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요이델은 정말로 자신의 잘못을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성하께 미안하면 몰라도.’
그들에게는 미안할 게 정말로 조금도 없었다.
과거에 그들이 요이델을 학대했다고 해서, 지금의 그녀도 당해 줘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게 더 잘못된 거 아닐까? 적어도 요이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그들이 아는 요이델답지 않게 힘 있는 대답을 듣고 놀란 공작 부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 얘가 왜 이래? 제 부모도 못 알아보는 거니?”
난생처음 보는 당돌한 모습에 그들은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요이델은 차가운 공기를 짧게 들이마시고 깊게 내쉬었다. 울 일이 아니었다. 상처를 받을 일도 아니었다. 요이델은 그걸 잘 아는 사람이었다.
보통 때는 떨려서 말을 못 했겠지만, 진심으로 화가 났기 때문인지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했다.
“부모님이신 거 알아요. 하지만 저는 여러 번 실망시켰고, 그래서 가문에 남을 수 없어요. 앞으로 더 실망시켜 드릴지도 모르니까요. 수치를 줄여 드리는 게, 자식으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너 정말…… 못 본 새에 바닥까지 갈 작정인가 보구나! 요이델 요보힐데, 너는 요보힐데 가문의 인간이지, 정말 신관 따위가 아니야!”
요이델은 침착히 생각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에는 아시다시피 세 개의 큰 대륙이 있죠. 브리칼트가 있는 대륙은 지상에 있고, 성국 팔라디움은 창공에 있어요.”
하늘에 떠 있는 성국은 자체가 하나의 대륙이었다. 유일하고 명확한 주인을 가진 땅, 율리시스의 것.
그러니까 적어도 이곳에서는 요보힐데 공작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외부인이고 요이델은 이곳 소속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성국은 지대 자체가 당연히 제국보다 높다.
“그러니 제가 바닥까지 가도, 제국보다는 지리상으로 위에 있는 것 아닐까요?”
“요이델 요보힐데!”
다시 한번 날카로운 손이 날아와 뺨을 후려치려던 그때.
“꺄악!”
요이델은 얼떨결에 주저앉아 몸을 피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스스로의 민첩함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꼴이 우스워진 공작의 안색이 다시금 붉게 변했다.
그가 다시 손을 올리려던 순간.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윽! 젠장! 담이 걸렸나, 이게 왜 안 움직여!”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요보힐데 공작의 거센 몸동작이 멈추었다.
마치 밀랍을 녹여 그대로 굳혀 버린 듯 떨어지지 않는 기묘한 감각에 스스로도 기가 막혔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요이델!”
한낱 인간의 몸뚱이로는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그를 짓누르듯이 뭉개 왔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정체 모를 오한이 솟구치고 모든 것이 그의 목숨을 위협할 것처럼 느껴지던 때.
덜컹.
요이델의 등 뒤로 응접실의 문이 벌컥 열려 몸이 기우뚱, 뒤로 넘어갔다.
“제가 상황을 바로 본 게 맞습니까, 요보힐데 공.”
율리시스는 넘어지려는 요이델의 몸을 가볍게 받아 주었다.
“서, 성하?”
그는 푸른 눈으로 잠시 요이델을 응시한 뒤 보호하듯 자신의 옆쪽에 바로 세워 놓았다.
율리시스가 손짓하자 그를 따라 들어온 기사들과 시종들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쿵.
문이 닫히고 그의 냉기 가득한 시선이 응접실 안의 상황을 훑었다.
“역시.”
율리시스는 의외로 울지 않고 있는 요이델을 물끄러미 보다가, 화가 가득 찬 공작 부부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여느 때와 같이 여상한 미소로 웃었다.
“제국의 귀빈이 걸음 하여 이야기를 나눌까 하였는데, 그럴 상황이 아닌 듯합니다.”
요이델을 제외한 모두가 본다면 자애롭고 다정하다고 칭송할 만한 웃음.
그러나 율리시스의 본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요이델만은 알 수 있었다.
‘엄청 화났나 봐!’
