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음…….”
메디아의 본성, 아침 식사 자리.
극소수를 위한 조찬이 이뤄지고 있는 다이닝 홀의 풍경은 가히 가관이었다.
커튼 너머에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와 꽃과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희한하고 값비싼 장식들.
요이델은 음식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가는지 모르게 꾸역꾸역 먹었다.
“왜 그러니?! 입에 안 맞아?! 역시 메뉴가 조금 채식 위주지?!”
“누가 아침 식사로 풀떼기 따위를 올리라고 하였나. 조사해서 보고해. 그리고 지금 당장 갓 잡아 올린 활어 요리를 내와.”
“실례지만 차기 수장님, 오늘은 들어온 어류가 없어서…….”
“그럼 내가 잡아 주지.”
“괜찮아요!”
곧 검을 들고 나갈 듯한 휘르무트의 기세에 요이델은 황급히 그를 말렸다.
“그냥 멍하게 생각하는 중이었어요! 절대 맛없거나, 다른 게 먹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필요 없어요. 새벽부터 과하게 준비해 주실 필요 없다고요. 시종들도요.”
사정을 아는 극소수의 시종들은 그림자처럼 벽에 붙어 서 있었다.
그러나 요이델의 말을 들은 그들은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하지만…….”
“시종분들도 서 있지 않아도 돼요. 필요한 거 없어요, 정말로요.”
“그래?”
“네. 그리고 절대 싫거나 불편한 것도 아니니까 멋대로 오해하시고 해고하시면 안 돼요. 요리사를 교체하거나 오케스트라의 음악 실력을 꾸짖으셔도 안 되고요.”
“어우, 맙소사. 그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니? 하하.”
라히에는 탁자 밑에서 빠르게 손짓했다. 어서 가라고. 조용히 보내 줄 테니 다들 나가라는 뜻으로.
“조용해진 건 좋지만 아가의 마음에 들지 모르겠구나.”
“저, 그…… 죄송하지만 그것도.”
“응? 왜, 아가 말이니?”
요이델은 민망해져서 끄덕였다.
“저는 아기가 아닌걸요. 성인이에요.”
“어……?”
툭.
그 말에 모두의 식사가 멈췄다. 라히에와 샨은 물론, 휘르무트까지 허망한 눈빛으로 요이델을 쳐다봤다.
“미안하구나. 아가, 아니 요이델 말이 맞아. 우리에게만 아가이지…… 실은 그게 아닌데.”
“그것 봐요, 내가 다 컸다고 했잖아요. 그치?”
휘르무트도 웃음으로 넘겼지만 어딘지 어색해진 분위기를 숨길 수가 없었다.
요이델은 자신에게 묘한 벽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요보힐데 공작 부부를 만나고 난 이후, 진짜 부모님을 만났는데도 왠지 모르게 공포감이 생긴 듯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부모님인데. 그 사람들이 아닌데 왜 이러는 거야.’
이유 없이 받는 전적인 지지와 다정함이 어색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요보힐데 공작 부부처럼 내게 실망하면 어쩌지? 그래서 진짜 부모님도 나를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그때는 어쩌지?
사과해야 해.
고개를 들고 입을 떼었을 때, 친부모님은 미소 띤 얼굴로 다정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 많이 컸구나, 요이델.”
그들의 말에는 이해가 담겨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제대로 된 답을 알려 줄 줄도 알고. 우리가 너를 곤란하게 했구나.”
“아, 방금 요이델이라고…….”
지금 이름으로 말해 주셨어! 놀란 얼굴로 묻자 그들은 금세 즐거운 얼굴로 웃으며 답해 줬다.
“옛날 이름은 어색하지? 요이델이 익숙하면 그것도 좋아. 멋진 이름이지.”
“인정하기 싫지만 이름 하나는 잘 지었어. 우리는 네가 생긴 걸 알았을 때부터 짓기 시작했는데.”
“맞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한마디씩 거들었으니까.”
세 사람은 옛일을 회상하듯 끄덕였다.
“요이델, 네 이름을 기억하고 있니?”
“……아직은 전부 기억나지 않아요. 죄송해요.”
“죄송하지 않아도 좋아. 사실 죄송할 것도 없잖니?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지은 이름인데, 기억을 못 하면 우리 딸 손해지.”
요이델과 똑같은 빨간 눈을 깜빡이며 라히에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 진짜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저도 외우고 싶어요!”
“그럼! 들어 볼래, 누이?”
답을 가로챈 휘르무트가 서로 먼저 알려 주겠다는 듯 아버지와 눈싸움을 했다.
