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11
110화
“후…….”
송태석 과장이 긴장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서장실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금부터 15년이 넘게 알고 지내던 사람의 뒤통수를 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영 불편하긴 했지만, 한쪽으로는 더러운 짓을 하던 놈이니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
‘벌써?’
사색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서장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송태석은 숨을 고른 뒤 안을 향해 말했다.
“송태석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와.”
덜컥.
서장실의 문을 여니 담배를 태우고 있는 서장이 보였다.
“송태석이.”
송태석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담배를 비벼 끈 박민구가 무섭게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이 개새끼야!”
박민구 서장이 송태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
“끅!”
“뭐, 연락이 안 돼? 이 X발놈아. 모르는 척, 얌전한 척하더니 공 혼자 세우려고 상관을 속여? 너 뭐 하는 새끼야?!”
“…….”
송태석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서장을 마주했다. 그러자 박민구 서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건 무슨 눈빛이냐?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민구 형님.”
박민구 서장은 송태석의 말에 깜짝 놀랐다. 직장에서 저런 호칭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송태석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뒷돈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뭐 이 새끼야?”
“그런데 그게 강남파일 줄은 몰랐습니다.”
“!”
서장의 당황한 표정을 본 박민구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동안 제가 발안한 작전들 다 재고한 게 그거 때문이었습니까? 언더커버도 흐지부지된 게 다 뇌물 때문이냔 말입니다.”
“이 새끼가 진짜…….”
“그리고 강남파한테서만 받은 것도 아니던데. 온갖 깡패 놈들 돈 싹 다 받아 처먹으면서 눈감아준 거, 몇 번인지 셀 수가 있어요?”
“야! 송태석!”
“대답해!”
격양된 송태석의 목소리에 박민구 서장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 이건 반역이야. 이 X발 새끼. 그동안 믿고 써 줬더니…….”
“반역은 지랄. 서장이 왕입니까?”
박민구는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전화기를 들고 거칠게 버튼을 눌렀다.
“이 새끼, 다시는 이 경찰 바닥에 발 못 붙이게 해 줄게.”
“전 서장의 비리, 누가 제보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너, 설마……?”
송태석의 의미심장한 말에 박민구 서장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 미친놈. 감히 내부고발을 해? 배은망덕한 새끼! 같은 경찰이라는 놈이……!”
“그게 제가 고발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됩니까?”
전화를 든 박민구 서장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씹어뱉듯 말했다.
“어, 김 팀장. 지금 바로……. 뭐?”
서장의 말이 끊겼다. 송태석은 그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지?’
전화 너머의 목소리를 듣던 박민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마치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은 군인 같았다.
그때, 송태석 과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음?”
확인해 보니 문자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송태석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내용을 읽어 봤다.
“……X발!”
그리고 이내 박민구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서장실을 뛰쳐나갔다.
***
주철수를 강남서에 처넣고, 해결소의 최용달에게 연락해 기자들 사이로 은근슬쩍 정보를 풀었다.
헤드라인은 ‘강남서 형사과장 송태석, 주철수를 체포하다!’ 정도 될까.
일단 조사 과정을 관계자도 아닌 내가 딱 붙어서 지켜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회사로 돌아왔다.
계획대로라면 작전을 마친 팀원들이 이미 도착해있겠지.
업무를 위해 고용한 프런트 직원에게 눈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애들은 좀 괜찮으려나.”
덩치, 돼지, 난쟁이. 이 셋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을 못 했다.
물론 부장님이랑 작전팀 녀석들이 케어해 줬겠지만, 그런 살벌한 대규모 싸움판에 끼는 건 처음이었을 테니까.
나는 회의실 층의 버튼을 누르고 벽에 기댔다.
“같이 갑시다.”
“하.”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던 순간, 누군가 손으로 문을 턱 잡았다.
익숙한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을 반겼다.
“왔냐?”
“드디어 복귀했다. X발아.”
배상훈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어디 갔나 했더니.”
“패싸움 시작하자마자 튀었다. 경찰한테 걸리면 골치 아프니까.”
“잘했네.”
“다친 데는 없냐?”
“그럴 리가.”
문이 스르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약속한 거, 꼭 지켜라.”
“무슨 약속.”
