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62)
62화
1월 1일, 성국이 가장 들썩이는 연례 최고의 행사.
탄신제를 목전에 둔 이들은 모두 기쁨에 들떠 있었다.
“요이델 신관님, 보셨어요? 제가 만든 장식이에요. 신관님이 알려 주셨던 그 리본 묶기요.”
“우와― 꽃 모양이네요. 응용을 엄청 잘했어요.”
“그렇죠? 이건 신관님 선물이에요.”
요이델은 세탁실의 시종들에게 동그란 말발굽 모양의 예쁜 종을 선물받았다.
“제 거예요?”
“네, 그럼요! 1월 1일 신년에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행운을 불러들인다는 의미에서 종을 선물하잖아요. 그거예요, 요이델 신관님.”
“제가 받아 보는 건 처음이에요.”
“어머.”
왜일까, 잠시 갸웃하던 시종들은 과거 요이델의 나쁜 소문을 떠올리고 짧게 탄식했다.
지금의 요이델을 봤을 때 믿기 힘든 과거였다.
시종들은 짧은 눈물을 훔쳤다.
그들은 과거 요이델의 난동의 대상에서 제외됐기에, 소문으로만 들었다.
“신관님, 저희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챙겨 드릴게요. 그때도 꼭 받아 주셔야 해요!”
“고마워요.”
세탁실의 시종들과는 여러 소문을 수집하기 위해 최근 친해졌다.
전생에서 알던 얼룩 지우기나 빨래 방법을 알려 주니 시종들은 반색하며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다.
선물을 받은 것을 축하하듯 마침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펑펑 내렸다.
요이델은 대신전을 둘러보며 감격에 남몰래 코를 훌쩍였다.
대신전 내부 삼백여 개의 건물들에 화려한 조명등이 켜졌다. 이제 정말 탄신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밀려와 대신전 창고 몇 개를 채웠으니, 율리시스를 향한 관심이야 알 만했다.
온갖 빛나는 보석이며 금화, 양질의 모든 귀중품이 이곳에 모인 듯했다.
톡.
그때 눈송이가 코끝에 톡 얹혔다.
“예쁘다…….”
“델! 감기 걸린다?”
휘스테론은 요이델에게 우산을 드리워 주었다. 올려다본 보라색 눈이 짓궂게 찡긋거렸다.
“아야. 으.”
“왜 그래, 휘스! 어디 아파? 어깨? 팔을 다쳤어?”
“기사는 근육통이 심해. 뭐, 영광의 상처랄까. 내가 좀 잘난 기사라.”
치료해 줄까 물었지만, 휘스테론은 정중히 거절했다.
“기특한 바보라니까 우리 델은.”
휘스테론은 못 견디게 귀엽다는 듯 요이델을 품에 꽉 껴안았다.
그런 휘스테론을 겨우 떼어 내고,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준비한 걸 줘야 하는 날이었다. 이미 시간이 지났다.
“성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안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역시 대답이 없어서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되는 걸까, 안 되는 걸까.
요이델은 고민하다가 결국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문을 열자 거기엔 기분이 매우 저조해 보이는 율리시스가 앉아 있었다.
위압감은 물론, 알 수 없는 불쾌함까지 풍겼다.
그는 요이델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는 체조차 하지 않았다.
“계셨네요?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해요, 안 계신 줄 알고. 음…… 저 성하, 드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요.”
요이델은 넓은 소맷자락에 감춘 선물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그때 탁, 하고 서류를 놓은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의 푸른 눈은 오늘따라 어둡고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예전의 자신을 바라보듯.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분노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는 답답한 듯 셔츠 단추를 툭 풀고 피곤한 얼굴을 쓸었다.
“새로운 해가 와 기쁜 마음은 알겠으나, 해이해지지 마십시오.”
그가 차갑게 일갈했다.
율리시스의 묵직한 목소리에서 불쾌함이 뚝뚝 묻어 나왔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요이델은 당황스러움에 다시 선물 상자를 숨겼다.
“공과 사는 구분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신관으로서 타의 모범이 되기에 무리가 생길까 저어됩니다.”
“……네?”
“매년 있는 탄신제를 그리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다니. 쓸데없는 일에 열을 올리시는군요.”
그는 명백히 무례하게 말하고 있었다. 뜻 모를 면박에 요이델은 조금 당황했다.
“쓸데없다뇨, 성하의 탄신 연회잖아요?”
“그게 쓸데없는 일입니다.”
“쓸데없는 게 아니라 그만큼 성하의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사랑받는다는 뜻이라고요.”
요이델은 왠지 모를 울컥함으로 목소리를 떨었다.
“그건 시간 낭비가 아니에요. 왜 스스로에게 나쁜 말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말 하면 성하가 가장 상처받으시잖아요.”
“저는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했다.
“탄신제는 의무이고, 아무 뜻도 없습니다. 제 탄신에 의미가 있다면 그걸로 성국민들이 기뻐할 행사를 만든다, 그게 전부입니다.”
고저 없는 말투에는 감정도 없었다.