“좋아. 이번엔 휘르가 알려 주지만, 대신 내일 아침 인사 우선권은 나에게 주는 거다.”
휘르무트의 약속에 샨은 한시름 놓았다. 그 유치한 싸움에서 이긴 휘르무트는 요이델을 지그시 응시했다.
“조금 어려울 텐데, 괜찮지?”
“네! 외울 수 있어요.”
“좋아. 그럼 잘 들어, 누이.”
오라버니는 휘르무트 클라크라고 했고, 부모님은 라히에휘엘 에보르, 샨하르 르카딘이라고 했으니까 나도 비슷할 거야. 뒤에 본 메디아만 붙겠지.
“릴리메이엘 에니시아 아클레타 안젤로 테아르바티니엘 스텔라 벨 포스포로스 이스필레티나 플로라 본 메디아.”
“네?”
“그게 이름이야. 예쁘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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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제 이름이래요! 엄청 길어서 결국 적어 놨어요.”
메디아의 중심 상업 지구로 관광을 나온 요이델은 잔뜩 들떠 있었다.
이곳에서는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로브를 푹 눌러쓰지 않아도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율리시스는 열정적인 손짓 발짓으로 그간의 일을 알려 주는 요이델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영광스러운 선대들의 이름을 몇 개나 미들네임으로 줬다는 건, 그만큼 사랑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우와, 그래서 그런 거예요?”
그렇구나, 그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어. 요이델은 행복하지만 왠지 쑥스러워져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런데 율리시스 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메디아의 일인데?”
“…….”
“아! 이전에 만나 본 분도 계신 거군요!”
“……글쎄요.”
율리시스는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그는 가끔 자신의 몰염치함을 자각했다. 아무리 그일지라도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은 있었으므로.
오늘은 요이델이 그를 선택한 덕분에 함께 나올 수 있었으나 대가로 수장 일가의 맹렬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상관없다.
‘하지만 상당한 오해를 받는 듯하군.’
식사 자리에서 요이델의 폭탄선언이 터진 후, 침묵 속에서 자리가 파했다.
그녀는 ‘페어링이 됐다’라는 뜻으로 말한 거겠지만, 듣는 이들은 상당히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특히 가족들은.
“율리시스 님, 이건 어때요? 잘 어울릴까요?”
“당신에게는 무엇이든.”
“아, 아뇨! 저 말고요. 가족들의 선물을 사러 온 거잖아요. 이건 오라버니에게 드릴 거예요.”
“대충 그거면 어울릴 듯합니다.”
“네?”
율리시스의 뚱한 표정에 요이델이 그를 살짝 찔렀다.
왜 그러냐는 듯 올망졸망한 눈동자에 율리시스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차기 수장은 마검사이니 검집이 좋을 듯하고, 수장들은 각각 정령사와 검사이나 당신이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좋아할 테니 잠옷을 사 줘도 좋아할 겁니다.”
“와! 그거 좋네요! 잠옷!”
잠옷이 가장 좋을지도 몰라. 세 분은 늘 사이좋게 모여서 자니까.
부모님을 되찾은 첫날, 요이델은 그들의 침실에서 다 같이 잤다.
아마도 메디아의 관습이 아닐까? 부모님은 그렇다 쳐도, 오라버니까지 모여서 잤으니까. 숙면을 중요시하는 게 나라 혹은 가문의 풍속인 듯했다.
“가족이란 멋진 거군요.”
그때 율리시스가 어쩐지 토라진 눈빛으로 요이델을 가만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의 새로운 잠옷 차림을 가장 먼저 보기도 하고.”
“아…….”
“요이델 님의 머릿속에서 제 몫의 관심을 다시 앗아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낮게 속삭이며 어르는 말에 요이델은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그러면?”
율리시스는 차분하고 매혹적인 미소로 곁에서 은근히 답을 물어 왔다. 간지러운 목소리에 요이델의 눈이 파르르 떨 듯 감겼다.
입이 마른 듯 입술을 축이던 요이델이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그를 수줍게 바라보았다.
“좋아요! 그러면 율리시스 님도 한 벌 사 드릴게요!”
“……아. 제 것?”
천진한 권유에 율리시스는 다시 한번 허망하게 하늘을 응시했다. 그럼 그렇지.
“그것 참 귀엽겠군요. 됐습니다.”
“진짜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내놓으라고 하면 안 돼요?”
“네.”
“정말이죠? 율리시스 님이 잠옷을 좋아하시는 줄 몰랐어요. 하긴, 옷에 관심은 없어 보였는데 나이트 가운은 많았죠.”
