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이런 X팔…….’
배상훈은 동요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볼 안쪽을 혀로 눌렀다.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그래. 가자고.”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큰 덩치의 남자가 천으로 둘러싼 길쭉한 무언가를 매고 있다.
‘경호실장’이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직접 보니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거의 부대원들과 맞먹을 정도로 단련된 육체에, 사람을 몇 명이나 담갔는지 모를 정도로 눈빛이 서늘했다.
그리고 경호실장이 데리고 온 인원. 거의 백 명은 될 것 같았다.
배상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주철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사장님.”
“음?”
“이 인원을 다 데리고 가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이러면 곤란하다.
이주혁이 데리고 오는 인원은 많이 잡아도 스물이 넘지 않을 거다.
아무리 훈련된 녀석들이라도 이 정도의 물량이라면 상대하기 어렵다.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도 대화하러 가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많이 데려가면 오해를…….”
“대화?”
주철수가 피식 웃었다.
그 실소에 배상훈은 일이 꼬였다는 걸 느꼈다.
자세한 작전의 진행은 듣지 못했지만, 곽환성과 만나기 위해 칠순 잔치에 참여한 주철수를 족칠 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철수가 대동하는 병력이 많으면 이주혁의 작전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배상훈은 현재 주철수의 따까리. 뭐라 말을 얹을 급도 아닐뿐더러, 의심을 받고 있는 상태다.
배상훈은 결국 차에 오르는 주철수를 지켜보기만 했다.
“팀장님. 타십쇼.”
“어.”
탁.
팀원이 운전하는 차에 오른 뒤 주변을 돌아봤다.
주철수가 탄 차를 중심으로 수십 대의 세단이 차례차례 대로로 나가고 있었다.
부릉-.
“하.”
한숨을 푹 내쉬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팀원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상훈이 형님. 얼굴이 별로 안 좋으신데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
“그런 거 안 키운다.”
“에이. 혹시 긴장하셨습니까?”
“긴장은 무슨 긴장…….”
배상훈은 순간 차 안에 있는 놈들을 다 처리하고 주철수까지 담가 버려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안 되지.’
애초에 죽이려면 진작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주혁이 암살을 지시하지 않은 건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일 거다.
주철수에게 뭔가 얻을 게 있거나,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거나.
어쨌든 이주혁과 만나기 전에 죽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병력을 끊어먹고 도망가는 것보단, 이주혁의 본대와 합류해 같이 싸우는 게 낫다.
‘썅……. 나도 모르겠다. 신호 받으면 전부 대가리 깨 놓으면 되겠지.’
배상훈은 잠시 후 있을 개판을 대비해 피로한 눈을 감았다.
‘이 짓도 이제 끝이구만. X발……. 성과금 받으면 바로 집부터 산다…….’
.
.
차에서 내린 주철수를 보고 뒤따라 내렸다.
배상훈은 빠르게 걸어 주철수의 뒤에 나란히 섰다.
‘이 새끼들은 또 뭐야?’
경호실장 외에도 좀 칠 것 같은 놈들 몇이 배상훈과 함께 주철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설마 이놈들이 직속 경호대인가.’
배상훈이 관리하는 1팀과 같은 경호팀과는 달리, 오직 주철수의 호위만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직속 경호대.
주철수가 직접 뽑고 경호실장이 훈련시키는 놈들이라, 대외 활동만 없이 상당한 강자라고 소문이 도는 놈들이다.
‘경호실장 말고는 다 일대일로 붙을 만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호실장을 제외하곤 부대원들이 일대일로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백에 가까운 인원이 예식장으로 우르르 몰려가자 주변의 시선이 몰렸다.
예식장 건물 앞에 옹기종기 모여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던 깡패들이 주철수를 알아보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마 저거…….”
“주철수 아니여?”
주철수는 행렬의 맨 앞에 서 당당하게 식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깥에 있던 깡패들과는 달리 로비에는 나름 좀 칠 것 같은 놈들이 있었다.
그중 몇 놈은 표정을 굳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르륵-.
