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08
107화
주철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미친놈이 맞았군.”
말은 저렇게 하지만, 순간 떨리는 놈의 동공을 확인했다.
내 말이 정확하진 않아도 뭔가 찔리는 게 있단 소리지.
“흐흐.”
음흉한 미소를 보내 줬다.
그러자 주철수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맨손이냐?”
“어. 너도?”
“자신이 있나 보군.”
펄럭.
주철수는 재킷을 벗고 소매 단추를 푼 뒤 걷었다.
여기서 제대로 해 보자는 건가?
나도 겉옷을 벗어 손에 들었다.
“주철수. 너 싸움 잘하냐?”
“?”
“한 번도 나서서 싸운 적 없잖아.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면서 부하들한테 다 짬 시키던데, 나랑 일대일로 붙어도 괜찮겠어?”
“정신 나간 새끼.”
꾸득.
주철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난 네놈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칼을 잡았다.”
“그럼 뭐해? 지금은 다 늙어 빠졌는데.”
“뭐……?”
“맞잖아. 네가 뭐 좀 강했다고 쳐.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 우리 아버지보다 늙어 보이는구만. 너무 과거의 영광에 갇혀 있는 거 아니냐?”
내가 계속 히죽거리며 나오는 대로 뱉어 대자, 주철수가 한 건 잡았다는 듯이 씩 웃었다.
“우리 아버지라니? 네 아버지는 죽었지 않나?”
“하! 가족까지 건드리다니. 이거 아주 악질적인 놈이네.”
나는 놈의 웃는 면상에다 대고 입꼬리를 더 올렸다.
“나도 반격하고 싶은데, 누구하곤 다르게 난 가족은 안 건드리는 사람이라.”
“…….”
“그래도 너 좀 그렇다. 어떻게 갈 곳 없던 널 거둬 준 큰형님을 보내 버릴 수가 있냐, 이 배은망덕한 개새끼.”
“개소리.”
“맞잖아. 네가 곽환성 작업 친 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 내가 아는 기자한테 소문냈거든. 지금쯤 기사도 났을걸? ‘강남파의 주철수, 모시던 보스마저 병신으로 만들다…….’”
주철수가 무섭게 나를 노려봤다.
“아가리, 적당히 놀려라.”
“아가리도 놀리고 너도 놀릴 건데?”
흠. 이렇게까지 도발하면 그래도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을까 했는데, 주철수가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전생에서도 어지간하면 침착하던 놈이라 그런가, 잘 통하지 않네.
조금 더 괴롭힐 걸 그랬나?
하지만 내가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린 건지, 아니면 방심한 건지 주철수는 여기서 정말 나와 붙으려는 것 같았다.
“찢어 죽여 주지.”
그 말과 동시에 주철수가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힘들 텐데?”
그래. 역시 우리 같은 부류는 몸의 대화가 편하다.
***
이주혁과 주철수가 떠나고, 예식장은 침묵에 잠겼다.
곽환성은 중앙으로 휠체어를 끌고 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이거, 분위기가 영 이상해졌구나. 다들 걱정하지 말고 마저 먹어라.”
“예.”
“예, 큰형님.”
멈춰 있던 조폭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다들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환성파를 배신한 주철수가 온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그놈이 젊은 누군가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
“허, X벌럼이. 잔치 끝나면 죽여 버릴라 캤는데…….”
예식장 입구에 서 있던 허동팔이 두꺼운 팔로 팔짱을 꼈다.
“그라고 큰행님이 말씀 중이신데 웬 기생오래비 같은 놈이랑 자리를 비워?”
허동팔은 불만스레 중얼거리다 한 남자를 발견했다.
“음?”
정장으로도 가리지 못한 근육질의 남자, 라세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철수를 따라온 경호실장이, 두 사람이 사라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 본 까닭이었다.
슥.
“어이.”
“?”
라세흠이 경호실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뒤로 돌아.”
“비키지.”
차가운 경호실장의 눈빛을 본 라세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쪽으로 지나가려면 나한테 허락 맡고 가라.”
우르르-.
작전팀과 후배 3인방도 라세흠의 옆으로 쭉 늘어섰다.
이주혁과 주철수. 그리고 나머지 깡패들. 이 두 무리를 나눠버린 것이다.
명백한 의도가 담긴 이들의 행동에, 경호실장의 흉터가 진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장님과 우리의 합류를 막겠다는 건가.’
