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77)
외전 14화
“안 들어갈 거야! 안 해!”
“안 물어봐써. 넌 피뎐뎌그로 내 꺼가 되게 돼 있으니까.”
“아니야!”
“마자!”
파지지직, 마주친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냐!”
“맞아!”
“아냐!”
“아니야.”
“맞아!”
“그지? 맞다고 했다?”
여자아이가 씩 웃었다.
영민한 변주에 보기 좋게 휘말렸다.
“넌 정말 나빠!”
강요당한 필연을 얼결에 인정해 버린 플로테스가 울먹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너는 날 왜 그러케 매일 괴롭히는 거야! 내가 너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고 했짜나! 겉만 이렇지 난 신수야!”
“깜짝이야!”
“내가 말했찌! 너 혼자 놀랬자나! 난 네 꺼도 아니고 미래에도 절대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플로테스의 말에 여자아이는 단단히 충격받은 듯 입을 벌렸다.
“플로, 나 안 도와주 꺼야? 진짜루?”
“앗.”
“우리 가치 모든 대륙을 정복하기로 했짜나, 약속을 잊은 거야? 어, 어떠케 그럴…….”
여자아이의 울먹임에 플로테스가 크게 당황했다.
“흐아아앙, 플로가 나를 안 도와주면, 나, 나는 삼 대뉵 황제가 모, 모 땐단 마리야아.”
“우, 우러? 아니야. 그니까 나는, 나는 니가 나 막 못살게 하는 게 시른 거지. 네가 밉지는…….”
“일리아르네―”
그때 멀리서 낭창한 목소리가 들렸다.
“히이익! 엄마다! 쉿!”
두 아이는 커튼 뒤에 숨어 서로 입을 막았다. 경험으로 알았다. 엄마가 엄청 화났다는 걸.
이 커튼 밖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갔다간 눈물이 찔끔 나게 혼나겠지!
“엄마가 여길 어떠케 알았지! 플로가 일렀어?”
“아, 아냐, 으으으읍.”
입을 틀어막힌 플로테스가 발버둥 쳤다. 하지만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흐음, 이상하네요. 여기서 아이들의 기운이 느껴진 것 같은데. 우리 플로랑 일리가 어디 있을까?”
“저희가 잘못 들었나 봅니다.”
“그래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막만 한 심장 두 개가 쿵쿵 뛰었다.
“그만 가시죠, 요이델 님. 아무래도 아이들의 간식은 한시라도 서둘러 폐기토록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럴까요? 무화과랑 바닐라 크림이 잔뜩 올라간 아주 맛있는 타르트지만 어쩔 수 없죠.”
“엄마아! 아빠아!”
“잘모태써요!”
그때 뛰어나온 아이들이 둘의 앞에 털썩 쓰러졌다.
플로테스와 일리아르네는 울 듯 말 듯 한 얼굴로 간절하게 두 손을 모았다.
“간식 버리면 안 대요. 먹을 거 버리면 나쁜 사람이래써요.”
“사고 치고 숨은 아이는 나쁘지 않은가 보구나, 일리아르네?”
요이델이 엄하게 꾸짖자 아이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엄마, 보고 시퍼써요. 아, 아빠도 보고 시퍼써요. 일니는 엄마 아빠 너무너무 좋아해.”
“저, 저도요. 저는 안 그러려구 했는데 일리가…….”
“우리도 플로랑 일리 너무 사랑하지.”
“덩말요?”
요이델이 웃으며 둘을 쓰다듬었다.
그것도 잠시, 요이델의 손길이 우뚝 멎었다.
“하지만 일리아르네, 사고 치고 쏙 도망갔을 때는 얘기가 다르단다. 누가 예배당에 ‘엄마, 아빠, 동생 미워’라고 낙서하고 도망가랬지?”
“뎨동합니다.”
“플로도 같이했니?”
“아, 아니에요!”
“흐음…….”
둘의 처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때 아이의 가방이 요이델의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일리, 어디로 떠나려고 했니?”
“말해도 대요?”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엄마 아빠한테는 다 말해도 되지.”
“메디아요! 삼촌이 나한테 준대써요!”
“그곳의 뭐를 준다고 말했니?”
“메디아요.”
“……그거 큰일이구나.”
요이델과 율리시스는 눈빛을 교환하며 혀를 찼다.
“사과는 받아들였지만 벌도 받아야겠지? 일리를 숨겨 준 플로도 마찬가지야.”
요이델의 엄한 처벌에 아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잘못해써요!”
“라나, 마르셀리나 님에게 연락해서 오늘 수업은 하루 종일 부탁드린다고 얘기해 줄래요? 그전에 우리 꼬질이들을 데리고 가서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줘요. 먼지가 잔뜩 묻었네요.”
