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대신전 내부 대회의장.
이른 아침부터 의결안을 놓고 다수의 신관들이 웅성거렸다.
“브리칼트 측에서 채굴했던 광석이 온전히 라보르비치의 소유가 되어 발악을 하는가 봅니다.”
“허허, 그게 상당한 에너지 원이라지요?! 영 무가치한 줄 알았는데 마도구를 만들 때 필요한 광석을 대체할 수 있는 광석이라니, 성후님의 혜안이 실로 놀랍습니다.”
“그러니 약이 올라 브리칼트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거겠지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성하께서 국경에 머물러 그들의 심신을 위협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다시 한번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브리칼트는 현재, 율리시스가 라보르비치와 인접한 브리칼트의 근처까지 도달했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요이델을 무단 납치한 사건은 쏙 뺀 채로.
하지만 그들의 이런 도발이야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므로 회의에 올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어야 했다.
“20년이나 지난 일이라고 해도 그들이 한 짓을 묻어 둘 수는 없습니다, 성하.”
“신원을 돌려준 것은 무척 기쁜 일이지만,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함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각국의 뜻이 거의 같습니다!”
그때 묵묵히 앉아 있던 율리시스가 좌중을 훑었다.
“좋습니다.”
“……!”
“그렇다는 말씀은, 성하!”
“성전……! 읍!”
하일은 흥분한 마르셀리나의 입을 손으로 덮었다.
“메디아의 차기 수장과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율리시스의 말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설마 성하께서 생각하시는 건…….
“메디아가 교역로를 닫은 이후 행한 적 없으나. 한 국가의 행적을 살펴야 한다는 것에 각국의 뜻이 일치하였습니다.”
삼 대륙 중 두 대륙 이상,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 열리던 회의. 사실상 견제와 재판의 기능도 했던 것.
“삼대륙 회의를 재개합니다.”
━━━━⊱⋆⊰━━━━
“델! 들었어?! 삼대륙 회의가 열린대!”
“삼대륙?!”
로사리움 응접실로 뛰쳐 들어온 휘스테론은 요이델을 안고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았다.
“어, 우리 고향이랑, 브라우니인지 뭔지 그 이상한 제국 있는 대륙이랑 성국이랑 셋! 갑자기 부활한대. 신나지 않아?!”
“휘스, 어지러워. 꺄악!”
“앗, 미안 미안.”
휘스테론이 놓은 뒤에도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삼대륙 회의? 갑자기 왜?
“어디서 열리는 거야?”
“그게 무려…….”
그는 히죽 웃으며 기쁜 티를 감추지 못했다.
“메디아래!”
“메디아?”
“있잖아, 델. 우리 수장님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야!”
“저번에는 뿔만 안 난 마수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거 라이오스가 한 말일걸? 아악!”
“수장님을 모욕하지 마라.”
라이오스에게 뒤통수를 후려 맞은 휘스테론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저 멍청한 놈의 말이 맞습니다. 수장님들께서는 자애롭고 강직하신 분들이십니다. 저런 것까지 거둬들여 직접 검술을 가르쳐 주셨을 정도로 인내심도 강하신, 멋진 분들입니다.”
“라이도 수장님들께 배운 거야?”
“부족하지만, 그렇습니다.”
“쟤는 수장님 험담하면 미친다니까.”
“……존경하니까.”
라이오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이며 과일을 깎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칼 잡은 손을 가리켰다. 무슨 뜻이지? 과일칼은 왜?
“앗! 알았다. 과일 깎는 법도 배웠다는 뜻이구나?”
정답에 그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변화가 거의 없는 라이가 저럴 정도면 정말 존경하는 사람들이겠지.
“야, 라이오스. 솔직히 너도 휘르무트 님은 질색하잖아.”
“처먹어라.”
“우욱!”
라이오스는 휘스테론의 입에 땅에 떨어뜨린 사과를 대충 쑤셔 넣었다.
