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75)
외전 12화
“내 동생 살려 내!”
“아악! 진정하시라고요! 뭘 살려요, 도대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아, 좀, 수장님! 체통 좀 지키시라고요!”
산실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기도를 올리는 신관들의 무리에 메디아에서 온 가족의 난동까지.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다른 사람들을 방어하기도 버거운데 휘르무트에게 멱살까지 짤짤 쥐어 잡혔다.
“하, 진짜 한 나라의 수장을 기절시킬 수도 없고.”
“도대체 진통을 몇 시간째 겪는 건가? 이러다 내 동생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
“전쟁을 누구랑 해요. 델은 절대 안 죽거든요, 왜냐하면―”
응애! 응애애!
바로 그때, 산실 안에서 힘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웅성거리던 소음이 뚝 끊긴 순간.
산실의 문이 열리고 치료 신관이 기쁜 얼굴로 외쳤다.
“아기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성후 성하와 성황녀 예하 모두 건강하십니다!”
우당탕탕.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직계 가족들이 산실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 아가, 괜찮니?”
“고생했단다, 흑, 아이가 아이를 낳았구나, 흐윽…….”
요이델의 부모님이 딸의 안색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했다.
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친 휘르무트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런데 성황 성하께서는 오늘따라 품위가 없으시군. 저 가련한 모습은 외모 탓인지 무엇인지…….”
휘르무트는 마뜩잖은 듯 묘하게 굳어 있는 율리시스를 쳐다봤다.
“꼭 본인이 낳기라도 한 듯하지 않나?”
“그 생각이 맞으니까 그렇죠.”
휘스테론이 조용히 속삭였다.
“무슨 말이야?”
“고통은 성황께서 전담하셨습니다.”
“……아?”
순간 휘르무트가 얼빠진 채 요이델의 곁에 서 있는 율리시스를 다시 바라보았다.
“요이델 님께서 힘드실까 봐 모두 본인이 감내하겠다 하셨습니다.”
“아아. 아. 아! 아, 그 페어링! 그게 가능한가?”
“산고를 전부 전이시키는 것도 가능하더군요. 저희도 놀랐습니다.”
“젠장, 그건 미리 말해 줬어야지.”
표정을 사르륵 녹인 휘르무트가 꽃다발 사이에서 한 송이를 뽁, 뽑아 율리시스에게 내밀었다.
“……축하, 아니 고생 많으셨습니다.”
“치우십시오.”
“아하하하, 하하하! ……제 생각에도 그러는 게 좋겠군요.”
휘르무트는 민망한 듯 꽃을 스윽 거두어 꽃다발에 다시 꽂았다.
“약속 한번 확실히 지키시는군요, 성황이시여.”
율리시스가 결혼할 당시 모두를 증인으로 맹세한 게 있었다.
바로 슬픔이나 고통에 찡그리게 할 일 없게 하겠다는 것.
과연 자신의 동생은 쌩쌩하게 웃고 있었다.
“율리시스 님, 이리 가까이 와서 좀 보세요. 콧대가 율리시스 님이랑 닮았어요.”
“…….”
고개를 돌린 요이델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마치 석상이 된 것처럼 한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산실의 모두가 그들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었다.
“아이가…….”
율리시스는 마른 입술을 겨우 벌렸다. 땀에 흠뻑 젖었던 그가 신중히 한 단어를 뗐다.
투욱.
바로 그 순간,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세상에, 성하!”
“이럴 수가…….”
율리시스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이슬처럼 떨어졌다.
“율리시스 님, 괜찮아요. 저도 멀쩡하고 우리 아이도 무사해요. 모두 건강한 거, 이렇게 눈에 보이잖아요?”
부드러운 손이 차갑게 굳은 손을 어루만졌다. 요이델은 말없이 흐르는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산달이 다가오자 누구보다도 불안에 떨던 게 바로 율리시스였다. 혹시라도 요이델이 잘못될까 두려워서.
“우리 아이도 듣고 있어요.”
“…….”
“처음 만나는데 첫인상을 나쁘게 남길 수는 없으니까 웃어 줘요. 네?”
“……다행입니다.”
율리시스가 안심한 듯 웃었다.