그리고 요보힐데 공작 부부도 느꼈다. 그가 모르고 온 게 아니란 사실을. 그들은 위압감에 작게 신음했다.
요이델은 말끔해져서 아무 상처도 남아 있지 않은 뺨을 살며시 감쌌다.
그때 율리시스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그는 요이델에게도 화가 난 듯 냉정한 눈길을 던졌다.
‘통증을 공유하니까 성하께서도 뺨이 많이 아프셨던 거야.’
그 어떤 것보다도 율리시스의 차가운 분노가 가장 무서웠다.
공작 부부쯤은 별것도 아니었다.
“성황 성하를 뵙습니다.”
요보힐데 공작 부부는 눈치 빠르게 그에게 묵례했다.
공작 내외는 자신보다 더 강자에게는 재빠르게 숙이는 방법을 알았다.
율리시스는 그 모습을 무감정하게 바라보았다.
“공, 자식을 향해 손찌검을 한 게 맞습니까?”
“그것이…….”
공작은 쩔쩔매며 굽힌 허리를 펴지 못했다. 하필이면 성황까지 행차할 게 뭔가.
그들은 요이델이 제아무리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더라도, 성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 사형대까지 갔으니 요이델을 어떻게 하든 간에 신경도 쓰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자신들의 생각보다 요이델이 신전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공작 부인도 당황해 손을 떨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겁박이 아니라 회유를 해 볼 것을.’
어쨌든 그들은 뜻을 포기하거나, 자신들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락 한 통 없던 아이라 잠시 소통에 오해가 있었습니다. 염려하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성하.”
“그렇습니다.”
공작 부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랫동안 외부에 있어 잠시 요이델이 미친 거라고.
“저희 어린 자식까지 신경 써 주시는 성하의 은혜에 감읍할 뿐입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기르는 데에 고충이 크니, 때로는 언성이 높아져 부득이하게 오해를 산 듯합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 주십시오.”
그들은 요이델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교육의 일환이라고 시치미를 뗐다.
“성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피로가 많이 쌓인 아이를 위해 가문에 데려가 휴식을 시키고 오겠습니다.”
“요이델도 며칠 쉰다면 성황 성하를 더 성심껏 보필할 수 있겠지요. 아직 미숙한 아이라 실수가 많을까 부모로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벌레를 보는 듯한 율리시스의 시선이 둘의 머리 위로 꽂혔다.
“고개를 드십시오.”
그들이 얼굴을 들었을 때, 율리시스는 그런 내색 없이 차분한 표정으로 공작 내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 서서 어쩔 줄 모르는 햇병아리의 손을 끌어당겼다.
“비록 부모가 된 입장은 모르나…….”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손을 뒤집어 뺨에 묻은 피를 닦은 흔적을 똑똑히 보았다.
“자식에게 생채기를 내는 부모의 죄질은 대륙과 나라를 막론하고 불량하다는 것은 압니다.”
“……!”
“그, 그것이 아니라…….”
요보힐데 공작 부부는 사색이 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핏방울!’
손등과 손끝에 묻어 있는 피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증명했다. 하지만 공작 부부의 것이라고 우길 수도 있었다.
“치유 마법을 가르쳐 드린 효과가 있었군요.”
그의 확언에 공작 부부는 다시 한번 속을 앓았다. 정말 치유 마법까지 익히다니. 게다가 성황은 요이델에게 손수 마법을 알려 준 듯했다.
자신들의 예상이 완전히 틀려먹었다.
“공의 말대로 자식과 부모, 혈연으로 이어진 사이. 그리하여 제가 요보힐데로서의 요이델 님에게 관여할 수는 없으나.”
율리시스는 요이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뺨을 문질렀다. 상처가 나았음을 확실히 보기 위함이었다.
요이델은 놀라서 율리시스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무덤덤한 푸른 눈으로 세심히 그녀를 살필 뿐이었다. 하마터면 다정하다고 착각할 만큼.
촘촘한 속눈썹 아래에 감춰진 깊은 눈이 천천히 요이델의 붉은 눈으로 올라갔다. 시선이 오랫동안 마주쳤다.
