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요이델은 막사 안에서 설원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평화롭기 그지없더니 점차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설원의 풍경은 예쁘고 평화로웠으나 어딘지 불길했다.
“꾸우웅―”
플로테스는 요새 부쩍 피곤한 듯 요이델의 품을 긁어 댔다. 자꾸 옷을 앙 물어뜯기도 하고.
“플로, 이가 나고 있어. 보여?”
뭔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플로테스의 잇몸에서 자그마한 하얀 이가 뾰족 솟아 있었다.
거울에 비춰 주자 플로테스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한지 한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짤막한 손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다 요이델을 올려다보았다.
“꿍?”
“맞아, 플로의 모습이야.”
“꾸우…….”
어쩐지 플로테스의 모습이 시무룩해 보였다.
“왜 그래, 플로?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꾸우, 꾸, 꾸웅.”
그러자 플로는 열심히 앞발로 거울과 플로테스, 요이델을 번갈아 가리키며 볼을 부풀렸다.
자신의 모습을 가리킨 플로테스는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있었다.
‘아, 플로의 모습만 다른 걸 알게 되어서 그런가 봐.’
현재 신수는 플로테스가 유일했으니까. 태어난 이후 플로테스의 세계에는 인간들밖에 없었다.
당연히 자신의 외형도 인간처럼 생겼을 거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플로는 어디서 왔지? 몇 살일까? 부모님은 있겠지?’
얼핏 메디아에서 보낸 화친의 상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풀이 죽어 동그랗게 말린 등을 보니 어쩐지 안쓰러웠다.
톡톡 두드려도 통 뒤를 돌아보지 않아 번쩍 들어서 정면으로 돌렸다.
놀랍게도 플로테스는 눈에 눈물을 한가득 담고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플로! 어떡해, 많이 놀랐어?”
“꾸잉…… 뀨우, 꾸, 꾸흑.”
“플로는 특별한 신수라서 그래. 나도 플로처럼 작았을 때는 팔다리도 짧고 이도 없고 막 이렇게…….”
그림을 그리며 플로테스를 설득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홀로 다른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적잖이 받은 듯, 플로테스는 훌쩍이다 도로롱 잠이 들었다.
“요이델 님, 따뜻한 차를 좀 내어 드릴까요?”
“앗, 감사해요.”
막사에는 행정 신관과 시종 등 내부 일을 하는 몇몇과 보초 성기사가 남아 있었다.
참가자들이 나간 막사들은 조용했다.
이번 사냥대회에서는 가장 많은 마수를 잡은 1등에게 뭐든 이룰 수 있는 소원권을 선물한다.
보상이 파격적이어서인지 요이델이 제안한 사냥대회는 성공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뜻밖의 이벤트에 신이 나서 사냥에 나섰다.
심지어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성기사를 보호한다는 목적에 따라 기사는 수상 가능자에서 제외하려고 했으나, 라이오스와 휘스테론을 비롯한 기사들은 마수가 몸에 닿지만 않으면 상관없는 거 아니냐며 1등을 하겠다고 나섰다.
신성력 좀 갉아 먹혀도 자신들은 괜찮다고.
‘델, 나는 고기가 좋아. 꼭 1등 해서 포상 선물로 고기를 달라고 할래.’
휘스의 1등 소원은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기라고 했고, 라이는 딱히 없지만 요이델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했다.
휘오오―
막사 밖을 보니 몰아치는 서릿발이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막사의 천까지 푸드덕 떨릴 만큼.
그때였다.
“악!”
요이델의 눈에서 뜻 모를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뭔지도 모르고 울음부터 터졌다.
뒤이어 팔에 고통이 미칠 듯이 밀려왔다.
챙그랑!
차를 가지고 들어온 시종이 놀라 찻잔을 깨부쉈다. 곤히 담겨 있던 찻물이 피처럼 바닥에 번졌다.
“어디 아프십니까, 요이델 님?”
“헉, 으윽.”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입을 스스로 틀어막고 겨우 숨을 몰아쉬며 참았다.
아파, 너무 아파.
틀림없다.
율리시스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
요이델은 재빨리 자신의 팔에 치유 마법을 걸었다.
‘여기서 내가 치료되면 성하도 똑같이 회복될 테니까.’
어쩌다 갑자기 비명을 질렀는지 묻는 질문에는 에둘러 대답했다.
그런데 서서히 사냥을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할 때도 율리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일인지 평화롭던 설원의 날씨에 폭풍 같은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거세지는 눈보라를 바라보던 중, 저 멀리 커다란 인영이 보였다.
‘성하인가?’
요이델은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내다보았다. 흐린 모습이 점차 또렷하게 보였다.
“라이! 휘스!”
“우와, 델. 우리 마중 나와 준 거야? 이러면 나 울어. 감동인데.”
그들은 큰 마수들을 끌고 온 데다, 아티팩트에는 수많은 마수의 시체를 담아 가져왔다.
“안쪽의 마수도 다 잡아 온 거야?”
“응! 싹 긁었어.”
