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2
011화
33명 중에서 20명은 병원으로 실려서 갔고 나머지는 지레 겁먹고 도망쳐 버렸다.
이른 아침에 벌어진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고, 나와 후배들은 ‘문창건설자재’ 2층의 불길을 잠재우고 사장실에 와 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무릎을 꿇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박문창 사장이 있다.
“열어.”
“이건 안 돼. 이러지 마.”
“난 분명히 기회를 줬어. 현금으로 6억 준비하면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거라고.”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우리가 뭐 했다고 6억을 줘?”
난 박문창 사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안 줄 수 있지. 너무 많은 돈이니 네고 좀 해 달라고 할 수도 있고, 돈이 없어서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할 수도 있어. 근데, 양아치 놈들 모아서 내 뒤통수를 갈기려고 계획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내가 모르고 들어갔어 봐. 나 맞아 죽었을 거잖아? 안 그래?”
“아, 아니야. 그냥 겁만 좀 주고…….”
“지랄하네. 겁주는 데 서른세 명이나 필요하냐? 막말로 사시미든 놈들 열 명만 있어도 쫄지.”
아! 물론, 난 아니다.
사시미를 들었든 쇠 파이프를 들었든 상관없다.
총이면……. 바로 도망가야겠지만.
“너 살인미수죄도 추가된 거야. 단순 폭행에서 특수 폭행. 거기다 살인미수까지. 법정가서 누가 잘했는지 판사한테 물어볼래?”
“그…….”
“너 폭행이나 협박으로 빨간줄 있지? 난 아니거든. 호적이 깨끗해. 그러면 판사가 누구 편을 들어줄까?”
“…….”
폭행 전과가 있는 사람은 법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전적이 있는 사람이 다시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건 쉽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도 경찰이었으니까 이 정도는 알고 있다.
“빨리 금고 문 열어.”
“…….”
이런 놈들은 은행을 못 믿는 성향이 강하다.
자칫 나쁜 일로 잡혀들어가면, 은행에 있는 돈은 바로 추징되니까.
영화에서 보면 나쁜 놈들이 사무실 책상 밑에 금고를 놔두는데,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딸깍.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박문창 사장이 금고를 열었다.
이야. 번쩍번쩍하네.
무슨 금덩어리를 이렇게 모아 놨냐? 재테크해?
현금도 원화, 달러, 엔화 골고루 모아 놨네.
돈은 굴릴 줄 아는 놈이구만.
“난쟁아.”
“예. 행님.”
난 난쟁이를 불러 금고 안을 가리켰다.
“돈은 이렇게 모아야 해. 하나로 집중시키지 말고 분산해서. 원화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달러와 엔화를 쓰고, 전 세계 경제가 폭락하면 금을 쓰면 된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번 주 안에 이해해서 검사 받긋습니다.”
“그래. 자세 좋아.”
난쟁이는 머리 굴리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몸만 쓰는 놈들하고는 다른 놈이라, 가르쳐 두면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애들아. 현금으로 12억 챙기고, 금덩이는 모두 몰수해라.”
“예! 행님.”
가방 두 개를 가져와 셋이 담기 시작했다.
하나는 현금. 다른 하나는 금.
애지중지하는 금고 안이 비어 갈 때마다, 박문창 사장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뀐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난 내 생명 보험금 타는 거니까. 네가 나 죽이려고 했잖아. 안 죽고 살았으니, 보험사에 생명 보험금 청구는 못 하겠고, 너한테서 받아 가는 거지.”
내가 말하고도 참……. 논리에 안 맞네.
“하…….”
“입 냄새 나니까 한숨 그만 쉬고.”
“…….”
“남은 현금하고 달러랑 엔화는 놔둔다. 이거 들고 이 바닥 떠라. 안 그러면 너…….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는다.”
뿌드득거리며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분하고 억울하겠지. 그런데, 너희 같은 놈들한테 당한 사람들이 더 화나고 억울해.
이를 갈던 녀석이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어디 족보야. 어디 믿고 이렇게 깝치는 거야?”
“효령대군파 42대손이다. 왜?”
“뭐? 이……. 미친…….”
“그러는 너는? 족보 있냐?”
반대로 되물었다.
이 근방에 족보 있는 조폭들은 싹 다 주철수 밑으로 들어갔다.
아니면, 와해당하고 사라졌든가.
그래서 이런 반달 놈이 활개를 치는 거다.
그리고 나도 설칠 수 있는 거고.
“서로 족보 까는 유치한 짓은 여기까지 하자. 우리 인연도 여기까지 하고.”
후배들한테 나가자고 손짓하고는 박문창 사장을 쳐다봤다.
“앞으로 내 눈에 보이지 마라. 난 내가 죽인 새끼 조문 가기 싫다.”
“…….”
적당히 협박하고 밖으로 나왔다.
***
.
.
[80,000원]‘메디슨 포스터’의 호가는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여유 자금으로 빼 둔 2억과 금덩어리 빼고, 투자해 둔 305억은 짙은 빨간색을 밝히며 수익을 알려 주고 있었다.
“시사프로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나?”
주가가 완만하게 내려가고 있다.
이 하락세에 고삐를 당기는 게 시사프로의 고발이다.
그런데, 아직 그걸 방영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경험상 완만하게 떨어지는 주식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혹여 손해라도 발생하면, 난 존 허 소장에게 빌린 돈을 물어 줘야 한다.
그것만큼은 안 되지.
소위 말하는 흑자 부도만큼 뚜껑 열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거다.
“아!”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미련한가 싶다.
난 하루빨리 돈을 마련해야 한다.
