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0
009화
“확실하면 승부를 걸어라…….”
존 허 소장이 내가 한 말을 되뇌고 있다.
이런 명대사를 읊었는데, 마음에 들겠지.
나중에 영화 ‘타짜’를 보면 좀 놀라기도 할 테고.
“그래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최대한 많이입니다. 존 허 소장님이 융통 가능한 선에서 말입니다.”
“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빠져 있다.
많이라는 말은 두루뭉술한 말이다.
일정한 선을 말해주지 않은 이유는 이 사람의 그릇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가 얼마를 뱉는지에 따라서 대충 자산 추정도 가능하고.
“100억 정도는 가능할 거 같군요.”
100억이라……. 1,000억 이상은 가지고 있다는 말이네.
이제 두 번 본 놈에게 빌려 줄 수 있는 한계치를 대략 10%로 잡으면 말이다.
“더 필요합니다.”
“100억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요?”
“‘메디슨 포스터’는 백 프로 내려갑니다. 이런 기회는 놓칠 수가 없죠. 지금 심정이라면, 사채라도 끌어다 집어넣고 싶은 마음입니다.”
실제로 사채를 끌어오긴 했지만, 말할 필요는 없지.
“이거부터 아셔야겠군요.”
“……?”
“전 이미 ‘메디슨 포스터’에 대여 차입 거래(대차 거래)를 걸어 놨습니다.”
“……!”
역시, 존 허 소장. 벌써 움직이고 있었구나.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점은 마음에 드네. 난 주둥이만 산 새끼들이 싫거든.
“그만큼 확신하고 계신다는 거군요. 수익금의 50프로를 지급하겠습니다. 저한테도 그 기회를 나눠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채 놈들한테는 30프로지만, 이 사람한테는 그런 양아치 짓을 하면 안 된다.
좀 더 남겨 먹으려다가, 판이 엎어지는 수가 있으니까.
“전 그것보다 다른 조건을 듣고 싶군요.”
“다른 조건이라면……?”
“저는 99프로 ‘메디슨 포스터’가 하락할 거라 생각하고, 주혁 씨는 백프로 ‘메디슨 포스터’가 하락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1프로. 주식 시장에서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1프로라는 변수 때문에 ‘메디슨 포스터’의 주가는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
“만약 손해가 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한테서 돈을 빌려 갔는데, 1프로의 변수로 ‘메디슨 포스터’의 주가가 올라가면, 어떻게 할 생각이죠?”
난 ‘메디슨 포스터’의 주가가 하락한다는 미래를 알고 있다.
단 1%의 변수도 없이 내려갈 거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니다.
안전 제일주의인 이 사람에게는 1%를 해소시켜 줄 뭔가가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그게 좋아.’
존 허 라는 전설적인 투자자는 내 편으로 만들어 놓는 게 좋다.
앞으로 주철수라는 거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힘이 필요하니까.
그 힘을 가진 사람이 내 앞에 있는 존 허 소장이다.
“제 수중에 95억이라는 자금이 있습니다.”
“……!”
“만약 1프로의 변수로 손해가 발생한다면, 95억 안에서 해결하겠습니다.”
“손절하겠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손실이 95억에 도달하는 순간, 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부 처분한 후에 소장님께 빌린 자금을 드리겠습니다.”
난 존 허 소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당연히 아실 겁니다. 소장님은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돈만 빌려 주면 손실은 내가 감당하겠다.
내가 가진 자금 안에서 손해를 처리할 테니, 넌 돈만 빌려 주라는 거다.
이건 충분히 존 허 소장의 구미를 당기게 할만한 것이었다.
“‘메디슨 포스터’ 종목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지만, 소장님이 손해를 보는 경우는 0프로입니다.”
“훗. 그때와 똑같군요.”
“……?”
“제가 주혁씨한테 ‘메디슨 포스터’ 비상장 주식을 팔던 그때와 말입니다.”
저번이나 이번이나, 저 사람은 무조건 손해를 보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판을 짰으니까.