휘스테론이 신이 나 줄줄 쏟아부었고, 라이오스는 무표정하게 덤덤히 자랑했다. 이대로면 이변이 없는 한 라이오스가 1등이었다.
“정말 대단해. 라이, 휘스 둘 다.”
요이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곤란했다.
‘라이랑 휘스는 절대 내가 성하를 찾아 나서게 두진 않겠지. 호위기사니까.’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은 어떻게 피한다고 해도, 이 둘은 무리였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간 내가 그의 반려라는 걸 들키고 말아. 요이델은 계속 갈등했다.
“마중이 아니었네. 무슨 일 있지, 델?”
요이델은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성하는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휘스테론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요이델을 보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성하는 네가 아는 것보다 튼튼하고 더 오래 살았어. 죽지는 않아. 하지만 너는 죽겠지. 고작 눈보라지만 너에겐 고작이 아닐 거라고.”
“성하께서는 분명 성국의 주인이시지만 저의 주인은 신관님이십니다.”
라이오스마저 말을 보탰건만 요이델은 주저하지 않았다.
“라이오스의 말이 맞아.”
그리고 평소의 소심함과는 다른, 결연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이건 모셔지는 사람으로서의 명령이야. 비켜.”
붉은 눈동자가 단호하게 빛났다.
“좋아, 델. 아니, 사실 좋진 않은데 넘어갈게. 네가 생각한 방법이 뭔지 말해 줘. 그래야 우리도 너를 보호하지.”
휘이익―
요이델은 호위기사들 너머의 설원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때였다.
“뭐야, 이 바람은……! 델, 위험해!”
“신관님!”
손 피리를 분 순간 돌풍이 휘몰아치고 땅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온 것은…….
“베리!”
라크라스 산맥의 괴수였다.
━━━━⊱⋆⊰━━━━
“으프픕, 베리! 꺄약, 좀 더 낮게 날아 줘!”
불어닥치는 날카로운 바람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길들여지지 않은 괴수는 꽤 위험했다.
장애물을 만날 때면 등 위에 누군가 태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무작정 뚫고 갔으니까.
가뜩이나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속력이 더해져 정신을 딱 잃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요이델은 눈을 바로 뜨고 협곡을 살폈다. 이 기상 이변은 단순한 재해가 아니었다.
같은 걸 느낀 휘스테론도 눈살을 찌푸렸다.
“델…… 이거 진짜 위험하겠는데.”
바로 그때, 휘몰아치는 거센 눈보라 사이로 저 멀리 있는 협곡의 틈이 보였다.
새하얀 눈밭 위에 선명하게 보이는 어두운 틈새.
혹시 저긴가?
요이델은 아까 기사들에게 받았던 가방을 단단히 고쳐 맸다. 그리고 베리를 몰아 협곡 위로 이동했다.
미심쩍을 만큼 거센 눈보라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친 그때.
―케에엑!
“으앗!”
베리가 거대한 날개를 휘저어 떨어질 뻔했다.
아래를 보니 베리의 꼬리 부분이 뾰족한 무언가에 찔려 있었다.
“저게 뭐야! 델, 뭔지 보여? 얘 어디 아픈가 본데!”
‘나무 말뚝?’
그런 게 왜 여기에. 게다가 이 나무…….
그 순간 베리가 크게 동요하며 몸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꽉 잡아, 델!”
베리의 몸이 크게 들썩이는 사이 요이델은 겨우 기어 내려가 말뚝을 뽑았다.
추위에 얼어붙은 손이 긁혀 피가 흐르고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따가웠다.
“잠깐만, 베리. 아무것도 아니야, 진정해……!”
휙!
그 순간, 몸이 크게 뒤집혔다.
“델!”
베리가 몸을 뒤집는 순간, 거센 반동을 견디지 못한 요이델이 튕겨 나왔다.
휙휙 바뀌어 가는 주위의 풍경을 제대로 인식할 틈도 없이 손끝에 힘이 빠졌다. 요이델은 끝도 없는 바닥으로 추락해 갔다.
베리를 부를 수도 없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제 끝이야.’
서서히 눈 덮인 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지면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요이델의 몸은 더 깊이 그 협곡으로 빠져들어 갔다.
끝도 없는 암흑 속으로.
요이델은 머릿속에 주마등이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율리시스에게 큰일이 닥칠 줄 알았더니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게 먼저인 듯했다.
‘죄송해서 어쩌지.’
자신이 입을 맞추지 않았더라면 율리시스는 살았을 텐데. 감옥을 탈출해서 이렇게 죽을 줄이야.
그리고 느껴지는 날카로운 추위.
시야가 완전히 어둠 속에 파묻혔다.
그녀의 의식처럼 저 설원에 흐리게 남은 빛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멀어질 때.
탁.
“또 당신입니까.”
말도 안 되게 따스한 빛이 몸을 휘감더니 어딘가에 사뿐히 안착했다.
‘마법?’
아니, 그녀를 안은 것은 사람이었다.
요이델은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달처럼 아름다운 은발과 따스한 사람의 체온 그리고…… 빙하처럼 차갑고 푸른 눈동자? 엄마야.
“성하!”
율리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