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wait, you will level up RAW novel - Chapter 2
제1화
인피니티 로드는 출시 이후 세계 1위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상현실게임이다.
MMORPG 스타일의 게임으로 시작했고 사상 처음으로 인공지능이 게임 세계의 모든 것을 관할하고 운영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출시하고 전 세계 가입자 수 1억을 돌파한 인피니티 로드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게임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가상현실게임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날마다 새로운 스타급 플레이어들의 탄생을 가져왔다.
지구의 다섯 배에 해당되는 크기의 어마어마한 맵.
뭐든지 가능한 콘텐츠.
인간의 모든 감각을 게임과 연결시킨 첨단 시스템.
인피니티 로드가 세상에 등장하고 사람들은 판타지 소설에나 보던 이면세계를 게임으로 완성시켰다고 할 정도였다.
선우가 인피니티 로드를 시작한 지 1년.
“오늘도 토깽이 사냥 가시는가?”
1년째 머무르고 있는 켄트 마을의 NPC들은 이제 선우를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예. 물약 세 병만 주세요.”
“여기 있소.”
선우는 딸기주스 같은 물약 3병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후우… 그나마 여기는 포션 시세가 안 올라서 좋군.”
켄트 마을은 인피니티 로드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여러 NPC들을 통해 튜토리얼 퀘스트를 하거나 어느 정도 레벨을 올린 뒤 다른 곳으로 가는 일종의 인큐베이터 같은 마을이었다.
켄트 마을은 초보 플레이어들을 위한 출발지였기에 이곳의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은 다른 곳과 달리 시세가 오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사냥은 걱정 없고….”
선우는 이곳에서 1년 동안 날마다 사냥을 하면서 자잘한 돈을 벌고 몬스터를 잡고 얻은 부산물을 팔아가면서 매달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게임을 시작한 지 1년이 됐지만 아직도 초보자 마을에서만 머물고 있는 선우.
“야, 저 사람은 내가 작년에 본 거 같은데 아직도 여기에 있네. 뭐하는 사람이지?”
“난 재작년에 봤었어. 중간에 캐삭하고 다시 시작할 때도 한번 봤었고.”
1년간 초보자 마을에서만 머무르며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흙수저 플레이어.
그게 지금의 선우였다.
이젠 다른 플레이어들의 뒷말이 가끔 들려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젠장… 누군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아나….’
선우는 간혹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플레이어들이 거슬렸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 플레이어.
따라서 레벨업조차 불가능한 플레이어가 선우였으니까.
인피니티 로드는 계정을 구매한 사람이 로그인을 하고 나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해당 사람의 특성과 인격, 성품, 본인도 알지 못하는 잠재 요소를 분석해서 캐릭터에 특성을 부여하는 게임이었다.
게임 개발사가 간섭을 하는 것은 없었다.
오직 인공지능이 자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며 게임을 조율하고 감독하고 있었기에 어째서 이 사람에게 이런 특성이 부여됐는지 알 수도 없었다.
“난 언제쯤 렙업… 아니지. 경험치가 올랐단 알림을 들어볼까….”
경험치가 전혀 오르지 않는 선우의 특성을 설명해줄 사람은 없었다.
처음엔 발견되지 않은 핵이나 버그 같은 건 줄 알고 캐릭터 삭제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시 시작해도 여전히 선우의 경험치는 오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캐릭터 삭제와 생성을 반복했지만 경험치는 0.
결국 선우는 성장을 포기하고 그냥 켄트 마을 근처를 돌며 자잘한 몬스터 사냥으로 푼돈 벌이에 만족해야만 했다.
물론 게임 말고 취업 준비를 할 순 있지만 선우가 가장 잘하는 건 게임이었다.
게다가 인피니티 로드에서 토끼, 다람쥐, 슬라임 등의 몬스터를 잡고 번 돈을 현금으로 환전하면 수입이 꼭 나쁘진 않았다.
선우의 생계형 게임 플레이는 단순했다.
먼저 날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 하는 것처럼 인피니티 로드에 로그인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게임 속에서 노가다 사냥을 반복한다.
그 다음 하루 동안 주워 모은 잡템은 NPC에 팔고 이렇게 모은 돈을 현금으로 환전하면 일당 수입이 나온다.
이렇게 매달 노가다 하듯이 게임을 해서 버는 돈은 대략 평균 150에서 300만 원 수준이었다.
게임 시간 내내 똑같은 몬스터들만 골라가면서 잡고 팔고를 반복하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선우는 이러한 작업을 1년째 반복하고 있던 것이다.
* * *
“오늘은 토끼 20마리, 다람쥐 11마리를 잡았네. 슬라임 잡느라 물약 3병을 다 써서 좀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내일 물약 값은 좀 넉넉히 벌었다.”
선우는 토끼 가죽과 다람쥐꼬리를 인벤토리에 넣고 만족했다.
5년 동안 하늘의 별처럼 성장해버린 다른 플레이어들에겐 한심한 사냥일 것이다.
하지만 선우에겐 엄마, 여동생과 같이 먹고 살 돈을 벌어주는 소중한 직장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우는 켄트 마을의 은행인 인피니티 뱅크를 찾았다.
인피니티 로드에서 벌어들인 돈을 현금으로 전환하여 계좌에 이체시켜주는 곳.
