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눈빛을 읽었다. 그녀의 혼란이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보다 빠르고 확실히 간섭을 끊어 낼 방법은 브리칼트에게서 벗어나는 것뿐.
“요이델 님께서 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요보힐데 공작가에 대한 건가요?”
학대의 기억은 쉬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공작 내외가 힘들게 가진 아이입니다.”
그러나 요이델의 일이다.
개인사의 결정에 주제넘게 간섭할 권리는 없다. 자신은 선택할 수 있게끔 진실의 폭을 넓혀 줄 뿐.
“그들은 오래도록 아이를 낳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몇 년 동안 대륙의 치료사들을 찾아다니며 방법을 갈구했습니다. 제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그런 일이 있었군요…….”
“소원은 꽤 지루한 시간이 흘러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요이델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봤다. 그들은 시엔델에게는 친절했다.
“그리하여 태어난 소중한 아이가 바로 당신, 그리고 당신의 형제. 추측으로는 쌍둥이였을 겁니다. 맞습니까?”
“네.”
“일찍 죽었겠군요.”
요이델은 긍정했다. 그에게는 더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브리칼트는 구식 관습이 남은 나라로, 장자 상속이 원칙이고 남아에게 권한이 우선 부여됩니다. 그런 이유로 한쪽을 우선시했을 겁니다.”
“그분들은 시엔델을 귀중히 여기긴 했어요.”
“그 이후로 더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고, 양자를 들인 것도 아니고, 당신을 세상에 내놓지도 않았군요.”
두 사람 모두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요이델을 남장시켜서 살게 한 게 그런 이유뿐만은 아닐 거라고.
“왜 당신을 숨겨야 했을까, 그게 이상합니다. 꼭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안 되는 것처럼.”
율리시스는 그 부분을 고심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친자식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요이델 님은 외형도 성격도 작은 특성도, 무엇 하나 닮지 않았습니다.”
“…….”
“한 번쯤 짚어야 할 과거라면 당신을 요보힐데에 휘둘리게 두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간섭 역시 주제넘긴 마찬가지인 일.”
그는 고요하고 차분한 눈으로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제안에 대한고려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하나 더.”
이어지는 말에 요이델은 다시 한번 시선을 들었다.
“호위기사들의 거처를 로사리움 근방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시종들도 그곳에 머물게 방을 내어 줬으니, 이전과 같은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휘스랑 라이도 같이 사는 집이에요.”
“대신전은 규율상 여자 기숙사와 남자 기숙사가 따로 있습니다.”
“로사리움은 기숙사가 아닌걸요.”
둘 사이에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성하의 심술 아닌가요?”
“공적인 이유입니다.”
“아닐 거예요. 사심이에요.”
“요이델 님께서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건……! 그렇긴 하죠. 아니라면 죄송해요.”
“사심 맞습니다.”
뭐야, 이 사람? 진짜 이상해.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빤히 올려다봤다. 저런 순한 눈은 그가 일반 사람들을 알현해 줄 때만 쓰는 건데, 이상하다.
“그들을 이전시키겠습니다.”
미인계였구나. 요이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제 친구들이에요.”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호위기사는 말 그대로 대상을 호위하는 무관이에요. 그러니까 보호 대상 곁에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게 휘스테론과 라이오스의 임무예요.”
요이델은 그에게 먹히는 식으로 반박하기로 했다.
소중한 친구라는 감정적 호소는 씨알도 안 먹힐 테니까.
과연 그의 기세가 수그러…… 더 흉포해졌다.
“납득 가능해서 드릴 말씀이 없군요.”
율리시스는 나지막이 한숨 쉬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을 성궁에 뒀을 겁니다.”
“네? 그건 제가 싫어요.”
“…….”
“……그러니까 너무 영광이어서 부담스럽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수습하기엔 늦었다.
“정 싫으시다면, 알겠습니다.”
“정말요?”
자신의 부탁이 먹혔나 보다. 요이델은 안도하며 미소 지었다. 율리시스도 그녀를 따라 싱그럽게 웃었다.
그리고 몇 주 후.
봄이 되고서야 요이델은 그 아름다웠던 미소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이, 이게 뭐예요?”
요이델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을 비볐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남남인 것처럼 천막을 치고 공사하던 신축 건물이 로사리움과 연결됐다.
담장을 허물고 새 건물을 이어 놓은 것이다. 어쩐지 놀라운 속도로 지어지더니, 이게 뭐야?
“라나, 저건 창고용 건물 아니었어요?”
창고라기엔 지나치게 예쁘고 화려한 하얀 저택이었다.
“언질받지 못하셨나요? 신관이랍니다. 요이델 님의 거처를 신관으로 옮기라는 성하의 명이 있으셨어요. 좋지 않으세요? 어라? 요이델 님?”
“혹시 라나, 그럼 호위기사님들은 어디에 머무나요?”
“구관에 계실 거예요. 성하의 명이랍니다.”
로사리움에서 둘을 쫓아내지 말아 달고 했더니 건물을 두 개로 나눠 버렸다.
‘미쳤나 봐…….’
요이델은 망연한 눈으로 새로워진 로사리움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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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안 난다면서. 진짜 갈 거야, 할멈?”
