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요이델은 잠든 율리시스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성하는 잘 주무시는구나.’
언뜻 그렇게 잠이 잘 드는 편은 아니라고 들은 것 같은데. 지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건 바로 자신이었다.
평소 같으면 푹 자고도 남았을 시간이지만, 해가 거의 밝아 올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졸리긴 하지만 성하랑 같은 방에 있으니까 잠이 안 와. 긴장돼서 그런가?!’
그와 단둘이 남겨진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지만, 그때와는 상황도 사이도 달랐다.
침대는 멀어도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왠지 신경 쓰였다.
요이델은 엎치락뒤치락, 이불을 머리끝까지 썼다가 내렸다가 반복하며 고민하다가 한동안 그의 너른 등만 지켜봤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존재감만으로 묘하게 안심되는 기분도 있었다.
늘 혼자 잠들었는데, 누군가의 온기가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성하라도 잘 주무셔서 다행이야.
어쩐지 쑥스러운 마음에 이불을 눈 아래까지 끌어 올렸다.
‘내일은 정화의 샘에 가야 하니까 빨리 자야 하는데, 하아암. 그러고 보니 르를타 주교님은 왜 어디서 뵌 것 같은 느낌이 들까.’
그 갈색 눈동자.
흔한 눈이라지만 어딘지 익숙했다.
‘갈색 눈이면 라나도 갈색, 마르셀리나 님은 머리가 갈색, 그리고 또…… 아슈레오 씨! 맞아, 그분도 갈색 눈동자였지.’
아슈레오의 외형으로 추측했을 때 아마 그는 인외 종족과의 혼혈 같았다. 인외 종족은 메디아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대륙에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자신들의 안전지대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라면 더욱.
‘엘타샤는 숲과 나무가 울창한 곳이니까. 가능성 있어.’
보석의 내구도가 깨졌다는 건 균열이 갈 일이 있었다는 뜻.
즉, 무리를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르를타가 지오르베니처럼 모종의 배신자라는 이야기는 못 본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엘타샤 신관들 말에 따르면 르를타 주교의 소행인 건 확실해. 그리고 오래된 일이라는 것도. 그 정도 보석은 쉽게 깨지지 않는 걸 감안하면 적어도 이삼십 년은 같은 상태로 버텼을 거야.’
요이델은 손가락을 접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리가 갈 상황은 몇 되지 않아. 자연의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려친다고 깨지지도 않고. 억지로 힘을 쥐어짜지 않는 이상…….’
그거구나.
이미 무리를 한 보석에 더 큰 충격을 가한 거였어.
‘그럼 시기상 성수를 채취하는 기간이 지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일 확률이 높아. 아마도 봄이나 여름. 가을이면 충분히 쉬었고 이듬해 겨울이면 한 바퀴가 돌아오는 거니까.’
왜 그랬을까…….
점차 졸음이 쏟아졌다. 요이델은 눈을 깜빡이다가,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요이델이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이제 잠들었군.’
율리시스는 잠은커녕, 잠깐도 졸지 못했다.
그는 요이델이 잠에 빠지고 나서야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겨우 몸을 돌리고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저렇게 깊이 잠들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등을 뚫어져라 보는 게 느껴져서 어쩌지도 못했으니까.
‘지나치게 잘 자는 거 아닌가.’
불만은 아니지만 이럴 때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그녀의 감정이 극도로 다르다는 게 와닿았다.
그는 벽에 기대고 앉아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렇게 한쪽으로 누워 자면 볼이 눌려서 불편하지 않나. 울 때만 붕어 같은 줄 알았는데 자는 모습도 붕어처럼 귀여웠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천진함이 싫었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친구의 범주에 들지도 못하고, 자신이 그렇게 신뢰를 못 줬던 건가.
왜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호위기사도 눈치챌 만한 걸 왜 나는 몰랐을까.
자신의 멍청함과 그녀에 대한 원망, 배신감, 그런 복잡한 생각이 율리시스를 괴롭혔다.
그녀에게 있어 그는 고려 대상조차 아닌 것 같아서. 약속된 1년 외에는 아무 관계도 아닌 사이라는 걸 확인받는 지금 같은 상황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러면서도 미워하긴 어려웠다.
율리시스는 손 대신 눈길로 요이델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훑었다. 이제는 작은 점이 어디에 있는지까지 외울 지경이 되었다.
아까의 품은 왜 그렇게 따뜻했는지. 희뿌연 물안개 속에서 마주한 모습은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잠든 이 모습까지, 전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자신이 몇 날 며칠을 한숨도 못 잔대도 상관없었다. 요이델은 그녀가 원하든 아니든 제약적인 자신의 반려다.
바라보며 괴로워한대도 다른 남자들과 같은 방을 쓰게 하는 정신 나간 상황보다는 훨씬 나았다.
‘두 호위기사는 알고 있으면서 같은 방을 쓰겠다 나섰지.’
머리가 지끈거려서 검지로 미간을 꾹 눌렀다.
그들 딴에는 다른 이들과 섞이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율리시스의 눈에는 그게 괜히 거슬렸다.
미친 사람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요동치고 답답했다.
무엇보다 가장 짜증 나는 건, 그 남자들이 요이델에게 특별한 ‘친구’라는 것.