“라이랑 휘스는 차기 수장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
“너무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오신 지 며칠 안 되지 않았어?”
“아…….”
휘스테론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피했다.
“일이 바빠서 아직 못 봤어. 또 솔직히 대면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거든.”
“왜?”
휘스테론은 진지하게 요이델의 양손을 잡았다.
“델한테 그런 인상부터 심어 주면 안 되니까 참는 거야. 하지만 델, 네가 언젠가 많은 걸 알게 되면 그때는…….”
“응?”
“그래도 너한테는 그러지 않겠지, 응. 쥐 잡듯이 잡는 건 기사들 한정이니까.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여자들에게 미친 듯이 친절하기도 하…… 하하하, 휘르무트 님.”
“안녕.”
휘르무트가 화사한 얼굴로 싱긋 미소 지었다.
“우리 성기사님이 여기서 어떤 불손한 소리를 했는지, 귀가 간지러워서 여기까지 오게 됐네.”
“휘스테론 리키어스, 오랜만에 만나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지 않나?”
“넵.”
요이델은 믿기지 않는 풍경에 눈을 비볐다. 휘스테론이 허리를 펴고 양 주먹을 무릎에 올린 채 정석적인 기사님처럼 정중하게 앉았다.
휘스가 예법을 지킬 때도 있구나! 성이 리키어스라는 것도 방금 처음 알았다.
“이따 연회에서 만나요, 어린 신관님.”
휘르무트는 웃으며 라이오스와 휘스테론을 쥐 잡듯이 끌고 사라졌다.
요이델이 어리둥절한 사이 그들은 어느새 아무도 없는 대신전 뒤쪽 숲에 도달했다.
탁.
둘을 바닥에 놓아주고 앞에 선 휘르무트는 어두운 기색으로 그들을 내려다봤다.
“너희에게 확인할 것이 있다.”
그는 괴상한 모양이 수놓인 손수건을 품에서 꺼냈다.
“너희들이 준 이 손수건. 그것에 담겨 있던 힘의 주인이…….”
괴로운 듯 찡그린 얼굴의 그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덧 잠겨 있었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다만 두려웠다. 그저 기쁠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이제 와, 사실 너에겐 비밀이 있으니 다 잊고 나와 같이 가자고?
그 빌어먹을 공작가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제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으드득.
손수건을 으스러뜨릴 듯 쥔 그의 손이 점차 떨려 왔다. 다 쳐 죽여도 모자라다.
이제라도 찾아서 다행이고 기쁘다면서 웃을 수도 없었다. 한눈에 알아봤다. 내 동생이니까. 알아서 더 미안했다.
공작가에서 본 겁에 질린 눈동자에, 그 애가 어떤 세월을 살았는지 미칠 만큼 잘 알 것 같아서.
가장 필요할 때는 곁에 없어 놓고 시간이 이렇게 지나서야. 겨우.
무슨 염치로.
“……어떻게든 지켰어야 했다.”
얼핏 피눈물이라 보일 만큼 붉게 충혈된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자괴감에 쓰게 웃으며 건조한 입술을 뗐다.
“이 손수건의 주인이, 내 동생의 이름이, 요이델이 맞는가.”
━━━━⊱⋆⊰━━━━
“오늘은 연회에 본격적으로 참석하지 않으십니까.”
“네? 이미 참석했잖아요?”
“요이델 님께서 좋아하실 술을 종류별로 갖춰 놓았는데, 아쉽습니다. 신나게 술을 드실 수 있었는데.”
“저 그렇게 술쟁이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율리시스는 발끈하는 요이델을 보며 즐겁게 미소 지었다.
휘르무트를 위해 성대하게 열린 연회 날.
두 사람은 연회에서 몰래 빠져나와 라크라스 산맥 중턱에 흐드러지게 핀 꽃밭에 와 있었다.
발아래로 불빛이 반짝이는 밤 연회의 풍경이 보였다.
