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4)
94화
“무, 무슨 이후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희 다른 얘기 할까요?”
“알면서 대답하시는 걸 보니 의식에는 바로 새긴 것 같아 다행입니다.”
율리시스는 곧장 날카롭게 웃었다.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어가시면 어쩌나 했는데 오늘까지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때의 키스…….”
“아아아!”
요이델은 황급하게 율리시스의 입을 막았다.
다급한 눈과 여유로운 율리시스의 시선이 가까이 부딪쳤다.
그는 요이델이 넘어지지 않도록 등을 받쳐 주었다.
“못 할 말 한 것도 아니고. 저와 하신 게 부끄럽습니까?”
“뭐, 뭘 해요. 오해하지 않게 말해 주세요. 식은땀이 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방금 전, 지난 겨울밤에 저희가 골목에서 한 키스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 당신이…….”
“쉿!”
율리시스는 말만 하면 입을 틀어막는 요이델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손을 치웠다.
“어쩌라는 겁니까.”
“돌려서 둥글게 얘기해 주세요.”
“동그란 건 당신의 눈이겠죠.”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눈을 보고 살짝 고개를 뒤로 뺐다. 마치 관찰하려는 듯이.
“동그란 눈이 예쁘고.”
그는 요이델의 허리를 잡은 손에 미약한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떨면서도 상대를 바로 마주할 줄 알고, 머리는 명석하고, 허리는 함부로 숙이지 않아 믿음직스러운 사람.”
요이델의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며 율리시스는 피식 웃었다.
어쩔 줄 모르는 이 표정도 좋았으나 그녀의 곤란함을 원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멍하게 벌어진 저 입술이 다시 모아지지 않으면 좀 위험하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가까워서 오히려 그가 더 곤란해졌다.
“게다가 힘도 세셔서 제 멱살을 틀어쥔 채 입술을 빼앗아 가는 대범함도 있으시고.”
“아! 으왓!”
퍽!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팍 치고 밀어냈다. 옛날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세례식의 정복이 그때 옷이랑 비슷하다.
“……이, 이제 그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학술원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요이델 님의 부끄러움을 덮기 좋은 주제 같으니.”
“굳이 안 짚어 주셔도 되잖아요?”
“싫습니다.”
단호한 거절에 얼굴을 가렸던 요이델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매번 일일이 주입을 해야 당신이 저를 의식하실 테니까.”
그는 삐뚜름히 한쪽 입꼬리를 틀었다. 은발이 그의 눈가를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가 산들거렸다.
“더 불편해하시고 더 많이 생각해 주세요. 저는 그걸 원합니다.”
그의 눈빛은 다정하지만 진지했다.
그는 몸을 숙여 요이델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내킬 때 떠올려서야 한낱 호위기사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율리시스는 가볍게 웃고 요이델에게 서류를 건넸다.
“보고 올리셨던 부원장 후보들을 저도 다시 한번 추렸습니다.”
그에게서도 긍정적 신호를 받은 후보들이었다.
“이분도 역시 계시네요.”
“메디아의 반응이 예상보다 빠릅니다.”
“수장의 인장을 받은 걸 보면 신원도 확실해요.”
“그들이 허투루 신원을 보증해 줄 사람들은 아니니, 그런 면에서는 믿어 볼 만합니다.”
“수장 일가의 마법사였다는 이력이 특이해요.”
공통으로 고른 후보 중 한 명.
바로 메디아 출신의 마법사였다.
지상 대륙의 많은 국가들에서 신청서가 밀려들 건 알았다.
하지만 메디아에서도 반응이 이 정도로 빨리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메디아의 귀는 언제나 열려 있나 봐요.”
“그 호위기사들도 메디아의 소식통입니다. 가장 빠르게 보고됐을 겁니다.”
“그랬군요, 휘스랑 라이가…….”
요이델은 신기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슈레오 씨랑도 잘 맞을 것 같아요. 관심 분야가 비슷하지만, 전문 분야는 아예 달라서 상호 보완이 될 듯하고요. 그리고 큰 상관은 없지만 성격이 좋아 보여요.”
그리고 초기 계획대로 메디아가 찾는 걸 이쪽에서 찾아 주면, 브리칼트의 숨통을 조일 확실한 아군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브리칼트는 버티고 있었으니.
‘메디아와 브리칼트, 라보르비치 사건과 관련이 있어. 그런데 뚜렷하게 잡히지가 않아.’
그러니 이 후보에게 얻어 낼 정보도 있을 거다. 애초에 많은 사람들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위해 만든 학술원이었으니. 게다가 메디아는 마나의 발상지라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겠지.
“수장이 써 준 추천서를 보면 인품이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들은 워낙 까다로워서 웬만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풀지 않으니.”
“그렇게 까다롭나요?”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들과 개인적 친분을 맺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성하께 술을 계속해서 권유한 사건이 있었댔지. 들은 적 있다.
“그런 수장 일가의 곁을 보필하는 마법사였다면 인내심도 대단할 겁니다. 초기 기틀 마련을 위해서는 멀리 보고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도 나쁘진 않겠습니다.”
