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요이델은 입구에 서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오도카니 서 있었다.
율리시스가 아무리 가면을 썼다고 해도 꽤 많은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낸 요이델은 한눈에 알아봤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언뜻 푸른 눈.
“실례했습니다.”
그는 딱 마주친 길에서 먼저 비켜 주었다.
목소리까지 확실하다. 그가 맞다.
요이델은 식은땀을 쫙 흘렸다.
‘아차, 이렇게 굳이 있으면 더 수상해 보일 거야. 움직이자.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연스럽게 움직인 요이델은, 조용히 키에 맞는 자그마한 소원 나무로 가서 종이를 매달았다.
하필이면 시간이 많이 늦어서 소원 나무 숲에 사람이 적었다.
게다가 나무가 한두 그루도 아니고 수십 그루였으니, 사람들이 띄엄띄엄 있어 상당히 곤란했다.
요이델은 제 딴에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위험할 땐 로브 주머니를 뒤져 봐요, 요이델 군.’
마르셀리나가 준 비장의 위장 무기란 바로 가면이었다.
‘마르셀리나 님……!’
요이델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이게 위급할 때 도움이 된다는 건가요.
하지만 이거라도 좋았다.
소원 나무 숲에서 굳이 가면을 꺼내 쓰는 게 이상해 보였지만, 요이델은 이거라도 절실했다.
요이델은 걸음을 조심조심히 걸었다. 만일 돌부리에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성하가 바로 눈치챈다.
‘어떡해…… 미치겠어…….’
찌익.
요이델은 자른 소원 나무 종이를 품에 소중히 넣었다.
이제 소리 소문 없이 암살자처럼 떠나기만 하면 완벽하다. 완벽하고 아무도 모를 휴가다.
‘휴우, 됐어. 괜찮아.’
괜히 긴장한 티를 내면 더 오해받을 거다.
지금 그는 평범한 차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꼭 그가 누군지 아는 것 같아 보이겠지.
요이델은 무사히 뒤로 돌았다.
“잠깐.”
“……!”
콩닥콩닥.
안 그래도 콩알만 한 심장이 활어처럼 펄떡 뛰었다.
설마 나를 부르는 건가?! 아니지, 저쪽 멀리지만 사람이 또 있잖아.
“갈색 머리 의료신관님.”
의료신관이라고 했다. 내가 아니다!
요이델이 뛸 듯이 기뻐하며 고개를 숙인 순간, 로브 아래쪽 자수가 보였다.
녹색 월계수 잎이 포물선을 그리는 끝단. 의료신관의 로브였다.
파란 원피스 위로 로브를 걸친 게 이제야 떠올랐다.
‘……나 맞구나.’
요이델은 공포에 질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까 자신의 얼굴을 봤다.
변장 마법 반지를 빼도 외관상 엄청나게 대단한 차이는 없다. 뼈마디의 차이가 고작인 정도.
설마.
설마…….
“소원 종이를 떨어뜨리셨습니다.”
“……!”
요이델은 말을 하지 못했다. 목소리를 들킬까 봐.
종이가 언제 떨어졌지?!
정말 자신의 로브 주머니를 뒤져 보니 언제 쏙 빠져나갔는지 없었다.
‘거기엔 필체가 남아 있는데!’
소원 종이는 미리 써 온 것이었다. 축제 소식을 들은 날부터 밤마다 써 내려간 소원 목록.
요이델은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에 다급히 달려갔다.
휙!
그의 손에 들린 소원 종이를 날쌔게 빼앗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필체를 알아봤을까 싶어 다시 한번 긴장감에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소원은 못 봤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다행이다. 못 봤구나.
요이델은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급히 일어난 순간.
핑―
머리가 어지러웠다.
긴장을 많이 하고 호흡까지 참아서인지, 중심을 잃은 요이델은 순간적으로 그에게로 넘어졌다.
두근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긴장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이 귀에까지 들릴 듯 소리를 키워 갔고, 무심코 짚은 그의 가슴팍 아래에서 느껴지는 심장도 보통의 사람처럼 쿵쿵 뛰었다.
요이델은 무심코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푸른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가 쓴 가면 너머로 숨길 수 없이 맑은 파란 눈이 보였다.
저건 오로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색이다.
“…….”
사과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무게중심을 잡고 일어나고자 그의 단단한 가슴을 짚자, 율리시스는 낯선 여자의 손길이 불쾌한 듯 몸을 굳혔다.
다만 상황을 고려해 참아 주는 듯하던 그때, 그의 눈매가 확 좁혀졌다.
“붉은 눈?!”
눈동자 색은 다양하지만 붉은 눈이 그렇게 흔하진 않았다. 어두우니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율리시스는 갑자기 자신에게 덥석 안긴 여자를 껄끄럽게 바라보다 그 눈동자 색에 의구심을 떠올렸다.
이 체구, 이 키와 눈높이.
그가 아는 신관도 딱 이런 몸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이 여자가 더 뼈대가 얇긴 하지만.
일전에 그 신관이 여자로 잘못 보였을 때, 그때가 이런 느낌이었다. 율리시스는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당신, 누굽니까.”
“…….”
“나를 압니까?”
오랜 세월 동안 우연과 인연을 가장하여 그에게 안기려 시도한 여자들은 숱하게 많았다.
지금처럼 사고를 가장하여 품에 안기려고 한 누군가도 있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었고, 단 한 올의 곁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는 타인과의 신체 접촉 자체가 극도로 불쾌했다.
‘……그런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군.’
보통 때의 자신이라면 이 여자가 짚은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야 했다. 그러나 평온했다.