뒤로 녹음이 찬란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성.
하늘 끝까지 닿을 듯 높고, 천장마저 화사한 유리로 지어진 성 내부에 그보다 화려하게 생긴 남자가 창가에 서 있었다. 얼굴에 짜증을 담고서.
“여길 나가서 어디로 가려고.”
“무작정 찾다 보면 만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무턱대고 나가니까 기억이나 잃는 거 아니야.”
“또 못된 말을 하시네요, 도련님. 그리고 기억을 잃어서 나간 게 아니라, 여기로 오면서 기억을 잃은 게 순서에 맞지 않겠어요?”
하얗게 센 머리칼의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짐 가방을 들고 또각또각 걸었다.
창밖으로는 거대한 폭포가 보였다. 마치 물속에라도 있는 것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
주위를 날아다니며 빛을 뿌리는 화려한 새들의 지저귐이 왕성의 아침을 밝혔다.
“하여간 할망구, 고집은. 감히 내 말인데도 더럽게 안 듣지.”
남자는 노파의 짐 가방을 휙 빼앗아 뒤로 던졌다.
그를 따르는 기사들은 익숙한 일인 양 가방을 받아 대신 들었다.
“도련님의 성질은 한결같으세요. 보통 짐을 대신 들어 주면 본인이 들기 마련인데, 호호.”
“내가 그딴 걸 왜 해.”
“나중에 아가씨에게는 그러시면 안 돼요.”
“……알아.”
남자는 순간 멈칫하더니 다시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서운하셔도 그만 툴툴대 주세요.”
“누구더러 툴툴이라는 건지…….”
금발의 남자는 혀를 끌며 밖을 쳐다봤다.
“할멈은 그때도 겨우 목숨줄만 잡고 여기로 왔어.”
“그 옛날에 도련님께서 살려 주시지 않았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겠죠. 빚졌다고요? 알아요, 도련님. 인이 박이도록 말씀하셨잖아요?”
“웃기지마, 덜 박였어. 말귀를 알아들었으면 기억 상실 주제에 위험한 곳으로 갈 생각은 말았어야지.”
“서운하실 것 없어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니까요.”
“영영 세상과 헤어질 뻔한 걸 구해 놨더니 말만 잘하네.”
“말을 잘해서 도련님의 조수가 될 수 있었죠.”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에도 인자하게 웃으며 엿을 먹이는 노파의 승리였다.
“자택으로 귀환하나?”
“네, 일단은요.”
“언제 떠나는데?”
“곧이요.”
“할멈은 곧의 범위를 몰라. 곧이라고 해 놓고 꼬박 일 년, 곧이라고 해 놓고 진짜로 한 시간 뒤, 이렇게 멋대로잖아.”
“도련님, 노인 공경 좀 해 주시겠어요?”
노파는 실눈을 부릅뜨고 금발의 남자를 째려봤다.
“쯧…… 손목이나 이리 내.”
남자의 금빛 마나가 손에 스미자 할멈이라고 불린 여자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후후, 도련님의 속은 이 금빛 마나처럼 따스해요. 그래서 제가 도련님을 아끼죠.”
“주제넘는 소리 마. 괜히 나가서 그 손목 가지고 우는소리 할까 봐 그런다. 과거에 허드렛일이라도 했어? 가서 의료신관 붙잡고 치료라도 해 달라고 해.”
“숙녀의 과거는 묻는 게 아니지요.”
“그래, 할멈은 숙녀 해. 난 신사 할 테니까.”
“개망나니 신사분이군요.”
누구 하나도 지는 법이 없었다.
“뭐 다 나가서 돌아오질 않으니, 짜증 나네. 혹시 쌍둥이 놈들 만나면 농땡이 피우지 않나 감시 잘해.”
“그야 뽑혔을 때의 경우지요.”
“할멈은 잘할 거야. 내 수제자잖아. 그깟 부원장 자리 하나 차지 못 하면 자존심 상해.”
“사실 자신 있어요.”
“……진짜 짜증 나네, 올가.”
올가라고 불린 여자는 성 한 켠에 있는 그림을 쳐다봤다.
“아름답네요.”
“네가 찾아온 거잖아.”
“저를 이곳에서 머물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보물들이죠.”
벌써 오래된 일이다. 올가는 그 그림을 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나가서 위험은 자처하지 말고.”
“후후.”
“사실 나가서 그 여자애를 찾으려는 거지? 네 꿈에 나온다던 걔. 혹시 딸이야?”
“아마 아닐 거예요. 그런 느낌보다는…….”
항상 부모에게 혼나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 주는 쪽이었다.
이름도 뚜렷한 생김새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괜히 슬픈 느낌이었다.
어느새 성에 들어온 다람쥐가 벽을 타 넘다가 올가의 어깨를 딛고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크게 재채기했다.
“야생 동물 알레르기가 있으면서, 동물은 왜 기르세요?”
“내가 길렀어? 얘들이 성에 비집고 들어온 거지.”
고개를 든 남자의 눈동자는 맑은 빨간색이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좋은 소식만 잔뜩 전할 테니 걱정 마세요,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