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wait, you will level up RAW novel - Chapter 3
제2화
선우는 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했었다.
군대를 가서 제대한 뒤에 여러 게임을 하며 방송 스트리머로 돈을 벌다가 인피니티 로드가 출시되면서 지금까지 하다 보니 어느덧 27살.
인피니티 로드에서 유명해지면 게이머 특별 전형으로 서울 내의 유명 대학 게임 학과에 시험을 치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었다.
물론 선우에겐 해당 사항 없었다.
“경험치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어떻게든 레벨 올리고 성장해서 대학 정도는 가볼 수 있을 텐데….”
선우는 오늘도 켄트 마을에서 물약을 산 뒤 토끼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비록 지루한 반복 사냥이지만 이젠 나름대로의 요령과 노하우가 쌓여서 남들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잡을 수 있었다.
“우와, 님 토끼 진짜 잘 잡으시네요.”
“저기요. 혹시 토끼 가죽 있으면 제 꺼 아이템이랑 바꾸실래요? 이거 저기서 오다가 주웠는데 저한텐 쓸데없어서요.”
가끔 이렇게 예기치 못한 칭찬과 잡템 물물거래를 할 때도 많았다.
“역시 새벽 사냥이 좀 더 쏠쏠하지.”
새벽시간엔 확실히 플레이어들이 줄어든 게 느껴졌다.
초보 사냥터에도 사람들은 드물게 보였고 대부분 몬스터들만 돌아다녔다.
선우는 토끼와 다람쥐를 계속 사냥했다.
“오늘 야간 수입을 많이 벌었으니 내일은 놀아도 되겠는 걸.”
인벤토리를 보며 선우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토끼 가죽 110장.
다람쥐꼬리 87개.
날다람쥐의 날개막 69개.
이번 달 선우가 번 것 중 가장 많은 수확이었다.
“이제 눈 좀 붙였다가 다시… 응?”
초보 사냥터를 나오던 선우는 근처 낡은 오두막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꼬마를 발견했다.
헐벗은 몸에 누더기 바지를 입은 꼬마 NPC였다.
인피니티 로드에는 날마다 새로운 NPC들이 생성됐다.
지금까지 인피니티 로드에 살고 있는 NPC들은 15억 명이 조금 넘었다.
아직 발견 안 된 NPC들까지 30억 명 가량이 인피니티 로드에 살고 있었다.
인피니티 로드를 단순히 가상현실게임이 아닌 이면세계라고 부르는 건 NPC들이 정말 사람 같았기 때문.
선우는 꼬마를 무시하고 갈 길을 가다가 다시 힐끔거렸다.
꼬마는 손가락을 빨면서 선우를 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신경 꺼. 나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선우는 다시 켄트 마을로 향했다.
* * *
켄트 마을의 상점.
선우는 다람쥐 꼬리와 날다람쥐의 날개막을 모두 팔았다.
남은 건 토끼 가죽.
인벤토리를 보며 잠깐 망설이던 선우는 토끼 가죽 110장에서 10장만 남겨놓고 100장을 팔았다.
“이건 가죽옷으로 만들어주세요.”
“잠깐만 기다리쇼.”
상점 주인이 토끼 가죽 10장을 들고 어디론가 나갔다 왔다.
“여기 있소.”
“고맙습니다.”
선우는 토끼 가죽으로 만든 가죽옷을 들고 조금 전 꼬마가 앉아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응?”
조금 전 본 곳에 꼬마가 없었다.
“어디 갔지?”
선우는 근처를 돌면서 꼬마를 찾았다.
어디선가 애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기인가?”
뛰어간 곳에는 꼬마가 울고 있었다.
얼굴은 멍이 들었고 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꼬마의 앞쪽엔 플레이어 두 명이 킬킬거리고 있었다.
“야, 이거 봐. 진짜 신기해. NPC인데 울 줄도 아네.”
“사람 같다더니… 아으, 소름 끼쳐.”
선우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챘다.
인피니티 로드에서는 NPC 및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해서 악명을 떨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현실 속 사람들이 가상현실게임을 한다고 착해지는 건 아니니까.
‘젠장, 젠장.’
