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9)
외전 6화
“율리시스 님? 뭐 하는 거예요?”
“과거를 건드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합니다.”
“그럼 왜…….”
“그러나 과거로 보내지는 것 역시 본래의 순리를 거스르는 흐름.”
요이델이 놀라움에 눈을 휘둥그레 뜨자, 율리시스가 여상한 투로 말했다.
“주신께서 뜻한 바가 있어 저희를 이곳으로 보냈을 겁니다.”
율리시스는 아이를 고쳐 안았다.
“이곳에서 주신의 힘이 크게 느껴집니다.”
“근처에 있다는 건가요?”
“저희가 이곳에 떨어진 데에 주신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에 요이델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렇다는 건…….”
“왜 하필 현재의 흐름도 아닌 과거 당신의 차원이겠습니까. 이는 주신께서 뜻하신 바가 있다는 것이니, 그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장 불경한 일 아니겠습니까.”
마음씨처럼 시커먼 머리와 눈을 한 율리시스가 요사스럽게 웃었다.
“그러니…….”
그가 요이델의 뺨에 가볍게 쪽 입을 맞췄다.
“저희는 신의 뜻을 따르는 겁니다.”
“우아앗!”
마리가 깜짝 놀라 제 눈을 가렸다.
“아, 아무것도 못 봤어요.”
“무엇을 못 보셨습니까?”
“요정님들이 뽀뽀하는 거 못 봐써요.”
“앗, 아……!”
“그래도 마리 님은 누구보다는 솔직하게 얘기해 주시는군요.”
율리시스의 말에 요이델은 제 발 저린 듯 움찔했다.
“하지만 정말 못 봤다면, 끝까지 잡아떼야 하는 겁니다. 그게 무엇이든 보지 못했다고. 미래에도 그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피식 웃은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쳐다봤다.
“저 말하는 거죠?”
“눈치채셨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 말하는 거잖아요.”
요이델이 째려보자 율리시스가 은은한 미소로 등을 돌렸다.
“율리시스 님, 정말…….”
“요정님들 싸워요?”
그때 율리시스를 말리듯 옷자락을 꼭 붙든 마리가 울먹거렸다.
“아, 아니야, 마리. 우리는 안 싸워, 얘기한 거야.”
“진짜요?”
마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그런데……. 마리는 부농이 요정님한테 갈래요.”
“응?”
“하양이 요정님이, 부농이 요정님 눈 요러케 뾰족하게 만들어써요.”
꼬물꼬물 요이델의 품으로 넘어간 마리가 율리시스를 물끄러미 보다가 홱 고개 돌렸다.
“부농이 요정님 속상하게 하면 나쁜 요정님이에요.”
쏘옥.
마리는 다시 요이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나쁜 요정, 나쁜, 못난 놈…….
“……나쁘다, 라.”
확대 해석한 율리시스가 처연한 얼굴로 요이델을 바라봤다.
“그대도 처음에는 저를 몹시 싫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그때는…….”
“그렇군요, 저는 애초부터 그대에게 호감을 살 운명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리는 어리니까 아직 잘 몰라서 그럴 거예요.”
“아라요, 하양이 요정님이 말해서 부농이 요정님이 화난 거 느껴써요. 화나게 하면 안 대는 거예요.”
“마, 마리. 정말 그게 아니라…….”
점점 굳어 가는 율리시스의 표정을 본 마리가 흠칫 놀랐다.
“하양이 요정님 무서워.”
마리가 요이델의 옷을 꼬옥 붙잡고 얼굴을 묻었다.
“제가 무서운 인상이었습니까.”
그때 지극히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율리시스는 충격받은 듯 허탈한 투로 말했다.
“무표정일 때는 차가운 편이긴 하지만……. 아, 그건가 봐요! 저는 웃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율리시스 님은 무표정이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율리시스는 절대 온미남이 아니었다.
아주 냉랭한 인상이지만 대외적 미소가 다정하고 상냥해서 대부분 인식하지 못할 뿐.
“다시 웃어 보면 어때요? 율리시스 님 특기잖아요. 애들은 분명히 웃는 사람을 더 좋아할 거예요.”
그녀의 조언에 율리시스가 미소 짓자, 마리가 그를 힐끔 보고 입을 씰룩거렸다.
“웃나 봐요! 역시 웃는 얼굴이 효과가 있어요!”
“우.”
“우?”
“우아아아앙! 우아앙! 무서워요!”
마리가 갑자기 울음을 탁 터뜨렸다.
“마, 마리?”
“하양이 무서워!”
제대로 역효과가 났다.
요이델은 얼른 마리를 다독였다.
“마리, 하양이는 마리랑 친해지고 싶어서 웃은 거래. 그런데 하양이가 왜 무서울까?”
“무섭게 웃어써요, 흑. 머리도 하양이고 길어서, 훌쩍, 혹시 소원 요정님 아니구, 기신 요정님이에요? 부농이 요정님은 구름 같은데, 흑, 흐잉.”
“하양이는 귀신이 아니야. 응 그게, 음, 하양이는 말이야.”
둘 사이의 중재를 도맡던 요이델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왜 요정 중에서도 머리가 하얗냐면…….”
아, 그거다!
“산타 할아버지셔!”
“…….”
“…….”
순간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산타 할아버지요?”
그러나 마리는 그 단어에 반응했다.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듯 울음을 뚝 멈췄다.
“진짜 산타 할아버지예요?”
“응, 응. 맞아. 산타로 일하고 계셔.”
