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네?”
요이델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존재를 몰랐던 심장 소리가 두근두근 커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율리시스의 눈빛이 다정해서 낯설었다.
정체를 들키기 전의 그와 비슷해서. 어쩌면 그보다 더.
“겨우 찾았습니다.”
“성하께서 저를 왜…….”
요이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걸 눈치 못 챌 율리시스는 아니었다.
민망해진 요이델은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조금 머쓱하게 웃었다.
눈이 억지로 휘어지고 입꼬리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 죄송해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참고 삭이고 또 눌렀던 눈물이 결국 터져 버렸다.
그동안의 차가웠던 눈빛과 반대되는 오랜 다정함이라 눈물이 왈칵 흘렀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하지만 내내 차갑다가 따뜻해진 시선을 보니 동상 걸린 몸이 녹듯 온몸이 따끔거렸다.
요이델은 왜 눈물이 나오는지 몰라 얼른 눈가를 닦았다. 그런데 계속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눈을 지그시 누르던 요이델은 손등으로 두 눈을 벅벅 긁듯 훔쳐 냈다.
“죄송해요. 음, 제 눈이 왜 이러죠? 건조한 것 같아요. 길에 먼지가 많은가 봐요. 눈이 말라서 그래요. 따가워서요.”
그동안 참았던 만큼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닦으면 닦을수록 줄줄 흘렀다.
율리시스를 처음 만났던 순간에도 이 정도로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피를 뒤집어쓴 그 순간에도 이렇게는 아니었다.
그럼 왜?
요이델은 눈물을 문질러 닦으며 새어 나오려는 울음을 겨우 참았다.
“아니…… 저 왜 울까요?”
“…….”
“사실은 성하랑 다시 대화하고 싶었나 봐요.”
요이델은 계속 훌쩍였다.
“어, 어른스럽게 화해할 줄 알았는데, 생각이랑 현실은 다른 것 같아요. 이상하게 성하께서 다시 예전처럼 말 걸어 주신 게 기뻐요. 안 우는 게 제 마음대로 안 되네요. 웃기죠?”
애써 웃으며 손등으로 꾸역꾸역 눈물을 닦았다. 비빈 눈이 빨개져 퉁퉁 붓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터진 감정이었다.
자꾸만 솟구치는 눈물이 폐부까지 적시듯 호흡이 부르르 떨려 왔다.
멈추고 싶지만 흐느낌이 멎지 않았다.
“……성하에게 미움받는 건 느낌이 다른가 봐요. 들킨 후엔 어쩌지? 하고 상상했을 때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실감하니까 저는…….”
요이델은 그대로 손을 내려 얼굴을 감쌌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말끝이 흐려졌다.
그동안 차가운 눈빛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그를 속였으니 실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요이델은 숨을 후우― 길게 내쉬고 다시 꿋꿋하게 고개를 들었다.
차마 율리시스의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사실대로 다 말해 버렸으니 율리시스가 나약하다며,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겠지. 그러실 거야. 나 같아도 갑자기 울기나 하는 사람은 당황스럽고, 또 속여 놓고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우스울 테니까. 그래, 이러면 안 돼.’
요이델은 입꼬리를 억지로 당기며 웃었다. 멋쩍음에 괜히 웃음도 흘렸다.
부끄럽게 눈물로 얼룩진 옷자락과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등 뒤로 감췄다.
“괜히 따끔거리네요. 심장이, 음…… 상상은 했지만, 성하께 진심으로 미움받는 건 준비가 되지 않았나 봐요.”
뱉는 말을 정리도 못 하고 시선은 어디를 보는지도 몰랐다. 그저 정신없이 말했다.
차라리 밤이라 다행이다. 이 모습을 다 보이지 않아도 돼서.
진정되지 않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죄송해요. 어, 또…….”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요이델은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공무 수행 중에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여기서 가 주는 게 좋았다.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었다.
“시간이 늦었네요. 대신전으로 먼저 돌아갈게요, 성하. 앞의 말은 잊어 주세요.”
