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율리시스와 재회하자 심장이 다시 두근두근 뛰었다.
“……저희 페어링이 다시 됐나 봐요.”
쉬익― 쾅!
그때 만신창이의 몸을 끌고 일어선 황제가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율리시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는 황제가 날린 화염 마법을 낙뢰로 가볍게 받아쳤다.
“제기랄…… 여자에 눈이 멀었나 했더니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군.”
황제는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고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요이델이 율리시스에게 속삭였다.
“우리 밝은 곳으로 가요.”
그들이 서 있는 쪽은 그늘이 져서 어두웠다. 요이델은 율리시스와 함께 위로 향했다.
“플로!”
-크르르릉!
소리를 들은 플로테스가 요이델을 내려다봤다. 빛에 맞아 쓰러졌던 공작 부부를 갖고 놀던 플로테스가 쓰레기처럼 그들을 툭 던졌다.
“플로테스가 신수의 돌을 삼키더니 저렇게 됐어요.”
“일시적인 급성장이니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기다려라!”
그때 그들을 뒤쫓은 황제가 크게 외쳤다.
“감히 어딜 가는 건가?!!”
황제는 믿기 힘든 힘을 광적인 힘을 쏟아 냈다. 잘라 낸 팔에서 마수의 신체 같은 기이한 것이 돋아났다.
“저건, 금술이에요!”
그때 봤던 연금술서에서 나온 마법 중 하나였다. 자신의 신체를 매개로 범접 불가한 힘을 빌려오는 것.
황제가 피를 흩뿌리며 마법을 쓰자 마수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저것 역시 금술이겠지.
그 고약한 냄새에 요이델은 눈을 찌푸렸다. 이곳은 반파된 동굴 안, 어둠 속에서는 마수가 유리하다.
‘……그렇지.’
쾅!
콰과광!
요이델은 미친 듯이 앞을 가로막는 바위 덩이를 때려 부수는 황제를 보고 율리시스의 손을 끌고 내달렸다.
“마수는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위험해요.”
요이델이 그를 말렸다.
“황제의 피가 흩뿌려져 있는 한 계속 나올 거예요. 매개체의 의지를 따라서요!”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말뜻을 알아챘다.
금술은 본래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영역. 율리시스는 절반을 신의 피를 타고났다.
금술로 태어난 것을 성력으로 없애려 했다가는 오히려 더 무럭무럭 자랄 양분을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콰르릉!
바로 그때 황제의 마수가 발치까지 뒤쫓아왔다. 미친 듯한 빠르기였다.
“율리시스 님! 더 빨리 뛸 수 있어요?!!”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염려가 우습게도 그녀를 안고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무던한 얼굴로 달렸다.
“하실 말씀이 있는 얼굴이십니다.”
“빛! 빛이에요! 빛이 환한 곳으로 가야 해요. 어둠보다 빛을 싫어할 거예요. 황제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마수들이잖아요?!”
그의 옷을 꽉 잡은 요이델이 빠르게 말했다.
쾅!
요이델은 무작위로 마법을 날려 돌을 떨어뜨렸다. 기세 좋게 쫓던 황제와 마수들은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우왕좌왕했다.
“아아악! 시끄럽다!”
황제의 맹점, 그건 바로.
“황제는 시력을 잃었으니까요! 어둠에는 익숙하지만 빛에는 혼란을 느낄 거예요!”
요이델은 다급하게 외쳤다. 그 말을 들은 황제가 핏발 선 눈으로 요이델을 노려봤다.
회의 전, 두 호위 기사에게 면밀히 조사를 부탁했던 게 바로 이거였다.
황제가 방문할 때면 어두워지던 요보힐데 공작가. 황자 시절 늘 성국을 올려다봤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에 통증을 느끼고 커튼을 쳐 버렸다던 황제.
‘어쩌면 황제가 나를 신관이라고 칭한 건 도발이 아니라 정말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곳을 좋아하는 건 지리를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 머리 위에 위협적인 게 있는 걸 꺼려 하는 것도 어쩌면 직접 볼 수 없기에. 대공가가 보낸 거울에 분노를 한 건…….’
시각을 사용할 수 없기에. 볼 수 없으니까.
삼대륙 회의 자리에서 그의 경미한 태도 변화를 보고 완전히 확신했다. 아예 못 보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주위를 인식할 정도도 되지 못한다.
“과거 황제가 되기 위한 수를 쓸 때. 그때부터 시력이 안 좋아졌을 거예요. 제 말이 틀렸나요?”
요이델의 말에 황제가 허를 찔린 얼굴을 했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그가 제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리한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후 공작가와 일으킨 일로 상태는 더 악화됐겠지.
“아아아악!”
콰직!
