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4)
4화
그는 요이델을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페어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탓이다.
평생 반려를 맞이할 생각이 없었으니 알 필요도 없었거니와, 이렇게 순식간에 페어링 상대가 만들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율리시스는 오늘 두 번이나 저 작은 소년에게 자존심을 긁혔다.
첫 번째는 순결을 빼앗겼을 때였고, 두 번째는 자신조차 몰랐던 사실을 저 쥐방울만 한 게 알고 덤벼들었을 때였다.
그런 율리시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이델은 그를 그저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마에 문양이 생겼어.’
그 시선을 눈치챈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이마를 걷었다. 역시 똑같은 문양이 있었다.
그들의 문양은 봄날이 연상되는 연분홍색 꽃잎 자국이었다.
“……하.”
그는 초점 나간 눈으로 멍하게 시선을 두다가 마른 입술을 열었다.
“……시오.”
“네?”
“이마, 절대 드러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피부를 베어 가고 싶은 걸 참고 있으니까.”
그는 가면이 한 꺼풀 벗겨진 날것의 성격대로 말했다. 굳건하던 이성이 반쯤 나간 것이다.
다른 이들이 이 사실을 발견하면 어떻게 될까?
요이델이 감히 율리시스에게 그랬다고는 누구도 상상을 못 할 게 분명했다. 오히려 소문은 이렇게 날 것이다.
‘성하께서 수련신관 요이델을 흠모하고 계셨다! 그래서 사형에서 구하셨다!’
이쯤 되니 그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율리시스는 멍하니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말을 내모는 마부처럼 허, 허, 거리는 헛웃음을 연신 터뜨렸다.
“……생각해 보니 저는 꽤 오래 살았군요. 여기서 그대를 죽이고 저도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율리시스는 서슬 퍼런 눈으로 요이델을 내려다보았다.
“이리 오십시오.”
“엄마야!”
그는 지금 딱 미친 사람 같았다. 요이델은 펄쩍 뛰며 그의 곁에서 잽싸게 달아났으나, 그래 봤자 그의 손바닥 안이었다.
닫힌 밀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으니까.
쾅쾅쾅!
‘이 책장은 어떻게 해야 다시 돌아가는 거야?’
요이델은 이를 딱딱 떨며 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율리시스의 입장에서는 평소 자신의 뒤를 쫓던 미친 변태, 광적인 추종자에게 입술까지 빼앗긴 꼴이었다.
그것도 상대를 남자로 알고 있을 테니 그 충격은 더할 터였다.
하지만 아직 만회할 기회가 있다.
“저, 저저, 저는 미래를 알아요!”
요이델은 눈을 꽉 감고 냅다 패를 내던졌다.
그야말로 상대에게 넘기기 위해서 던지는 공이 아니라 메다꽂아 버리는 투포환이었지만.
“그래서 율리시스 님의 입술을 빼앗았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그냥 탐욕스러운 변태로 흑, 흐엉, 보이시겠지만! 들어 주세요. 머, 머지않아 율리시스 님이 반려를 맞이할 거라는 미래를 봤어요!”
당연히 그런 미래는 없었다.
하지만 요이델은 똑똑히 봤다. 미래를 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율리시스의 분노가 순간적으로 멎는 걸.
이거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내뱉었다.
“그 미래 속에서 율리시스 님의 잘못된 선택으로 대신전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됐어요!”
요이델은 눈을 찔끔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해 보십시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엄청났다. 요이델은 다다다 쏘아붙였다.
“사형당하기 전에 이 말을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죽기 전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성하를 찾아왔는데 상황은 이렇고, 이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야 할 것 같아 입술을 빼앗았던 거예요!”
죽기 전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이유는 삶의 기록 속에서 살아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함이라던가.
요이델은 느닷없이 비상해진 머리 회전을 느끼며 율리시스의 약점을 건드렸다.
그건 바로, 남자주인공인 그가 지독한 일 중독이라는 것.
인간사나 여흥에 관심이 없는 그이지만 성국에 관한 일에는 가차 없이 반응할 거라 생각했다.
그가 비록, 요이델이 전생에 생각한 대로 상냥한 성격은 아닐지라도, 그 점은 설정대로일 거라 믿었다.
과연 율리시스는 다시금 차분해진 태도로 딱딱하게 말했다.
“당신의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율리시스 님이 골머리를 앓고 계신 예산 문제에 관해서예요.”
그 말에 율리시스는 눈에 띄게 반응했다. 마치 ‘네가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
“지금 짐작하고 계시는 사람은 범인이 아니에요.”
성국의 중심부인 대신전에선 오랫동안 돈이 조금씩 새어 나갔다.
그가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게 아마 이때쯤일 거다.
급격해진 마수 침입 때문에 율리시스가 자리를 비우는 날이 늘어날 때쯤부터 더욱 과감해졌지, 아마?
율리시스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범인을 물색하게 된다.
‘처음에 잘못 짚었었어. 사실을 알았을 때 진짜 범인은 튀어 버린 뒤였고.’
“대신전에 공급되는 식료품의 질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이 나라는 의술과 문화가 발달한 대신 지리적으로 농작물 재배가 힘들어, 농작물 등의 식료품은 대부분 타국의 것을 수입해 왔다.