“좋은 의견이에요.”
“마지막은 면접 형식으로 치러질 겁니다. 요이델 님께서 직접 보고 결정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해 볼게요.”
요이델은 단단한 눈빛으로 미소 지었다. 새로운 일에 가슴이 콩닥콩닥 설렜다.
“우선 후보인들에게 언질은 해 놓았습니다. 성국으로 올라와 직접 대면하게 될 것이니, 미리 준비해 두십시오.”
요이델은 열 장으로 간추려진 서류를 넘기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
어쩐지 이 메디아인이 적합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아 참, 성하. 세례식 날에는 대신전이 완전히 개방된다던데, 다른 나라의 인사들도 올라오나요?”
“……네.”
그런데 어쩐지 율리시스의 안색이 나빠졌다.
“혹시 벌써 브리칼트에서…….”
“라보르비치의 참석은…….”
둘이 동시에 말이 터져 나왔다.
요이델과 율리시스는 서로를 바라보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했다.
“라보르비치가 왜요?”
“브리칼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아뇨, 저는 혹시 브리칼트에서 성하를 위협하는 일이 일어날까 봐…….”
“이번 세례식에 브리칼트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금술을 건드린 죄가 명백하여 삼 대륙 회의의 재개까지 논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국제적 교류가 자유롭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구나, 하고 넘기던 요이델은 이상함에 율리시스를 쳐다봤다. 라보르비치 이야기는 왜 나온 거지?
“브리칼트 측에서 당신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호위에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율리시스도 브리칼트의 발악을 예상하고 있었다.
세례식은 축제만큼이나 사람이 많이 몰려든다. 자신에게 세례를 받게 될 이들은 다양했다.
꼭 고위 귀족이나 특별한 사람들만 받는 세례가 아니었다. 성황의 축복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가 기본 방침이었으므로.
세례를 받고 싶은 사람들을 각 신전에서 모으면, 개중 무작위로 선발한다.
‘반대로 그런 연유로 위험할 수도 있다.’
개중 가짜 신원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세례식에 선발되면 철저한 조사를 받긴 하지만 또 모르는 일.
생각이 복잡해진 건 요이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공개적인 행사에는 많은 위협이 도사렸다. 성황인 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성하, 이번 세례식은 야외에서 열리는 거죠?”
“그렇습니다. 본관 근방의 공개용 야외 예배당인 파테라에서 치러집니다.”
요이델은 고심했다.
세례란, 주신 시엘로를 섬기는 교인들이 얕은 물이 채워진 공간에 들어가 이마에 축복 마법을 받는 의식이었다.
‘그때는 무장을 할 수도 없으니까. 무방비해.’
하지만 습격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긴 힘들었다.
브리칼트의 황제가 아니라 조상님이라도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성하는 검이 없어도 마법에 능통하다.
세례는 상징적이고 시각적인 의미가 컸다.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하고 숭고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의식.
이 점을 이용할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이델은 고개를 저었다.
브리칼트가 아무것도 안 할 리는 없다. 크게 당한 것치고는 지금까지 너무 잠잠하다.
“그보다 성하, 지난 라보르비치의 일. 브리칼트는 계속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하셨죠?”
“일단은 그렇습니다. 금서가 둘로 나뉘어져 보관되는 것을 이유로, 아시다시피 외려 당신을 압박하려 했으니.”
“그 금서의 반쪽은 성국에 있는 게 맞나요? 성하와 원로 외에는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도서관에요.”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밖으로 반출은 불가능한 거죠?”
율리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서이니만큼 절대 가지고 나갈 수 없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요이델은 불현듯 떠오르는 추측에 떨리는 팔을 감쌌다.
“성하, 마법진은 스펠과 그림을 사용한 형태잖아요. 외우기도 어렵고 그림 형태로도 어렵고요. 맞나요?”
“머릿속에 있어도 구현해 내기 힘들 겁니다.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수식이 복잡해지니.”
“성하는 마법진을 어떻게 외우세요?”
요이델의 물음에 율리시스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맞다. 성하는 안 외우셔도 되는 거죠?”
괜히 물어봤네. 율리시스는 한 번도 마법진을 따로 그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처럼 몇 번이고 그리고 외우며 연습해야 한다.
요이델도 몇 가지만 달달 외워 겨우 마법진 없이 쓸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고위 마법이면 더욱.
금술은 이름답게 기형적이라고 할 만큼 해괴하고 복잡한 마법진을 자랑했다.
그리고 사람의 기억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처럼 손으로 쓰면서 외우는 사람, 그리고…… 장면을 찍어서 보관하듯이 머릿속에 그 자체를 담는 사람.’
파멜라가 했던 말 중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조심하세요, 성하의 소중한 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예지 능력을 조금 갖고 있거든요. 과거, 미래, 전부 기억력이 좋아서 잊히지 않아요.’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라면…….
‘수련신관도 비밀 도서관에 데려가 줄 정도로…….’
그런데 정식은 못 됐다고 했다.
금서 내의 마법진을 보고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고, 머릿속 그림을 구현해 낼 능력이 있는 사람.
“성하, 미켈레 씨를 불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