“그러면 진짜 부농이는 눈이 빨가니까 누돌프예요?”
“맞아!”
비록 요이델 자신은 루돌프가 되고 율리시스는 산타가 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괜찮았다.
마리는 느린 말투로 열심히 이름을 되새겼다.
“그럼 누돌프는 하늘도 날아다니는 고예요? 마법도 만들어요?”
“물론이야. 볼래?”
슈웅.
요이델이 마법으로 만들어 준 나비가 마리의 손안에서 팔랑팔랑 움직였다.
아이가 “우와!” 하며 기쁜 듯 꺄르륵 웃었다.
“그러면, 그러면! 정말 마디 소원을 들어주려고 온 요정님들이네요!”
“당연하지! 마리, 빌고 싶은 소원이 있는 거야?”
질문에 마리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써요.”
“그래?”
요이델은 마리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정말 주신께서 이 일에 개입을 했다면. 그렇다면 수년 전 그녀가 어린 율리시스를 돌봤듯이, 이번에도 이 일의 해답이 마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마리는 부끄러운 듯 몸을 비비 꼬았다.
“마리 소원도 드러줄 수 이써요?”
“당연히 가능하지, 마리 소원이 뭘까?”
“그건 있쬬…….”
마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
전구가 장식된 화려한 거리.
현대 한복판에 펼쳐진 중세 도시 같은 건물들과 동물 탈을 쓴 사람들,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이 밤을 장식했다.
‘이만큼 커다란 곳에서 반짝반짝 인형극을 하는데요, 저는 그거 못 봐요. 근데 보고 시퍼서……. 보여 주시면 안 대요?’
이곳은 바로 놀이동산이었다.
그러나 아이보다도 요이델이 더 들떠 있었다. 이런 곳에 와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율리시스 님, 저기 좀 봐요! 커다란 인형 탈이……. 율리시스 님?”
주위가 고요했다.
다들 어디 갔지?
요이델은 걸어왔던 길로 급히 돌아갔다.
“율리시스 님! 마리!”
“오셨습니까.”
저게 뭐야?
살짝 떨어져 걸어오는 둘의 모습을 본 요이델이 입을 벌렸다.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아요?”
“……압니다.”
“풉.”
“우스운 꼴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마음껏 웃으십시오.”
율리시스는 해탈한 사람처럼 요이델을 바라봤다.
눈에 띄는 체격의 다 큰 남자가 귀염뽀짝한 펭귄 머리띠를 쓰고 있다니.
“아? 어, 음, 멋있네요. 성국의 관도 그걸로 바꿀까요?”
“…….”
“푸훕! 아, 못 참겠……. 앗, 죄송해요, 너무 풉, 잘 어울려서요.”
“차라리 보란 듯이 웃어 주십시오. 참으시는 게 더 수치스럽습니다.”
“푸하하하! 그게 뭐예요, 정말! 마리랑 같이 맞춘 거예요?”
요이델이 똑같은 펭귄 머리띠를 쓴 작은 아이를 안아 들었다.
“너무 잘 어울려! 마리 요정님이네?”
“진짜루요?”
“토끼 머리띠는 어때? 아니다, 곰 머리띠! 아니, 판다?”
요이델과 아이 사이에 둘만의 세상이 펼쳐졌다.
율리시스의 손에는 둥둥 떠다니는 풍선과 인형, 소품이 가득했지만 그가 쓴 돈과 아이의 호감도가 반비례하는 간극이 있었다.
“아…… 미안해요, 율리시스 님도 이리 와요.”
요이델은 실컷 떠들고 난 후에 소외된 건장한 어른을 챙겼다.
율리시스는 내심 섭섭하고 부끄러웠으나 묵묵히 그녀를 따랐다.
“율리시스 님,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잃어버리지 않게 손을 꼭 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손을 잡았다.
“네? 저 말고요!”
“아.”
율리시스는 깨달은 듯 마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와 다 큰 남자의 시선이 빤히 마주쳤다.
“누돌프랑 갈래요.”
“…….”
후다다닥 뛰어간 마리가 요이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율리시스는 완벽히 배제당했다.
“아직은 아닌가 봐요…….”
“……괜찮습니다.”
그는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거 좀 큰일인데.’
요이델은 짝! 손뼉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직 퍼레이드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 마리는 뭐 하고 싶어?”
“머 할 수 이써요?”
“응?”
돌아온 질문에 요이델은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도 놀이 기구를 타 본 적은 없었으니까. 보통 어린애들이랑은 뭐를 타지?
“아, 그래! 회전컵을 탈까?”
━━━━⊱⋆⊰━━━━
“왜 저 안 말렸어요? 욱, 우욱. 핸들 너무 돌리면 안 된다고 말, 말 좀, 욱.”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우욱, 안 괜찮아요. 왜 율리시스 님이랑 마리는 멀쩡하죠?”
“누돌프 요정님 아파요? 오또케, 마니 아파요?”
물을 마신 요이델이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부축받으며 걸었다.
“다시는 저런 거 안 탈 거예요…….”
요이델은 해쓱해진 채 율리시스와 마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평화로운 데에 반해 자신의 영혼만 빠져나가는 듯했다.
“아하하, 애기 엄마가 고생이네.”
“애가 의젓한 거 봐. 우리 애랑 딴판이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저녁으로 접어든 데다 방문객이 많은 놀이공원임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지나가던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휴, 귀여워라. 애가 엄마 아빠를 쏙 빼닮았네. 몇 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