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신관님, 일어나실 시간이에요―”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온 시종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요이델이 창문 가까이 붙어 신기한 듯 밖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관님. 언제부터 일어나 계셨어요?”
“대신전 개방일이니까요!”
오늘부터 보름 동안 대신전이 개방된다.
요이델은 부리나케 일어나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신전 안을 병아리처럼 바쁘게 돌아다녔다. 신관들도, 외부인들도 모두. 그리고 수많은 귀빈들의 마차도 보였다.
“이번 특별 세례자 중에는 브리칼트 사람도 있다고 했죠?”
“아쉽게도 그렇답니다. 하지만 직접 마주칠 일은 없게 위에 부탁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시종들도 브리칼트와 성국의 악연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요이델을 걱정했다.
요이델이 하는 일은 브리칼트에 하나도 도움 될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요이델이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피의 세례식 사건.’
세례식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야외 예배당에서 이루어진다.
호수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반원형의 공간에 물이 들어차고, 중앙에 놓인 거대한 장식물에서 분수처럼 물이 솟아난다.
그 물줄기는 무지개를 만들어 낼 만큼 높이 솟는 데다 계단식으로 단상처럼 만들어진 예배당이기에 세례식을 보기 위해 모인 모두가 관람 가능했다.
원작대로라면 바로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나저나 특이한 일이에요. 브리칼트의 황족이 세례를 받겠다고 나서다니. 그죠, 신관님?”
“저번 일로 타격이 있긴 했나 봐요, 수상할 만큼 꼬리를 내리는 걸 보면요.”
세례를 받는 이들 중에는 추첨 외에 특별 세례자가 있는데, 보통 각국의 수장급에 달하는 최고위 귀족들이었다.
지난 사건으로 브리칼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각국의 왕족들도 세례를 청했다.
개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역시 브리칼트의 황족이었다.
“우리 신관님. 조금 못나게 꾸며 드려야 하나, 고민되는데요? 브리칼트가 탐내서 잡아가면 곤란해요.”
“그래도 최대한 귀엽게 꾸며 드려야죠! 많은 사람들에게 요이델 신관님의 귀여움을 알려야 한다고요, 시종장님!”
시종들은 요이델의 옷 선정을 두고 씨름했다. 요이델은 결국 등쌀에 밀려 개중 하나를 골라 홀로 꾸물꾸물 갈아입었다.
“신관님은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으시군요. 매번 홀로 옷을 갈아입으시니 말이죠.”
“이게 더 편해요.”
“물론 싫으시다면 강요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라나는 웃으며 요이델의 옷 마무리를 고쳐 주었다.
“아 참, 본관 행정신관님께서 열람 승인이 났으니 오시라고 하던걸요.”
“아! 고마워요, 라나.”
“그 브리칼트 측 황족은 오후 5시경에 올라올 예정이라고 해요. 좌측에 위치한 제3 정문으로 들어올 거라고 하니, 그 길은 더러워서라도 피하세요.”
잠시 주위를 살핀 라나는 요이델의 귓가에 속삭였다.
“와,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후후, 시종 일을 많이 하다 보면 귀가 트인답니다.”
“고마워요. 조심할게요.”
그때 요이델의 머리에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시종들의 말은 빨리, 널리 퍼진다.
“라나, 소문 하나만 내줄래요?”
요이델의 귓속말을 들은 라나는 놀란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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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전의 본관, 요이델은 중앙 안내처로 향했다.
열람을 요청한 건, 바로 수로의 설계 도면이었다.
보통은 잘 열어 주지 않는 문서라 긴장했는데 의외로 쉽게 승인이 떨어졌다.
“제 동생 녀석이 진 빚이 있으니 이 정도 무리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동생이요?”
딱딱해 보이는 행정신관은 미세하게 웃으며 목을 가리켰다.
“요이델 신관님께서 수련 시절 살려 주셨던 멍청한 녀석이 제 동생입니다.”
“아! 그때 그……! 그러고 보니 얼굴이 닮으셨네요.”
이전에 질식할 뻔한 신관을 구해 준 사건을 말하는 듯했다.
“그런데 수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궁금하셨는지요. 답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파테라를 채우는 물도 대신전의 다른 장소들과 같은 평범한 수로를 이용하죠?”
