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요이델의 고백을 들은 율리시스의 시선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흔들렸다.
“제게 하신 말씀이 맞습니까?”
“…….”
“당신의 고백이 제 것이 맞습니까?”
그의 목소리마저 떨렸다.
한참 어쩔 줄 모르던 요이델이 그의 가슴에 고개를 폭 묻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하얀 목덜미와 귓바퀴가 새빨개져 있었다.
“당연하죠……. 다른 사람한테 이런 말을 왜 해요. 수상한 곳에 왜 오자고 했겠어요? 혼자서 낮에도 몇 번을 연습했었는지 몰라요.”
겨우 고개를 든 요이델은 울먹일 듯 덜덜 떨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반짝였다.
너무 좋은데 또 쑥스러워서. 요이델은 그의 옷자락을 움켜 쥐었다.
뜨거운 증기가 폴폴 피어오르는 기분인데. 혹시 내 머리에서 김이 나나?
“저, 저는 정말 율리시스 님이 좋아요. 연회보다도 우리 둘이서 아무거나 얘기하는 게 더 즐거워요. 더 좋고요, 재밌어요. 계속 이랬으면 좋겠는데 율리시스 님은…… 아니신가요?”
풀벌레가 찌르르 울고 심장도 두근두근 요동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율리시스 님이 먼저 저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성황이라는 것도 알아요. 부담도 되고, 벌써부터 온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도요. 그런데 이젠 감수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니까요, 율리시스 님.”
“…….”
“그분들의 기대에 으, 응해 보실래요?”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손을 모아 잡았다. 결국 저질렀다. 몇 번이나 나무에 대고 연습했는데.
“바, 반지는 준비 못 했는데 갖고 싶으시면 곧 만들어 올…… 꺄악!”
“이런 큰 상을 제게 주시면,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요이델의 몸이 그에게 부딪히듯 당겨져 꽉 안겼다. 율리시스는 온몸으로 그녀를 감싸듯 품에 안았다.
그의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저, 율리시스 님?”
“제발 반지는 준비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기서 더 멋있으시면 제 몫이 사라집니다.”
“아!”
그녀가 벗어날세라 어디도 가지 못하게 꽉 품에 안은 그는 웃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품 안에 있는 당신이 꿈은 아니길 바랍니다.”
그의 부드럽고 포근한 숨이 요이델을 간지럽혔다.
‘성하가 떨고 있어.’
깜짝 놀랐다. 그는 자신을 안고 아주 미약하고 가볍게 떨고 있었다. 부끄러워진 요이델은 꼼지락거리며 팔을 빼냈다.
“……!”
“아니에요, 가려는 게 아니라.”
그를 밀어내려는 줄 알았는지 율리시스는 그녀를 덜컥 더 끌어안았다.
하지만 요이델의 팔은 그의 등으로 향했다. 쓰담쓰담, 넓은 등이 작은 손안에서 점차 안정되어 갔다.
“더 일찍 말할 걸 그랬어요.”
이렇게 기뻐할 줄 몰랐다.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그의 눈빛이 유독 녹아내릴 듯 다정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자장가라도 불러 드릴까요?”
“이전에도 말씀드렸으나…….”
“알아요! 연인의 차이.”
요이델은 그를 가볍게 올려다보고 몸을 기울여 살짝 입맞췄다.
“모르고 하는 말 아니에요.”
“누가 당신에게 이상한 말을 주입했습니까?”
“안 했어요. 그냥 제가 그렇다는 거예요…….”
물론 시종들이나 하일 님, 여러 신관들이 이것저것 조언을 해 주긴 했지만. 그리고 그 불온서적도. 머리가 펑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율리시스는 그런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머리가 많이 자라셨군요.”
“이상한 생각을 해서 빨리 자란 건 아니에요. 저, 정말로요.”
“그런 의심은 안 했습니다만.”
“저, 저도 아니에요!”
“……제 반려님은 여러모로 대단하시군요. 혹은 대담하신 건지.”
율리시스는 쿡쿡 웃으며 요이델을 놀렸다. 홍당무가 된 요이델이 그를 팡팡 치자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
“처음 만났던 때와 많이 달라지셨다는 뜻입니다. 당신과 저, 모두가 그렇지만.”
