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왔니? 여기 앉으렴.”
“오셨습니까, 성하.”
혼란 끝에 종료된 삼대륙 회의.
하지만 마무리 지을 것들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요이델은 회의가 끝난 다음 날, 부모님에게 공작가에서 살아온 과정에 대해 모두 말해 주었다. 그 결과.
“한숨도 못 주무신 거예요?”
“푹 잤는데, 피곤해 보이니?”
수장들의 눈은 퉁퉁 부어 버렸다.
그를 가만히 살핀 율리시스는 울면 붕어가 되는 것 역시 유전인가, 하고 조용히 생각했다.
“저기 서류가 잔뜩 있는데 어떻게 푹 주무세요?”
“아아!”
방에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산을 쌓아도 되겠다. 성하도 이 정도로 힘들게 일하진 않았는데.
요이델의 걱정에 부모님은 서류 더미를 밀어 버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니야, 아가! 엄마 아빠는 하나도 안 피곤하단다. 하하!”
“무슨 일 있었어요, 엄마?”
“응? 아니, 일은 무슨 일?”
“오늘 조금 창백해 보여서요…….”
요이델의 물음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어어, 그보다 우리 요이델이 엄마 아빠에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부터 할까?”
“아! 맞아요. 실은…….”
요이델은 그동안 율리시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라히에와 샨도 휘르무트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듯 놀라지 않았다.
“그랬구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엄마 아빠도 도와줄게. 그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정했니?”
“다음이라면…….”
“너의 거처 말이야.”
요이델은 옆에 앉은 율리시스를 바라보았다.
“저는…….”
“여러 번 고민해도 어려운 결정이겠지. 천천히 생각해 봐도 좋단다. 그 전에 해야 할 일도 있지 않니?”
샨의 말에 요이델은 아, 하고 깨달았다.
“요보힐데 공작가의 처리 말인가요?”
“……그것도 그렇지. 황제의 수족이 묶였지만 요보힐데 공작가는 잠적한 상태이니까.”
그들은 요이델이 걱정할까 우려한 듯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배를 탔었던 황제를 버릴 준비도 끝낸 것이다. 공작가와 브리칼트의 성, 마탑을 모두 뒤져도 그들의 행적이 나오지 않았다.
‘회의가 개최되기도 전에 숨어 버렸다고 했지.’
다만 급하게 떠난 듯 과거 마법의 흔적들은 그곳에 남아 있었다.
라히에는 저절로 나오는 살기를 감추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거대한 폭포가 아래로 쏟아지는 풍경과 우레처럼 땅을 흔드는 물소리가 들렸다. 라히에는 그 광경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황제를 저기에 수장시켜 버릴 걸 그랬나?”
“좋은 생각이야, 라히에. 왜 그때는 생각을 못 했지?”
“네?”
부모님의 진지한 중얼거림에 요이델이 놀라 옆을 돌아봤다. 그러나 율리시스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정말로 다들, 꺄악!”
푸드득!
열린 창문으로 거대한 새가 들어왔다. 새는 요이델에게 다가와 앉았다.
굉장히 화려하고 예쁜 모양에 감탄하던 그때, 라히에가 눈을 찌푸렸다.
“떨어지지 못해, 릴리나! 요이델! 그 새를 당장 쳐 내!”
―께에에엑!
괴수 같은 울음소리를 낸 새가 피할 틈도 없이 날개를 활짝 펴고 요이델이 팔로 얼굴을 가린 순간.
―끼루루!
새가 날개를 파닥이며 요이델 주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샨, 봤어? 릴리나가 똥을 싸지 않았어.”
“자기의 이름을 어디서 따왔는지 아는가 봐.”
“릴리나, 이리 와.”
라히에의 말에 새가 그녀의 손목으로 가 앉았다.
“네가 없는 너의 생일을 맞이하던 어느 날, 죽어 가던 작은 새를 주웠단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데리고 와 릴리나라고 이름 지었지. 네 이름에서 딴 거야.”
―끼루룩!
요이델은 코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알레르기로 간지럽지 않았다. 키우는 새였구나.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데 너는 잘 따르는구나.”