“주철수?”
“주철수가 왔다고?”
로비에서 두툼한 돈 봉투를 함에 넣던 깡패 하나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덩치, 돼지라고 부르는 녀석들을 합친 뒤 20년 정도 지나면 저렇게 될까.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그 둘과 전혀 달랐다.
사선을 지나온 리더의 느낌. 마치 떡대가 한 두 배로 커진 주철수를 보는 것 같았다.
“어이. 주철수.”
“허동팔?”
허동팔이라. 아마 대구 쪽에서 활동하는 조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허동팔이라 불린 덩치는 주철수를 내려다보며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이 X벌 새꺄. 니가 무신 염치로 여를 찾아오노.”
“내가 오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지?”
“이 씹팔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가……!”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은 허동팔을 보며 주철수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눈도 못 마주치던 똥파리 새끼가 많이 컸네.”
“뭐?”
“뇌까지 똥으로 가득 차서 사리 분별이 안 되나?”
주철수의 뒤에 서 있던 경호대가 옆으로 펼쳐 섰다.
다다다-.
“좆철수. 함 해 보잔 거제?”
보통 사람이라면 위압감을 느낄 만한 상황에도 허동팔은 쫄지 않고 팔을 걷어붙였다.
드러난 맨손과 팔에는 깊게 난 흉터들이 가득했다.
배상훈이 자기도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식장 쪽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
“……!”
휠체어에 탄 노인.
그가 나타나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큰행님. 제가 정리할 테니 들어가 계이소.”
“동팔아. 비켜 줘라.”
“예? 행님. 이 새끼를 왜…….”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
노인이 손짓하자, 뒤에 있던 남자가 휠체어를 주철수 쪽으로 밀고 갔다.
최동팔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만큼 노인을 믿는 건지 더 이상 만류하지는 않았다.
배상훈은 노인의 눈빛과 분위기를 보고 그가 누군지 눈치챘다.
‘곽환성이구나. 주철수를 키웠다던.’
주철수에게 가까이 다가온 곽환성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정말 주철수가 그를 작업했다면 나올 수 없는 미소였다.
‘뭐지?’
배상훈의 의문과 함께 곽환성이 손을 내밀었다.
“철수야. 와 줘서 고맙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도 제대로 안 나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담담하게 대답한 주철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괜찮으시다면 단둘이 대화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겠지.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던데.”
배상훈은 주철수의 말에서 그가 여길 찾아온 목적을 눈치챘다.
‘도움을 요청하러 온 건가?’
하지만 곽환성이 주철수를 도와줄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더 있는 듯했다.
허동팔이 이를 갈며 주철수를 노려봤다.
“X벌럼이 되도 않는 수작질을……!”
“철수야.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들어가자.”
“그러시죠.”
우르르-.
주철수 뒤로 수십 명의 인원이 뒤따랐다.
그걸 본 곽환성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저 친구들이 다 들어가면 식장에 설 자리도 없을 것 같은데.”
“경호대랑 팀장들만 따라와.”
주철수의 말에 경호실장을 포함한 직속 경호대와 배상훈, 팀장들만 뒤를 따랐다.
꽃과 향초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식장 안으로 들어서자, 원탁에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깡패들이 벌떡 일어섰다.
“주철수?”
“저놈이 여기 왜 와?”
“하. 여전하네.”
곽환성이 손을 들어 깡패들을 진정시킨 뒤 손짓했다.
“앉아, 앉아.”
아직 잔치 시작 전인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곽환성이 원탁에 자리를 잡았다.
그 맞은편에 주철수가 앉으려던 순간, 옆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철수 사장님?”
배상훈은 속이 철렁하는 걸 느끼며 옆을 홱 돌아봤다.
“이 미친 새…….”
튀어나오려는 욕을 힘겹게 눌러 삼켰다.
주철수를 부른 건, 정장을 쫙 빼입은 이주혁이었다.
“……?”
옆을 돌아본 주철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봤다는 눈빛으로 입을 떡 벌리고 중얼거렸다.