은근슬쩍 모르쇠를 시전하자 배상훈이 눈을 뒤집었다.
“성과금! 이 새끼야. 성과금. 뒤질래?”
“장난이다 새꺄.”
“장난이 나와? 주철수 그 개새끼 죽여 버리고 싶은 걸 몇 번을 참았는데.”
“왜?”
턱.
배상훈이 벽에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그 쓰레기 새끼 하는 꼬락서니를 옆에서 한번 봐봐라. 십 년 넘게 따른 부하도 바다에 던져버리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
“음.”
전생에서 많이 봤었지. 자신의 조직원이라도 필요하다면 가차 없이 숙청해 버리는 놈이니까.
“어쨌든 수고했다. 일주일 안으로 통장에 꽂아 줄게.”
“하, X발…….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래.”
띵 소리와 함께 회의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아마 다 여기 있을 거다.
복도를 지나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안에선 이번 작전에 참여한 인원들과 우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통영 후배 셋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 반겼다.
대충 훑어보니 기스 몇 개가 난 것 같긴 한데, 다행히 크게 상한 곳은 없어 보이네.
“행님!”
“행님! 오셨네예!”
“늦으셨십니더.”
날 보고 인사하던 녀석들이 따라 들어오는 배상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상후이 행님?”
“돌아오신 깁니까?”
“그래. 복귀하였느니라.”
팀원 중 후배 녀석들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게 배상훈이었으니, 당연히 반가울 거다.
부장님과 팀원들도 웃으며 배상훈을 향해 달려갔다.
“이야, 배쌍이!”
“돌아왔구나?”
“축하한다!”
그리고 배상훈을 패기 시작했다.
누군가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면, 그 당사자에게 축하빵을 날리는 것.
부장님이 만든 우리 부대의 규칙이었다.
“아, 아악! X발롬들아!”
“밟아!”
“X바알! 다리! 다리!”
나도 슬쩍 껴서 허벅지를 몇 번 잘근잘근 밟은 뒤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후배 녀석들도 어쩐지 끼고 싶은 눈치다.
나는 녀석들의 엉망이 된 꼴을 보며 물었다.
“소감이 어때?”
내 물음에 난쟁이와 돼지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와. 말도 마이소. 칼이 요만큼 차이로 머리카락만 스치 갔다 아입니까.”
“행님. 동철이 임마가 5센치만 더 컸으도 뚜껑 따 있을 깁니다.”
들어보니, 정신없이 싸우다가 부장님과 경호실장 사이에 끼어들어 봉변을 당한 것 같았다.
“난쟁이라 다행이네.”
“그니까예. 진짜로 뒤질 뻔했십니더.”
셋 중에 가장 많이 다친 녀석은 덩치였다. 애들 말로는 가장 활약한 것도 덩치였다.
반팔을 입은 덩치의 팔에 붕대가 둘둘 담긴 게 보였다.
“팔은 좀 어떠냐?”
“영광의 상처지예. 빨간 약 좀 바르고 밴드 바르면 나을 깁니다.”
“다음에도 끼려면 헛소리 말고 치료 잘 받아라.”
“엇. 예!”
나는 후배들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기특한 새끼들.
“셋 다 잘 해줬다.”
내 말에 녀석들의 눈이 커지더니, 감격한 표정으로 눈물을 짜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더!”
민망하게 왜 이래?
난감한 상황에 눈썹을 긁적거렸다.
그때, 우재성이 나를 불렀다.
“대표님.”
“아, 우재성 씨.”
“저분은 원래 작전팀이셨습니까?”
내 뒤를 보며 묻길래 돌아보니, 어느새 축하를 빙자한 린치가 끝났는지 배상훈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네. 주철수 밑에 언더커버로 심어 놨던 녀석입니다.
“그렇군요.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습니다. 아,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예. 다행히 멀쩡합니다만……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계셨던 겁니까?”
“작전팀의 증언을 토대로, 이번에 체포된 조직원들을 정리 중이었습니다. 강남파 이외에도 잡혀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고 들어서요.”
오, 이건 좋네.
주철수와 일대일 중이라 바깥의 상황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는데, 우재성이 이렇게 정리해 주면 나야 편했다.
그런데 종이나 펜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사이에 다 외우신 겁니까? 전국 깡패 조직도를?”