“세례식 당일 사용하는 물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같은 물길을 이용하여 끌어온 물이 파테라 안, 열한 개의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옵니다.”
원작에 나왔던 ‘피의 세례식’이란 실제 피가 아닌 붉은 물을 뜻했다.
빛처럼 찬란한 축복 마법이 발현되는 가운데, 파테라를 가득 채울 물이 들어차는 순간.
‘투명한 물이 아닌 붉은 물이 들어차겠지.’
꾸덕꾸덕한 성분을 지닌 이상한 붉은 물이 피부에 묻으면 급속도로 종기가 발진한다. 피부병이 생겨나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그 물을 분수로 또 한 번 끌어 올리기에 그 붉은 물은 세례식에 참석한 모두에게 닿을 만큼 널리 퍼져 나간다.
‘가장 상징적이고 성스러운 의식을 타락시키기 위해서야.’
당황스러운 사고로 세례식은 엉망진창이 된다.
당연히 세례식은 중단되고 이 일로 성국에 재앙이 내렸다는 소문이 각국으로 퍼져 나갈 텐데.
‘그래서는 안 돼. 주위 수원지의 적조 현상도 아니었다니. 그럼 어디가 문제일까? 그날은 마법 발현도 금지될 텐데.’
수원과 수로에 문제가 없다면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요이델은 끙끙 앓으며 도면을 살폈다.
“행정신관님, 수로에 녹슨 부분이 있나요?”
“주기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기에 파손이나 노후한 지점은 없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는 거지.
달칵. 요이델이 골머리를 앓자 그는 찻잔을 앞에 내려 두었다.
“아,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혹시 식수나 생활수에 문제가 있어 그러시는지요.”
“그건 아니에요. 그냥 조금…… 세례식이 신경 쓰여서요. 중요한 날이니까 혹시 물이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세례식에서 수로 때문에 사고가 난 적은 없었습니다.”
요이델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문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거지만.
요이델은 도면을 다시금 살피다 물었다.
“여기 작은 문양은 뭔가요?”
“아, 그건 보조 장치로 작은 수로입니다. 물길이 막혔을 때를 대비하여 물탱크와 연결 지어 놓은 건데, 한 번도 쓰인 적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으앗.”
도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차를 마시던 요이델의 표정이 얼떨떨해졌다.
이렇게 따뜻한 맹물 같은 차는 처음이야.
“입맛에 맞으십니까?”
“아, 아아. 네, 맛있네요.”
“맙소사,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신관님!”
행정신관은 손을 떨며 요이델의 찻잔을 조심히 빼앗았다.
“제가 결례를 저질렀군요. 아무 맛도 안 나셨을 텐데…….”
그는 요이델의 차를 가져가 찻잔 주위에 설탕을 바르고 불로 그을려 녹여 주었다.
“이렇게 먹어야 맛이 살아나는 차입니다. 저희 지역에서 즐겨 먹는 차라 신관님은 생소하실 겁니다.”
“우와…… 신기해요.”
“이번에는 맛이 어떠십니까?”
“음! 확실히 달달하고 맛있어요. 재미있는 차네요.”
그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이거야.’
수로에 무슨 짓을 하는 게 아니었어. 브리칼트의 황제가 후계자 후보에게 세례를 받게 할 리 없지.
그는 사람을 도구처럼 쓰고 버릴 줄 안다.
“고마웠어요! 또 봬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요이델은 본관을 빠져나와 율리시스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퍽!
모퉁이를 돌던 그때, 누군가와 세게 충돌했다.
“아야……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아, 이게 누구야.”
요이델과 부딪힌 사람이 어깨를 아프게 팍 잡아챘다.
쿵!
벽에 등과 어깨가 콱 부딪치는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일 만큼 찌릿한 고통이 밀려왔다.
“윽…….”
“나를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벽에 내쳐지듯 몸이 돌려진 요이델은 재빨리 눈앞을 쳐다봤다.
키가 훌쩍 큰 어떤 남자였다.
그는 요이델을 깔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한 멸시였다.
“이 백치가 겁을 상실했군.”
요이델은 이를 악물고 그를 쳐다봤다. 백치?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배우지 않았나, 공자. 성황 하나 등에 업었다고 기고만장해서 내가 누군지도 잊은 건가?”