경호실장은 뚫고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매복이 있는 게 아닌 이상, 그 애송이에게 당하실 일은 없겠지.’
척. 척.
경호실장의 뒤로 주철수의 직속 경호대가 섰다.
모두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기세가 흉흉했다.
경호대 중 성정이 급한 하나가 라세흠을 향해 으르렁댔다.
“어이. 니들은 뭔데 감히 누구 앞을 가로막는 거냐?”
입을 연 경호대원의 수준을 가늠해 본 라세흠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개가 짖나? 어디서 멍멍이 소리가 들리네.”
“뭐? 이 새끼가.”
어차피 주철수의 적이니 눕혀야 될 놈들.
경호대원은 본보기를 보여 줄 요량으로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경호실장이 손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아서라. 네 상대가 아니다.”
그 말에 라세흠이 히죽거렸다.
“그래. 좀 아서라 이 새끼야.”
“……대장. 이렇게 기다릴 거요?”
“사장님이 나오실 때까지 대기한다.”
주철수가 지금 대화 중인지 싸우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정해져 있다. 그 누구든 주철수 사장이 질 일은 없으리라. 경호실장은 그리 굳게 믿었다.
다만 입 밖으로 내뱉은 말과는 달리, 틈이 생기면 언제든지 진입할 생각이었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혹시 총이라도 꺼내면 큰일이니 말이다.
그때, 라세흠이 손을 휙휙 저었다.
‘음?’
미간을 좁힌 경호실장의 눈에, 단둘이 사라진 쪽으로 몸을 돌리는 놈들이 보였다.
라세흠이 경호실장을 노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연장 가지고 있지? 가서 도와줘.”
“예, 부장님.”
“흐흐. 오랜만에 내 리사가 피 맛을 보겠어…….”
심지어 웬 또라이 같이 생긴 놈은 너클을 차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경호실장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이러면 어쩔 수 없이 전면전이다.
조금만 시간을 벌어주면 주철수가 놈을 처치하고 올 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경호실장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많이 데려가 봤자 사장님한테는 안 될 거다.”
“음?”
“사장님이 사업 수완만으로 강남파를 꼭대기에 세운 줄 아나?”
“왜. 좀 치는 놈이냐?”
“강남파를 세우고 ‘정점’이라는 별호를 얻으신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강자시다.”
“풉.”
라세흠이 빵 터졌다.
“별호 이러고 있네. 무슨 무협지야? 그럼 넌 뭐였는데. 주철수의 개, 그런 거였냐?”
뚜둑.
목을 꺾으며 라세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정점이고 뭐고, 너네는 여기서 다 뒈질 거다. 오케이?”
“더는 못 들어주겠군.”
경호실장이 천으로 감아 뒀던 물건을 꺼냈다.
척.
“일본도? 이거 미친 새끼네.”
“죽여 주마.”
“사춘기냐? 말투가 X발.”
스르릉.
칼을 빼 드는 소리에 식장 안의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
입구에 있던 허동팔을 포함해, 구 환성파의 원로와 간부들이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쉐끼가 여가 어디라고 연장을 끄내는 겨!”
“미친놈 아이가 이거.”
“어린 노무 새끼가…….”
턱. 턱.
다가온 거구의 허동팔이 시뻘게진 얼굴로 입구를 가리켰다.
“행패 고마 부리고 다 끄지라. 마지막 경고다이.”
하지만 경호실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 대원들에게 손짓했다.
“쳐라.”
그와 동시에 두 조직이 격돌했다.
콰앙-.
“…….”
“회장님. 어떡할까요.”
휠체어를 끄는 남자의 물음에 곽환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챙! 퍼억!
“죽여!”
“이 씹새끼들!”
“으아악-!”
이미 너무 커져 버린 상황. 이제 와서 저들을 막기에는 늦었다.
“일단 나가지.”
“예.”
“서장한테 직통으로 전화 넣어. 공권력이 필요할 것 같구만.”
“알겠습니다.”
곽환성은 굳은 표정으로 식장에서 사라졌다.
***
훅-.
날아오는 주철수의 주먹을 상체를 숙여 피했다.
그리고 옆구리를 노린 내 주먹을 주철수가 쳐냈고, 이어지는 뒤차기도 팔을 교차해 막아 냈다.
텅-!
“후.”
역시 서울의 절반을 거저먹은 건 아니란 건가.