캐릭터 생성 시 등록 정보에 계좌번호와 거래은행을 입력하면 가상의 게임 머니를 현금으로 바꿔 자동이체 시켜주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으로 인해 게임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인피니티 로드를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 수입은… 14만 원이네. 역시 쉬지 않고 계속 사냥한 보람이 있어.”
선우는 뿌듯해하며 로그아웃을 했다.
VR 캡슐에서 나온 선우는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엄마와 여동생과 같이 살던 단칸방에는 캡슐의 크기가 차지하는 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선우는 오늘 수입의 절반을 엄마 계좌로 송금했다.
“여보세요? 엄마. 방금 돈 보냈어요. 확인해보세요.”
몇 분 동안 모자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네, 엄마도 식당 일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보내드릴게요.”
선우는 밖으로 나왔다.
매일같이 게임으로 돈을 벌려면 기본적인 체력 관리는 필수.
다만 선우에게 돈을 들여 운동을 할 만큼의 여력은 없기에 밖에서 걸어다니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오랜만에 서점을 가볼까?”
밖에 나온 김에 서점에 들르기로 했다.
선우 같은 생계형 게이머들에게 체력 관리 못지않게 필요한 건 정보였다.
서점에는 인피니티 로드 관련된 서적이 베스트셀러로 분기마다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자극적인 제목들로 독자들을 유혹했고 게이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인피니티 로드 시작 100일 만에 내 집 마련] [캐릭터 생성이 당신의 인피니티 로드의 성공을 좌우한다.] [숨겨진 퀘스트를 찾는 7가지 비결] [인피니티 로드의 길드는 어떤 플레이어를 영입하는가?] [길드에서 간부로 승진하는 3가지 전략과 비밀] [처음 30일 간의 성장이 인피니티 로드의 30년을 결정한다] [인피니티 로드의 상위 플레이어들은 1년에 얼마를 벌까? 전격해부!!]게이머들 중 조금만 팬층이 생기거나 인기를 얻으면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써서 부수적인 수입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선우는 처음엔 자신의 특성을 살려서 책을 써보려고 했다.
게임을 하면서 부수적인 인세를 벌면 생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인피니티 게임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며 대한민국 1위 출판사가 된 브라더후드를 찾아갔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그랬다.
선우가 경험치가 오르지 않아 레벨업을 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순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데 선우에겐 그게 없었다.
아무리 처음 보는 특성이라고 해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으면 성장이 불가능하기에 보여줄 콘텐츠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흙수저가 인피니티 로드에서 금수저가 되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지 날마다 게임 속으로 출퇴근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흙수저 플레이어의 경험담이 아니었다.
결국 선우는 브라더후드 출판사에서 나와 한참 사람들 북적이는 시내를 떠돌아 다녔었다.
당시 유독 추웠던 날씨였기에 지금까지도 선우의 기억엔 남아있었다.
“그냥 일하는 거야. 게임은 나한텐 그냥 일이다, 일.”
선우는 쓰디쓴 기억을 떨쳐내고 다시 가볍게 걸으면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 * *
인피니티 로드는 현대 사회의 경제 구조를 바꿨다는 평가를 듣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잘하건 못하건 선우처럼 근면성실하게 노가다 사냥만 뛰어도 직장에서 상사한테 욕먹고 트집 잡히는 꼴은 안 봐도 된다.
무엇보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하는 것보다 집에서 VR 캡슐 속에서 돈 버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벌도, 스펙도, 영어 실력도 필요 없었다. 그저 인피니티 로드를 시작하면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결정적으로 게임 실력과 무관하게 날마다 하다 보면 누구나 요령이 붙고 경험이 쌓이고 캐릭터가 성장한다.
그러면 더 고급 사냥터를 갈 수 있고 훨씬 고가의 아이템을 먹어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오늘날 인피니티 로드에서 어떤 아이템이 새로 발견되었고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9시 뉴스로 보도되는 건 전혀 낯설지 않았으니까.
-오늘 가상현실게임 인피니티 로드 중앙 대륙에서 벌어졌던 길드간의 전쟁을 촬영한 영상을 원작으로 영화화가 결정됐습니다. 원작자는 지금껏 게임에서 펼쳐진 길드 전쟁을 가장 실감나게 촬영하는 걸로 유명한 방송 스트리머…
선우가 TV를 틀어놓으면 인피니티 로드 관련된 뉴스 혹은 예능, 게임 방송, CF 등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인피니티 로드로 유명해진 플레이어들은 과거 프로게이머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자신이 펼치는 게임 속 활약을 담은 영상들로 하여금 방송 조회수, 후원금 등으로 수입이 들어왔다.
그리고 해당 영상들을 CF에 쓰기 위해 온갖 에이전시에서 연락을 받았으며 플레이어가 진행하는 퀘스트들을 바탕으로 영화화 판권이 팔리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실시간으로 채팅을 통해 팬들과 소통을 하고 후원금을 받기도 했고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을 고가에 팔거나 희귀 아이템이 경매에 나오면 보도 자료가 인터넷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심지어 연예인이 자신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 인피니티 로드를 시작할 정도였다.
물론 선우에겐 이 모든 것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컵라면은 역시 매운맛이야.”
선우는 찬밥에 컵라면 국물을 말아 먹은 뒤 다시 VR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야근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