“일단 수장과 간부들만 외워 놨습니다.”
우재성의 말에 어느새 내 주변에 몰려든 녀석들이 감탄했다.
“신기하네, 정말.”
“유학파는 다르다.”
“미국 출장 간 보람이 있네.”
“가서 제일 재밌게 논 양반이 뭐라는…….”
퍽!
한 녀석의 뒤통수로 부장님의 손날이 떨어졌다.
당연히 백기준이겠거니 하고 봤는데, 얻어맞은 건 녀석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안 보이네.
나는 라세흠 부장에게 백기준의 행방을 물었다.
“부장님. 기준이는요?”
라세흠 부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애들한테 들어 보니까, 누굴 추적하러 간 것 같은데, 아직 연락이 없네.”
“그래요?”
연락 두절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이런 중요한 작전까지 딴짓할 녀석은 아니기도 하고, 누구한테 쉽게 당할 녀석도 아니니까.
애초에 흔히 있던 일이다.
백기준은 작전 중간에 슬쩍 사라져서 혼자 이상한 짓거리를 하곤 했었다.
“태섭아. 어디로 가는지 봤어? 같이 나왔을 거 아냐.”
“어.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건너편 건물로 가던데. 마냥 기다려 줄 수 없는 상황이라 일단 복귀했어.”
누가 지켜보고 있었다고?
백기준은 감이 좋은 녀석이니, 정말 누군가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녀석이 아직 연락이 없는 건 의문이었다.
전투 대신 고문을 즐기는 변태 같은 놈이긴 해도, 어지간한 조폭이나 경호원 정도는 찜쪄먹을 수 있는 실력이다.
그렇다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둘.
“죽었거나, 연락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상대의 실력이 높거나.”
내 중얼거림에 라세흠 부장이 말을 덧붙였다.
“백기준 실력에 상대가 총으로 기습한 게 아니면 죽었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정말 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나 본데?”
고문, 암살, 저격뿐만 아니라 색적과 탐지에도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다.
아마 정말 감시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동의합니다. 우재성 씨. 주철수와 통화한 인물이 보냈을 확률이 높겠죠?”
“확신할 순 없지만…… 그렇습니다.”
“흠.”
일단 백기준의 생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철수의 인맥들을 끊어 내는 게 우선이니까.
서해결 검사에게 주철수가 다채로운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걸 뒷받침할 파일들을 넘겨주긴 했다.
그리고 이번 생에는 아직 우재성을 얻지 못했으니, 장부를 뒤져보면 불법 자금과 청탁의 증거도 속속들이 나오겠지.
하지만 이걸로 안심할 순 없다. 덕분에 주철수와 뜻을 함께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 버렸거든.
“다들 휴식하시고, 전 얼굴 봤으니 다시 갑니다. 우재성 씨는 제가 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먼저 최철호부터 족쳐 볼까.
고민하며 나가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송태석 과장의 전화였다.
혹시 주철수한테서 뭐라도 나왔나 싶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이주혁 씨?
“네. 혹시 뭐라도 나왔나요?”
-아뇨. 그게 아니라…….
그 순간, 전화 너머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주철수가 죽었습니다.
……뭐?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사고가 멈췄다.
그 순간,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에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당황했다.
“백기준?”
“꼴이 왜 이래?”
작전 이후 사라졌던 백기준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타났다. 다리도 절뚝거리는 게,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비틀거리는 백기준을 의자에 앉혔다.
“괜찮냐? 일단 치료부터 받아라.”
“됐어. 전부 내 피는 아니니까.”
손사래를 친 백기준이 말을 이었다.
“누가 보고 있는 거 같아서 염탐해 봤는데, 그 새끼가 구경만 하다가 누구한테 보고하는 거 같더라.”
“그래서 잡아서 캐내려고 한 거야?”
“그렇지. 생각처럼은 안 됐지만.”
백기준이 품을 뒤적거리더니, 그 안에서 피 묻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거 뭐냐? 너 경찰이었냐?”
뭐? 경찰?
갑자기 무슨 소리를…….
나는 구겨진 종이를 펴 적힌 글씨를 읽었다.
[이주혁. 1984년 4월 29일생. 언더커버 경찰. 강남파에 잠입.]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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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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