아무 불쾌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 점이 몹시 당혹스러웠다.
왜 이 여자만 예외인가?
아무렇지 않았던 건 그나마 같은 성별인 그 햇병아리 신관이 유일했다.
‘그러나 이 여자는 햇병아리가 아니다.’
타인이었다.
그때 문득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다른 성별로 보였던 걸 떠올렸다.
‘……반지가 없군.’
여자의 손에는 반지가 없었다.
애초에 없던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묘하게 눌린 자국이 있었다. 반지를 오래 낀 사람에게 남는 미약한 자국.
‘그리고 그 햇병아리 신관은 반지를 목숨처럼 여기지.’
모든 게 이상했다.
“당신은, 설마.”
펑!
바로 그때,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축제의 첫 밤을 장식하는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연이어 피융 소리를 내며 올라간 폭죽은 ‘펑!’ 터지며 밤하늘을 밝혔다 어둡게 하기를 반복했다.
성국의 축포는 화력이 대단해 흡사 태양이 지고 밤이 백야가 되듯이 화려하고 성대했다.
잠시 눈을 뗀 그 순간, 품 안의 여자가 잽싸게 도망쳤다.
손이 움찔했으나 굳이 붙잡지는 않았다.
‘의료신관의 로브. 의료신관 중 저런 여자가 있었나.’
그녀가 의료신관이 맞다면 확인해 보면 될 일.
그러나 어쩐지…… 다시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율리시스는 가면 속 눈동자를 떠올렸다. 어두운 상황과 그림자를 고려하자면 붉은색일 확률이 가장 크지만, 갈색과 보라색까지도 가능하다.
“율리시스 님!”
“율리시스 님, 여기 계셨습니까.”
그때 어디선가 달려온 그의 근위대의 다급한 목소리에 생각이 깨졌다.
율리시스는 여자가 사라진 너머에 잠깐 시선을 주다 고개를 돌렸다.
“그만 돌아가지.”
━━━━⊱⋆⊰━━━━
요이델은 고쳐진 마법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조심히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성하.”
휴가가 끝난 후, 요이델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런 아침치고는 거리가 꽤 멉니다만.”
“와― 제가 그랬나요?”
요이델은 그와 멀찍이 떨어져서 문안 인사를 건넸다.
그야 당연한걸, 어제 일을 들키면 완전히 끝장이니까.
시큰둥하고 무심한 파란 눈동자. 자신이 오건 말건 신경을 안 쓰는 율리시스는, 평소와 똑같긴 했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다.
“간밤의 축제 구경은 즐거우셨습니까?”
요이델은 화들짝 놀라 어물거렸다.
“아뇨. 아파서 못 나갔어요. 너무 아쉽게도요.”
“그건 묻지 않았습니다만.”
율리시스도 보고를 받았다. 햇병아리 신관이 고대하던 축제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그러나 조사를 내려 본바, 의료신관 중에는 어제의 인상착의와 외형을 가진 여성 신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잉크병이 툭 쓰러져 종이를 까맣게 물들였다.
“앗! 수건이…… 이거 쓰세요!”
요이델은 다급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를 알아본 율리시스의 표정이 차분하게 식었다.
“뭡니까?”
“얼른 닦아야 더 물이 안 들죠. 책상도 깨끗이 닦아야겠네요.”
“그것이 아니라 이 손수건의 용도가 뭐냐고 묻는 겁니다.”
그건 손수건이었다.
여러 색의 실을 사용해 엉망진창으로 수놓인 태양 모양 자수. 누가 보아도 그만을 위한 것.
이 성국 내에서 오색찬란한 색은 그 외에는 누구도 사용하지 못했으니까.
율리시스는 단번에 알아보고 눈을 치켜떴다.
그 시선을 느낀 요이델이 민망함에 눈길을 내렸다.
“원래 성하께 드릴 손수건이었어요. 사정이 있어서 전해 드리진 못했지만요.”
“제게만 못 주실 사정이 뭡니까.”
“그, 그게…….”
“버리기라도 할 줄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았지?
마수 같은 눈치에 감탄했다.
그러자 율리시스는 진심이냐는 얼굴로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어, 어쨌든 이렇게라도 쓸모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쓰, 쓰고 버리셔도 돼요!”
버려야 할 신세가 되긴 했지만. 나름 열심히 만든 거니까.
“그대의 머릿속에서 제가 얼마나 신랄한 사람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짜증이 난 듯한 율리시스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검게 물든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마법이 걸리자 손수건은 금세 원래의 흰색으로 복구됐다.
“제 선물을 제멋대로 사용하시는군요.”
“그건 그랬지만…… 이런 것도 괜찮으세요? 엉망이에요. 바느질이…….”
“제게 주시기 위해 만든 제 것 아닙니까.”
재차 물었다. 율리시스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나 어쩐지 점차 노기랑은 거리가 멀어지는 듯했다.
요이델은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표정으로는 그의 심기를 잘 구분할 수 없었다.
“……그, 다시 만들어서 드릴게요. 한번 더러워졌잖아요.”
“본래 제 것이었어야 할 물건입니다. 어떤 처분을 내리든 제 소유입니다. 다시 회수해 가시겠다면 당신은 도둑이 되시는 겁니다.”
“저, 정말요?”
“전달이 매우 늦으셨지만, 잘 받겠습니다.”
율리시스는 차가운 푸른 눈으로 요이델을 응시했다.
그리고 귀찮은 듯 손수건을 접어 보통 상급 문서를 보관하는, 결계에 준하는 보안 마법이 걸린 서고에 넣고 단단히 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