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옷차림을 보고 나직히 읊조렸다.
“옷 매듭을 풀어 헤칠 정도로 괴로웠던 건가.”
유독 벌어진 상의 때문에 평소와 달라 보인 듯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옷 매듭을 전부 다시 묶어 주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처음 발견한 순간 언뜻 이전처럼 선이 부드러워 보이지 않았나?
‘무슨 생각을.’
어느 순간 불쑥 다르게 보이는 눈이 이상했다. 그동안 이 정도의 피로를 느낀 적은 없었는데.
율리시스는 품에 안은 요이델을 보며 조용히 안도했다.
‘그나마 내 눈에 먼저 띄어서 다행이군.’
흉골이 보일 정도로 상의를 풀어 헤친 차림이었다. 이런 모습을 남들이 보게 할 수는 없었다. 어쩐지 생각만 해도 역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땀에 전 옷을 환자에게 다시 입혀 놓는 건 좋은 처사가 아닌 듯했다.
마법으로 옷을 완전히 바꿔 준 율리시스는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날처럼 뺨을 맞은 건 아니라 다행이군.’
문이 닫힌 형태로 추측하건대 누군가에 의해 갇힌 건 아니었다.
‘이 무능한 호위기사 둘은 제 할 일을 놓고 어디로 갔는지.’
체내 신성력이 현저히 떨어졌단 건 곧 자진해서 무리를 했다는 뜻.
그들에겐 요이델의 체내 상태도 관리해 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 정도로 빠르게 신성력이 거덜 날 정도라면 답은 하나다.
‘축복 마법을 썼군. 햇병아리 신관이 저지르기 좋은 실수지.’
보기엔 가볍고 쉬워 보이나 그 허술함에 속아 체력을 떨어뜨리기 딱 좋은 마법이었다.
역대 최고의 신성력을 지니고 있으니 서서히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나 사용했을 게 분명했다.
체내의 기운까지 바닥났으니 더욱 정신이 못 버틸 수밖에.
한마디로 말하자면 몸에 과부하가 온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피로감에 며칠간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터.’
알아서 회복할 때까지 내버려 두어도 그에게 영향은 없다.
그러나 아까의 그 통증.
이 햇병아리가 요보힐데 공작에게 뺨을 맞았을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이었다.
마음의 통증은 망각하지 못하는 기억에서 비롯된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마에 손을 얹고 과거의 기억을 읽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그에게 흘러들어 왔다. 그러나 하나같이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율리시스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런데 요이델의 기억 속에서 또 한 명의 어린아이가 보였다.
‘아이? 외동이 아니었나.’
생각보다 더욱 좋지 못한 과거에 기록 읽기를 그만두었다.
요이델이 공포감을 느끼는 원인에 대해 충분히 알았으므로.
“엄마, 아빠…….”
감은 눈이 다시 괴로움에 크게 찡그려졌다. 치유 마법의 효과가 금방 수그러들 정도로 심적 고통이 심한듯했다.
힘을 바닥날 때까지 멋대로 쓴 걸 보아 일러야 2주, 늦으면 한 달은 걸려야 회복될 터였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인 요이델을 단기간에 회복시킬 방법은 단 하나.
‘……그것밖에 없나.’
그는 곤란함에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붉은 입술에서 긴 갈등을 담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율리시스에게 타인의 슬픔이란 그저 남의 것이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방치하는 가학성도 없었다.
어쨌든 자신의 반려된 자라면 더욱이.
“원래 평범한 인간은 이리 손이 많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유달리 나약한가.”
기력이 없어서 비척거리든 말든 자신이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요이델은 제멋대로 반려의 자리를 가져간 괘씸한 소년이었다.
“하아…….”
하지만 요이델의 몸이 체력의 한계로 점차 떨려 오자 결단을 내렸다.
“당신을 돕는 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뼈마디가 단단한 그의 손이 요이델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선명하게 찍힌 저와 동일한 문양.
율리시스는 잠든 요이델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숨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사뭇 주저하던 눈은 속눈썹 아래로 서서히 감겼다.
“부디 지금은 깨어나지 마시길.”
요이델의 이마에 부드러운 온기가 닿았다.
찬란한 은발과 분홍색 머리카락이 하나로 얽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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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 요즘 속이 안 좋다는 게 진짜였나 보네?”
“…….”
“델이 그러잖아. 성하가 자기만 보면 자꾸 메스꺼워한대. 델도 참, 걱정이 많다니까. 그치?”
“앉으십시오.”
율리시스의 미소는 그 어떤 때보다도 짙었다. 그 온화함 때문에 휘스테론은 오히려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다. 기분 탓인가?
“근데 성하, 델 몰래 우리에게 시킬 일이 뭐야?”
연무장에서의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들은 라크라스 산맥에서 광물을 맨손으로 채광해 오는 정신 수련 징계를 받았다.
“혹시 요이델이 연무장에 있을 때 마수가 들어왔던 일 때문이야?”
사실 그날은 꽤 놀랐었다.
“역시 단순 기절이 아니었구나. 그럴 것 같더라. 요이델이 눈뜨고 나서도 엄청 떠는 거야. 이 침입자 새끼들을 진짜.”
으드득.
휘스테론의 이가 갈렸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 이글이글 타오르던 그때, 옆에서 더 큰 살기가 느껴졌다.
휘스테론조차 놀라 옆을 보니 라이오스의 목에 핏대가 서 있었다.
“브리칼트 제국입니까, 성하.”
“뭐? 브리칼트?”
라이오스가 침착하게 물었다.
휘스테론의 분노는 라이오스의 진득한 살기에 짓눌려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아닙니다.”
“아, 난 또. 그럼 뭐야, 성하?”