선우는 난감했다.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 특성을 알고 나서 선우가 세웠던 철칙이 한 가지 있었다.
절대로 다른 플레이어들과 싸움을 하지 않을 것.
만약 경험치가 남들처럼 올라서 성장이 가능하다면 상관없었다.
강해져서 밟아버리면 되니까.
선우는 예외였다.
성장이 불가능한 플레이어는 초보 사냥터의 토끼와 다람쥐 사냥조차 물약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런 선우인데 하물며 다른 플레이어와 싸운다면 결과는 개죽음.
플레이어와 싸움을 하지 않는 건 생존을 위한 철칙이었다.
만약 누군가와 척을 져서 적이 생겨버리면 선우는 현실의 생계마저 위험해지니까.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 선우가 갈 사냥터는 켄트 마을의 초보 사냥터 밖에 없었다.
“쟨 뭐냐? 어이, 뭘 자꾸 힐끔거려?”
“야,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라.”
“잠깐만, 저 새끼 혹시 이거 촬영하는 거 아냐?”
인피니티 로드에서 NPC를 사람과 동등하게 대하라는 건 게임의 기본 매너였다.
이걸 어기는 플레이어들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신고를 하면 포상금이 나왔다.
선우를 본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한 짓을 신고하려는 걸로 착각했다.
“야, 지금 혹시 이거 찍고 있냐?”
플레이어들이 다가왔다.
“우린 블러드 스컬 길드원이 될 거라고. 들어봤지?”
그들은 한쪽 가슴에 붙은 마크를 보여줬다.
피로 얼룩진 해골이 보였다.
지금 깐죽거리는 플레이어들은 선우에겐 부담스러운 중형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젠장, 망했다. 블러드 스컬이면….’
선우가 경험치가 오르지 않았지만 인피니티 로드의 길드 세력과 상위 플레이어들의 랭킹부터 온갖 정보에는 밝았다.
길드원이 될 거라고 했으니 틀림없이 블러드 스컬의 인맥으로 들어가는 낙하산 플레이어들이었다.
현실의 갑질이 싫어 게임을 시작했건만 게임 속 갑질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혹시 영상 찍은 게 있으면 커뮤니티에 올릴 생각 말고 삭제해.”
“만약에 영상 올렸다간 블러드 스컬에서 척살령 떨어질걸? 인피니티 로드 계속 해야지?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농담 반 협박 반이네.
열 받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우는 내일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약육강식은 인피니티 로드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것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놈들인데?’
켄트 마을에서 1년간 플레이어들을 관찰했던 선우였다.
이들은 선우와 같은 레벨이었고 심지어 튜토리얼 퀘스트조차 클리어 안 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템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다니며 NPC 꼬마를 걷어차는 것을 보면 틀림없었다.
‘블러드 스컬에서 버스 태워주는 거 믿고 설치는 놈들이군.’
튜토리얼 퀘스트는 길드에서 공략을 알려주면 순식간에 클리어한다.
인피니티 로드에서 튜토리얼은 플레이어마다 다양했다.
대형 길드에는 고급 정보들이 넘쳐났고 어디로 가서 어느 NPC를 만나면 될지, 고급 퀘스트를 받는 노하우 등을 시작부터 옆에서 베이비시터처럼 알려주고 케어를 하니 성장은 빛처럼 빠를 수밖에.
‘시작부터 블러드 스컬 급의 길드가 버스를 태워주는 거면 길드 간부와 인맥이 있다는 건데….’
선우는 자신을 뒤로 하고 다시 NPC 꼬마에게 가는 플레이어들을 불러 세웠다.
“잠깐.”
플레이어들이 선우를 노려봤다.
“뭐냐? 또.”
“NPC도 여기서는 사람인데….”
“사람인데 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젠장, 김선우, 뭐 하는 거냐. 지금 쟤들은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이라고. 납작 엎드려야 돼.’
플레이어들이 다시 다가왔다.
“사람인데 뭐? 병신아.”
“애잖아요.”
“나도 알아. 근데 뭐?”
선우는 당황해서 입술이 버벅거렸다.
“게임 매너는 지키시는 게….”
약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였다.
“풉, 뭐래 병신이.”
플레이어가 갑자기 선우에게 발길질을 했다.
