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요이델의 손 안쪽에서, 두근두근 뛰는 그의 맥박이 느껴졌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 조그맣고 따스한 작은 손이 칼날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평소처럼 아니라고 발끈하시지도 않는군요.”
율리시스는 쥔 손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축제 날에도 당신은 아픈 곳 하나 없으셨던 겁니다.”
짓씹듯 낮은 목소리였다.
그는 축제 때 마주친 여자가 요이델임을 확신했다.
갑자기 도망간 이유가 무엇인가 싶었는데 진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 된다.
눈이 붉은 계열이었던 것도 역시 그렇다. 신원 없는 의료신관인 것도.
“소원나무에 무슨 소원을 비셨습니까?”
율리시스의 목소리에서 조소가 묻어났다.
“영원히 들키지 말게 해 달라고?”
“아니에요, 성하. 그건…… 그건 정말 아니에요…….”
요이델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고였다.
그 말간 얼굴에 한층 더 표정이 굳은 율리시스는 억누른 한숨을 뱉었다.
“……그도 아니면 무엇을 바라셨습니까.”
율리시스는 자신과 똑같은 상처가 있는 하얀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목선을 살피는 눈은 길가에 흔히 널린 조잡한 물건을 감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요이델 님의 모든 게, 어디서부터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푸른 눈은 창공이 아니라 빙하 같았다.
온기에 조각이 녹았더라도 여전히 얼음은 얼음이었다.
작은 조각을 내주었다가 다시 얼어붙은 그에게서는 더욱 냉랭한 공기가 풍겼다.
“그대가 행한 것 중 진심은 있었습니까.”
“…….”
“진실은, 있었습니까?”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제게 보여 주셨던 말과 행동 중 진짜는 몇 개나 있었습니까.”
“……전부 진심이었어요.”
팔이 떨릴 정도로 옷자락을 거머쥔 요이델이 겨우 말했다. 쥐어짠 듯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성하께 드린 말씀 중 진심이 아닌 건 없었어요.”
하지만 진실이 아닌 것은 많았다.
요이델은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고, 예지 능력이라는 것도 거짓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만 그가 무서울 때 안 무섭다고 한 것 외에 거짓은 없었다.
그를 동경하는 것도 진심. 그를 무서워하는 것도 진심.
그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은 지금 이 상황마저 모두 요이델의 진심이었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비처럼 쏟아졌다.
“요보힐데 가문과는 정말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그건 진실이에요.”
믿어 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과 관련해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늘은 배신자를 찾아낸 피곤한 밤이었으니까.
“제가…….”
율리시스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미 겹쳐져 있던 작고 연약한 손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큰 손가락들을 깍지 끼워 넣었다.
그는 자신의 품 가까이로 요이델을 더 끌어당겼다.
“제가 한낱 공작 가문과 당신의 유기성 때문에, 겨우 그따위 이유로 이러는 것 같으십니까.”
그의 목 위에 얹힌 손 아래로 열렬하게 뛰는 박동이 느껴졌다.
시선이 가까이 얽혔고 둘의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다.
마음은 가장 멀리 있는 지금, 딱 그 반대만큼의 거리였다.
“그럼 다르게 묻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약속된 1년이 끝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처음 요이델이 완전한 사면을 위해 약속받은 기한은 딱 1년이었다.
“평생을 그 모습으로 사실 계획은 아니셨을 텐데.”
“…….”
“이후에는 그대가 언뜻 말씀하셨던 것처럼 상업 왕국으로 가서 돈이라도 버실 생각이셨습니까.”
시선이 그녀의 목으로 향했다.
“저와 엮인 그 몸으로는 쉽지 않으실 텐데.”
율리시스는 냉정한 얼굴로 요이델의 손에 제 뺨을 기댔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요이델의 곤란을 지켜보았다.
“그랬다면 저는 상업 왕국을 뒤졌을 겁니다.”
말없이 떠났다면 당연히 그랬겠지.
물론 그것에서 그치지도 않았을 거다.
“무슨 생각으로 1년의 제안을 받아들이셨습니까.”
“…….”
“성국을 위한다는 말로 학술원을 통해 메디아와 연을 맺고, 페어링을 풀 방법을 받아 저희의 관계를 풀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요이델의 심장이 떨림으로 쿵쿵 뛰었다.
