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
쿵쿵쿵!
“이리 오너라-!”
익숙한 그 집의 대문을 두드렸다.
끼익-.
“누구…… 어.”
얼굴에 밴드를 붙인 놈 하나가 문을 열다 날 보고 화들짝 놀랐다.
“너 이 새끼!”
“얻다 대고 새끼야. 비켜.”
끼익.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안에서 깍두기 두셋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또 귀찮게 하네.”
“귀찮으면 내가 해?”
“그럴 필요도 없는 애들입니다. 유선규! 또 네 수발드는 애들 다 병신 만들래?”
안쪽을 향해 한 말에 반응이 돌아왔다.
-들여보내라.
그 말에 우리 앞을 가로막던 놈들이 갈라졌다.
“진작에 이럴 것이지. 부장님. 밖에 애들 허튼짓 못 하게 감시해 줘요.”
“왜. 나도 들어가자.”
“얘기만 할 겁니다. 스트레스는 애들 훈련시키면서 풀어요.”
“씁. 원래는 너도 같이해야 하는데……. 이주혁이, 전역하고 뭔 짓을 했는지 실력이 더 늘었단 말이지.”
“저는 열외죠.”
라세흠 부장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투덜댔다.
“에이. 부르길래 뭐 재밌는 일 있나 해서 따라왔는데.”
“짜장면 사 드릴게요. 여기 괜찮은 중국집 있거든요.”
“그래? 좋지. 이번엔 중화요리 좀 제대로 먹어 보자고. 그때 그 킬러 새끼들은 중국집으로 불러 놓고 음식 대접도 안 해 줬잖냐.”
중화요리라. 부장님이면 얼마든지 사 드릴 수 있지.
“얘기 잘하고 와라.”
“네.”
탁.
현관을 넘어 들어가니, 또 바닥에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는 유선규가 있었다.
여전히 조폭이라고 하기엔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또 궁상맞게 혼자 먹고 있네. 네 따까리들은 밥 안 먹냐? 삼합회 블랙기업이네.”
“입 닫고 앉지.”
“아이고, 그래.”
상 맞은편에 앉자 유선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이번엔 또 뭐냐. 식사 시간마다 찾아오는 건 일부러 그러는 건가?”
“뭐 하나만 물어보고 갈 거다.”
“뭘 말이지?”
“왕후성.”
내 입에서 나온 이름에 라면을 한 젓가락 더 집던 유선규가 멈칫했다.
“서울로 넘어온다는 거, 너도 알고 있었잖아?”
“음.”
“그놈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 어떤 성격이고, 약점은 뭔지. 이런 거 있잖아.”
유선규는 코웃음을 치며 젓가락을 내려놨다.
“지금 나더러 같은 조직원의 정보를 팔라는 거냐? 건방이 도를 넘는군.”
“왜. 둘이 친하냐?”
“굳이 널 적대할 필요가 없어서 저번에도 그냥 보냈지만,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솔직히 사이가 그다지 좋다고 할 순 없어도 어쨌든 같은 삼합회다. 배신자는 즉결 처분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유선규를 보며 혀를 찼다.
역시 그냥 막무가내로는 한계가 있는 법. 나는 설득 수단을 꺼내 들었다.
“오케이. 인정. 배신은 안 되지.”
“그럼 꺼져.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앞으로 이렇게 찾아오지도 마라.”
“그런데 유선규. 왕후성도 그럴까?”
“……무슨 뜻이지?”
“알잖아. 그 새끼, 전 조직 큰형님이랑 동료도 담근 미친놈인 거.”
나는 유선규에게 현실을 알려 주기로 했다.
“네가 배신 안 한다고, 그 새끼가 널 동료로 생각하겠냐?”
***
그 시각,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
삼합회 홍콩 지부의 다른 이름인 명운(命運)제약의 전무, 왕후성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팅-.
“습……. 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왕후성의 오른팔, 양호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전무님. 어디부터 들르실 겁니까?”
“음?”
그 질문에, 왕후성은 창문 바깥으로 재를 털었다.
