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제가 나이가 더 많지 않나요? 혹시 몇 살입니까?”
우재성의 나이 공격에 난쟁이가 머뭇거렸다.
“올해로 스물하난데…….”
“오우. 세월을 정통으로 맞으셨나 보네.”
“예?”
“일단 나이는 제가 더 많네요. 저도 존중하는 의미에서 선배라고 부를 테니, 선배도 저를 존중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난쟁이는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렇게 봐도 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단다.
서열 정리. 학교 다닐 때 항상 하던 거잖아?
내가 웃으면서 방관만 하자 난쟁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햄.”
“예?”
“재서이햄!”
“햄?”
고개를 갸웃거리는 우재성에게 깊은 뜻을 알려줬다.
“경상도 사투리로 형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슬슬 가서 일이나 마저 하세요. 둘 다.”
훠이훠이.
“그럼 마저 일하러 가겠심더.”
“조만간 보고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오, 이제 이주혁 씨가 아니네요?”
“계약서 썼으니까요.”
비스트 갱을 일망타진해 준 대가로, 우재성의 부모님에게 말을 흘렸었다.
그래서 원래 우재성이 말했던 3년에 2년을 추가해, 총 5년 동안 우재성을 밑에서 굴릴 수 있게 만들었지.
-재성아. 은혜를 입은 분인데, 그래도 5년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
-그래. 그리고 네 꿈을 이루려면 학위보다 이주혁 대표님과 일하는 게 나을 거야. 한국 가서 많이 배우렴.
-……예?
부모님의 말을 듣던 우재성의 어이없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좋습니다. 이제 둘 다 가 봐요. 전 잠깐 외출입니다.”
“어디 가시는데예. 같이 갈까예?”
“경찰 만나러 간다.”
내 말에 난쟁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가서 맡은 일 마무리 하고 있어. 이주 뒤에 큰 건 하나 있으니까, 그전까지 급한 거 다 마무리해야 돼.”
“아, 알겠심더.”
둘을 사무실에서 내보내고, 나는 커피믹스를 하나 더 뜯은 뒤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잠깐 신경을 끄고 지내던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송태석 과장님. 오랜만입니다?”
***
다음 날, 서울강남경찰서 앞.
강남서 소속 형사과 과장, 송태석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후…….”
이주혁.
처음에는 경찰에 협조하길래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이상했다.
전 서장의 비리가 담긴 사진을 넘겨 주고 가질 않나, 심지어 그 비리는 다른 검사가 터뜨렸다.
게다가 대기업과 연계해 민간 재단을 세우기까지.
이건 이주혁이 경찰과 검찰, 재계까지 손을 벌리고 있다는 뜻이다.
‘대체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네.’
안 그래도 원래 상사였던 박민구가 서장 자리를 먹더니, 갑자기 돌아 버렸는지 강남파를 소탕한다고 경찰 인력을 움직이는 탓에 정신이 없었다.
강남파 언더커버 작전도 송태석이 어떻게든 밀어붙여서 진행된 거지, 원래는 주철수 잡을 생각도 없던 양반이다.
그러다 실적을 좀 챙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본인도 언더커버 후보를 데려왔었다.
‘역겨운 놈.’
끼익-.
담배를 밟아 끈 송태석 과장이 주차장에 멈춘 차로 시선을 돌렸다.
탁.
“나와 계셨네요?”
차에서 내린 이주혁이 웃으며 다가왔다.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일단 수락하긴 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으니 문제였다.
송태석 과장은 이주혁이 태연하게 내미는 손을 차가운 눈빛으로 보며 물었다.
“왜 보자고 한 겁니까?”
“저번 일 때문에 좀 껄끄러운 건 알겠는데, 중요한 일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 만나 뵙자고 했습니다.”
그때의 협박은 신경도 쓰지 않는 건지 이주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어디서 이야기할까요? 잠깐 카페라도…….”
“그냥 여기서 합시다.”
“예, 뭐 상관없으시다면 저야 좋죠. 송 과장님. 곽환성이라고, 아시죠?”
곽환성. 은퇴한 거물 조폭으로, 주철수와 꽤 복잡한 관계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전국의 조폭들이 모이는 생일잔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보통 이런 행사에서는 서로 마주친 조폭들이 무슨 돌발행동을 보일지 모르기에, 경찰도 인력을 동원해 엄중히 감시하곤 한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경찰 인력 최대한 줄여 주십쇼.”
“?”
더 투입해도 모자랄 판에 인원을 줄이라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립니까?”
“주철수가 올 겁니다.”
“그게 무슨…… 설마?”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넘어가더라도, 주철수가 나타난다면 체포해야 할 것 아닌가?
송태석 과장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이주혁을 바라보자, 그가 이전의 그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찰 인력만 정리해 주십시오. 주철수, 그놈은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
병가 중인 서해결 검사는 병원에서 나왔다.
차 창문 파편에 긁힌 얼굴의 상처. 흉터가 남지 않으려면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했다.
“후…….”
이번 일로 좀 쉬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휴가를 즐길 순 없었다.
배성복 전 서장 구속과 납치 사건으로 서해결 검사의 몸값이 올라간 지금 더 일해야 했다.
그래서 영향력을 올려야 혹시 모를 나중의 수사 압박에 대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서해결 검사는 수리를 마친 세단의 문을 열었다.
‘보상받아서 다행이지.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
탁.