율리시스는 그녀의 이마를 쓸어 자신과 똑같은 문양을 바라봤다.
결국 자신의 반려라는 증거.
그는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
“하마터면 인생 최악의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네?”
“그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마음은 평생 알지 못했을 테니.”
그의 눈이 다정한 모양으로 휘었다.
“이제 마음을 말씀해 주시기로 한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 그건…….”
버벅이던 요이델은 시선을 피했다. 구구절절 얘기하기 부끄러운데, 꼭 듣고 싶은 건가?
대답하지 않자 율리시스의 표정이 점차 묘해졌다.
“설마 제가 아니라, 이것 때문입니까?”
그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제 입술을 가리키곤 살짝 가렸다.
“네?! 아뇨!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요이델 님께서는 예전부터 저보다 이걸 특히 좋아하시지 않았습니까.”
“……언제요? 모, 몰라요, 정말 아니거든요?”
요이델이 그를 밀치고 앞서 걸어가 버리던 그 순간, 요이델의 몸이 뒤로 이끌렸다.
“잘못했습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끌어안고 귓가로 고개를 내렸다. 나직하게 웃는 목소리가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농담이지만 과했습니다. 그대가 많이 긴장하신 듯하여.”
“…….”
“요이델 님을 만난 이후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시간이 아쉽다는 기분이 뭔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
“이제 당신이 보고 싶으면, 늦게라도 찾아가도 됩니까?”
요이델은 조금 뾰로통한 목소리로 허리를 감싼 팔을 찰싹 쳤다.
“아뇨, 안 돼요. 조용히 반성하세요. 전 율리시스 님이 좋은 거니까, 그런 장난을 치면 속상해져요.”
“명심하겠습니다.”
“당분간 접촉 금지예요.”
요이델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를 흘겨봤다. 율리시스는 진지하게 가늠했다.
“당분간의 정의가 몇 분입니까.”
“분이겠어요?”
“시간?”
“아뇨.”
“일?”
째려본 요이델은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얼마입니까? 하루?”
“아뇨. 일주일이요. 그 안에 사적으로 말을 거시면 더 늘릴 거예요.”
“무리입니다.”
“저한텐 휘스도 라이도 플로도 있으니까 무리가 아니에요.”
“지금 저를 두고 다른 남자와 노시겠다는 겁니까.”
푸른 눈이 질투로 뒤범벅됐다.
“네. 휘스테론이랑 라이오스요.”
“싫습니다.”
“전 좋아요. 제 친구니까요. 성하보다 먼저 친해졌어요.”
“저를 말려 죽이실 계획이 아니라면 재고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이름에 힘을 줘 발음할수록 율리시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름이고 저는 다시 성하입니까. 아까 저도 이름으로 불러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좀 다른 곳을 지적했다.
놀랍게도 율리시스는 억울한 눈빛으로 비 쫄딱 맞은 강아지처럼 가엾게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율…… 리시스 님? 꺄악!”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요이델을 안고 높이 들어 올렸다.
“금지라고 했잖아요!”
“제 시간은 하루가 초나 다름없어서 방금 끝났습니다.”
“말도 안 돼요, 보편적인 시간으로 해야죠!”
허공에서 버둥거리던 요이델이 그의 어깨를 팡팡 치자 율리시스는 고통도 아니라는 듯 잔뜩 심통 난 얼굴로 가늘게 눈을 좁혔다. 똑같이 통증이 오는 요이델 자신의 어깨는 꽤 아픈데.
그의 푸른 눈동자가 요이델의 시선 바로 아래에 있었다. 빨려들 것 같은 맑은 하늘색의 두 눈이.
“이러실 거예요?”
“네.”
“…….”
“…….”
“풋.”
둘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어쩐지 눈만 마주쳐도 배배 꼬이고 이유 없는 웃음이 나온다. 왜 이러지?
“성하가 너무 좋아요.”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정말…….”
요이델은 그의 요구를 피하며 이마를 가볍게 부딪쳤다. 닿은 콧대가 율리시스의 피부를 부드럽게 긁고 간지럽혔다.