“제 전문입니다. 자, 가실까요. 성황녀님, 신수님.”
“엄마 아빠 미워! 시러―!”
“저, 저는 진짜 아니에요!”
쿠웅.
문이 닫히고 요이델과 율리시스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딸은 누구를 닮아서 혈기가 넘칠까요?”
“…….”
“역시 저인가요?”
툭.
일리아르네가 떨어뜨리고 간 가방에서 이상한 책이 튀어나왔다.
“이건 무슨 책이죠? 공부하는 역사서는 아닌 것 같지 않아요?”
“평범한 연애 소설로 보입니다.”
“우와, 우리 일리가 벌써 이런 내용을 이해하는 거예요?”
요이델이 깜짝 놀라 책을 살폈다.
한 장 두 장 넘어갈수록 둘의 안색이 굳었다.
“저자가 리하 아잔단트라…….”
“하일 님이네요. 철자만 바꾼 필명이 틀림없어요. 누가 봐도 우리 얘기잖아요?”
요이델이 예리하게 추론했다.
“또 그 원로의 짓이군요.”
“소문은 들었어요. 하일 님께서 저희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몰래 책으로 엮으셨다고.”
“기어이 그 짓을 했군요. 대부 자리를 박탈시키는 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건 조금 심해요. 하일 님이 그때 얼마나 울면서 좋아하셨는데요.”
“저희의 얘기라면, 꽤 냉랭했었던 제 모습이 등장하겠군요.”
진지한 말에 요이델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문제였어요?”
“상당히 중한 문제입니다.”
율리시스는 이제 그 정도 골치쯤은 놀랍지도 않은 듯 짧게 한숨 쉬었다.
그는 여전히 탄성 나오도록 잘생긴 얼굴을 쓸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별로 초기의 모습은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저희 만남인데 싫어요?”
“싫은 것과는 다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창피하다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태도는 하나도 안 창피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요이델은 자신을 등 뒤에서 안은 채 배를 쓰다듬는 그의 손을 저지시키고 째려봤다.
“저희 아이들이 잘 있는지 안부를 건넸을 뿐입니다.”
“많이 뻔뻔해지셨네요?”
“그대는 많이 냉정해지셨고.”
“네? 제가 그랬어요?”
“저는 뒷전이시잖습니까. 무슨 비밀이 그리 생기셨는지, 아이와 단둘만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시다 잠들어 버리시고.”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일리가 많이 커서 그래요. 그맘때쯤이면 한창 비밀만들기에 재미를 붙이니까요. 율리시스 님도 일리랑 비밀을 만들었잖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기억 안 난다고 하진 않겠죠? 일리한테 몰래 간식 줬잖아요. 한밤중에는 간식 먹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애 배탈 난다고요!”
“죄송합니다.”
“으이구.”
요이델이 그에게 콩, 머리를 부딪치자 율리시스가 너스레를 떨 듯 가볍게 입 맞췄다.
둘은 서로 삐죽거리다 미소 지었다.
“이렇게 올해도 가네요.”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렸다. 두 사람은 언젠가 함께 보았던 첫눈을 올해도 함께 보고 있었다.
“이번 생일 선물은 뭐가 좋아요? 갖고 싶은 거 있어요?”
“훼방 없이 당신을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면 가장 좋을 듯합니다.”
속삭이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요이델의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그건 음, 딱히 특별하진 않잖아요? 항상 같이 있기도 하고요…….”
“어린아이들도 며칠만 떼어 놓고. 둘이서만.”
그 순간 무언의 눈빛을 교류한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둘만의 여행은커녕, 다시 넷이 되어 버렸군요.”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배를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족 여행으로 갈까요? 배 속의 사과랑 꽃게를 포함해서 일리랑 플로랑 다 같이요.”
“좋습니다.”
“하으…… 방해꾼이 너무 많아요. 속상하다. 그죠?”
율리시스는 아니라고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아!”
“왜 그러십니까. 배가 아프십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율리시스 님, 잠깐 귀 좀 주세요.”
요이델이 그의 귓가에 소곤소곤 말했다.
“사과랑 꽃게가, 여행지는 숲 쪽이 좋겠대요. 공기가 맑은 곳에 가서 휴양하고 싶나 봐요.”
율리시스가 그녀를 바라보자 요이델이 동그랗게 입을 말고 속삭였다.
“저 말고, 우리 아이들이 그게 좋겠다는데 안 될까요?”
“마침 저와 생각이 같군요.”
“정말요?”
“엘타샤로 갈까요. 환경도 좋고, 그곳의 주교도 복귀하여 안정을 찾은 지 오래이니.”
“좋아요!”