운전석에 몸을 들이고 문을 닫았다.
그때,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
“……!”
서해결 검사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무슨…….”
다시 시선을 들자, 창문 바깥에서 이주혁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서해결 검사가 문을 달칵 열고 내렸다.
“……이주혁 씨.”
“아이고. 죄송합니다. 안 좋은 기억도 있는데, 제가 배려가 부족했네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뭐, 그냥 이 근처에 돌아다니다가 검사님이 보여서요.”
“이 근처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니 이주혁이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잠깐 이야기 가능하신가요?”
“네. 뭐…… 명목상 휴가 중이기도 하고, 시간은 충분합니다.”
“잘됐네요. 그럼 조용한 데로 가시죠. 근처 카페 같은 데는 듣는 귀가 좀 많고…….”
“제 사무실로 가시죠.”
그 말에 이주혁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디 사무실이요?”
“제 직장 말입니다.”
“……설마, 중앙지검이요?”
***
어쩌다 보니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다.
내가 살다 살다 검찰청에 와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1층 로비에는 정장을 쫙 빼입은 검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계구역 용역들 증언은 받아 냈어?”
“예. 조태수라고, 강남파 간부급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현재 행방불명…….”
음. 다들 분주한 게, 뭔가 함부로 말을 걸 수가 없는 분위기네.
나는 조용히 서해결 검사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달칵.
“앉으시죠.”
“예.”
사무실 중앙의 소파에 앉자, 문을 잠근 서해결 검사가 다가와 물었다.
“커피 괜찮으십니까?”
“아, 예. 좋죠.”
탁.
서해결 검사는 내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검사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 예. 꿰맨 데는 거의 다 아물었습니다.”
“고생하셨겠네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어루만지던 서해결 검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절 찾아오신 겁니까?”
“말씀드리기에 앞서, 검사님께서 저를 믿어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다짜고짜 믿으라고 하셔도…….”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서해결 검사는 절대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과는 타협하지 않는 양반이다.
아직도 눈빛에서 나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검사님. 저에 대해 어디까지 조사하셨습니까?”
“음.”
“의심할 만한 건덕지가 있던가요?”
“…….”
서해결 검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
파도 나오는 건 없었겠지. 전생이면 몰라도, 난 지금 전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그래서 더 믿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네.
사실 지금까지 내 행보는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십 대 초반에 수천억 자산가에다가, 강남파만 마무리하면 서울의 큼직한 사업들을 다 흡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무슨 생각으로 사는 놈인가 싶어 의심하셨겠지만, 캐봐도 나오는 게 없으니 의문이었겠죠. 확신을 가지지 못하신 것도 이해합니다.”
서해결 검사는 미간을 좁힌 채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서두가 긴가 싶겠지.
“그런데 검사님. 주철수,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범죄 척결을 원하는 서해결 검사로선, 지금까지 서울의 범죄율을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주철수를 꼭 구속하고 싶을 것이다.
내 입에서 나온 이름에 서해결 검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주혁 씨. 저라고 주철수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바다스토리’도 주철수의 비자금을 위한 사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주철수를 체포하려 해도 겉으로 드러난 범죄 사실이 없어 불가능했습니다. 항상 조직원들을 이용해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꼬리를 자르면서 법의 심판을 피했습니다.”
“잘 알죠. 그 개새끼 특징입니다. 아주 뱀 같은 놈이거든요.”
뱀이라기보단 도마뱀이지.
잡히면 꼬리 자르고, 다시 걸리면 또 자르고.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 몇 년을 충성한 수하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는 꼴도 많이 봤다.
“그런데 이번에 주철수가 나타날 거라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숨어 있던 놈을 잡을 기회라는 거죠.”
“혹시, 주철수가 나타나는 장소가 곽환성의 칠순 잔칩니까?”
“맞습니다.”
이건 또 어떻게 알았대?
본인은 검사에 동생은 경찰이라 그런가, 이런 쪽의 정보가 엄청나게 빠르네.
“그런데 주철수가 거기 정말 오겠습니까? 경찰들이 쫙 깔려 있을 텐데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그에게 경찰 인력은 최소로 배치될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무조건 옵니다.”
이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그놈은 전생에서도 종종 도박 수를 던지곤 했으니까.
이게 맞나? 싶은 일에 뛰어들어 항상 좋은 성과를 냈었지.
마치 이번 생의 나처럼, 하는 일마다 이상할 정도로 운이 따르는 놈이었다.
“그리고 주철수가 왔을 때 제가 잡을 겁니다.”
“경찰에게 맡기면 되지 않습니까?”
“실탄을 들고 와도 힘들 겁니다. 많이 흩어지긴 했어도, 서울 곳곳에 주철수의 말이라면 눈이 돌아가서 따르는 놈들이 남아 있거든요.”
“그러면…….”
“제가 직접 잡을 겁니다.”
서해결 검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제가 믿어 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삼단봉이랑 공포탄으로 무장한 경찰보다는, 우리 열다섯 명의 직원들과 내가 주철수를 잡아 처넣기 더 좋을 거다.
우린 과잉 진압이 기본이거든.
“이주혁 씨.”
복수의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는 나에게 서해결 검사가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주철수를 파멸시키려는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이유? 당연히 있지.
“뭐…… 전생에 원수였다고 해야 할까요?”
“……?”
주철수. 탓할 거면 전생의 너를 탓해라.
그러게 나한테 왜 그랬어?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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