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8)
8화
“아무래도 제 반려께서는 기억력이 나쁘신 듯합니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모습이 무서웠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뜬 태양같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미소였으나, 그녀는 알았다.
저 미소는 그가 화가 났을 때 짓는 웃음이라는 걸.
반려라는 이름에 힘을 주는 것도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을.
“잘못했어요.”
“잘못?”
장신의 남자는 흐르는 은발을 쓸어 넘기며 분홍 머리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웅크려 앉아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제법 가여운 소동물 같았다.
아, 큰일을 저질렀으니 동물보다는 짐승인가?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간수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성하, 정말 독대를 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요이델 수련신관은 그…….”
“괜찮습니다. 단 한 명의 억울한 신관도 없게 하는 것 또한 저의 사명입니다.”
간수는 성황의 상냥함에 감복했다. 수련신관들 사이의 일마저 직접 확인하고 파악하시겠다니.
“아아, 성하! 뜻을 받들겠습니다. 그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시거든 바로 불러 주십시오.”
율리시스는 뒤를 돌아 나가는 간수에게 천사처럼 웃어 보였다. 그러나 문이 닫히자, 미소는 금세 악마의 얼굴로 바뀌었다.
감히 누가 웃느냐는 듯 서늘하게 뜬 눈과 내리깔아 보는 눈매.
요이델은 그의 이중성에 감탄하며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그가 혀를 쯧, 차는 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울 일을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그새를 못 참으셔서야.”
그렇다.
요이델은 지금 다시 감옥에 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율리시스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저건 안타까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말처럼 매서워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율리시스 본인의 일은 아니긴 해서, 그녀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요이델이 아무 말을 하지 못하자 그는 다정히 미소 지었다.
“그래, 누구를 어떻게 하셨는지 봅시다.”
율리시스의 길고 곱다란 손가락이 서류 뭉치를 훌훌 훑었다.
그의 손이 종이의 결을 타고 흐르다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요이델 요보힐데. 처벌, 수감 3시간. 사건 발생 시간, 오늘 오후 1시경. 경위, 대신전의 식사 홀에서 수련신관 테오의 발등을…….”
그는 흥미로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를 더 가까이 댔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요이델의 붉은 눈을 바라보았다.
대단한 일을 벌인 것치고는 몹시 시무룩한데.
요이델은 조그맣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율리시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대범한 건지 소심한 건지.
그는 똑똑히 들으라는 듯 명확한 발음으로 굳이 짚어 읽었다.
“……발등을 부숴 버리다.”
“그, 그게요.”
“전치 8주. 걸작이십니다.”
“……네. 제가 그랬어요.”
요이델은 순순히 시인했다. 지금 그녀가 감옥에 있는 이유였다.
동료인 테오의 발등을 점프해서 내리찍어 박살 낸 죄.
나름대로 피한다고 한 행동이었으나 결과는 상해였다.
‘보통 그럴 때는 가뿐히 점프해서 피할 수 있던데.’
하지만 상상뿐, 요이델의 현실에선 그게 마음대로 안 됐다.
율리시스는 그런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워낙 평소에 지은 죄가 많아서 조금만 일이 생겨도 중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
테오라는 신관에 대해서 알아본바, 그도 요이델 만큼이나 평판이 썩 좋지 못했다.
이전이라면 당연히 발등을 지르밟았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근래의 요이델은 꽤 달랐다.
사실 페어링 전의 요이델도 그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위협이 되었다면 진즉 제거했겠지. 딱히 상대할 가치가 없었기에 날뛰도록 둔 거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차분하고 조용해진 요이델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그때보다 더 그의 시선을 끌었다.
어쨌든 지켜본바, 저 소심한 성격에 괜히 발등을 부러뜨리진 않았을 터.
테오라는 신관이 발을 걸려던 게 분명하다.
‘목격자 진술도 있었고.’
루치니와 안토니오라는 신관은 의외로 요이델을 두둔하는 진술서를 적어 냈다. 철저한 실수고 사고였다고.
‘오히려 특이한 방법으로 안토니오 신관을 위급 상황에서 구해 줬다 했지.’
그런데 왜 이 분홍 머리 소년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는가.
율리시스는 그런 요이델이 답답해서 이마를 짚었다.
“그나마 요이델 님이 특별 감시 대상이라 다행입니다. 제게 바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터이니.”
율리시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쪽이 시비를 걸었다면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왜 순순히 감옥에 있는가.
자신이 직접 신문하러 들어오지 않았다면 매까지 맞을 수도 있을 일이었다. 신관끼리의 분란은 징계 대상감이니까.
‘이해가 안 되는군. 감히 제 죄는 감추고 몰래 홀로 빠져나간 테오 신관을 찾아가 다른 발등도 부숴 놔야 맞는 것 아닌가. 고작 한 발을 부순 죄로 우두커니 앉아 있다니.’
일순간 율리시스의 웃음이 시리게 바뀌었다. 그 모습에 요이델은 흠칫 몸을 떨며 목덜미를 감쌌다.
“왜, 왜왜,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혹 또 소란을 일으킬 계획이라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일은 저지르시지 않았습니까?”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말에 가만히 자신의 행적을 되짚었다.
딱히 없었다. 청소만 열심히 했고, 또…….
“통통 튀는 알을 만났어요.”
“알? 이 신전에 알이, 그것도 그런 이상한 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의 눈빛은 미친 사람을 보는 빛이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눈가가 확 좁혀졌다.
“설마. 신수의 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요이델 님.”