그가 조곤조곤 말하는 말 하나하나가 그녀를 찔러 댔다.
“당신이 변두리로의 유배를 그토록 요청하신 이유가 있었군요.”
요이델의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입술을 깨물고 있던 요이델은 결심한 듯 몸의 긴장을 탁 풀었다.
“저는…….”
이미 다 들켰다.
지금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그와 자신 모두 알고 있었다.
요이델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죄송해요.”
숙인 고개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고 어깨가 떨려 왔다.
“인정이 빠르십니다.”
율리시스가 차갑게 웃었다.
“좀 더 변명을 하실 수는 없었습니까.”
“……성하는 변명을 싫어하시니까요. 이유와 상관없이, 성하께 말씀드리지 않은 건 제 잘못이 맞아요.”
“그럼 끝까지 못 알아차리게 속이지 그러셨습니까. 저를 배신하지 않도록.”
감정 하나 없는 눈이었다.
그의 말대로 요이델은 율리시스에게 있어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율리시스는 불특정 다수에게 그렇듯이 찍어 낸 듯 다정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는 요이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반지를 끼워 주었다.
딱 맞았다.
“……과연.”
미약한 차이이긴 하나 소년이 되는 모습을 봐도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너무 정중한 손길이라서 그가 그어 놓은 경계가 더욱 뚜렷이 보였다.
“메디아의 돌로 만든 반지군요.”
이 정도로 특수한 돌이면 걸어 놓은 마법을 한 번에 감지하기 어렵다.
고개 숙인 요이델은 여전히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달싹이다 질끈 깨물었다.
율리시스는 쥐고 있던 하얀 손을 툭 놓고 목의 상처를 지워 주었다.
“바로 성국으로 귀환합니다. 채비하십시오.”
그의 등이 단호하게 돌아섰다.
“죄송해요, 성하.”
울음을 억누르며 나온 가느다란 목소리에 율리시스의 걸음이 멎었다.
“요이델 님.”
“네…….”
“저는 이제 페어링을 풀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 말에 울음이 멎었다.
일말의 온정도 없는 목소리가 뚝뚝 흘렀다.
그는 싸늘한 눈으로 요이델을 돌아봤다.
“당신이 가장 바라지 않는 처벌이겠군요. 지금처럼 계속 제게 묶여 계시길.”
━━━━⊱⋆⊰━━━━
며칠 뒤 새벽녘.
율리시스는 대예배당의 장미 장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밀이라.”
장미는 비밀을 상징한다.
그러니 요이델에게 준 로사리움은 그녀에게 지극히 잘 어울리는 장소였던 셈이다.
‘두 호위기사는 알고 있었다고 자백했지.’
성국에 돌아온 이후 율리시스는 둘을 불러 문책했다. 당시 보고서에 의문을 느꼈으니까.
다시 살펴보니 뭔가를 알고 고의적으로 숨긴 느낌이 다분했다. 그리고 역시 그들은 요이델이 여자란 걸 알고 있었다.
숨긴 이유는 요이델이 아닌 요보힐데 가문에 의문을 느껴서라고.
두 호위기사는 그에게 보고하는 대신, 제 주인을 위하는 길을 선택했다. 명백한 잘못이었으나 그들에게 내린 임무는 충실히 행한 셈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보고 올리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실토했다.
그가 조사시킨 다른 어린아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과거 공작가에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소문은 존재한다고.
‘다른 한쪽은 남자아이였겠지.’
요이델을 그 다른 한쪽의 대체품으로 살게 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왜? 남장은 들킬 위험성이 크다.
그걸 감수하고 요이델을 이곳에 보냈다는 건, 요보힐데 공작가에 다른 속내가 있다는 뜻.
요이델이 대신전에 보내진 건 13살. 이후 요보힐데 공작가는 단 한 번만 그녀를 보러 왔다. 바로 요이델의 뺨을 내리친 그 날.
어린 자식을 보내면 한 번쯤은 안부를 물으러 올 법하건만.
‘그 능력치를 가진 메디아의 돌은 제아무리 공작가라지만 쉽게 가질 수 없다.’