강남에 대형 클럽을 론칭해서 물주들이 나를 향하게 만들고, 주철수의 자금줄을 막아야 한다.
지금도 주철수의 통장에는 돈이 쌓이고 있다.
그 돈을 바탕으로 강북과 전쟁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저놈의 자금줄을 쥐어 틀어야 한다.
밤마다 유흥업소에서 쏟아지는 돈은 내 주머니에 들어와야 한다.
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는 정보를 찾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대충 아무 곳이나 가 달라고 한 다음, 공중전화 앞에 섰다.
‘NBC 시사프로 PD노트.’
내 기억으로는 여기서 황운석 박사의 의혹을 고발한다.
언제 방영할지도 모르는 그걸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내가 직접 고발하면 된다.
-네. NBC 시사프로 PD노트의 신찬숙 기잡니다.
“제보할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뭔가요?
“황운석 박사의 논문은 조작됐습니다. 처음부터 배아줄기세포는 없었습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제보하시는 분은 누구시죠? 그 말에 신빙성은 있습니까? 혹시, 황운석 박사님과 함께 연구하는 연구진입니까?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특종 중의 특종이다.
난 내가 아는 것만 말하면 된다.
저들이 혹하는 것으로.
“황운석 박사한테 난자를 제공하는 미즈레이디병원을 찾아가 보세요. 모든 진실은 거기 있습니다.”
뚝.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아는 기억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시작은 시사프로 PD노트가 난자 제공이 생명 윤리에 어긋난다며 고발한 거였다.
이후에 사태가 점점 커져 가다가, 난자를 제공한 병원의 이사장이 기자회견으로 배아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인터뷰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난 그 중간 과정인 생명 윤리를 건너뛰고 바로 병원 이사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미즈레이디병원 이사장은 모든 걸 알고 있다.
다만, 전국민적 영웅인 된 황운석 박사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언론인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밝혀질 진실이다.
난 그 시간을 조금 더 당기는 것뿐이다.
“자. 돈 벌 준비는 끝났고.”
이제 돈 쓸 준비를 하러 가야겠다.
***
강남 청담동 나이트클럽 앞에서 오전부터 죽치고 기다렸다.
난 지금 이름 없는 한낱 소시민에 불과하다.
전생이었다면 여기 나이트클럽 사장이 내 발이라도 핥으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다.
청담동 나이트클럽 오너를 만나는 확실한 방법은 입구를 지키는 거니까.
“?!”
검은색 고급 세단이 부드럽게 나이트클럽 앞에 섰다.
딱 봐도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뒷좌석에 누워 있을 법한 차다.
아니나 다를까.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가 재빨리 뒷좌석으로 가 문을 연다.
‘나이가 제법 있네.’
60대 중반쯤 된 거 같은 남자다.
이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안녕하십니까?”
“……누구?”
“이주혁이라고 합니다. 사업차 회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 무례를 범하게 됐습니다.”
넙죽 인사부터 건네자, 운전기사가 나를 막으려 든다.
나이트클럽 회장이 손을 들어서 막았다.
“고견을 듣고 싶다?”
“네.”
“어떤 고견 말입니까?”
“클럽 문화에 대한 고견에 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음……. 그래요?”
이 노인의 눈에는 내가 이상하면서도 재밌는 놈일 거다.
갑자기 나타나서 고견을 듣고자 하는 인간은 살아생전 만나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들어와요. 나를 기다린 거 같은데, 커피는 한잔해야지.”
“네. 회장님.”
난 그의 뒤를 따라 나이트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
.
나이트클럽 안에는 따로 사무실이 있다.
엄연히 여기도 기업이고 사업하는 곳이다.
당연히 회장실도 갖춰져 있었다.
“앉아요.”
응접 소파에 앉아 비서가 내주는 커피 믹스를 홀짝였다.
웃는 낯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회장이 이내 입을 열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스물넷입니다.”
“어리구만. 내가 말 편하게 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회장님.”
“그래. 근데, 어린 친구가 나한테 클럽에 관한 고견을 물어보러 왔다니, 어울리지 않는구만. 이쪽 문화는 자네가 더 잘 알 거 같은데 말이야.”
“그런 고견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나이트클럽 문화는 지고, 서양식 클럽이 떠오르는지 묻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인다.
경험은 한 사람을 완고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난 내 앞에 있는 노인의 완고함을 능구렁이처럼 타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제가 생각에 나이트클럽은 젊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같은 문화를 반복하고 있죠. 웨이터가 반강제로 여자들을 룸에 집어넣는 부킹 문화는 실질적으로 여자들에게 비호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똑같은 패턴이 20년이나 반복됐으니 싫증 나겠죠.”
“…….”
“그게 전체적인 나이트클럽의 하향세를 만들어 낸 거라고 봅니다. 놀러 온 여자들이 술집 여자도 아니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게 싫으니, 상대적으로 놀기 편한 서양식 클럽을 찾는 거죠. 바야흐로 신여성의 시대잖습니까? 이젠 예전처럼 웨이터 팔에 끌려가는 게 일상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음…….”
회장이 나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고견을 들으러 온 게 아니라, 나한테 충고를 해 주려고 왔구만.”
정확하게 알아들었네.
더 이상 나이트클럽에 미래는 없다는 걸 알려 주러 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보고 업종이라도 바꾸란 말인가?”
“아니요. 그것보다 더 좋은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
“클럽 문화의 변화는 저 같은 젊은 사람이 하는 게 맞습니다. 여길 저한테 파시죠. 제가 제값 주고 사 가겠습니다.”
“!!”
“회장님이 운영하시던 클럽을 제가 강남의 핫플레이스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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