“요이델 신관을 발견했을 당시, 그는 연무장의 탈의실에 갇혀 있었습니다.”
“누가 가뒀어?!”
“자의였습니다. 어떤 이유로 몸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좁고 어두운 공간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의식을 놓은 상태였습니다.”
율리시스는 아래를 향해 있던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알아본 결과, 요이델 신관은 유년기부터 방치와 폭언, 배를 곯고 쪽방에 갇혀 빛 한 점 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체벌을 당한 듯 하더군요.”
“이 개―”
“거기까지.”
라이오스가 휘스테론의 언행을 단속했다.
“알겠어, 성하. 요보힐데 가문을 털어 오라는 거잖아. 맞지?”
“요보힐데 공작가에 대하여. 닿는 한 전부 알아내어 오십시오.”
그날 본 요이델의 기억은 어딘지 이상했다.
그를 의심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하나 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양자든 말벗이든 상관없이, 요보힐데 가문에 오래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유골이 있는가까지 모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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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델은 이후 성궁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잔업 처리 능력이 나쁘지 않아 계속 부려 먹겠다고 선언한 율리시스 때문이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으나 진심이었다.
집무실이 로사리움과 가까워 부르기도 쉬워서 편하다며.
‘그래도 예전처럼 밤에 부르시는 건 아니라 다행이야.’
그때는 창피하다며 눈에 띄지 말라고 하셨는데. 조금은 괜찮아진 걸까?
요이델은 아주 멀리, 집무실의 모퉁이에 붙어서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앗,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한동안 비가 오더니. 성하도 좋으시죠?”
그런데 율리시스의 얼굴이 유난히 불쾌해 보였다. 원래 저런 분이지만, 요즘 들어 왜 특히 그럴까?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해도 모르겠다.
‘축복이 함께하시길.’
요이델이 아는 ‘남자주인공’은 저런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햇살같이 웃으면서.
혹시 쌍둥이 아닐까?
속으로 의심하던 그때, 율리시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이델 님.”
“네, 네?”
“페어링 해제에 관한 연구는 진척이 있으십니까.”
“마르셀리나 님의 서고에서 생물학 책을 찾았어요. 글씨가 조금 희한해서 읽기 힘들어도 힌트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읽으실 수 있단 말입니까?”
“네. 그런데 요즘 쓰이는 말이랑은 달라서요. 예를 들어 코끼리라는 단어가 예전에는 물고기라는 뜻을 담은 식이라 조금 어려워요.”
“대원로에게 전해 들은 대로군요. 알겠습니다.”
“아, 성하께 페어링에 관해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늘 시큰둥한 율리시스는 페어링이라는 단어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턱을 괴고 요이델을 쳐다봤다. 성하가 왜 저럴까. 요이델은 빠르게 추론했다.
이건 그 뜻이었다. 어디 한번 말해 봐. 이제 말을 안 해도 그의 뜻을 알겠다.
“저희가 다시 접촉할 일이 있을까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요.”
“안 했습니다.”
한 거 다 안다.
무슨 말만 하면 옷소매로 입을 가렸으니까. 가끔 이마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해제의 방법은 아직 모르지만, 평소에는 잠깐의 접촉만으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순간 율리시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물론 그렇게 해 주실 일은 없겠지만…… 며칠 전 제가 쓰러졌을 때 성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요이델이 쓰러진 이후 그가 배려해 준 휴가로 쉬고 있던 그녀의 방에 율리시스가 방문했다.
그는 특유의 고양잇과 동물 같은 표정으로 요이델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저의 페어라고 해도, 제 힘을 나눠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휴식기는 늘려 드릴 테니 푹 쉬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휙 나가 버렸다.
요이델은 황당했다.
누가 달라고 했나? 휴가를 더 달라고 한 적도 없다!
물론 늘려 준 휴가 기간은 감사히 받았다.
‘솔직히 쉴 수 있어서 좋았는걸.’
알차게 쉰 요이델은 윤이 반질반질 나는 얼굴로 돌아왔다.
‘게다가 신기하게 힘이 넘쳐. 쓰러지기 전보다 훨씬 더.’
그러니까 성하에게 힘을 달라고 억지 부탁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해하고 있으니까, 제대로 얘기해야겠지.
“음, 그러니까요. 성하께서 제게 그러실 일은 없겠지만 힘을 주고 싶으시다면, 아! 절대 달라는 말은 아니에요.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에요.”
요이델은 눈치를 살피다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실례할게요, 성하.”
그리고 우물쭈물하다가 손을 움직였다.
“저희가 위험에 처해 힘을 나누려면…… 작은 접촉만 있으면 돼요. 이렇게요.”
요이델은 손을 톡, 그의 손등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만으로도 힘의 공유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럼요!”
“고작 이 정도.”
허탈한 듯 웃던 율리시스는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뭔가 억누르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왜 그러세요?”
그 알 수 없는 무거운 기운에 요이델은 저절로 걸음을 물렀다. 그녀의 감이 말해 준다.
지금 그의 근처에 있으면 안 된다고.
“왜 진작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네?”
“미리 말씀해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당신 혼자만의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네? 아, 하지만 그게, 쓸 일도 전혀 없을 거고, 해제 방법도 아닌데 이런 용도를 알려 드렸다간 오히려 더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답을 들은 율리시스는 시선을 돌렸다. 그럼 자신이 한 건 뭐란 말인가.
그는 말없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치겠군.’
“그 뒤로.”
“네?”
“휴가 이후로 현재 달리 아프신 곳은 없는 겁니까?”
“네! 신기하게 힘이 넘쳐요.”
율리시스는 복잡한 심경으로 밝은 얼굴의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그는 뭔가 말할 듯 입을 떼다가 그냥 입술을 깨물었다.
“아프신 곳이 없다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