율리시스는 문득 기시감을 떠올렸다.
요이델이 추측하길, 메디아가 찾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니냐고 했다.
‘사람.’
메디아가 교역로를 닫은 건 해로 따지자면 정확하게는 19년.
아니, 한 해가 지났으니 20년.
라보르비치에서 거대한 희생을 끌어당긴 브리칼트 제국.
요보힐데 공작가는 브리칼트 황제의 최측근이다. 그리고 마법의 명가.
공작 부부가 결혼 이후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치료 방법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한 건 알음알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겨우 얻은 자식을 대하는 둘의 태도는 어떠한가.
그의 눈빛이 요이델에게 보여 줬던 냉정함과는 또 다른 결로 가라앉았다.
“페넘브라.”
아무도 없던 공간 안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온몸이 암흑에 가려진 남자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그의 앞에 예를 취했다.
성기사가 빛의 기사라면 페넘브라는 어둠의 정예 부대였다. 그들 중 앞에 선 자가 정돈된 문서를 건넸다.
“지금까지 조사한 전부입니다.”
“계속 감시하도록.”
“존명.”
두 호위기사에게 요보힐데 가문에 대한 조사를 맡겼으나 전적으로 일임했던 건 아니었다.
그들에게 맡긴 것은 요이델 개인에 관해서. 이것은 요보힐데 공작가에 대하여.
줄글을 훑는 율리시스의 눈빛이 점차 고요히 가라앉았다.
[클레멘타인 요보힐데는 십여 년 전의 유모를 수소문 중. 공작 부인인 그녀는 특출난 마법사로 마탑을 수석 수료한 인간. 한낱 유모를 찾는 것도 이상함. 평범한 유모가 오랜 세월 동안 그녀의 추적에 잡히지 않는 것도 미심쩍음. 추적 결과 유모가 메디아로 넘어간 흔적 확보.]이어진 문단은 좀 더 명징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어릴 적 두 명의 아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 확보. 성별은 각기 다른 것으로 추정. 한쪽은 어릴 적 단명.]율리시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보힐데 공작은 거동이 불편한 황제를 보필한다는 명목으로 황궁에 잦게 출입. 클레멘타인 요보힐데는 그 시간에 때때로 오래된 정부와 접촉. 공작가의 외가와 방계 및 친척 등 혈연관계를 모두 조사하였으나 분홍 머리를 가진 선대는 전무.]그다음 장은 라보르비치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려 주었다.
[지오르베니 사건 이후 라보르비치와 브리칼트의 교류 단절. 조사 결과 라보르비치 근방의 타국들에서도 백골 무더기 발견. 전부 금술의 기운이 남아 있으며 신원을 어떻게 찾아 줄 수 있는가가 난제.] [크리스토프 요보힐데, 클레멘타인 요보힐데의 신체 일부 확보. 감지 마법 가능.]생각보다 문제가 많은 집안이었다.
대체 무엇이 ‘휘하의 신관이라 보호한다’는 건지. 정체도 호위기사들보다 늦게 알아 놓고서.
율리시스는 판단이 흐려진 눈을 그냥 감아 버렸다.
진실을 알게 된 그날 보았던 요이델의 얼굴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
‘전부 진심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던 순진한 둥근 눈망울.
화가 났다. 숱한 배신 중 유일하게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분노였다.
그러나 원로의 배신, 그 이상으로 분노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질지 않아도 됐다.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뭔지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급했다. 작은 것에도 화들짝 놀라는 새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날아가 버릴까 봐.
오히려 요이델에게 위험한 건 지금의 자신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울리기까지 했으니 최악이라 할 수 있겠다.
“…….”
지난날 내내 마음을 휘저은 건 분노의 감정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게 있었다.
일컫자면 자신만을 올려다보던 보석처럼 아름다운 눈이었다.
오래 들어도 좋을 것 같은 애틋한 목소리, 였다. 처음으로 깊이 마주 잡아 본 부드러운 손이었다.
너무나도 작고 여려서 안쓰러운, 지탱해 주고 싶은 마음.
위선자는 자신이었다.
얼굴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다.
‘이 감정은 위험하다.’
광활한 대예배당 아래, 율리시스는 자조적인 한숨을 삼키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추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