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중국까지 아버지 가게가 알려졌다니…….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나와 정태섭의 얘기를 들은 임유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풍원요정이 아니라, 제 풍원한정식으로 알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유나 씨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귀엽게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풍원요정 시절엔 건전한 가게라곤 볼 수 없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지.
“당분간 또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풍원한정식은 그쪽이랑 악연이 좀 있는 것 같네요.”
돈 귀신 놈들도 그렇고, 어떻게 된 게 자꾸 해외파 조폭들이 여길 찾아왔다.
“당분간 쉬시는 건 어때요? 아무래도 그게 가장 안전하지 싶은데.”
“음. 미국 갔다 온다고 가게를 오래 쉬어서…… 오픈 기다리신 분들 때문에 또 닫는 건 좀 그래요.”
“흠…….”
마음 같아서 저번처럼 밀착 경호를 해 주고 싶지만, 단순히 청부업자였던 돈 귀신들과는 다르게 왕후성은 선생 놈이 뒤에 있었다.
그놈의 시선은 나한테 닿아 있을 테니.
내가 풍원한정식에 붙어 있으면, 오히려 선생 놈이 이 사실을 이용해 약점을 잡을 수도 있는 노릇.
만약 왕후성이 앙심을 품고 또 찾아왔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게 준비도 해 놓고.
뒤에서 조용히 서 있던 부장님을 돌아봤다.
“부장님.”
“음? 왜.”
“며칠 동안 여길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유나 씨, 혹시 남는 공간 있나요?”
임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쓰는 방이 하나 있긴 한데, 조금 좁을 수도 있어요.”
“아, 그건 괜찮습니다. 그렇죠?”
내 물음에 라세흠 부장이 씩 웃었다.
“머리만 댈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
.
그렇게 부장님은 풍원한정식의 수비 병력이 되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풍원한정식 멤버들을 뒤로하고 가게 바깥으로 나왔다.
부장님이 날 따라나서며 유나 씨를 향해 손을 슥 들었다.
“간단한 짐만 챙겨 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갑시다.”
“그래.”
생각이 많아졌다. 왕후성을 직접 마주하자 확실히 난 놈이라는 게 느껴졌다.
혼자서 세 개의 조직 수장과 서른 명을 죽였다. 이건 보통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소한 단신으로 수십 명은 쓸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은 있다는 뜻.
그러니 선생이 왕후성을 이리로 보낸 거겠지.
“흠…….”
물론 기습했을 수도 있고 비겁한 방법을 썼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능력이다.
왕후성의 뒤를 따르던 놈들도 어지간한 한국 조폭은 찜쪄먹을 정도인 걸 보니, 한국으로 넘어올 때 실력자만 추려서 데려온 듯하다.
아주 단단히 준비하고 왔단 거다.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이니 우리가 밀어 버릴 수도 있긴 한데, 선생 놈이 뭘 준비했을지 모르니 그런 수를 던지기엔 위험부담이 있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부장님이 어깨를 툭 쳤다.
“뭘 그렇게 죽상이야? 좋은 방법 없으면 그냥 밀어버리던가.”
그냥 밀어 버린다라.
부장님의 말대로 그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그놈이 어떤 함정을 준비하든 박살 낼 자신은 있다.
다만 걸리는 건, 우리가 마음 놓고 자리를 비우기가 어렵다는 거다.
왕후성 그 새끼가 뭔 짓을 하고 다녔는지 들었는데도 마음을 놓는 게 이상하지.
‘애매하네.’
어떤 방법이 좋을까…….
일단 유선규를 좀 만나서 대화를 나눠 봐야겠어.
왕후성도 슬슬 강남파의 세력으로 꽉 들어차 있던 서울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일 거다.
주철수의 빈자리를 메우라고 삼합회에서 보낸 놈이 그놈이니까.
공갈 협박을 해서든 유선규를 좀 털어야겠다.
‘어차피 처리할 놈이니까……. 뜯어낼 거 다 뜯어내고 버려야지.’
***
저벅.
왕후성이 흙으로 된 넓은 공터에 들어섰다.
공터에선 포크레인이 한창 땅을 파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전무님.”
“어우, 뭐 이렇게 수가 많아?”
바닥에는 유선규를 따르던 사람들의 시체가 한쪽에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적어도 열댓 명은 되어 보였다.
“별거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망이 있네?”
“예. 유선규가 죽은 걸 알고 저항했던 자들입니다. 나머지는 전무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좋아. 빠르구만? 양호.”
“예, 전무님.”
왕후성의 뒤를 따르던 양호가 한 발짝 다가왔다.