‘성하는 바보야. 그런 장난만 치고…….’
요이델은 저도 모르게 입을 쌜쭉 내밀고 꽃밭 사이로 난 길을 휘적휘적 앞서 걸어갔다. 괜히 머쓱해서 길게 자란 풀들을 손으로 훑으며.
밤인데도 반딧불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달이 은은하게 대지를 비추어 어둡지 않았다. 사라락,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곧 더 센 콧바람이.
“맞아, 또 데려다줘서 고마워, 베리.”
“크륵, 크르륵, 컹!”
“왜 여기로 오고 싶었냐고?”
“크릉크릉. 크릉. 킁!”
베리는 머리가 세 개라 말도 세 가지였다.
그때 베리의 음흉한 눈이 뒤에 있는 율리시스에게로 슬쩍 돌아갔다. 역시 동물의 육감은 최고인가 봐.
“맞아, 베리. 쉬잇, 비밀이야. 알았지? 아무도 여기 못 오게, 부탁해.”
“컹! 컹! 컹!”
“에취!”
요이델은 단단히 결심한 듯 앞서 걷다가 계속 율리시스를 돌아봤다.
어제의 입맞춤이 계속 생각나서 손발이 배배 꼬였다. 그런 짓을 또 했어, 어떡해.
……그래도 좋았지.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감상에 고개를 흔들었다. 머릿속이 새빨개졌나 봐. 왜 이래!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뭐가요? 뭔가 아셨나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토끼눈을 떴다.
율리시스는 그런 요이델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어두운 곳에, 더욱이 당신이 못내 아름다워 보이는 달빛 아래에 저를 당신과 단둘이 있게 하는 건 좋은 처사가 아닐 겁니다.”
“서, 성하가 더 위험할 수도 있어요!”
“아.”
그는 매우 깨달았다는 듯 본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제가?”
“농담 아니에요. 지, 진짜일 수도 있어요. 제가 실은 거대한 괴수나 마수여서 성하를 오독오독 잡아먹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좋은 삶이었다고 사후 세계에서 자랑할 겁니다. 귀여운 마수였다고.”
요이델은 그 말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성하 정말 아무도 안 만나셨던 거 맞아요? 너무 능숙하셔서 이상해요.”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놀리지 말아요.”
그가 품을 벌리자 요이델은 휙 토라져 쿵쿵 앞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그의 향기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쿵, 쿵.
또다, 또 심장이 뛰어.
“당신을 위해 타고났나 봅니다.”
“정말…….”
요이델이 으슥한 곳에 그를 데리고 온 이유는 하나였다.
이제 곧 메디아로 가니까.
‘그곳에는 브리칼트도 오겠지.’
회의로 바빠지면 말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
귓가에서 들려오는 포근한 숨소리와 따스한 품을 만끽했다. 그녀를 감싼 단단한 팔을 만지작거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숨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웠다.
“연회장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휴우…….”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득 있고, 평소 원하시는 즐거운 분위기일 터인데.”
“아니에요.”
요이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율리시스 님이랑 있는 게 더 즐거워요.”
“…….”
“예전부터 율리시스 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사실 좀 더 예전에 하고 싶었는데, 누가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해서 아쉬웠어요.”
하나도 춥지 않다. 쌀쌀맞지도 않아.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겠지만 이제는 뚜렷하다.
“너무 늦었지만…….”
요이델은 뒤로 완전히 돌아서서 그의 심장에 손을 올렸다.
“제 마음이니까 제가 알아요.”
요이델은 그의 눈을 지그시 올려다봤다. 심장이 뛰고 있어. 똑같아.
손이 떨리고 목소리도 떨리고, 자신의 눈에 담긴 그의 시선마저 흔들렸다.
나는 알아. 이 마음이 뭔지 확실히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이르게 개화한 달맞이꽃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의 모든 게 따스했다.
“율리시스 님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