그리고 조수석 시트를 발로 차며 웃었다.
“새꺄, 당연히 밥부터 먹어야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아, 죄송합니다.”
“죄송은, 씨. 간만에 바다도 건너왔겠다, 맛있는 거나 먹자고. 안 그래도 내가 예전에 우리 싸장님한테 추천받은 가게가 있거든. 한국 음식을 기가 막히게 하는 데가 있다고.”
“그럼 그리로 이동하겠습니다. 혹시 가게 이름이 어찌 됩니까?”
“그, 무슨 요정이었는데……. 풍한? 풍요?”
왕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 아! 풍원! 풍원요정이었다. 거기 사장 접대가 참 좋다던데. 싸장님도 가서 만족했다더라고. 그 늙은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지.”
“풍원요정. 알겠습니다.”
“그래. 아오, X발. 배고프다. 빨리 좀 가자.”
“예.”
운전대를 잡은 수하가 속도를 높였다.
부앙-.
.
.
끼익-.
풍원한정식의 담벼락 앞에 왕후성의 차가 멈춰 섰다.
양호가 조수석에서 내려 뒷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끙……. 어우, 졸았네.”
눈살을 찌푸리며 선글라스를 쓴 왕후성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야……. 멋진데? 딱 늙은이 취향이야. 한국의 전통적인 느낌.”
양호와 수하들이 왕후성의 뒤를 따라 우르르 이동하자, 주변을 지나던 손님들이 눈치를 보며 비켜섰다.
“저 사람들 뭐야……?”
“깡패 아냐?”
왕후성은 활짝 열려 있는 입구의 발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계십니까-.”
한 발짝을 내딛자, 바쁘게 음식이 든 카트를 옮기던 여직원이 밝게 인사했다.
“아,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늘 하던 대로 손님맞이 멘트를 날리던 여직원, 강예원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누가 봐도 조폭같이 생긴 사람들이 우르르 가게 안으로 들어온 탓이었다.
하지만 강예원은 프로. 얼굴에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리고 흰색 정장을 필두로 한 남자들이 아직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말이다.
흰색 정장, 왕후성이 선글라스를 위로 슥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여덟 명인데, 자리가 있으려나?”
강예원은 시원하게 드러난 왕후성의 얼굴에 순간 혹했다. 조금 험악한 느낌은 있어도, 옛날 홍콩 배우 같이 잘생긴 외모였다.
저렇게 생긴 사람이 조폭일 리 없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며 강예원이 손짓했다.
“저기, 왼쪽 복도에 6번이라고 적힌 방으로 가시면 돼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주문받으러 갈게요.”
“그럽시다. 가자.”
우르르-.
여덟이나 되는 덩치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며 멀어졌다.
‘진짜 배운가? 한번 물어봐야겠다.’
마저 카트를 옮기려던 강예원은 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까, 깜짝이야!”
요 며칠 휴가를 다녀온 뒤 복귀한, SA시큐리티 직원이자 주방에서 일하는 정태섭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프라이팬을 휘젓고 있던 그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예원아.”
“네, 네. 오빠. 왜 그러세요?”
“6번 방 주문은 내가 받을게.”
“왜요? 갑자기…….”
강예원은 순간 번뜩이는 정태섭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닫았다.
못 보던 흉터가 생긴 그의 손에 시선이 닿은 강예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주혁이한테 문자 넣어. 여기 ‘참새’가 나타난 것 같다고.”
정태섭의 진지한 표정에 강예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트를 밀고 갔다.
“이것만 넣어 드리고요!”
“…….”
다급하게 가서 조심스레 방문을 여는 강예원의 뒷모습을 보던 정태섭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긴장한 얼굴로 왕후성이 들어간 방을 향했다.
‘저 사람들……. 품에 무기가 있다.’
또다시 풍원한정식에 불길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내 말을 듣던 유선규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잘도 입을 놀리는군.”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놈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동료들도 팔아넘기던 놈 아닌가?”
유선규가 잠시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고민이 많겠지. 삼합회 내에서 그놈의 입지가 작은 건 아니지만, 과거의 배신 행적 때문에 말이 나왔을 테니까.