신수의 알? 그렇게 거창해 보이진 않았는데.
요이델은 손으로 모양을 그리며 설명했다.
“분홍빛이고 크기는 한 이 정도예요. 얼룩덜룩했어요. 꼭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통통 튀면서 반응하던데 그게 신수의 알…… 인가 봐요!”
“그게 튀어 다녔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말을 걸어도 감히 반응하지 않던 건방진 덩어리였다.
싸가지 없기가 이루 말할 수 없던 그것이 한낱 수련신관에게 반응한다는 말인가.
“맞아요. 손을 대면 강아지처럼 비비적댔어요.”
순간 그의 말문이 막혔다.
그 건방진 게 저 햇병아리 신관을 따른다고? 쥐죽은 듯 꿈쩍도 하지 않던 게?
영문을 모른 채 말간 눈만 깜빡이고 있는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신수와 통하는 데다 미래까지 본다. 게르암 신관의 부정을 맞췄을 정도로 정확하고.’
율리시스는 허리를 굽혀 감옥 속의 요이델과 눈을 맞췄다.
“요이델 님은 수련신관으로, 수련신관은 정식신관이 아닙니다.”
그러니 너는 신관도 아니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요이델은 본능적으로 목을 감싸며 오들오들 떨었다. 정식신관이 아니니 해쳐 버리겠다, 이러진 않길 바랐다.
“아, 알아요. 정식신관으로 진급해야 보통의 신관으로 인정받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수련 생활을 6년째 하시는 중이고. 그만하면 꽤 지루한 세월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율리시스는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의 거처와 직무를 바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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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 절뚝.
“그 사건 들었어? 요이델이 테오의 발을 아작 냈대.”
다음 날의 대신전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자면 이랬다.
요이델은 날렵하게 점프했지만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간과했다. 멀찍이 뛰어넘을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결과는 상해.
뚝,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테오의 발등은 완전히 망가졌다.
그 비명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식사 홀 정문 너머에 있던 모두가 그가 목 놓아 우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
테오는 목발을 짚고 들어와 요이델의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하아…….”
하지만 요이델의 근심거리는 그게 아니었다. 요이델은 한 입도 먹지 못하고 한숨 쉬었다.
“듣기로는 요이델이 신수의 알 관리자로 발탁될 거래. 이제 정식신관이 되려나 봐.”
“뭐? 아니, 거긴, 하지만…… 아, 아니구나. 사실상 유배당한 자리지.”
신수를 관리한다는 말은 얼핏 보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실체는 아니었다.
“신수님이 태어나면 최고겠지만 지금은 글쎄…….”
“지난 300년 동안 태어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부화할 리가 없잖아? 말만 그럴듯한 한직이지.”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최적의 환경이 유지되도록 관리하며 홀로 쓸쓸히 근무해야 하는 신수 관리직은 모두가 기피하는 직무였다.
거의 기약 없는 정신 수련을 당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런 곳에 가게 되다니.
“게다가 뚜렷한 소속도 없잖아.”
“요이델은 어디로 가게 될까? 동관 소속이 제일 맞나?”
“그러게. 동관에 가서 학문을 파고들거나 기록 업무를 맡을 것도 아니고, 북관처럼 성기사나 전투 쪽도 아니고, 남관이나 서관처럼 연구나 치료술을 연마할 것도 아니고. 전대 신수 관리자님도 못 견디고 뛰쳐나가서 안 돌아온 이후로 공석이었지?”
물론 신수가 부화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직위가 격상됨은 당연하거니와 존경과 명예도 따를 테고, 그 직위는 신수가 살아 있는 한 변동 없이 유지될 꿀 같은 자리였다.
하지만 태어나지 않은 게 벌써 300년 남짓. 이제 와 부화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유명한 소환사나 정령사 가문도 신수님을 부화시키지 못했잖아.”
“요이델은 이제 완전히 출셋길이 막힌 거야.”
몇몇은 요이델의 처지를 동정했다. 기약 없는 희망 고문을 당하게 되었구나, 하면서.
물론 이 상황이 가장 싫은 건 요이델이었다.
율리시스는 느닷없이 그녀에게 신수의 알을 관리할 것을 명했다. 그가 요이델에게 이르길.
‘부화시키십시오.’
그렇게 말했다.
썩 달갑진 않지만, 태어날 가능성이 보인다면 이 성국을 위해서 부화시키는 편이 좋다고.
‘문제는 그걸 나한테 해내라는 거지만…….’
물론 율리시스는 웃는 얼굴로 협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안 태어나면 거대한 달걀말이를 해 먹어 버리겠다던가?
소중한 첫 친구를 지키고 싶다면 노력하라고 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악마 같던지.
‘진짜 너무해. 어떻게 그 귀여운 걸 달걀 요리로 만들 수가 있어?’
게다가 더 큰 절망은 따로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아직 모르는, 그와의 비밀.
‘수련을 떼고 정식신관으로 승격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기뻤다.
정식신관이 되면 대신전 부지 내 동서남북의 분관 중, 성향에 맞는 곳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주로 대신전 중앙의 본관에 머무는 그와 생활 반경이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요이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반색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전 어디로 가나요? 신수님에 관해 생물 연구를 해야 하니 서관일까요? 아니면 학문이니까 동관? 저는 뭐든 좋아요, 성하!’
‘그리 기쁘십니까?’
율리시스는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며 속내를 간파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요이델도 따라서 헤헤, 웃던 그 순간, 율리시스의 미소가 서늘해졌다.
‘당신의 소속은 이제부터 제 직속인 중앙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