이성을 잃은 황제는 빛 한가운데에까지 쫓아왔다. 그 순간 율리시스가 황제의 목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바닥에 콰드득! 처박았다.
바닥에 속박된 채 살갗이 빛에 타 들어 가는 황제의 마지막 몰골은 처절했다.
“뇽.”
“……난 괜찮아, 플로.”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인 플로테스가 거대한 머리로 요이델의 시야를 가려 줬다.
자비 하나 없는 율리시스의 손에 천천히 힘이 실렸다. 황제는 제 숨통을 끊으려는 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율리시스의 팔에 손톱을 찔러 넣고 숨이 꺾일 듯 안간힘을 다하다가 별안간 비릿하게 웃었다.
“……크읍, 큭,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우욱!”
황제의 웃음소리가 죽은 것처럼 뚝 끊긴 순간, 그가 돌연 율리시스를 노려봤다.
“그때 네놈이 개소리를 지껄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결과는 없었을 텐데.”
목소리와 표정이 섬뜩했다.
“저 무결한 낯짝은 세월이 지나도 일그러지지 않는군. 저 하늘에 떠 있는 조악한 대신전 따위처럼!”
황제는 질려 가는 숨을 토했다.
“언제나 고고한 태도로 나를 짓밟으니 좋던가? 머리 위에 서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모두가 제 비위를 맞추는 꼴을 보는 건 어떻던가. 왜 그딴 말을 했지? 왜 내가 황제감이 아니라고 해서. 왜! 내 소원은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 주제에 너 따위가 무슨 신의 핏줄이란 말인가! 내 아버지는 멍청했다! 네게 후계 결정권의 자문 따위 구하지 말아야 했어!”
울부짖음이 처절했다.
“권력이 아니면, 내게 남은 게 뭐란 말이야…….”
황제는 자조하듯 물었다.
“신관님!”
반파된 동굴 안으로 급하게 들이닥친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오직 율리시스만이 감정의 동요 없이 고고한 얼굴로 이 동굴과 황제를 파괴할 준비를 했다.
우웅―
성력이 모이는 공명음이 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 보여.’
요이델은 죽어 가는 황제를 쳐다봤다. 황제의 눈이 희번덕 뒤집어졌다.
“……나는 역시 소원을 이뤄야겠다.”
“플로!”
비열한 목소리가 툭 떨어지자마자 요이델이 플로테스를 소리쳐 불렀다.
“나도 마지막 염원 하나는 이루고 가야 하지 않겠나!”
콰과과광―!
황제의 마지막 공격이 일어난 순간. 동시에 신수의 빛이 떨어져 백색 화염으로 주위를 태웠다.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밀치고 그를 구했다.
요이델이 긴박함에 숨을 몰아쉬고 빛 속에서 마수가 타들어 가는 와중.
“윽…….”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요이델은 어깨를 부여잡고 몸을 숙였다.
“피?”
손에 붉은 피가 가득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율리시스가 얼어붙은 그때,
“혼자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가!”
불구덩이에서 뭔가가 급습하듯 튀어나왔다.
인식보다 행동이 재빨랐다.
탓!
율리시스가 그녀를 잡으려 했으나 황제의 속도는 인간 같지 않았다.
순식간에 황제가 요이델을 낚아채고 동굴의 더 깊은 수렁 아래로 뛰어들었다.
“안 돼!”
“요이델!”
사방에서 절망이 터졌다.
요이델은 마법조차 닿지 않을 깊은 어둠에 몸이 끌려 들어갔다. 앞도 보이지 않았다. 깜깜하고 춥고, 그리고…….
“성하! 안 됩니다!”
누군가 처절하게 그를 불렀다.
자신의 목을 옥죄는 구속이 떼어지고 강인한 온기가 닿았다.
‘율리…… 시스 님.’
그의 다정한 얼굴이 보였다. 이게 마지막 모습인 걸까? 나의 주마등?
쿵, 아프게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굉장히 얼얼한데……. 아픈가? 아니야, 아프지 않은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요이델은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
어두운 밤, 요이델은 겨우 눈을 떴다.
“악!”
온몸이 욱신거렸다.
왜 이렇게 아프지? 시야도 몽롱하고 머리도 아프고. 상처는 없는 것 같은데…….
“일어났어?!”
급한 부름에 요이델은 고개를 들었다. 갓 깨어나 눈앞이 흐렸다.
“율리시스 님?”
“미안하지만 네 오라버니다.”
그는 제 눈에서 흐른 눈물을 재빨리 닦아 냈다.
“성황 성하는 자리를 계속 비울 수가 없어서 성국으로 돌아갔다.”
“아…… 그랬군요.”
“실망했니?”
휘르무트는 가볍게 웃으며 요이델의 코를 툭 건드렸다.