“네. 제가 그랬나 봅니다. 그보다 선물을 준비하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아, 그건 제가…… 사실은요.”
요이델은 율리시스에게 가까이 붙어 팔짱을 꼈다. 율리시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직 부모님께 엄마, 아빠라고 말을 못 했어요. 그래서 선물이라도 드리면서 조금씩, 이걸로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무리일까요?”
답이 들리지 않아서 의아해진 요이델이 그를 올려다봤다. 왠지 모르게 그의 귓바퀴가 붉었다.
“충분히 전달될 겁니다. 그들도 요이델 님의 사정을 알고 있으니 재촉할 생각도 없을 것이고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왠지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저는 부모님 소리도 제대로 못 하니까…….”
“그들이 가슴 아파할 건 그런 걸로 당신을 고민시켰다는 사실. 그것뿐입니다.”
그는 요이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누구보다도 귀중한 아이 아니십니까.”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요이델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율리시스는 잠시 먼 곳에 시선을 주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가족들이 얼마나 당신을 아끼는지 알려 드릴까요.”
“네? 어떻게…….”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고개를 들어 올리고 비스듬히 입술을 내리던 그때.
“우연이군!”
별안간 땀 범벅으로 나타난 휘르무트가 둘 사이를 팔로 가로막으며 다급히 찢어 놨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여기가 참, 좋은데, 우연, 이야. 이 상점 앞이, 내, 산책로거든.”
“아까부터 몰래 숨어서 저를 죽일 듯하더군요.”
율리시스가 남몰래 속삭이자 요이델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가슴이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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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서, 서서선물이라고?”
“세상에. 보좌관! 섬유 조직 관찰용 마도구! 지금 당장!”
부리나케 달려온 보좌관들에게 아티팩트를 전달받은 수장들은 선물받은 잠옷 하나하나 샅샅이 살폈다.
마치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역시 안 되겠어.”
그들의 기쁨에 어쩔 줄 모르고 부끄럽게 안도하던 요이델이 놀란 눈을 했다.
“저, 안 되겠다면 역시 별론가요?”
“아니!”
“꺅!”
세 사람의 우렁찬 대답에 요이델의 고막이 터질 뻔했다.
“역시 내 잠옷이 제일 아름다워. 어머니 아버지 것보다 제 것이 가장 요이델의 것과 비슷합니다. 아시겠습니까?”
“흥, 아들아. 요이델은 어렸을 때부터 하얀색을 좋아했단다. 내 것만 특별한 흰색인 걸 보면 모르겠니?”
“나는 사이즈가 제일 커!”
“그건 당신의 덩치 때문이잖아요.”
부인의 일갈에 시무룩해진 샨은 진지하게 고민하다 엄숙한 얼굴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이것을 국보 782호로 삼는다.”
“네?”
“그거 좋은 의견입니다, 아버지.”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샨, 치사하게 굴지 마!”
서로 좋다며 국새를 찍기 직전, 요이델은 겨우 그들을 뜯어말렸다. 엄청 시무룩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안 된다.
하지만 좋아하는 가족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요이델은 오늘은 선물 기념이라는 명목하에 다시 그들과 한 침대에 누웠다.
어슴푸레한 늦은 밤.
라히에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받치고 옆으로 누워 요이델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그런데 왜 잠옷이었니? 엄마는 너무 궁금해.”
“메디아에서는 다 같이 자는 풍습이 있는 것 같아서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하! 맞아. 우리가 그런 관습이 있지.”
“잘 자렴, 요이델. 좋은 꿈 꿔.”
이불과 사랑에 폭 둘러싸인 요이델은 따뜻한 잠에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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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그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주위가 확 밝아졌다.
“아가야, 혹시 기억나는 이름이 있니? 너의 이름이나, 다른 사람의 이름, 어느 것이든 좋아.”
“우응.”
저 얼굴은, 수녀님?
꿈속의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저어서 있는 힘껏 의사 표시를 했다. 아마도 그게 최대치 표현인 것 같았다.
말이 막히고 머리도 멍했다.
제대로 발음이 나오지 않았다. 뭐가 머릿속을 꽉 누르는 것처럼. 짓눌려서 기억이 사라지듯이.
수녀님은 따뜻한 미소로 하나씩 설명했다.
“아, 이름이 뭔지 잘 모르는구나. 이름은 ‘나’를 부르는 말이야. 혹시 기억나니?”
“닝니.”
“응? 다시 한번 말해 줄래?”
“닝…….”
우물쭈물하던 꿈속의 내가 다시 한번 말했다.
“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