선우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회피했다.
“어라? 쫌 하냐?”
물론 선우의 의도는 아니었다.
‘망했다. 그냥 맞을걸. 화를 돋궈버렸어.’
선우는 사냥터의 토끼와 다람쥐들만 잡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체 감각은 재빠른 토끼와 다람쥐들을 쫓아 사냥하는 쪽으로 발달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튀는 토끼를 쫓는 동체 시력, 다람쥐를 쫓아 공격하는 체력과 민첩성, 정확한 공격.
모든 것이 사냥터에서 가장 빠르고 민첩한 토끼, 다람쥐 사냥으로 얻어진 신체 능력들이었다.
물론 경험치는 0이나 인피니티 로드의 캐릭터는 현실의 육체를 반영하여 게임 속의 신체를 강화시키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감각 능력만큼은 요령이 붙었다.
“이 새끼가.”
양아치 플레이어들이 열 받았는지 동시에 달려들었다.
1:1로는 선우를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
“허억…허억… 야, 저 새끼 혹시 저렙 코스프레 하는 새끼 아니야?”
“야, 일단 가자. 캐릭터 다시 키우는 고렙일 수도 있어.”
“젠장… 나중에 보면 가만 안 둔다.”
양아치들이 한 발 물러나더니 사라졌다.
인피니티 로드에는 캐릭터의 겉모습만으로 모든 걸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상위 플레이어 중 취미로 서브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들은 꽤 흔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숨기고 양아치들을 골탕 먹이는 걸 좋아했으니까.
양아치들이 선우를 상위 랭커로 착각한 건 회피 실력 때문이었다.
단 한 번의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그것도 1레벨짜리를 둘이서 공격했는데.
제아무리 중형 규모의 길드원이라고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인피니티 로드의 세계는 넓었고 숨은 실력자들은 많았으니까.
의도치 않은 선우의 방어 실력으로 초보 양아치 플레이어들이 사라졌다.
“후아…후아….”
선우는 양아치 플레이어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다리가 풀려버렸다.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거냐… 블러드 스컬 이라고… 이것들 척살령 한 번 떨어지면 게임 접게 만드는 프로들인데. 아니지. 난 고작 1렙 쩌리니까 신경 쓰진 않을 거야. 그래도 나름 중형급 규모의 길드인데 나 같은 놈 족치겠다고 할 리는 없어. 아니지. 걔가 인맥으로 길드에 들어 간 거면 혹시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거 아니야? 젠장… 그러면 안 되는데. 무릎 꿇고 사정할까?”
선우는 멘탈에 금이 가고 있었다.
“내가 뭐 한다고 상관도 없는 NPC 도와주려고 뻘짓을 하고 지랄… 응?”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훌쩍.”
한쪽 눈에 멍이 들고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꼬마가 날 보며 서 있었다.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가엾게 느껴지는 순간.
“아, 그렇지. 이거 입을래?”
선우는 인벤토리에서 토끼 가죽옷을 꺼냈다.
토끼 가죽 10장을 붙여서 만들었기에 꼬마가 입기에 알맞았다.
꼬마가 가죽옷을 입으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앞니 한 개가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음에 드나 보네.”
“고운 마음씨를 가진 놈이로고.”
“으헉!”
선우가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물러났다.
웬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허리 뒤에 손을 대고 서 있었다.
토끼 가죽옷을 입은 꼬마가 노파를 보더니 방긋 웃으면서 달려갔다.
“할무니이~!”
노파가 꼬마를 안아주면서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조금 전까지 멍이 든 꼬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회복됐다.
‘뭐지? 혹시 마법 관련 NPC인가?’
인피니티 로드에는 NPC마다 다양한 능력이 있었다.
NPC에게 숨겨진 스킬, 아이템 등을 구하는 건 흔했기에 선우는 자신의 특성에 대해 NPC를 만날 때마다 물어보러 다녔다.
“네놈이 내 손주에게 이걸 줬느냐?”
노파가 선우에게 물었다.
“아, 예. 입을 옷이 없는 것 같아서요.”
대답하는 순간 알림이 들려왔다.
[인피니티 여신의 호감을 얻었습니다.](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