“봐줘라. 본인도 성한 몸도 아닌 주제에 밤이 새도록 앉아 있다가 가더라.”
“성한 몸이 아니라고요?!”
벌떡 일어난 요이델은 몸이 욱신거려서 다시 쓰러지듯 누웠다.
‘율리시스 님이 나를 감싸다가 다친 거야. 그래서 몸이 이렇게 욱신욱신한가 봐.’
그때 그 모습은 역시 꿈이 아니었다. 율리시스 님은 얼마나 다친 거지?
요이델의 울먹이는 얼굴에 휘르무트가 고개를 저었다.
“안색이 안 좋다고. 네가 멀쩡한데 그가 크게 다쳤을 리가 없지 않니. 하루를 안 빠지고 매일 오는데, 성국은 왕이라는 인간이 그렇게 돌아다녀도 안 망하나 몰라.”
“오라버니.”
“그 인간 욕에는 발끈하는 걸 보니 너도 다 나았군.”
키득 웃은 휘르무트가 요이델의 체온을 점검했다.
그를 흘겨본 요이델이 문득 의문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봤다.
낮이었는데, 지금은 밤이네?
“오라버니, 있잖아요. 아까 하루도 빠짐없었다고 했죠? 혹시…… 지금이 며칠이에요?”
“글쎄, 네가 못 깨어난 날을 기준으로 하면 일주일.”
“일주일이요?! 그렇게 오래요?”
“어허, 또 그런다.”
요이델이 이불을 걷고 확 일어나자 휘르무트가 단호하게 다시 눕혔다.
“어른들 걱정시키면 안 돼. 더 누워 있어.”
“저도 이미 어른이에요.”
“……그래, 그렇더군. 그날의 네 모습을 보니 알겠더라.”
“…….”
“미안하다. 너를 이해 못 해서. 그동안 널 지켜 준 건 내가 아니었어.”
그는 요이델을 보며 울 것 같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요이델은 휘르무트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네 연인에게 소식이나 알려야겠군. 웬 머리가 하얗게 샌 원로도 울고불고 통곡을 하던데.”
휘르무트는 고개를 치켜들고 뒤돌아섰다.
우는 모습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자신은 요이델의 강한 오빠였다.
탁.
문이 닫히고 요이델은 몸을 뒤척였다.
-율리시스 님.
-율…… 성하? 제 목소리 안 들리세요?
페어링이 되는 상태인데 왜 대답이 들지 않을까. 이상하다. 요이델은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안 되겠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겠어!
쿵!
그러나 몸은 의지를 따르지 않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끄으으응, 너무 아파…….”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동시에 그녀의 몸이 붕 떠올라 침대 위로 눕혀졌다.
“어?”
요이델의 가녀린 손등에 입 맞춘 남자가 여린 피부 위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요이델은 간지러워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저를 주시하는 차분한 눈빛의 주인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율리시스 님.”
“…….”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방금 오라버니가 연락을 드린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의 표정이 어딘지 이상했다.
평소처럼 차분하고 고요하긴 했는데 어딘가 더 침체된 느낌.
그답지 않게 불안한 눈빛이었다. 요이델은 그 차이를 알았다.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작은 손에 입술을 묻은 그가 간절하게 속삭였다.
“저는 무엇이든 좋습니다. 깨어나셨으니 다 좋습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요. 혹시 제 환상은 아니십니까? 오늘마저도 당신을…….”
믿기지 않게도 그의 뺨을 타고 처연한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한쪽 눈에서 툭 떨어진 슬픔이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율리시스 님?!”
그의 얼굴로 손을 뻗기 위해 잡힌 손을 빼자 그가 반사적으로 굳건히 다시 잡았다.
스스로의 상태에 곤혹을 느끼는 것 같으면서도 율리시스는 그녀를 놓지 않았다.
요이델은 조금 놀라 머뭇거렸다.
그의 손등에 부드러운 뺨을 기대자 율리시스의 긴장이 확 누그러졌다.
그녀는 미소로 그를 올려다봤다.
“꿈 아니에요. 율리시스 님이 저를 감싸 주시고 같이 떨어졌잖아요. 기억나요.”
아찔한 고통이 느껴졌던 것도 진짜였다. 자신을 위해 그가 몸을 내던졌던 것 역시 진실이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
“…….”
한참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 웃고 있던 요이델도 결국 못 참고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저, 율리시스 님이랑 있고 싶어요.”
그동안 고민했었다. 미안하지만 차마 밝힐 수 없던 진심은 그랬다.
“엄마 아빠한텐 미안해요. 하지만 저…… 율리시스 님이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요이델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당연히 둘 다 좋아요. 메디아도, 성국도. 그렇지만 율리시스 님을 못 보는 건 안 될 것 같―”
요이델의 말이 끝맺기 무섭게 둘의 입술이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