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성하가 왜 메디아 수장님을 싫어하냐고?”
“응.”
“시끄러워서 그래.”
“시끄러…… 웁?”
휘스테론은 토끼처럼 눈을 뜬 요이델의 입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빵을 꾹 쑤셔 넣었다.
반사적으로 우물우물 삼킨 요이델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맛있어!”
“그치? 라이가 만든 거야.”
“신관님께 더러운 손 대지 마라, 휘스테론.”
요이델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라이 솜씨는 최고야.”
“……영광입니다.”
“누구는 드럽고 누구는 영광이래.”
휘스테론을 노려보던 라이오스는 요이델의 칭찬에 곧 얼굴을 붉혔다.
“아무튼 성하가 수장님을 싫어하는 건, 외교적인 문제는 없어. 오히려 나라 간의 사이는 꽤 좋아. 외교적 문제는 사실상 지상 대륙 문제인데.”
“브리칼트 때문이구나.”
“거긴 아무래도 좀 그래.”
“편하게 말아도 괜찮아, 휘스!”
그러고 보니 휘스테론은 메디아의 수장에게는 존칭을 붙였다.
모두에게 친근하게 대해서 그냥 부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닌가 보다.
“메디아는 뭐, 성하는 수장님이랑 성격이 안 맞아. 둘 다 고집이 대단해서 얘기만 했다 하면 회의가 몇 박 며칠을 넘겼거든.”
“그렇게 길게?”
“응. 둘 다 일 얘기에서는 조금도 안 물러서.”
“사적인 대화도 그래?”
“회의만 아니면 서로 말도 안 섞었을 성격들이라 모르겠네. 회의 기간에도 사적인 대화는 형식상 인사가 전부야. 둘 다.”
휘스테론은 과거를 떠올리듯 고개를 저었다.
“아! 그것도 있었다. 우리 수장님이 회의가 끝나고 연회장에서 성하께 술을 엄청 권유했대. 말이 권유지, 수장님들은 술독에서 태어난 것처럼 많이 마시거든.”
“그런…….”
“지독한 분들이라, 분명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겠지. 밤새 술을 마신 뒤로 성하는 우리 수장님에게 학을 뗐다고 들었어.”
살짝 주위를 살피다가 휘스는 작게 속삭였다.
“비밀인데, 성하는 체질상 술이 안 받으시거든. 곤란하지만 외교를 위해 참아 주신 거지.”
술은 못 하는구나.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게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휘스, 회의라면 대륙 회의 얘기하는 거야?”
“닫히기 전까지는 대륙 회의를 했어. 각 대륙 각 나라들에서 대표가 모였지. 그런데 우리 수장님은 되게 화끈해서 성하랑 안 맞았거든.”
“휘스도 참석했던 거야?”
“델도 참. 나도 그때는 애였다고. 아빠한테 들은 게 다야.”
“그럼, 저기 휘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가 왜 여기로 온 거냐고? 그거지?”
휘스테론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좀 찾아야 할 게 있어서.”
휘스테론은 중얼거리다가 요이델의 머리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 주었다.
“이런 분홍 머리를 보면 누가 생각나.”
“나 외에도 분홍색 머리를 봤어?”
“응, 뭐. 우락부락 근육쟁이라 안 어울리지만 있어. 분홍색은 닮았는데, 그 근육질에서 우리 델이 유추되진 않네.”
“분홍 머리에 근육질?”
근육과 분홍색 머리는 잘 매치가 되지 않았다.
“있어. 어떤 시끄러운 아저씨.”
요이델은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이곳에서는 분홍 머리를 본 적이 없는데.
문득 휘스가 본 걸 자신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하나만 묻자, 델. 너 몇 살이지?”
“생일이 지났으니까 완전한 열아홉이야.”
“흐음, 그래? 그건 또 다르네…….”
짧은 말을 중얼거리던 휘스테론은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얼핏 본 그건 꼭 편지처럼 보였다.
“아아, 근데, 델. 우리한테 물을 게 있댔잖아. 그게 뭔데?”
“음, 그게…….”
“아, 알았다. 부탁 있지?”