율리시스는 묵묵히 말을 들었다. 아직 눈빛에서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알랑거리는 이들이 이곳에 줄을 댈 수 있게 식료품 공급 업체를 바꾸고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어요.”
그 말에 율리시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요이델은 잠시 그 시선에 주춤했으나 꿋꿋이 이어서 말했다.
“돈을 빼돌리는 신관은 제국으로 가 땅을 헐값에 사서,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대신전이 그곳에 의료 시설을 건립한다는 소문을 퍼뜨린 후, 그 일대의 땅값이 오르면 재빨리 팔아 치우는 방법으로 이득을 얻고 있어요.”
“제국에 말입니까?”
“물리적인 거리상 제국과 성국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이용하는 거예요.”
이 성국과 제국의 사이는 매우 나빴다. 제국은 성국을 한낱 신전 주제에, 라고 낮추보며 머리를 숙이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제국에서는 이걸 문제 삼아 신전에게 따져 물을 거예요. 그래서 결국 성국은 제국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게 되죠.”
“그게 당신이 본다는 미래입니까?”
“네. 하지만 그가 진범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땐 이미 많은 이득을 챙겨 달아난 뒤예요. 재빠르기도 하고, 그의 뒤에는…….”
“제국의 황가가 있을 테니까.”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말을 이어서 받았다.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 신관이 당당히 대신전의 이름을 팔고, 자금을 빼돌려도 도망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제국이 그의 뒤를 봐주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율리시스의 고고함을 꺾기를 원했고, 그걸 위해서라면 악수를 두는 것도 서슴지 않아 했다.
그 첩자 신관의 이름이 뭐더라…… 아!
“게르암 신관님은 아시다시피 제국 출신이고, 제국에 많은 금고 계좌를 만들어 뒀어요. 본인이나 가족의 명의는 아니에요. 연고지가 없고 가난한 이들의 이름을 빌리는 대가로 신분과 돈을 주고, 그 계좌를 이용하고 있어요.”
“언제든 잘라 낼 수 있는 이들이군요.”
이제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는 요이델의 대화에 진지한 자세로 응했다.
대신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확실히 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요이델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그녀가 알고 있는 앞날의 지식들을 모두 쏟아 내기로 했다.
“그의 친인척과 현재 신분은 모두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 만들어진 거예요. 그는 보육원에서 자랐으니까요.”
율리시스는 가만히 요이델의 말을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었다.
게르암 신관은 제법 직위가 있는 신관으로, 대신전의 회계 전반을 맡은 자였다.
물론 간간이 수상한 눈빛을 보였으나, 그처럼 주신 시엘로를 신실히 따르는 자가 자신을 기만했으리라곤 쉬이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분홍 머리 소년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믿어 주세요. 제가 불쾌하신 것과는 별개로요.”
율리시스는 당돌한 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정말 자신이 알던 그가 맞는가?
요이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체할 틈이 없다.
그는 한참 동안 요이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에 관한 처분은 잠시 미뤄 두겠습니다.”
그의 선언에 요이델은 입을 서서히 벌렸다. 이거 꿈 아니지? 정말 성공한 거야?
요이델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하루.”
“네?”
“단 하루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말해 둘 터이니 본래 그대가 머무는 곳에 가 있으십시오.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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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입니다! 저는 아닙니다, 성하. 성국과 대신전의 안온을 위해 제가 몇 년의 세월을 바쳤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성하!”
죄인의 마지막 발악이 대신전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질질 끌려가면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쾅.
재판장의 문이 거세게 닫혔다. 그는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본래라면 어제 요이델의 사형이 집행되었을 그곳에, 게르암 신관의 목이 묶이게 되었다.
“성하, 괜찮으십니까? 머리를 짚으셔서, 혹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온지…….”
대신전의 모두가 게르암의 배신에 분개했다.
걱정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에 율리시스는 덤덤한 눈으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늦게나마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어 외려 다행입니다.”
“아아…… 그렇지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역시 누구보다도 자애로우신 분. 그 와중에도 다른 이들을 먼저 살피시다니요.”
“대단하십니다, 성하. 그 다정하신 마음씨에 큰 상흔을 입으셨을 텐데요.”
율리시스는 그 말에 다시금 태양처럼 부드러이 웃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싸 안아 주고 싶은 처연함까지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는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나 손으로 가린 안쪽 얼굴은 언제 웃었냐는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주인을 물 개새끼를 키웠군.’
이로써 그는 진범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을 역으로 압박할 패도 얻게 되었다.
율리시스는 소란이 지난 후 텅 빈 알현실의 적막함을 느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요이델이라는 수련신관의 진심에 대하여.
‘분홍 머리 소년의 말이 진실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미친 건가 싶었다. 그깟 말에 홀리다니. 게르암 신관은 요이델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오랫동안 신전을 지켜 온 이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 풋내기의 통찰이 맞은 것이다.
게다가…….
‘게르암 신관은 신분을 샀다고 하나, 그 거래한 족보의 가계도로 따지면 요이델 신관의 친척이다.’
혹시 몰라 재차 살핀 결과 요이델은 확실히 그 귀족가의 혈통이 맞았다. 자신의 가문이 엮여 희생될지도 모르는 일을 먼저 밝힌 것이다.
율리시스는 고민을 끝내고 대신전의 경비대장을 불러들였다.
“죄인 요이델 수련신관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