한 걸음 밀려난 주철수가 몸을 낮추며 달려들었다.
콱!
“큽.”
태클을 거는 주철수의 어깨를 붙잡아 멈추고 무릎을 쳐올렸다.
그걸 손바닥으로 막은 주철수가 반대 손으로 내 허벅지 안쪽을 노렸다.
나는 무릎을 뒤로 뺀 뒤 주철수의 어깨를 옆으로 밀며 빠졌다.
“흐…….”
주철수가 잠깐 멈춰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도 잠시 숨을 고르며 주철수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태클과 그라운드를 메인으로 하는 그래플러도 아니고, 입식 타격을 주로 사용하는 놈도 아닌 것 같은데.
보통 싸움 좀 한다는 놈들 보면 루틴이 다 있다. 원투 다음 킥이라든지, 무릎 다음 주먹같이 말이지.
하지만 주철수는 개싸움으로 단련된 타입인지, 계속 합을 나누면서도 정형화된 루틴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애송이는 아니군.”
주철수의 말에 말없이 중지를 올려줬다.
솔직히,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놈이다.
무에타이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마종석 같은 경우는 그 무술 특유의 약점을 파훼하면 상대할 수 있다.
미국에서 조졌던 빅 조지처럼 큰 덩치를 믿고 달려드는 놈은 아웃복서처럼 상대하면 되고, 아귀처럼 태생적인 피지컬을 믿고 짐승같이 싸우는 놈은 기술로 빈틈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주철수는 유도 베이스인 것 같긴 하지만, 워낙에 여러 무술이 섞여 있는 탓에 예측할 수도, 맞춤형 상대법을 만들기도 힘들었다.
“입 털 여유가 있나 보네?”
“왜. 넌 여유가 없나?”
“없으면 말을 걸었겠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게 여유롭진 않았다.
주철수한테 내 패턴이 점점 읽히는 걸 느꼈다.
이 새끼, 아무래도 보는 눈이 좀 있나 보다.
‘너무 패를 숨겼나.’
회귀하고 나서 지금까지, 주철수의 눈이 닿는 곳에서는 일부러 피지컬만 이용해 기본기로만 싸웠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는데, 주철수는 내가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표정에 점점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저 면상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
이제 제대로 해 볼까.
나는 양손을 반쯤 편 채로 얼굴 앞에 올린 뒤, 무릎을 살짝 굽혀 자세를 낮췄다.
저놈 주먹을 보고 제대로 걸리면 위험하겠다 싶어 조금 몸을 사리면서 싸웠는데, 아무래도 끝을 보려면 난타전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내 팔이나 다리 하나를 주고 치명타를 날릴 순 있지만…… 그렇게 하면서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지.
몸을 낮추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탓-.
“훅.”
호흡을 빼앗는 타이밍에 정확히 들어가서 그런지 주철수의 반응이 조금 늦었다.
오른손 스트레이트. 주철수가 피하기 위해 상체를 틀었다.
하지만 이건 페이크다. 체중을 아래로 옮긴 뒤 그대로 왼발을 들고 회전하며 뒤꿈치로 찍어버렸다.
쩍!
“큭……!”
아래팔뼈 정확히 틀어박힌 공격에 주철수가 얼굴을 구겼다.
확 빨라진 속도에 당황했나 보네.
나는 그대로 템포를 살려 연속으로 발 공격을 이어갔다.
일방적으로 방어만 하던 주철수의 손이 순간 뱀처럼 날아들어 내 다리를 붙잡았다.
내 무릎을 단단히 붙잡고 발목을 꺾으려고 하길래, 그 방향으로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반대 발로 주철수의 머리를 노렸다.
후욱-!
“흡.”
주철수가 내 다리를 놓으며 황급히 무릎을 굽혔다.
좋아. 이대로 턱을 노린다.
착지하는 동시에 회전을 살려 주철수의 머리를 날려 버리려다, 반짝이는 뭔가를 보고 황급히 발을 회수했다.
촥!
“하.”
아래로 시선을 돌리니 길게 갈라진 바지가 보였다.
“X발. 자존심도 없냐?”
“……인정하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대라는 걸.”
사시미를 든 주철수가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칼을 든 게 본 실력이라는 거냐?
“그래, 이 새끼야.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라.”
뭐가 나오든 다 박살 내줄 테니까.
나도 찢어진 바지를 북 뜯어내고 자세를 잡았다.
지금부터 2라운드 시작이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