두 사람은 꼭 잡은 손을 흔들거리며 가볍게 회랑으로 나왔다.
겨울임에도 그리 춥지 않았다. 화창한 날씨가 거두어지지 않는 안온한 날들이었다.
“아!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드렸던 생일 선물 있잖아요. 그 이후로 못 봤던 것 같은데 어디 있는 거예요?”
“그 부토니에라면…….”
율리시스가 요이델에게 어떤 말을 속삭였다.
“그, 그게 그거였어요? 대체 그걸 왜 거기에……. 아니, 언제부터요?”
요이델이 경악하며 물었다.
“혹시 있잖아요, 율리시스 님.”
“네.”
율리시스가 빙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은발이 눈부시도록 빛났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눈빛보다 환상적이진 않았다. 율리시스는 다정함이 듬뿍 묻어나는 꿀 같은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요이델은 그를 보다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혹시 저 좋아한 지 좀 오래됐던 거예요?”
“무슨 말씀을…….”
“그, 그니까요. 저희 그날 키스했던 그때쯤부터 저 좋아한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율리시스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고작 며칠, 겨우 몇 주 고민하고 바로 키스할 만큼 가벼운 놈인 줄 아셨나 봅니다.”
그의 표정이 극도로 차분해졌다.
“아, 아뇨, 그건 아닌데요……. 이전에도 좋아했어요?”
“…….”
“하지만 계속 쌀쌀맞아서……. 아! 그러고 보니 우리 그런 얘기를 안 했네요. 저 언제부터 좋아한 거예요, 율리시스 님? 앗, 삐졌어요? 같이 가요!”
“뛰지 마십시오. 다치십니다.”
“그럼 왜 먼저 걷는 건데요 지금? 저기요! 얘기 좀 해요!”
율리시스는 먼저 걷다가도 자신을 쫓아오는 요이델을 기다려 주었다.
그러다 가까워지면 토라짐을 숨기지 못하고 먼저 걸어 버렸다.
“잡았어요!”
요이델이 그의 옷을 덥석 잡자 율리시스가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래도 말씀 안 해 드릴 겁니다.”
“네에?! 전 알고 싶은데요?”
“세상만사를 전부 아실 수는 없습니다.”
“역시 삐진 거 맞잖아요!”
요이델이 옷 위로 도드라진 둥근 배를 쓰다듬으며 울먹이자 율리시스가 그녀를 가뿐히 안아 들었다.
“이 이야기는 천천히 가면서 생각해 보도록 하죠.”
“내려 줘요! 말 안 해 주면 앞으로 안 안길 거예요.”
“그리하셔도 됩니다. 그대가 제 품에서 내려가실 수 있다면 말입니다.”
“어디까지 걸어갈 건데요?”
요이델이 불길함에 묻자 율리시스가 씩 미소 지었다.
“제가 언제부터 요이델 님을 마음에 들였는지, 당신이 알아맞히실 때까지.”
“네?!”
“무심하기도 하시지…….”
율리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반대로 여쭙겠습니다. 요이델 님께서는 언제부터 제게 마음을 여셨습니까?”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요이델은 정확한 지점을 찾지 못했다.
“설마 아직 열지 않으신 상태는 아니시겠지요.”
“사실 조금 덜 열었는데, 들켰네요?”
“알겠습니다.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선전포고로 듣겠습니다.”
율리시스의 정색에 요이델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그를 본 율리시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요이델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뭐 묻었습니까?”
“아뇨, 그냥…… 신기해서요.”
요이델의 눈빛이 추억에 젖어 들었다.
“율리시스 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딱 이렇게,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봤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달라진 게 새삼스러워서요.”
부드러운 속삭임에 율리시스가 시선을 내렸다.
“부디 이런 느낌으로 기억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저희의 첫 만남도.”
“으음, 그건 안 되겠는데요?”
“평생 후회로 남을 일일 겁니다.”
율리시스가 끙 앓았다.
조금 곤혹스러운 얼굴을 가만 지켜보던 요이델이 그에게 팔락거리며 손짓했다.
“……?”
“빨리요, 잠시만요.”
쪽.
고개를 숙인 율리시스에게 요이델의 입술이 닿았다 멀어졌다.
“어떤 모습이어도 좋아요. 율리시스 님이니까요.”
요이델의 고백에 율리시스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달아오르는 낯을 숨기지 못했다.
“성궁으로 가겠습니다.”
“네? 안 돼요, 아직 오늘 일정이 안 끝났잖아요!”
“……됩니다.”
“내려 줘요!”
웃음소리가 대신전 안에 가득했다.
둘은 여전했다. 여전히 즐겁고, 사소하게 티격태격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그들이 사는 방식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