휘스테론은 예리했다. 요이델은 주머니에 구겨 온 쪽지를 건네주었다. 쪽지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생긴 광물을 구해 줄 수 있을까?”
“아? 이거? 비싸긴 한데 너한테라면 갖다줄 수 있지. 근데 왜?”
“성하의 탄신 선물로 드리려고.”
“벌써? 탄신 연회는 한참 남았는데?”
그의 물음에 요이델은 그냥 웃었다.
━━━━⊱⋆⊰━━━━
“지갑에 먼지만 남았네.”
요이델은 동그란 돈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먼지가 폴폴 풍겼다.
그래도 흡족한 선물을 샀다고 생각하니 내심 뿌듯했다.
‘성하가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버리시진 않겠지?’
나름대로 고심해서 고른 선물이었다. 제작을 맡겨야 해서 시간과 돈이 좀 들었지만.
“한 일주일 정도 걸리겠네.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겠어.”
요이델은 뽀송한 침구 위로 포옥 엎어졌다. 팔다리를 마구 휘적거리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았다.
그런데 테이블에 놓인 저 꽃. 어쩐지 신경 쓰인다.
특별한 향이 있는 것은 아닌데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저 꽃이 대신전의 정원에서 났다고 했지?’
라나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딘지 찝찝했다. 생김새도 딱 독초같이 생겼고.
‘지오르베니라고 했어. 마지막 원로신관님의 이름이.’
익숙한 느낌의 이름은 아니다. 흔한 이름도 아니었고.
그런데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단순한 기우일까? 요이델은 빈 주머니를 꾹 누르며 머리를 굴렸다.
‘낯설지가 않아.’
계속 생각했다.
지오르베니, 지오르베니.
원작에서도 분명히 등장하긴 할 텐데. 뭐였을까?
끙, 골머리를 앓던 요이델은 벌떡 일어났다.
‘마르셀리나 님은 알고 계실 거야!’
요이델은 꾸준히 그녀에게서 수업을 받았다.
선물로 줄 쿠키를 챙겨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순간.
쾅!
“아야!”
엉덩이가 쿵, 부딪치며 제대로 넘어졌다. 율리시스가 조금 찌푸린 얼굴료 요이델을 쳐다봤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네? 아, 마르셀리나 님과 선약이 있어서요.”
그가 이 휴일에 그녀를 찾아왔다는 건 연장 근무가 있다는 뜻. 그건 질색이었다.
“거짓말이군요.”
“……아닐걸요?”
“마르셀리나 원로께서는 오늘 가문에 다녀오기 위해 휴가를 내셨습니다.”
아, 이런 맙소사.
율리시스의 묵직한 목소리가 요이델을 짓눌렀다.
살그머니 올려다본 푸른 눈은 형형한 노기를 띠었다.
“그래도 진실입니까?”
“죄송해요.”
“당신의 직속 상관은 마르셀리나 원로가 아니라 접니다. 누구를 모시는지 제대로 아셔야 할 겁니다.”
“네, 성하.”
“우선순위를 제대로 두십시오.”
“네!”
그는 불만족스러운 듯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율리시스는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외모는 누구보다 빛났지만.
“그런데 성하, 어디 가세요?”
“당장 옷을 갈아입고 나오십시오. 가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설마 감옥인가.
요이델이 떨고 있을 때, 율리시스가 상냥히 미소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의견이 상부를 통과했습니다.”
“네? 아, 그럼, 그러면, 성하……! 와!”
“기쁘십니까.”
“네! 엄청요! 정말 좋아요!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성하!”
율리시스는 점점 커지는 동그란 눈을 바라보았다.
요이델이 저를 바라보며 양손을 모으고 까치발을 들었다. 그는 그게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학술원 부지를 정찰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아! 다녀오세요!”
‘성히가 자리를 비우면 너무 좋지.’
율리시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언짢다는 웃음인데, 분명.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닌가?
“아하, 안녕히 다녀오세요!”
“…….”
“음,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말이 나올수록 그의 미소가 서늘해졌다.
“제가 방금 가셔야 할 곳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율리시스의 눈이 예쁘게 접혔다.