라히에와 샨은 요이델에게 다가가 양쪽 볼을 감싸 쥐고 새의 발에 할퀴어진 곳이 없나 살피다가 와락 안았다.
“성하께서도 보셨습니까? 이건 신성 마법의 힘입니까?”
“우리도 동물과 친하지만 이 정도로 쉽게 길들이지는 못했는데…….”
그들은 신기한 듯 말하며 율리시스를 쳐다봤다.
“특별한 마법은 아닙니다. 요이델 님께서 타고나신 능력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저희의 생각이 맞군요.”
“역시 그런 것 같지.”
샨과 라히에는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막내는 무력화도 쓸 줄 아는 거야. 자각이 없는 걸 보니, 타고난 축복인 거지.”
“무력화요?”
“그래. 그때 정령 기억나니? 네게 다가가지 않았던.”
“아…….”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게 자신을 꺼려 해서가 아니었나?
요이델의 눈이 초롱초롱해지자 라히에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기적 같은 일이지. 우리 조상 중에는 신성력을 주 능력으로 사용했던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고.”
“가족이랑 다르면…… 전 혹시 돌연변이인가요?”
“특별한 아이인 거야.”
그녀는 요이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령은 지능이 사람보다 똑똑해서 쉽게 길들여지지 않아. 단숨에 길들여질 바에야 소환을 끊고 정령계로 돌아가 버리고 말지.”
성질이 더럽단 뜻이란다, 하고 속삭이는 말에 요이델도 풋 웃어 버렸다.
“너는 네게 위협적일 만한 것들의 적의를 본능적으로 무력화시키는구나. 네게 유리하게 바꿔 버리는 거지. 정말로 타고난 재능이야.”
요이델은 거대 강아지 베리를 생각했다. 그럼 혹시 플로테스도?
“신수도 그럴까요?”
“신수는 정령보다 더 똑똑하지. 그게 너를 잘 따랐다면, 그건 우리 요이델을 좋아해서일 거야. 마치 성하처럼.”
“앗, 성하는…….”
“서로 눈이 마주친 동시에 빠졌다고 하지 않았니? 그래서 성하가 너를 아끼셨다고…….”
요이델은 미화시켜서 말한 사랑 이야기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부모님을 위한 미화였지만 아무래도 양심이…….
“여기서 말하긴 부끄러워요. 다음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다음이랄 게 뭐가 있니? 나는 성하의 이야기도 듣고 싶구나.”
부모님의 말에 요이델은 어색하게 율리시스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는 요이델이 했던 거짓말에 놀라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다 맞다는 듯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율리시스와 눈이 마주친 뒤 더 짙어진 미소에 깨달았다. 압박이 담겨 있는 미소라는 걸.
―설명드릴게요. 이번에만 제 말에 맞춰 주세요.
―좋습니다.
둘은 페어링으로 말을 맞췄다.
이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자, 그럼 다 같이 식사부터 할까?”
━━━━⊱⋆⊰━━━━
메디아는 저녁이지만 대신전은 한밤중인 시각.
“우우웅!”
곤히 자던 플로테스가 느닷없이 눈을 번쩍 뜨고 버둥거렸다.
“아아잇! 신수님, 왜 그러십니까!”
“시뎌!”
파바바박!
어느덧 말이 늘어난 플로테스는 저를 껴안는 팔을 앙! 깨물고 쳐 냈다.
“아이고, 악몽을 꾸셨습니까? 후아아암. 아이고, 내 피. 흠, 한숨 자면 멎겠지요. 다시 잡시다. 아기 신수는 코오오― 잠들 시간이지요?”
요이델도 율리시스도 없는 지금.
플로테스는 아슈레오가 아닌 하일이 맡고 있었다. 단순히 적적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시뎌! 아니야!”
뭔가 이상했다.
이 심상치 않은 기분은 뭘까?
플로테스는 자신을 옥죄는 하일을 짧고 뭉툭한 뒷다리로 뻥 차고 퐁, 날개를 펼쳤다.
쿵!
