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형체가 있는 모든 것?’
그 말은 즉 사람이어도 상관없다는 뜻이 된다.
“이상한 마법을 많이 쓴 공작 부인의 몸도 건강하지만은 않았을 거야.”
요이델은 옛 기억을 떠올리는 데 집중했다.
율리시스의 힘을 빌렸던 날 이후부터 기억력이 훨씬 좋아졌다.
‘기억났어, 다른 곳은 젊었지만 손만큼은 갈라지고 노화가 심했지. 장갑 안쪽은 분명히 그랬었어.’
손을 귀중하게 여겨서 요이델을 혼내려고 매를 들 때에는 대부분 시종을 시켰던 게 떠올랐다.
어렸을 적의 기억 때문에 괜히 종아리가 따끔따끔 아픈 기분이었다.
“어쩌면 시엔델은 처음부터 아팠던 아이였는지도 몰라. 시엔델을 살리기 위해서 튼튼한 몸이 필요했던 거야.”
이전 세계에서 그런 경우들을 본 적이 있었다.
병약한 아이를 살리려고 그 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항체를 위해 둘째 아이를 낳는 경우.
“나는 분명히 그런 이유로 데려왔을 거야……. 하지만 그건 아이를 하나 더 낳았을 때의 문제야.”
그렇다면 굳이 나를 데려올 필요도 없고. 애초에 쌍둥이였는데 왜 한 쪽만 희생시키려고 했을까?
“……설마.”
요이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지익―
펜으로 메모하다가 손길이 쭉 엇나갔다. 요이델의 얼굴이 전례 없이 일그러졌다.
“이미 한 아이는 살릴 수 없는 상태였던 거야.”
쌍둥이인 건 맞다. 하지만 한 명은 배 속에서 죽었고, 다른 하나도 위태로웠다면 금술에 손대는 짓까지 시도해 볼 수 있다.
……증폭 마법도 아마도 사용했겠지. 아이를 잃을까 두려웠을 테니까.
어쩐지 기분이 착잡해졌다. 이 가설이 맞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이미 죽은 몸에 들어간 게 맞다면 이 세계에서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나는…….
“브리칼트는 많은 제물을 바쳤고, 나는 다른 차원에 있었어. 얼굴도 똑같고 기억도 같은, 지금의 나야.”
어떻게 그쪽에 있었는데 모든 게 똑같았을까?
‘실종됐을 때 메디아 사람으로서의 내 나이는 다섯이라고 했어. 공작가의 몸과 나이 차이가 나.’
분명히 이 금술은 실패했을 것이다.
원래 데려오려고 했던 내가 다른 곳에서 자라게 되었으니까.
‘이 몸에 남아 있는 최초의 기억은 최소 신생아, 어쩌면 태아 시절.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쯤부터 시작된 것 같아.’
생각을 정리할수록 떨림이 진정되었다. 요이델은 오래 한숨 쉬었다.
금술은 영혼을 담으려는 몸의 연령이 어리면 어릴수록 실패할 확률이 크다.
“그래서 그만한 규모의 제물이 필요했던 거고.”
요이델은 종이에 숫자를 썼다. 그 라보르비치의 구덩이에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수였다.
무려 다섯 자리가 넘어가는 엄청난 학살.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바꿔치기를 시도하다가 오류가 발생했을 때 빠져나간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요?”
“보통 영혼은 소멸하고 육체는 깨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이델은 마르셀리나와의 수업 내용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소멸하지 않았어. 몸도 깨지지 않았잖아. 시엔델처럼 아픈 곳도 없이 건강했어.’
오히려 짐승처럼 백치 같고, 쓸데없이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었지.
‘……아.’
펜을 두드리던 요이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촤르르륵.
요이델은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실낱같은 희망을 찾았다.
‘있다! 이거야!’
요이델은 급히 통신구를 찾아 꺼냈다.
━━━━⊱⋆⊰━━━━
삼대륙 회의 당일.
이른 아침부터 메디아의 본회의용 홀에 각국의 사람들이 들어찼다.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원형 홀에 가득한 녹음과 끝없이 높은 천장은 메디아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휴우, 휴우우.”
로브를 뒤집어쓴 요이델이 긴장으로 숨을 내쉬었다.
각국 수장은 홀 중앙의 넓고 둥근 탁상에 앉았고, 그 보좌들은 탁상을 에워싼 계단형 구조를 올랐다. 강의실처럼 각 층에는 책상과 의자들이 자리했다.
‘나쁜 놈은 얼굴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역시 그 사람이 맞아.’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곳.
그곳에는 브리칼트의 황제가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마치 이 사태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끝까지 편하진 않겠지만.’
요이델은 신관의 옷을 입고 성국 측 자리에 앉아서 황제를 내려다봤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중앙 탁상과 그 위층의 거리가 멀더라도 자신보다 위쪽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게 유쾌하진 않은 듯했다.
“요이델, 저런 거 보면 눈 상해.”
“그렇습니다, 신관님. 이미 눈이 충혈되셨습니다.”
“응? 아, 아냐. 괜찮아. 난 지금 두근두근 거리는 거야.”
“오오, 델. 자신 있는 거야?”
“당연하지.”
휘스테론은 약간은 긴장으로 굳은 요이델을 보고 웃는 얼굴로 긴장을 풀어 줬다.
“궁금한데? 안 그래도 마르셀리나 할멈이랑 통화를 몇 시간씩 하더니 델 너…….”
푸른 보라색 눈동자가 요상하게 휘었다.
“그래도 성하랑도 놀아 줘. 어제 네가 하루 종일 안 만나 줘서 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더라고. 요즘 성하도 이상해. 막, 이 미소.”