“……이주혁?”
이름이 불린 이주혁이 특유의 사람 짜증 나게 할 때마다 짓는 미소를 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내가 뻔뻔하게 말하니 주철수가 넋이 나간 얼굴로 날 훑어봤다.
그래. 대체 이 새끼가 여길 왜 왔나 싶을 거다.
깡패들 사이에 서 있는 배상훈도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기습공격을 할 줄 알았겠지.
“주 사장님. 언젠가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무슨 꿍꿍이지?”
“꿍꿍이라뇨. 통영에서 작은 사업을 하나 하려는데, 주 사장님한테 개인적으로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혹시 잠깐 대화 좀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입꼬리만 올리며 얘기하자, 주철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대화 나누고 천천히 들어오거라. 애들한테는 내가 설명하마.”
곽환성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으로는 내 경지를 가늠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자기도 한때 주먹패였다 이건가? 내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는지 순간 눈빛에 호승심이 감도는 게 보였다.
척.
주철수를 따라오려던 경호실장을 놈이 손을 들어 막았다.
“대화만 나누고 올 거다.”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여기서 대기해.”
“예.”
이상해진 분위기에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다.
주철수와 마주 보고 있는 내가 누군지 궁금한 눈치인 것 같은데, 아마 곧 알게 될 거다.
“가지.”
한 마디를 남기고 걸음을 옮기는 주철수를 따라갔다.
놈은 왼쪽 복도로 들어가 빈방으로 들어섰다.
밀폐된 공간이라.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내 전문 분야인데 말이야.
드르륵-.
“들어가지.”
“곽환성이 돈이 많은가 보네? 이런 최고급 연회장에서 칠순 잔치도 하고.”
“…….”
“딱딱하긴. 알았어. 들어갈게.”
방 안은 침대와 함께 호텔 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여유롭게 내부를 슥 둘러보니 주철수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이주혁.”
“음?”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대체 사사건건 내 비즈니스를 방해하는 게 어떤 놈인지 궁금했거든.”
“보니까 어떤데.”
툭.
재킷 단추를 푼 주철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자리에서 죽여야겠다.”
“미친 새끼.”
주철수가 직접 싸우려고 나서는 건 처음이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도 누군가와 치고받고 싸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뭐, 고작 돈만 굴려서 서울 최대 깡패 조직의 수장이 되진 않았겠지.
소문만 무성하고 검증된 게 없으니, 이참에 한 번 구경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일대일을 할 순 없었다. 아직 물어볼 게 남았거든.
“아니 뭐, 날 조지고 싶은 심정은 이해해. 근데 나도 물어볼 게 있어서. 조금만 있다가 하자고.”
“?”
전생에서 궁금했던 건 다 해소하고 끝내야 하지 않겠어?
“경찰에 사람 심어놨지? 몇 명이나 있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다 알고 있어 이 새끼야. 배성복, 김성우. 얘네 말고도 많잖아? 그리고 경찰에 취직시킨 놈도 있잖아.”
주철수는 내가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거에 놀랐는지 표정에 금이 갔다.
습. 근데 전생에서 내가 경찰인 걸 알고 찾아 조졌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지금의 주철수가 알 리가 없으니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나중에 감방 면회 가서 천천히 물어보고, 제일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봐야겠다.
“네 위에 있는 사람. 누구냐?”
“뭐?”
“너한테 지시를 내리는 놈. 누구냐고?”
“개소리하지 마라. 내 위에는 아무도 없어.”
“지랄하네.”
그럼 내가 들은 건 뭔데?
“그것도 아니면, 누가 예언이라도…….”
말을 꺼내다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순간 아주 불길하고 거지 같은 상상이 뇌리를 스쳐간다.
‘말단 조폭에서 재계 3위의 거물까지.’
주철수는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하는…. 아니. 이룩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간다.
그게 만약, 내가 알 수 없는 모종의 누군가가 개입한 거라면….
“주철수.”
“……?”
“혹시, 진짜 누가 너한테 미래라도 알려 주는 거냐?”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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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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