“…….”
“이제 꼭 필요한 일 아니면 제 얼굴 보실 일 없게 할게요.”
바쁘게 등을 돌린 그때, 온기가 요이델의 손끝을 잡았다.
틀어지려 할 때 잡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걸 아는 율리시스는 더 이상 차분하지 못했다.
그는 요이델의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건, 누가 받는 벌입니까. 그것이 요이델 님의 죗값 같습니까.”
그는 너른 품 사이에 요이델을 두고 시선을 내렸다. 처음 보여 주는 표정이었다.
청렴한 푸른 눈은 감정의 고조로 짙어지고 눈매는 괴롭게 찡그려졌다.
묘한 분노와 그보다 더 힘든 무언가를 참는 듯한 표정. 그는 낮은 숨을 흘렸다.
“제가 그대를 못 보게 되는 일을 바랄 것 같습니까?”
율리시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웠다. 그러나 눈빛은 미치도록 다정했다.
“그게 제게 득이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성하?”
“당신이 제게 말씀을 안 하신 이유는 언제든 저를 버릴 생각이 있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얘기였다. 요이델은 깜짝 놀라 입을 달싹이다 깨물었다.
“요이델 님의 미래에 저는 껴 있지도 않은 존재일 것 같아서. 마르셀리나 원로도 아는 걸 제게는 말씀해 주시지 않은 게 화가 났습니다.”
“…….”
“왜 저를 당신의 주변인들보다 후순위로 두십니까. 제가 그들보다 당신에게 그리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율리시스의 눈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당신은 제 반려입니다.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없는 존재. 이 관계를 시작하신 건 요이델 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제게만 소홀하십니다.”
이러면 꼭, 마치…….
아니야, 말도 안 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데 진짜 같아.
요이델의 머리가 멍해졌다.
“성하 지금 질투…… 라도 하시는 것 같아요.”
방정맞은 말이 툭 튀어나왔다.
진짜로 물으려던 게 아니라 속으로 생각만 하려던 건데!
요이델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 봐요. 잊어 주세요, 절대 그게 아니라요.”
“질투했습니다.”
율리시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오해라면 요이델 님께서는 저를 이해시켜 주십시오.”
이 맑은 눈빛 앞에 서면 모든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제 얼굴이고 제 마음인데 그거 하나가 그렇게 어려워서 안절부절못한다.
여태껏 그에게 이런 치욕을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신의 생각대로…… 젠장.”
율리시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이상으로 모든 게 질투 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면 안 됩니까? 어디까지 아닌 척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제 하기도 싫습니다.”
그는 요이델의 입술을 살폈다. 아까 분명히 미세한 통증을 느꼈었다.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보는데, 웃는데, 질투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모르겠습니다. 이따위 기분을 처음 가르쳐 놓고 제가 뭘…… 어떻게 더 해.”
솔직하게 쏟아 낸 율리시스는 자괴감에 나직한 욕설을 지껄였다.
“그런 상황을 몇 번씩 보고도 멀쩡할, 정신 나간 놈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가 말을 마친 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지나가던 개미도 숨 막혀 죽을 듯한 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보통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제, 제가 어떻게 알아요!”
“생각해 보니 알면 짜증 날 것 같군요.”
그는 평소처럼 예의 차리지 않고 짜증 난다고, 질투한다고 전부 솔직히 말했다.
요이델을 바라보는 율리시스의 시선이 흔들렸다.
“제가 당신의 안중에 있긴 합니까?”
“안중에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그는 가만히 요이델을 바라봤다. 더 말해 보라는 뜻 같았다.
“성하도 제가 제대로 해명할 기회를 안 주셨잖아요! 저는 떠날 생각 없었어요. 여기가 좋아요. 사람들도 좋고, 성하와의 약속도 있어요. 전 지킬 거예요! 그러니까 오해라고요!”