휘스테론은 율리시스의 표정을 흉내 내며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요것도 안 해 준단 말이지.”
“오늘 아침에 만났어!”
“응? 지금도 아침인데?”
“급한 일이 있어서 새벽에 만났거든.”
밤새 고민했던 요이델은 이른 시간에 율리시스에게 달려가 생각을 말했다.
부모님과 오라버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왜?”
“오늘 회의가 열리니까, 그 전에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델도 참 부지런해. 그러니까 성하랑 만나겠지 싶지만 신기하단 말이야.”
휘스테론의 감탄에 요이델은 헤헷 웃었다. 무척 긴장했었는데, 그래도 친구들 덕분에 마음이 놓였다.
“비켜라.”
계단 위쪽 문으로 들어온 휘르무트가 가볍게 휘스테론을 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꼭 여기서 지켜봐야겠어?”
휘르무트가 요이델을 지나쳐 걸어가며 스치듯이 물었다.
‘네 안전을 위해 최선의 병력을 배치할 거다.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회의니까. 하지만 꼭 그 자리에 참석해야겠니?’
휘르무트는 이전부터 안절부절못하고 요이델을 설득하려 했었다. 물론 소용없었지만.
그는 걸어 내려가다 말고 뒤돌아 멈춰 서서 가만히 요이델을 봤다.
‘여기 있을 거예요.’
요이델은 벙긋거리며 결연하게 끄덕였다.
가만히 바라보던 휘르무트는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피식 웃고 제 자리로 내려가 앉았다.
메디아의 수장들도 착석했다. 라히에와 샨 사이에는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무거워서 차디차게 얼어붙은 살얼음판 같았다.
요이델도 오늘만큼은 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괜한 땀을 흘렸다.
‘안녕.’
그때 저 멀리서 웃는 얼굴로 손 흔드는 아카코스가 보였다.
아카코스의 우측에 앉아 그 꼴을 본 휘르무트의 표정이 아니꼽게 팍 일그러졌다.
“성하다. 델, 성하야.”
휘스테론의 속삭임에 요이델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분은 여전하시군.”
“실물로 모습을 뵙기는 처음이네.”
“과연 소문만큼이나 뛰어난 외모야…….”
주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율리시스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살짝 몸을 일으켜 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율리시스의 시선은 정확히 요이델에게만 향해 있었다.
“이야, 델만 보는 것 봐.”
“응.”
“응?”
요이델은 밝게 웃으며 그 말에 수긍했다. 오히려 휘스테론이 놀라서 요이델을 쳐다봤다.
반짝거리는 요이델의 시선 역시 율리시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도 율리시스 님만 보고 있으니까.”
“어…… 그래.”
휘스테론의 떨떠름한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우리는 같은 마음이겠지.
익숙하지 않은 회의장의 분위기에 조금 마음을 졸였던 게 싹 누그러지는 듯했다.
━━━━⊱⋆⊰━━━━
벌써 다섯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은 의례적인 이야기들이나 비교적 가벼운 안건들로 의견을 나누며 회의의 분위기를 다져 갔다.
‘이제 슬슬 본론이 나올 차례야.’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은 각 대륙의 대표적인 국가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제3국이 도맡았다.
“마지막 안건은, 라보르비치에서 발생한 이십여 년 전 사건에 대해서입니다.”
그 말이 나오자 좌중이 술렁거렸다. 이미 모두에게 익히 악명을 떨친 이야기였기에.
오히려 황제는 평온했다.
“과거 라보르비치와 근방의 크고 작은 국가들에서 사람들이 대거 실종된 일이 있었습니다.”
황제는 눈을 감고서 미소까지 띤 얼굴로 의장의 말을 들었다.
그 모습에 장내의 많은 사람들이 눈가를 찌푸렸다.
“당시에는 증거와 흔적을 찾기 어려웠기에 헤맸던 사건이지만 오늘날 마침내 그 흔적과 유골들을 발견했습니다.”
의장의 말이 이어졌지만 황제는 여전했다.
“브리칼트가 라보르비치의 정식 허가도 없이 용도를 알리지 않은 채 채굴해 왔던 광물들 옆에서 말입니다.”
“그랬군. 나로서도 참 다행이지 무언가. 백골들이 제 가족을 찾아갈 수 있게 되어 가슴 깊이 안도를 느끼고 있네. 신의 가호가 아닌가.”
황제는 진심으로 그렇다는 듯 가련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에게 신앙심이 없는 건 모두가 아는 바였다. 명백한 비아냥이었다.
표정이 없고 묵묵하던 의장마저 질린다는 기색을 띠었다.
“……그러던 중 백골들에게서 금술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피해국의 몇몇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브리칼트와 성국이 각기 반쪽씩 갈라 가지고 있었던 그 금지된 마법서에 나오는 금술 말입니다.”
황제는 느긋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저히 인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쾅!
그때 격노한 타국의 왕이 탁상을 내리쳤다.
“지금 이곳이 폐하를 위한 놀이장인 줄 아십니까? 진중히 임하십시오!”
“브리칼트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지 않은가. 금술을 했다 한들, 그게 곧 이쪽의 소행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가?”
라보르비치에서 지오르베니가 저지른 사건이 있었는데도, 황제는 모르쇠 작전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그 증거의 확실성을 증명할 수 있나 보지?”
황제의 말이 떨어진 순간.
권태로운 듯 가만히 있던 율리시스가 의장을 보고 신호했다.
또각, 또각.
그때 홀연히 나타난 발소리가 회의장의 중앙에 가까워지고…….
“제가 할 수 있겠네요.”
로브를 젖힌 요이델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