“저기, 저 포크레인. 대충 할 줄 알지?”
“가능합니다.”
“그럼 쟤도 치워.”
포크레인을 다루던 남자가 왕후성에게 지목받자 흠칫했다.
원래 유선규의 부하였지만, 포크레인을 다룰 수 있다고 해 살려 둔 자였다.
왕후성의 지시를 받은 수하 둘이 포크레인을 향해 달려갔다.
“자, 잠깐! 살려 주시오! 아악!”
포크레인에 타고 있던 남자를 끌어내린 수하가 그의 목을 그었다.
촥!
“끅.”
그리고 축 늘어진 남자를 깊게 파인 구덩이에 던져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호.”
“예.”
왕후성은 마저 덮으라고 손짓한 뒤 나무 자재에 털썩 걸터앉았다.
얼굴을 찌푸리며 재킷을 벗은 그가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얘들아. 여기 건물들이 왜 이렇게 다 후지냐?”
“지부장이 검소한 성격이었답니다.”
“검소는 무슨. 그냥 야망도 능력도 없는 반푼이라 그런 거지.”
까딱.
수하가 다가와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였다.
치익-.
“후……. 여기 건물들, 그냥 싹 다 밀어 버리자고.”
“전부 말입니까.”
“그래. 내가 새로 들어설 자린데 이런 꼴로 남겨 둘 순 없잖아?”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럼 진행해. 양호한테 말하면 알아서 잘해 줄 거다.”
“예.”
왕후성은 담배를 맛깔나게 빨아들이며 피식 웃었다.
“개새끼. 눈빛하곤.”
마주치자마자 살벌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게, 아무래도 이주혁이라는 놈은 이쪽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실력도 꽤 있어 보였고, 뒤에서 따라오던 수하도 보통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기가 부족했다.
눈앞에 거슬리는 것들을 땅에 묻어 버릴 각오. 그런 게 부족하달까.
쿠릉-.
“다 묻었습니다.”
“그래?”
양호가 포크레인에서 내렸다.
시체들이 들어있던 구덩이는 어느새 메워져 평평한 땅이 되어있었다.
“오케이. 일단 재개발부터 들어가자고.”
왕후성이 땅에 굴러다니는 양은냄비를 발로 찼다.
유선규가 라면을 먹던 냄비다. 이 공터는 원래 그의 집이 있던 장소였던 것이다.
깡-!
“쯧.”
인상을 구긴 왕후성이 흰 재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탁.
“어, 유선규 정리했수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선생님께 말씀 올리겠습니다.
“쯥. 그런데 강 권사. 내 선생한테 뭣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이주혁은 왜 건들지 말라는 거요?”
강 권사라 불린 남자가 전화 너머로 차갑게 대꾸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당신은 따르면 됩니다. 의문을 갖지 마십시오.
“아니, 그래도 서로 돕는 사인데 좀 알려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선생님의 전언이 없는 한 불가합니다. 계획대로 진행하십시오.
“쯧. 알았소.”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단 걸…….
“알았다고.”
뚝.
전화를 끊은 왕후성이 얼굴을 구겼다.
“이 광신도 새끼…….”
선생이 무서운 자인 건 맞지만, 마치 신처럼 떠받들며 무슨 말만 하면 불경하다 지껄이는 강 권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질 같아선 이놈 목도 따 버리고 싶지만, 홍콩 지부에서 독립하기 위해선 선생의 도움이 필요했다.
‘언젠가는 죽여 주지.’
퉷!
침을 뱉은 왕후성이 수하에게 손을 내밀고 까딱였다.
그러자 수하가 품에서 손도끼를 꺼내 그에게 쥐여 줬다.
턱.
“남겨 놨지?”
“예. 잔당들이 철물점에 모여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길래, 전무님 오실 때까지 그냥 뒀습니다.”
“좋아, 좋아.”
탁, 탁.
왕후성은 불쾌한 표정으로 손도끼를 던졌다 받았다 하며 걸음을 옮겼다. 수하가 그를 보며 물었다.
“따를까요?”
“됐다. 혼자 가련다.”
머리를 쓸어 넘긴 왕후성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나도 해소 좀 해야겠어.”
***
늦은 오후. 나는 부장님과 함께 다시 유선규를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다급한 건 아니라 일단 자리를 뜨긴 했는데, 왕후성 그놈이 내 울타리 안까지 들어왔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유선규를 족쳐서라도 뭘 좀 뜯어내야겠어.
부웅-.
“야, 주혁아. 여기 아까 왔던 데 맞냐? 그새 동네가 달라졌는데?”
“그러게요?”