그는 피식 웃으며 손길을 거두었다.
“제 관할하에 있는 신관으로서의 요이델 님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 그것은 성하…….”
“이곳은 요보힐데 공작가도, 그 공작가가 있는 제국도 아닙니다.”
율리시스는 여전히 미소 지으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손님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날것의 모습에 가까웠다면 모를까.
그는 시린 눈동자 색만큼이나 차갑게 웃었다.
“잊으셨습니까, 공작.”
요보힐데 공작은 그제야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수련이라고 할지라도 신관은 신관. 게다가 이제는 고위신관이 되셨습니다.”
“그, 그게 아니라! 성하, 제 말을……!”
“이곳의 모든 신관은 저의 소유이고, 외에 그 누구도 그들의 처신에 관해 논할 수 없습니다.”
은색 머리칼을 차분히 늘어뜨린 그는 감흥 한 점 없는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았다.
아까와 다른 서늘한 분위기에 공작은 몸을 떨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진심 가득한 살기였다.
“요이델 고위신관을 모욕하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성하! 저는 다만 부모로서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제국의 교육법은 제 기준치보다 많이 야만스럽나 봅니다.”
그 말에 공작의 안색이 대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말을 잇지 못하는 건 공작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제국의 이름을 건드렸다. 이건 지금 요보힐데 공작 부부의 행동이 제국의 뜻과 같냐고 묻는 거였다.
즉, 혈연을 떠나 제국의 외부인이 성국의 성직자를 건드렸냐고 묻는 것. 나라 대 나라 간의 분쟁을 원하냐는 뜻이었다.
말귀를 알아들은 공작은 얼굴이 희게 질린 채 공작 부인을 쳐다봤다. 그들은 초조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신관은 존재 자체가 성국의 재산입니다. 특히 요이델 님께서는 신수님을 관리하시는 단 하나뿐인 중요한 직책을 맡고 계십니다. 이도 물론 아실 겁니다.”
그는 다시 웃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푸른 눈동자를 담은 눈매가 얇게 휘어졌다. 그 모습을 살짝 바라본 요이델은 다른 의미로 파르르 떨었다.
여태껏 봤던 모습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화가 나 보였다.
“물론입니다, 성하! 믿어 주십시오.정말로 저희는 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
“공작 부부께서는 승인 허가도 받기 전에 막무가내로 입국하셨습니다. 하지만 귀중한 신관의 부모이시니 한 번은 이해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요이델을 서둘러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에…….”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 모든 무례가 브리칼트의 제국민으로서 성국을 우습게 보셔서 나온 행동이라고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공작 부부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해 갔다.
요이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시선을 정처 없이 굴렸다.
이쯤 되면 그날 자신이 그의 입술을 빼앗고도 살아남은 건, 정말 생애 마지막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응접실을 바로 내어 드린 것 역시 고위신관의 부모이니, 그에 맞게 대접하라 제가 내린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이델 님을 향한 이 처사는 곧 저의 성의를 무시하신 것이라고 여겨도 되겠습니까.”
요이델을 향한 처사가 곧 자신을 향한 대우라는 걸 재차 들은 공작은 몸을 떨었다. 그 짓누르는 기에 속이 메슥거릴 지경이었다.
“신관 하나하나가 모두 저의 분신과 같은 존재이며 고위급 신관은 하나의 관청 같은 자리입니다. 요보힐데 내외께서는 성국의 규율은 물론, 저 자체를 무시했군요.”
율리시스의 목소리는 점차 냉담해졌다.
“그럴 경우엔 외부 방문자가 아닌 침입자로 간주합니다.”
“…….”
“곧, 즉결 처분해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말이 없어진 공작을 바라보았다. 공작은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성국의 덕목은 자비와 용서.”
율리시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국 역시 외부와의 불필요한 분쟁을 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이어지는 율리시스의 말에 희망에 차 고개를 들었다.
“말씀대로 가족의 일이니, 용서 역시 제가 아닌 가정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율리시스는 웃으며 요이델의 발끝을 향해 눈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