율리시스는 자신의 생일날도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니에요, 놀 수 있어서 기쁜 게 아니라 모두가 성하를 좋아해서 즐거워하는 거라고요.”
그 말에 율리시스는 더 차갑게 식은 눈을 했다.
그는 턱을 괴고 삐딱하게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픽 웃는 웃음은 평소의 가식적인 상냥함을 위장한 것이 아니었고, 놀린다든가 즐거워서 웃는 것과도 달랐다.
“받는 사랑이 그리 기쁘셔서 다른 이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업무는 뒷전으로 미룬 채.”
“그게 아니라…….”
“업무상 도움이 될 조찬보다 한낱 담소가 더 중하십니까?”
“그건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섣불리 말씀드릴 게 아니라 설명하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당신의 상급자는 저고, 그대를 보호하는 자로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종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던 건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율리시스의 오해를 풀어 주기엔, 자신도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죄송해요, 찾아와서.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요.”
떨리는 목소리를 한 요이델이 나간 후, 율리시스는 자신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이상하다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미쳤군.’
한심한 건 햇병아리 신관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쓸데없는 행동을 한 것도 바로 자신이었다.
어린 신관의 들뜬 태도쯤이야 상급자로서 충분히 이해 가능한 범주였다.
그런데 요이델에게는 그게 불가능하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율리시스는 서류들을 엎었다.
애초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글자들이었다. 괜히 답답한 마음이 치밀어 펜촉만 긁어 댔을 뿐.
애초에 그 건방진 호위기사를 붙여 준 것도 자신이었다.
“하아…….”
율리시스는 더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 긴 다리를 꼬았다.
뒤로 젖힌 고개를 따라 아름다운 은발이 목덜미를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빌어먹게도 근본적인 불쾌감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문을 두드리는 걸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했었다.
‘그 햇병아리가 뭐라고.’
그는 요이델이 이곳에 오기 전, 창문을 통해 요이델이 어디쯤 오는지 보았다. 그의 집무실에선 안 보이는 곳이 없었으므로.
그러나 그가 본 건 뜻밖의 불쾌함이었다.
시종들과 시시덕거린다든가, 호위기사와의 문란한 신체적 접촉 같은 것.
얼굴을 붉히며 즐거워하는 햇병아리 신관의 꼴을 보자니…….
속이 역류할 듯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공공연한 장소인데 그 정도의 긴밀함이라면, 그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는 다른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모르는 남자와, 모르는 여자와.
율리시스는 며칠 전 대화를 상기했다.
‘……인기도 좋아. 물론 기사들에게도 말이야.’
‘하지만 델이 자립하는 건 성하에게도 좋은 일이지? 성하는 햇병아리 신관이 오해를 벗고,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뿐이잖아.’
쿠구궁.
그의 분노에 집무실 안의 모든 것들이 잘게 덜그럭거렸다.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자신의 태도였다.
햇병아리 하나가 대체 뭐라고.
이 분노를 제대로 잠재우지 않으면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율리시스도 아예 모르진 않았다.
평생 특정인을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율리시스는 스스로의 감정까지 속일 만큼 대단히 능수능란한 남자는 아니었다.
‘요이델은 소년이다.’
그래, 그는 소년이다.
하일의 원성이 아니더라도 그는 남자를 품에 안을 미래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조금 전, 떨리던 요이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젠장.’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율리시스의 잇새를 비집고 낮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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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요이델은 침대에 엎드려 베개를 끌어안고 선물 상자를 뒤집었다 놓았다 다시 기울였다.
‘이제 곧 하루가 지날 텐데.’
요이델이 거금을 써 가면서 특급 의뢰를 부탁해 선물을 마련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엘라 세공점의 비용은 상당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흡족할 만한 가치를 뽑아내는 세공점은 몇 군데 없기에 무리했다.
‘성하께서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꾸우웅.”
“응, 플로. 휘스는 당분간 안 보기로 했어.”
“휴! 꾸우!”
플로테스는 요이델을 대신해 역정 내 주었다.
홀로 훌쩍이는 요이델을 발견한 휘스테론은 놀란 눈으로 다가와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실토했다.
‘미안, 델. 나는 둘이 더 잘되라고…… 괜찮아 보였는데 왜 그렇게 됐지. 미안해, 델. 나를 때려.’
휘스테론은 이야기를 들은 라이오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게 나을 리가 없는데. 나도 바보였어.”
“꾸우.”
플로테스는 요이델을 따라 훌쩍였다.
커다란 금색 눈에 눈물이 괸 플로테스는 작은 앞발로 요이델의 눈을 쓸어 주다가 뿌앵 울었다.
“이대로 못 드리게 되는 걸까……. 하지만 언젠가 화해는 해야 할 텐데. 오늘 드려야 의미가 더 큰데. 그렇지, 플로?”
“꾸.”
“역시 도전해 볼까?”
“꾸우!”
“좋아. 가서 다시 도전하고 올래.”
결심이 선 요이델은 서둘러 로브를 입었다.
요이델은 늦은 밤, 12시가 되기 전 율리시스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그는 이 시간에도 여기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