“고맙습니다. 무사해 주셔서. 요이델 님도, 아이도.”
나직하게 말한 그가 요이델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요이델은 행복한 듯 웃으며 품에 안은 아이를 바라봤다.
“드디어 만났어요.”
“저희의 아이…….”
“머리가 은색이에요. 보여요? 정말 율리시스 님을 많이 닮았어요.”
이목구비가 확연히 자리잡힌 게 아닌데도 율리시스의 느낌이 풍겼다.
“눈동자는 그대를 닮았을 듯합니다.”
“왜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기분입니다.”
“음, 좋아요. 그럼 우리 반씩 닮은 아이일 테니까 아주 건강하고 씩씩할 것 같아요!”
아기는 아직 앙앙 울고 있었다.
“어쩌죠? 벌써 기운이 엄청 넘쳐 보이는데.”
“아가.”
율리시스의 목소리에 별안간 울음이 뚝 끊겼다.
“목소리를 알아듣나 봐요!”
“……그런 듯합니다.”
율리시스는 얼떨떨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처음이었다. 그가 이토록 곤란한 기색을 내비치는 건.
“조금만 더 말을 걸어 줘 봐요. 아! 우리 아이 이름이요. 딸기 말고, 진짜 이름으로요.”
“……아.”
여전히 멍하게 있던 그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어? 웃었어요!”
“이론적으로 태어나자마자 웃을 수 없을 텐데…….”
“아니, 이론이 중요해요? 방금 봤잖아요?”
이제 갓 엄마 아빠가 된 둘은 신기한 게 많은 듯 아이를 쳐다봤다.
“제 말이 맞다니까요!”
“그러나 보통은…….”
둘의 웃음소리가 창밖을 넘어갔다.
요이델의 손목에 새겨졌던 주신의 축복이 그들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의무를 다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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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점심이 지난 오후 무렵, 따스한 봄.
이른 낮잠에 빠진 요이델이 소파에 앉아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셨나 보군.”
율리시스는 피식 웃으며 요이델을 안고 침대에 내려놓았다.
외부 일로 장시간 자리를 비웠던 게 못내 신경이 쓰여 일찍 돌아왔으나, 괜한 기우였던 듯하다.
“오히려 발을 굴렀던 건 나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 지은 율리시스가 시선을 돌렸다.
인기척에 갓 깬 아기가 율리시스를 보자 포동포동한 팔다리를 움직였다.
“답답한가 보구나.”
“아부우우―”
“오늘도 아비와 산책하자꾸나.”
“우웅―”
“기분이 좋은가, 오늘따라 잘 웃는구나.”
율리시스는 시종과 유모의 도움 없이 혼자 척척 준비해 후원을 거닐었다.
“봄바람이 차군.”
율리시스는 행여나 감기에 걸릴세라 바람 들어갈 틈 없이 아이의 옷을 여몄다.
“이러면 피부가 간지러운가.”
고심할 게 참 많았다.
품에 안겨 방싯 웃는 아기는 너무나 작고 연약해 보였다.
동시에 자식의 미소는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했다.
“너는 요이델 님을 많이도 닮았구나.”
아기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연신 방긋거렸다. 손을 꼬물거리는 모습에 율리시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바람이 차니 긴 산책은 힘들 듯하다.”
“으부.”
아기는 호기심이 많은 듯 주변의 풀이나 꽃, 나무를 향해 짧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인가.”
“아브브.”
“이건 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지. 아름다우나 가시가 있으니 항시 주의를 기해야 한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기가 큰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군, 아직 알아듣는 것은 무리인 걸 잊었다. 네 마음대로 해 봐도 좋다. 다치지만 않는다면.”
“브브브, 푸우―”
아기가 침을 부르르 뱉으며 장난치고 놀았다.
몸을 움직이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성에 차지 않는지 본인의 얼굴에 계속 손을 가져다 댔다.
“긁지 마라. 다치지 않느냐.”
“아우!”
“성질은 내 딸이 맞군.”
율리시스는 피식 웃었다.
“후에 그 누구에게도 뜻을 굽힐 일은 없는 듯해 안심이구나.”
그의 말에 아이가 눈동자를 감출 만큼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눈은 그의 바람대로 요이델을 닮은 빨간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