그리고 그녀와 같은 숙소에서 생활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24시간 내내 빈틈없이.
그 모든 결과를 만든 게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했다.
온종일 붙어 있도록 호위기사로 만든 사람도 바로 자신이었다.
이제 와 명령을 거둬들일 타당한 명분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실력은 자신도 익히 아는 바이다. 요이델의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젠장.”
전부 그가 자초한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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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속, 정화의 샘.
풀과 나무가 가득한 숲이라 물줄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 나뭇가지 하나를 치우면, 암벽에 박힌 보석들이 보였다.
지금은 하나가 비어 있지만, 이걸 채우면 완벽하지.
“신수의 보석을 여기에 소모하실 줄 몰랐습니다.”
“저도예요, 성하.”
일전에 신수들에게 선물 받았던 바로 그것.
달칵.
파아아―
암벽 안에 신수의 보석이 들어가자 푸른 빛이 발현해 숲 전체를 감싸고 사그라들었다.
멎었던 성수가 거짓말처럼 벽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샘이 호수처럼 채워졌다.
“기적이군요…….”
르를타 신관은 경이로운 듯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엘타샤의 신관들은 모두 포박된 상태로, 르를타는 양손이 결박되어 있었다.
들은 바를 토대로 새벽같이 신문한 결과, 그들은 도난이 사실이 아님을 자백했다. 짚는 바가 명확하여 도망갈 길이 없었다.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저로서는 감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르를타는 안도한 듯 미소 짓다가 곧장 고개를 땅에 닿을 지경으로 숙였다.
“현 상황에 다다를 때까지 숨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교.”
“그것은…….”
“엘타샤의 주교직을 역임한 공로를 익히 알기에 이 자리에서 하문하는 겁니다.”
“성하의 하문에 답하십시오, 엘타샤의 주교.”
엘타샤 신관들을 억누른 기사들은 사납게 책문했다.
율리시스의 시선엔 자비가 없었다. 그는 거짓을 싫어하고, 성수 훼손을 오래도록 숨겼으니 가벼운 형을 받기 어려울 거다.
‘성하가 신경 쓸 일이 더 늘어났어. 엘타샤의 주교는 또 누구로 발탁해야 할까?!’
엘타샤의 신관들이 르를타의 잘못을 덮으려 한 이유는 숲속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 탓이 컸다. 대신전보다도 주교와 심적 거리가 가까워진 것이다.
그동안 르를타는 문제없이 엘타샤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묵과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요이델은 르를타의 갈색 눈을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얼굴, 역시 익숙하다.
“잠시만요.”
요이델은 사람들을 물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혹시 주교님, 수도에 친척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신성력을 감안하고서라도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혹시 친척이 아니라면.
“그럼 자제분이 있으신가요?”
“있기는 합니다만…… 무슨 물음이신지요.”
르를타는 자식의 이야기가 나오자 한껏 경계했다.
누구를 닮았는지 기억났다. 이 갈색 눈동자. 다른 건 비슷해도 순한 눈빛은 똑같았다.
“혹시 성함이 아슈레오이신가요?”
“제 아들을 아십니까?”
르를타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아슈레오 씨는 제 전대에 계셨던 신수 관리자라고 들었어요.”
“그랬습니다. 학문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 이것저것 많이도 탐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는 없을 텐데…… 어떻게…….”
그는 경계하면서도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요이델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연히 아슈레오 씨를 만났어요. 남기신 자료를 감명 깊게 봐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마법 가방에서 가끔 아슈레오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꺼내 보여 주었다.
과거 미켈레의 일이 그와 관련이 있다면, 이번 사건도 어쩌면 비슷하지 않을까.
미켈레와 르를타에게는 아슈레오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르를타를 더 자극해야 했다.
르를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정말로 제 아이를 아시는군요.”
마르셀리나에게 수업을 받을 때 아슈레오의 질환과 증세에 대해 물어본 적 있었다.
그녀는 의료신관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산과 숲에 사는 수인족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유전병일 거라고 답해 주었다.
“야생에서 살아온 부족이라 독성이 있는 무분별한 음식물 섭취로 인한 유전병이 있었을 거예요. 혀 쪽이요.”
“……제 아내도 같은 병으로 먼저 별이 되었지요.”
그리움이 가득한 눈빛에 마음이 아팠다.
웬만한 신관으로서도 살리기 힘든 병인 듯했다.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잠시 쳐다보았다.
“음식의 온도를 구분하지 못하고, 혀가 굳어 발음도 어눌해졌을 거예요.”
“그, 그걸 어떻게……!”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아슈레오 씨는 건강해지셨어요.”
“저, 정말입니까?!”
“성하께서 치료해 주셔서 지금은 편지도 주고받는걸요. 아늑한 장소에서…… 즐겁게 잘 지내세요.”
“그 아이의 행방은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게도 알리지 않고 숨었으니,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
일부러 얼버무렸음을 알아챈 르를타는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는 미소였다.
“아팠던 것도 모르고, 아비로서 자격이 없군요. 감사합니다, 성하. 신관님.”
그의 목소리가 습해졌다.
르를타는 두 주먹을 이마에 붙이고 고개를 숙였다. 엄숙하게 기도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때는 20년 전쯤이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