아까 왔을 때는 아직 옛날 느낌이 남아있었는데, 몇 시간 사이에 무슨 재개발하는 동네가 되어있었다.
원래 차이나타운에 살던 상인들이 아니라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돌아다녔고,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건물들을 부수는 게 보였다.
콰직!
‘뭐야, 이거?’
탁.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내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당황스럽네.
부장님과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텅텅 빈 가게들이 보였다.
식당은 유리창이 다 박살 나 있었고, 노점들도 다 쓰러진 채였다.
코를 킁킁거린 부장님이 얼굴을 찌푸렸다.
“피 냄새다.”
“빨리 가 봅시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네요.”
타닷-!
달려서 이동하는데도 인부들뿐. 원래 보이던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유선규가 지내던 집이 있던 쪽으로 향하니,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웬 허허벌판이 있었다.
건물을 그냥 밀어 버린 것 같은데, 유선규가 갑자기 이런 짓을 한다고?
그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 뭐야.”
얼굴과 셔츠가 피 칠갑이 된 왕후성이 날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손에는 걸쭉한 피가 아직 말라붙지 않은 도끼를 들고 있었다.
“이주혁……. 여기서 또 보네? 무슨 일이야?”
저 미친놈. 누굴 또 도륙했는지 눈에 시뻘건 빛이 감돌았다.
숨이 거칠고 동공도 확장되어 있는 게, 누군가를 살해하면서 흥분한 것 같은데…….
내 심각한 표정을 본 부장님이 조용히 물어왔다.
“조질까? 저놈 말고 별거 없어 보이는데.”
“잠시만요.”
이대로 그냥 저놈을 때려 부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개 있었다.
우선 왕후성의 태도. 자신을 상회하는 실력자인 우리를 혼자 마주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나 긴장감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하는 블러핑일 수도 있지만, 선생 놈과 엮여 있으니 허세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마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
“뭐 하러 왔어? 할 말이 남았나?”
왕후성이 바닥에 놓인 책상의 먼지를 쓸고 그 위에 앉았다.
나는 그걸 보며 부장님의 말대로 여기서 맞붙을지, 아니면 주철수를 무너뜨렸던 것처럼 놈이 할 사업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망가뜨리며 괴롭힐지 고민이 됐다.
사실 왕후성이 해야 할 일이 내가 할 일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거든.
바로 서울의 남은 조직들 정리.
주철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세력 다툼으로 지금 서울은 격전지가 되기 직전이다.
그걸 막기 위해선, 야망을 가진 깡패들을 싹 다 밀어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 일을 저놈이 대신해 줄 거야.’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만 나오지 않는다면, 왕후성은 내 계획에 아주 좋은 패가 되어 줄 거다.
“야. 근데 여기 부동산은 거래가 참 빠르더라고.”
갈등하던 나를 향해 왕후성이 피에 전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부동산이라면…… 아마 그 중개사 놈이 넘겨준 것들 말하는 건가.
내가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보고만 있자, 왕후성이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주철수가 숨겨 놓은 것들……. 누가 그새 홀랑 먹었더구만.”
난가? 아무리 생각해도 주철수가 숨겨 놓은 부동산을 먹은 건 나밖에 없을 텐데.
왕후성이 내 표정을 살피며 능글맞게 웃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그놈은 잘못 생각한 거야. 그 많은 걸 한꺼번에 다 먹으면 탈 나는 법이거든.”
“어. 누군진 몰라도, 그 사람은 쥐뿔도 신경 쓰지 않을걸?”
“큭. 신경 안 쓸 수 없을 거야. 아마 내일쯤? 공문서 다발이 그리로 날아갈 거라서.”
공문서? 설마…… 선생 놈, 국세청과도 커넥션이 있는 거냐.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우리한텐 회계장부의 신, 우재성이 있으니까.
전생에서 강남파에 날아온 국세청 소명문서를 누가 다 처리했는데.
상황을 설명해줄 필요도 없이, 우재성이 알아서 잘 처리할 거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돌아가야겠다.
“부장님. 돌아갑시다.”
“뭐? 그냥 간다고?”
“네.”
왕후성이 어떻게 나오나 확인해 봐야지.
우릴 바로 치려 하면 전쟁 시작이고, 서울 조직부터 정리하려고 들면 당분간 놔둔다.
물론 삼합회가 서울을 통째로 집어삼킬 때까지 기다리진 않을 거고.
적당히 정리됐다 싶으면, 왕후성도 주철수 곁으로 보내 줘야지.
씨익.
“…….”
내가 왕후성을 보며 히죽 웃자, 놈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너도 조만간이다, 새끼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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