아주 멋지게 말하려고 했는데 다 틀어졌다. 요이델은 울고불고하다 말도 더듬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염소처럼 메에에― 하고 나왔다.
“저, 저는…… 제가…… 아니, 오히려 저를 미워하는 건 성하시잖아요.”
“제가 당신을 왜 미워합니까.”
율리시스는 정말로 당혹스러워 보였다. 그러자 요이델이 분노에 파르르 떨었다.
“알현도 절대 안 해 줄 거라면서요! 근처에 오지도 말라고, 집무실도, 마, 말도 걸지도 말라…… 흑, 그러, 그랬었잖아요…….”
울컥 설움이 터져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속상해요…….”
화인지 뭔지 모를 엉망진창인 감정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요이델은 어쩔 줄 모르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율리시스의 눈에 한참 울어 눈물이 망울진 눈가가 들어왔다.
율리시스의 입술이 요이델의 눈가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아?”
방금, 뭐가…….
눈가에 닿았던 게…… 설마…….
요이델은 자신의 눈가에 손을 덮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체온이 불에 덴 듯 급격히 상승했다.
“성하?”
그의 입술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눈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어 입술을 축였다.
그의 입술은 더욱 붉은 혈색이 돌았고, 짧은 한숨이 틈을 비집고 나왔다.
“제가 당신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선택합니까. 마음에 끌려다니기나 하는데.”
“…….”
“무서웠습니다. 당신에게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증명받는 것 같아서.”
그는 이제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입술을 짧게 손가락으로 훑었다.
“지금 생각하니 비겁하게 당신을 울리기나 하는 머저리였군요.”
단단한 손가락이 말캉한 입술을 만지자 요이델은 쑥스러워 시선을 돌렸다.
“이거…… 이런 화해도 있나요?”
“보통 화해는 남의 눈물이나 핥으며 시작하지 않습니다.”
어쩐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저도 화해만 할 생각 없고.”
율리시스는 저를 따라 움직이는 둥근 눈망울을 바라보다 손을 위로 올려 요이델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간지러움에 요이델의 고개와 어깨가 웅크리듯 좁혀지자, 자신에게 익숙해지도록 천천히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길은 내려갔다.
동그란 뺨에서 서서히 입술로.
“제게 다가온 게 당신의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요이델의 고개가 살짝 들린 그 순간.
쪽.
맞닿은 입술이 잠시 머물렀다 느릿하게 멀어져 고요한 숨결이 흘렀다.
이 감촉이 믿기지 않아서,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동그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방금, 방금…….
요이델이 그를 쳐다보자 율리시스는 눈을 애달프게 접으며 웃었다.
“저는 그 실수가 달갑습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요이델이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떼어졌던 그의 숨결이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이성이 날아가 버릴 듯 온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에 요이델은 손을 움찔하며 그의 팔을 잡았다.
숨이 섞이고 정신은 아찔했다.
한 번도 몰랐던 낯선 감각이 절박하리만치 그녀를 끌어당기는 게 느껴졌다.
“하아.”
겨우 뗀 숨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이 든 요이델은 간신히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러다 정말 심장 마비로 죽을지도 몰랐다.
예전처럼 살기 위한 입맞춤이 아니니까.
귓가에 억눌렸던 그의 숨이 느껴졌다.
“……요이델 님.”
그는 다시 가볍게 입술로 입술을 쓸듯 부드럽게 물고 놓으며 자잘한 입맞춤을 퍼부었다.
마치 감각으로 자신의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몸을 뗀 그는 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요이델을 내려다봤다.
가벼운 입맞춤으로 아쉬움을 달랜 그는 요이델과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요이델의 눈빛은 꼭, 충동적인 게 아니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는 요이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낮게 웃었다.
“실수 안 합니다.”
귓가로 다정한 목소리가 불어왔다.
율리시스의 시선은 더없이 오만했다. 아직도 애정을 갈구하는 짐승 같은 눈빛이었지만, 미소만은 상냥했다.
“당신도 저를 실수로 치부하지 말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