빈정거리는 목소리는 물론 삐딱한 태도까지 모두 이상했다.
잠깐만, 백치라면 설마…….
저런 말을 서슴지 않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요보힐데 공작 부부. 그들도 줄곧 요이델을 두고 백치, 쓸모없는 것이라고 불렀으니까.
‘세례를 받는다던 브리칼트 측 황족이 바로 이 사람이었어.’
기억났다.
‘브리칼트 황제의 후계자 후보 중 하나, 키베르크 슈바르트 대공.’
그의 가족이 요보힐데 공작과 친한 사이였기에, 저택에 놀러 왔을 때 우연히 모습을 들킨 적 있다.
그는 왜 기어 나왔냐고 요이델을 혼내는 요보힐데 공작 부부를 보며 재밌는 듯 웃었다. 그리고 그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백치라고 욕하고 때리고.
물론 공작 부부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는 원래 성격이 난폭해서 그 포악함이 요이델 하나에 집중되면 그들은 편했기에.
탁!
요이델은 어깨에 놓인 손을 곧장 쳐 버렸다.
“푸흡…… 푸하하, 하하! 그래, 재밌네……. 이 건방진 태도도 좋군.”
백금발에 초록 눈을 가진 남자는 얼핏 호감형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저건 딱, 비열한 사람의 미소였다.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제 가슴에 한 팔을 얹고 정중히 인사했다.
“백치 티를 벗었다더니 사실이었군요.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정중한 척하는 인사와 달리 그는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듯 말했다. 기특하다는 듯 우스운 태도였다.
“공이 네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하더니 사실이었군. 크면서 사람이 바뀐다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변했어. 외형도, 태도도.”
요이델은 덤덤히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브리칼트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만할까.
“오랜만에 본 건데 너무 경멸하는군.”
“친절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평온한 대꾸에 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부모를 제 손으로 다 죽인 주제에 고귀한 척 위선 떠는 너희 성황보다는 뭐든 진솔한 내가 낫지 않나?”
빈정거림 속에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요이델의 놀람을 눈치챈 듯 삐딱하게 섰다.
“너는 성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고 있나?”
“이쪽은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길이니 돌아가세요.”
“성황 이름이…… 아, 율리시스.”
그는 툭 뱉고 웃었다.
“이 대신전 자리에는 과거 대단하신 성황 성하께서 나고 자란 성이 있었다더군. 그런데 흔적조차 없지. 서고에도 기록이 거의 없을 거야.”
그는 뱀처럼 비열하게 웃었다. 흡사 더럽게까지 느껴지는 미소였다.
“참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지 않나? 존속 살인 한 살인자가 성황이라니, 그따위 신성력에 기대는 너희들 모두 멍청하기 짝이 없는―”
빡―!
그때 키베르크가 피를 흘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상대의 턱을 이마로 들이받아 버린 요이델도 아픈 이마를 부여잡았다.
“하, 퉷! 짐승 새끼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지?”
“오늘은 부모님과 같이 오지 않았나 봐요. 금방 쫓아가서 이르지 않는 걸 보면!”
그는 어렸을 때, 요이델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거짓말해서 밥을 굶게 만들고 매를 맞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낄낄 웃기도 했다.
요이델은 자신의 옷에 달린 뱃지를 내보이고 그를 똑바로 노려봤다.
“이건 단순한 뱃지가 아니라 녹음 기능도 있는 아티팩트니까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요보힐데 공작 부부께서 그런 건 말을 안 해 줬나 봐요?”
그를 노려본 요이델은 진심이라는 듯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그들처럼 망신당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선례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키베르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제 부모를 그렇게 말하다니, 이봐, 백치―”
“효심은 좋아요. 저도 부모의 힘이 없으면 빈털터리가 될 인생이었다면 충성을 다했을 테니까요.”
요이델은 그를 매섭게 쏘아봤다.
“그 대단한 이야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는데 퍽 비밀스러운 척하느라 고생했겠어요. 그 말을 하려고 입이 근질근질해서 기대감에 차 여기까지 왔겠죠?”
거짓말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지어낸 비웃음에 키베르크의 얼굴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