“좋습니다. 200억까지 빌려 드리죠.”
“네. 감사합니다.”
총 295억. 이걸로 대차 거래를 맺고 ‘메디슨 포스터’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걸 구경할 거다.
50% 수익을 낸 후부터 분할로 처분한다.
내 수중에 100억은 남길 요량이다.
***
“후……. 이 짓도 힘드네.”
대차 거래는 증권사마다 정해진 물량이 있다.
그 덕에 오늘 하루 고생 좀 해야 했다.
295억이라는 자금을 전부 대차 거래로 체결시키기 위해 여의도를 내 안방처럼 돌아다니며 증권사의 계좌를 텄다.
이런 건 아래 것들 시키면 금방인데……. 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15년간 조폭 생활을 했던 물이 빠지지 않았네.
그때의 이 부장이 아니다.
형님 소리 듣던 그 이주혁 부장이…….
“행님!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에이씨. 비슷한가?
“그래. 왔냐?”
통영 후배 놈들이 공사판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저녁은 먹었……. 야. 얼굴이 왜 그래?”
고개를 틀어 놈들을 보자 얼굴에 피멍이 들어 있다.
덩치, 돼지, 난쟁이 전부 눈탱이가 부어 있었다.
“누구야? 누구한테 맞은 거야?”
반장 아저씨가 때렸을 리 없다.
아버지 친구인 그분이 얼마나 좋은 분인데? 아무리 화나도 소리치는 게 전부인 사람이다.
저렇게 얼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때릴 사람이 아니다.
“그게…….”
덩치가 부어오른 입술을 가리며 말했다.
“용역하는 애들이 찾아왔슴돠.”
“용역? 왜?”
“공사 고마하라고…….”
“잘 짓고 있는 상가 건물을 왜 스톱시켜?”
“저희도 잘 모르겠슴돠. 쇠몽둥이 들고 와가 이것저것 부수고 시마이하라고 해서……. 저희가 참을 수가 있어야지예. 걍 한바탕 들이받았는데……. 마. 이리 됐슴돠.”
용역이라면 쉽게 말해 깡패다.
혹시 주철수가 상가 건물 이권을 놓고 움직인 걸까?
‘아니야……. 아직 건설업에 손댈 시기가 아닌데…….’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당시 주철수의 사업장은 유흥업소에 집중되어있다.
건설업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방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무너지는 건설사들을 매입해서 비싸게 공사비를 받아 내고 싸게 짓는 더러운 짓거리는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말이다.
‘다른 놈들이 치고 들어온 건가?’
이게 합당한 결론이었다.
송파구는 아직 주철수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유흥업소 몇 곳을 운영하는 정도지, 건설업에는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그렇다는 건, 다른 조직이나 건설사가 움직였다는 말이다.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
“반장님은 괜찮으셔?”
“반장님도 몇 대 맞았슴돠.”
“뭐?”
저것들이야 때리고 맞는 게 일이니까 그렇다 쳐도 반장 아저씨까지 때려?
죄 없는 시민을 왜 때리고 지랄이야.
“어디서 나온 용역인데?”
“문창건설자재라고 등판에 적혀 있었심돠.”
건설자재라……. 이거 안 봐도 비디오네.
하도 이런 꼴을 많이 봐서 그런가? 눈앞에 그려지는 게 있었다.
건물을 하나 올릴 때, 수많은 비리가 발생한다.
공시 입찰 비리, 개발 비리, 분양 비리 등.
이게 건설 초기에 조폭들이 수익을 갈취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비리 없이 합법적으로 건설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조폭들은 다른 방식으로 돈이 나올 구멍을 찾는다.
그게 바로 건설자재다.
철근, 콘크리트, 타일, 합판 등…….
건물에 필요한 것들을 건물주에게 강매하는 방식을 취한다.
누가 보면, 당연히 들어가야 할 철근, 콘크리트 같은 것들을 왜 강매라고 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애초에 품질이 다르다.
깡패 새끼들이 제공하는 건설자재는 B급 자재로 취급될 정도 형편없는 것들이고, 제대로 된 품질 검사도 안 받은 것들이다.