그러나 바로 추락했다.
“끄으으우웅! 끼아악!”
얼굴을 땅에 박은 플로테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신경질 부렸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다!
다시 도전하려던 그때.
휙―!
“그러다 몸 상하십니다. 성후님은 곧 오실 테니 걱정 마시고 코오, 주무십시다. 아시겠지요?”
“우우웅! 뇨엥! 뇨이엥!”
“오늘따라 잠투정이 왜 이렇게 심하실까.”
“바브!”
짧은 팔다리를 버둥거린 플로테스는 이불에 통통한 뺨을 폭 묻었다.
“으앙, 으아아앙―”
작은 몸이 통실통실 흔들리며 통곡했다.
“아! 아하, 이것 참. 아기는 아기시군요. 성후님은 곧 오실 겝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신수님.”
“으응! 뇽! 가! 가아!”
“예에 맞습니다. 가셨지요. 하지만 반드시 돌아오시니 걱정 마십시오.”
그래서가 아닌데 저 바보는 알아듣질 못한다. 플로테스는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에 몸을 떨었다.
“뇨잉…….”
옹알거리는 목소리가 바람에 묻혔다.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플로테스의 귀가 쉴 새 없이 쫑긋거렸다.
━━━━⊱⋆⊰━━━━
요이델은 귀빈실에 놓고 간 물건을 챙기러 잠깐 들렀다.
‘이제 모두 내가 메디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
힘이 풀려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성국의 사람들은 어쩐지 어색해하며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요이델은 부모님께 미화시킨 사랑 이야기를 줄줄 읊고서야 겨우 해방되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앉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었다.
‘잘 넘어가서 다행이야. 앞으로 거짓말하고 살면 안 되겠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더 힘든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
요이델은 봤다. 그 서류 더미 속에 뭐가 있었는지.
그래서 알고 말았다. 왜 부모님이 놀라서 서류를 치워 버렸는지.
‘내 생일 계획서였어.’
성대한 파티를 위한 계획표였다.
이쯤이 생일이었구나. 신기했고 자신이 생일 파티라는 걸 가질 수 있다는 게 낯설었다. 그리고 좋았다.
‘모르는 척해 주는 게 맞겠지?’
요이델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베개로 히죽거리는 얼굴을 꾹 눌렀다.
그러면서도 기쁨에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금세 축 처져 버렸다.
“……이제 돌아가야겠지?”
일단 율리시스 님은 장시간 성국을 비워 놓을 수 없으니까.
‘우선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부모님의 말을 듣고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내게 무력화의 힘이 있다면, 그 많은 희생을 들이고도 금술이 실패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닐까?
이 힘이 없었다면 어쩌면 완전히 성공하는 게 아니었을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요이델 님, 수장님들께서 부르십니다.”
평범한 인상의 여자 시종이 요이델을 불렀다.
“수장님들께서요? 왜요?”
“성황과 관련하여 할 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거짓말한 걸 눈치채셨나 봐!’
조마조마해진 요이델은 시종의 안내를 받고 따라갔다.
조금 갑작스럽긴 했다. 일이 바쁘시다고 식사 자리도 제법 빨리 끝내지 않았었나?
브리칼트 제국의 유지 문제도 그렇고, 삼대륙 회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며 처리할 일이 많아서 바쁘실 텐데.
아직 모든 손님이 다 돌아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잠깐.
요이델은 걸음을 멈췄다.
“수장님들께서 저를 성황 때문에 불렀다고요?”
스산한 바람이 지나는 가운데 오한으로 몸이 떨렸다.
쿵, 쿵.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왜냐하면 보통 율리시스를 부르는 호칭은 성황 성하거나 성하였으니까.
시종은 타국의 왕을 함부로 칭할 수 없다. 자칫하다가 분란이 될 소지가 있으므로.
그렇다는 건 즉.
“나를 이용하려는 거군요.”
변장 마법이 풀림과 동시에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천천히 뒤로 돌고, 시선이 마주쳤다.
예상대로였다. 요이델은 눈을 확 찌푸렸다.
‘……젠장.’
황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