“…….”
“너도 알다시피, 출세에 집착하는 놈이다. 돈벌이 수단을 삼합회에 그대로 갖다 바친 걸 봐도 그렇지.”
“그건…….”
“그 수전노 같은 놈이 서울에 온다. 강남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철수의 세력이 통째로 날아간 서울에. 강남파가 없으면 서울을 먹을 사람이 누가 있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은 쉽게 나온다.
인천의 야쿠자는 서울까지 넘어올 여력이 부족하고, 강남파의 위세에 눌려 있던 중소 조직은 서로 싸우기 바쁠 것이다.
여기, 성남에 기반을 둔 유선규는 차이나타운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며 세력을 유지하려는 놈이다. 서울의 중심으로 진출할 생각이 없단 소리지.
그럼 남은 건 서울광목파의 고광목과 내 SA시큐리티뿐인데, 이 둘은 협력 관계. 사실상 내가 조종할 수 있다.
“솔직히, 나도 서울의 뒷골목을 정리하긴 버거워. 우린 어디까지나 법의 경계 위에서 노는 거지, 마약같이 하드한 범죄는 발 들일 생각 없거든. 그러면 이 어둠의 사업들은 누가 접수할까?”
“……홍콩 지부의 자금과 세력을 데리고 온 왕후성이겠군.”
“그놈 성격이 어때. 기존의 조직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것 같나?”
“절대 아니지. 마약 유통과 장기매매 라인을 들여오기 위해 뒷골목엔 한동안 피가 흐를 거다.”
저 말대로다.
주철수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밤거리에, 새로운 미친놈이 등장하면 어떻게 될지는 뻔할 뻔 자.
“왕후성이 너라고 남겨 둘 것 같나?”
“흠.”
“아마 그놈은 강남지부를 만들려고 할 거다. 궁극적으로 서울을 싹 다 먹은 뒤 서울지부까지 키울 생각이겠지.”
그럼 여기서 문제.
“그 과정에서, 왕후성이 성남지부를 존속시킬까?”
“…….”
문제의 정답은 정해져 있다.
“놔둘 이유가 없지. 성남의 안정된 수입원들을 포기할 리가.”
“성남까지 흡수한다는 건가.”
“빙고. 그러니까 내 말은 뭐냐.”
목소리를 깔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스윽.
“왕후성의 정보를 넘겨. 그 새끼는 내가 박살내 줄 테니까.”
유선규는 헛소리니, 터무니없는 소리니 하며 비웃지 않았다.
이놈도 나름 체계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내가 최근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유선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놈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선생’ 놈 때문에 망설이는 거지?”
“……!”
유선규가 순간 흠칫했다.
“……거기까지 알고 있나.”
“삼합회와 협력하는 관계잖아.”
“네가 어떻게 그분을 알고 있는 거지?”
“영업 비밀이다.”
나도 확실하진 않았는데, 유선규의 반응으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선생 놈이 삼합회를 돕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더 빠르겠군. 안타깝지만, 왕후성에게 해가 될 만한 정보는 알려 줄 수 없다. 나도 그분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거든. 애초에 이렇게 너와 단둘이 만난 걸로 눈 밖에 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오케이. 그럼 왕후성이 어떤 놈인지만 말해 봐.”
더 이상 압박하면 궁지에 몰린 유선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이런 나의 말에 유선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흑견(黑犬), 일당백(一當百)의 야차(夜叉), 삼합회의 투견(鬪犬). 모두 왕후성의 별명이다.”
“거창하긴 한데, 전부 개가 들어가네.”
“그 말대로다. 그놈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야. 삼합회에 가입할 때, 장기매매 사업과 함께 뭘 가져왔는지 아나?”
유선규가 굳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삼합회가 벼르고 있던 중소 조직의 두목 셋과, 그 아래에 있던 서른 명의 머리를 바쳤다. 자기 손으로 직접.”
“…….”
……이거, 내 생각보다 많이 위험한 놈인데?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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