아직은 ‘좋아’까지만으로도 좋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했다. 욕심은 날이 갈수록 늘어서 다음엔 사랑을 바라겠지만.
기쁜 듯 웃는 얼굴로 심장을 두드리는 자신의 여자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인생 최고의 난제였다.
율리시스를 물끄러미 보던 요이델이 발그레해져 수줍게 속삭였다.
“어쩌면 제가 더 성하를 좋아할지도 몰라요.”
아닐걸.
자신의 음험한 속내를 알면 기겁하고 도망갈 텐데. 그녀가 그쪽 무의식을 엿보지 못한 건 행운이었다.
율리시스는 당차게 부딪치는 요이델의 해맑은 표정을 보고 꾹 참은 채 천사처럼 미소 지었다.
“영광입니다.”
……상인 줄 알았더니 고문이었나.
율리시스는 애써 건실하고 착한 생각을 하며 참고 또 참았다.
최대한 평화로워 보일 수 있게, 속내를 들키지 않게, 그녀가 겁먹지 않도록.
그러기 위해선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은 요이델의 안정.
그 가정이 맞다면……. 율리시스의 눈이 깊어졌다.
“요이델 님.”
그의 목소리가 사랑하는 이를 부르며 더욱 부드럽고 낮아졌다.
“요이델 님께서 아셔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겠어요. 중요한 얘기군요.”
“이전에 실시한 친자 감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율리시스는 묘한 기색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천천히 내뱉었다.
“요보힐데 공작가는 당신의 혈연이 아닙니다.”
━━━━⊱⋆⊰━━━━
율리시스는 그간의 일들로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육체와 영혼의 관계가 다를 경우의 수.’
당연히 흔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 거머리들과의 관계를 떼어 놓으려는 자신의 과한 생각일 수 있다.
그런데 과하면 어떤가.
요이델의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그게 거짓이라도 상관없다. 거짓이라면 진실로 만들면 되리라. 그게 율리시스의 방식이었다.
“프란츠 카터의 유전자와도 일치하는 게 사실인가.”
“명하신바대로 사실만을 조사했습니다.”
“그자의 행적은?”
“준비하신 곳으로 보냈습니다.”
어두운 새벽의 대예배당.
느슨히 기대어 앉은 율리시스는 페넘브라에게 보고를 받았다.
새삼 장미 장식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때 끊기를 잘했군.’
제 입술을 손으로 가볍게 만졌다. 끊은 값은 여러 번 톡톡히 얻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
겨우 제게 온 소중한 사람 앞에 놓인 걸림돌을 파쇄해야 했다.
유전자상으로는 프란츠 카터, 클레멘타인 요보힐데의 딸.
대규모의 금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외부의 관점.
‘요이델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쉽다.’
사건이 아니라, 요보힐데 공작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인 그녀를 필두로.
그렇다면 의외로 모든 것이 어렵지 않게 들어맞는다.
‘약 20년 전, 요이델이 실종됐고 친부모는 그녀를 찾고 있다. 모든 문이 닫힌 것은 지켜야 할 육신만 그곳에 있고 영혼은 없기 때문. 금술로 빼앗아 온 것은 보물, 요이델. 그들이 그녀를 숨기듯 키운 것은…… 들키면 안 되니까.’
빨간 머리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의 요이델은 피어나는 봄처럼 아름다운 분홍색 머리. 몸에 영혼이 동화될수록 외형도 바뀌었을 터. 공작가의 두려움도 커졌겠지.
어떻게 보면 그 지경인데 키우긴 했다는 것도 우스웠다.
얼마 전.
게르암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추가로 발견됐다. 묘하게 조작된 듯한 증거들. 그중에는 요이델의 지문도 섞여 있었다.
반려가 되기 전에 발견했다면 분명히 요이델도 엮여서 죽었겠지. 뒤늦게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공작가가 하나뿐인 공자를 이곳에 보내고 사형 위기에도 찾지 않은 이유…….
율리시스의 이가 으드득 다물렸다.
‘여기서 죽으라고 보냈군.’
메디아에게 들키기 전에, 남의 손을 빌려 완벽히 없애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