. 다른 나라보다 개방적인 편이거든.”
“……?”
“그러니까 언제든 내게 와.”
휙! 그 순간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당겨 제 품에 안았다.
“타 왕국과 비교적 평화롭게 합병을 하였다더니, 혼인을 약속한 동맹들이었습니까.”
“아아, 참 다행히도 그 왕국의 왕가는 줄줄이 남자만 태어난 데다 방계인 여성은 혼기가 맞지 않아 결혼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웃으며 서로를 비난했다.
“……저희가 서로 나눌 말이 많은 듯합니다, 성하.”
“…….”
“대작 가능하십니까?”
아카코스는 아직 해가 중천에 걸린 걸 확인하며 코웃음 쳤다. 넌 절대 못 먹을 거라는 하는 확신에 찬 미소였다.
지오르베니가 알려 준 성황의 맹점이었다. 그는 은근히 술을 거절한다는 것.
‘즉, 성황은 술을 못한다.’
분명히 거절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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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루 종일 왕궁의 마법사와 함께 있던 요이델은 걸음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피곤해서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가장 좋은 건 역추적을 하는 쪽이야.’
마법의 시전자는 아마 요보힐데 공작 부인이겠지. 그런데 그녀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라보르비치의 마법사들조차 아직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까.’
그녀가 지상 대륙 내 마탑들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마법사들에게는 그들의 연결망이 있고 규율이 있으니까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올가 님은 뭔가 알고 계실까?’
본래 마법은 생명과 마나의 근간이라 불리는 메디아에서 활발히 연구되었다. 지상 대륙에도 교육 기관이 있지만, 교역로를 닫기 전에는 가장 큰 마법 양성 학교가 메디아에 있었다.
애초에 요보힐데 공작 부인도 그쪽 학교에서 수련한 마법사 출신이니까 올가라면 관련 마법을 알지도 모른다.
‘성하께 올가 님을 불러 달라고 해야겠어.’
아직 부원장으로 발탁된 건 아니지만, 그녀도 지상에서 볼일이 있다고 했으니 와 줄 수도 있다.
올가가 이 일을 해결하는 걸 돕는다면 기억 상실로 인해 발탁을 고심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고.
왠지 모르게 그녀가 마음에 들어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성하께서 여기 계신가요?”
“계십니다만, 그것이…….”
요이델이 만찬홀의 병사들을 둘러보자 그들은 약간 곤란한 표정을 했다. 성하의 호위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