그러니, 건물주 입장에서 좋아하겠어? 싫다고 하지.
용역 업체가 찾아와 깽판을 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우리 자재를 써라!’와 ‘싫다!’가 팽팽하게 이어지다가 행패를 부리며 공사를 중지시켜 버린 거였다.
건설 공사는 하루하루가 다 돈이다.
미뤄질수록 마이너스가 나는 거고, 이걸 조폭들도 알고 있다.
“내일도 오겠네.”
“예?”
한 2, 3주는 계속 와서 공사를 못 하게 방해하겠지.
그래야 건물주가 두손 두발 다 들고 항복할 테니까.
“문창건설자재라고 했지?”
“아……. 옙. 행님.”
“알겠다.”
간단히 답하고 셋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10만 원을 꺼내서 주었다.
“나가서 고기 사 먹고 들어와서 얼음찜질하고 자라. 내일은 출근 안 해도 된다.”
“해, 행님.”
감동의 눈빛을 지은 덩치가 묻는다.
“행님. 조직을 움직이실 생각이라꼬예?”
“나……. 조직 없다니까.”
이것들이 몇 번을 말해 줘도 안 믿네.
“아무튼, 고기 먹고 자. 내가 평화롭게 해결해 둘 테니까.”
아주 평화롭게.
뭐, 상대도 평화로울지는 알 수 없지만.
***
선빵필승! 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가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상태에서 싸우면, 아무리 내가 일당백이라고 해도 무리다.
하지만, 방심하고 있는 틈을 이용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장갑은 챙겼고.”
징이 박혀 있는 장갑이 내 주먹 위에서 번쩍였다.
“장비도 이 정도면 충분하고.”
셔츠 안에 있는 방검복과 허리춤에 꽂힌 삼단봉.
이 정도면 양아치들 교육하기에 충분하다.
벌컥.
아침 7시. ‘문창건설자재’의 문을 열었다.
“어이. 여기 아무나 들어오는 데 아니야. 나가.”
한 놈이 상투적인 대사를 뱉었다.
난 그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 내부를 둘러봤다.
“이게 무슨 회사라고…….”
흥신소 같은 곳에 소파 몇 개가 있고 안에는 시커먼 깡패 놈들이 있다.
적어도 건설자재라는 이름을 쓸 거면 내부에 건설자재 견본이라도 가져다 놓든가.
아니면, 대충 돈 주고 만든 기업인 상 같은 거라도 전시해 두든가.
이건 뭐, 그냥 나 조폭 소굴이요. 하는 꼴이다.
“누구냐니까. 이 새끼야.”
“이게 다야? 아니면 더 올 거야?”
“뭐?”
“깡패 일곱 명이 다냐고?”
“이 새끼 보게. 너 어디서 왔냐? 어디 식구야?”
“나 식구가 없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아야.”
“하! 이런 어이없는 새끼를 봤나?”
퍽!
다가오는 놈의 턱을 갈겼다.
그러게, 올 거면 가드라도 올리고 오지. 겉멋만 들어서는……. 쯧.
“사장은 출근했냐?”
“……?!”
한 놈이 기절하고 내가 태연히 물어보자, 소파에 있던 놈들이 황당한 눈을 떴다.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겠지.
물어본다고 답해 줄 놈들도 아닐 테고.
“어디 보자.”
사장실 안쪽을 보니 불이 꺼져 있다.
아직 출근 전이구나.
대가리가 안 왔으니 깡패 놈들도 다 안 왔다는 걸 테고.
끼릭.
난 정문으로 가서 문을 잠갔다.
다구리에 장사 없다고 나도 이런 놈들이 수십 명이 한꺼번에 덤비면 어쩔 방법이 없다.
그러니, 선빵필승을 노리는 거다.
“자. 매 맞을 시간이다.”
“이……. 미친 새끼가……!”
소파에 앉아 있던 깡패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래. 시작하자.
내가 친절하게 바닥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 줄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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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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