“당신도 갑니다.”
━━━━⊱⋆⊰━━━━
워프로 도착한 곳은 성국의 변두리였다.
국내에도 학술원이 지어진다. 수도의 반대쪽에서. 개발 비용과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거였다.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아 바람이 그대로 불어닥치는 꽤 추운 땅.
이 외에도 여러 곳을 둘러보았으나, 하나같이 신수의 눈에 차지 않았다.
“눈이 내립니다, 신관님.”
“고마워요.”
요이델은 털 망토를 덮어 준 기사에게 눈인사를 했다.
율리시스의 직속 기사단인 1기사단은 더없이 정중했다.
“플로는 여기가 좋을 것 같아?”
“꾸잉.”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라 외부의 침입도 막기 쉽고, 강이 흐르고 있어서 지형적으로도 적합하다고?”
“꾸!”
작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 둘의 대화를 바라본 사람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은백색 신수님의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시는 거지?
아무리 봐도 그들의 귀에는 ‘꾸, 꾸’거리는 게 다였다.
어쨌든 플로테스는 학술원의 부지로 적합한 땅을 찾아냈다.
‘이유를 알 것 같아. 다른 곳과 다르게 맑은 기운이 흐르고 있어.’
중심가에서 멀고 상점가도 없지만, 그래서 더 적합했다.
학술원이 생기면 주위로 새 마을이 형성될 것이다. 그러니 국토가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루는 데에는 아주 좋았다.
시골의 자연과 어우러진 이 땅은 주위에 특별한 건 없지만, 플로테스의 점지대로 나중에 특별한 곳이 된다.
이곳의 지하에는 신성력을 특수한 에너지로 바꿔 주는 광물이 매장되어 있었으므로.
“그런데 이거, 무늬가 어쩐지 그때 본 주황색 꽃이랑 비슷한데…….”
요이델은 한 식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꽃에는 가까이 가시면 안 되오, 신관님.”
그때 마을의 노파가 요이델의 행동을 제재했다.
무심코 가려던 손길이 우뚝 멎었다.
“부인께서 아끼시는 꽃인가요? 죄송해요. 꺾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위험하기 때문이네. 중독성이 강한 꽃이라서, 젊은 사람이라면 특히 빠지고 말게요.”
“네?”
“내 고향은 전쟁이 잦아서 이런 꽃들을 많이 봐 왔거든.”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주름진 이마 사이로 보이는 눈은 꽃이 께름칙한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 식물의 이름은, 시체꽃이요.”
“시체……!”
그제야 요이델은 그 찝찝함이 뭔지 깨달았다.
시체꽃은 강력한 마법으로 인해 시체를 양분으로 삼은 땅 위에서 피어난다.
먼 옛날, 세력의 충돌이 있었던 때 그 땅에 꽃이 만개했다는 원작 속 서술을 읽은 적이 있었다.
시체꽃은 아름답지만 섬뜩하다.
향을 맡으면 중독성에 다시 찾게 되고, 손끝이 찔리면 독이 피를 타고 따라 올라가 폐병에 걸리게 한다.
꽃 자체가 독성 덩어리라 줄기를 꺾거나 빻아도 위험하다. 꽃잎을 삼키면 곧 죽는 것과 같다.
‘성하께 말씀드려야 해.’
요이델은 마법으로 꽃을 없앤 뒤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치유 마법을 행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잠시 멈춰서서 감탄했다.
‘성하, 이럴 때 보면 꼭 성황 같아.’
맞긴 하지?
요이델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쪼르르 다가갔다.
주위의 기사들도 길을 터 주었다.
그런데 어딘지, 그의 모습이 이상했다. 설마 싶은 마음에 작게 속삭였다.
“혹시 감기에 걸리셨어요?”
“아닙니다.”
율리시스는 시선을 외면했다.
그러나 미묘한 변화를 요이델만은 눈치챘다. 자신의 몸까지 욱신욱신 저리며 근육통이 올라왔다.
“무리하고 계시죠? 성하.”
“……무슨 말씀이신지.”
“잠시 실례할게요.”
요이델은 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거봐,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