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21
120화
다음 날.
나는 사무실에 앉아 내가 가진 부동산의 서류들을 쭉 훑었다.
보면서 절실하게 느낀 게 있다.
“흠.”
인력이 부족하다.
주철수가 헛짓거리를 하던 건물과 땅들을 손에 넣긴 했는데, 이걸 효과적으로 써먹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다.
제대로 된 사업으로 다시 바꿔도 그걸 관리할 사람과 일할 사람이 있어야지.
최용달, 고광목 등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깡패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최용달은 불법적이라 내 명의로 관리하기 힘든 흥신소를 맡겨 놨고, 고광목은 확실히 나한테 숙이고 들어오지 않았다.
‘주철수랑 서울을 양분하라는 미끼로 꼬시긴 했는데…… 슬슬 정리해야 하나?’
현재 서울광목파는 삼합회가 군침을 흘릴 만한 세력.
왕후성에게 정리되길 기다리느냐, 고광목과 힘을 합쳐 역으로 왕후성을 밀어 버리느냐.
“흠…….”
고민하던 내 귀에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십쇼.”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우재성이었다.
손에는 웬 두툼한 서류 봉투가 여러 개 들려 있었다.
올 게 왔나 보네.
“제가 생각하는 그거에요?”
“네. 맞습니다.”
국세청에서 내가 최근 먹은 주철수의 부동산을 어떻게 얻었는지 소명하라는 문서를 보내온 거다.
서해결 검사가 마무리했는데도 이런 게 날아온 걸 보면, 아마 국세청에도 선생 놈의 입김이 닿아 있다는 거겠지.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정부기관까지 움직이는 건지. 어디 고위 공직자라도 되는 건가?
“앉으시죠.”
“예.”
“어떻게, 좀 읽어 보셨습니까?”
후룩.
우재성이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기대앉았다.
“사흘, 아니 이틀 안에 처리 가능합니다.”
보통 사람이면 받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이틀 만에?
새삼스럽게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더 문제는 없겠죠.”
“일단 차명으로 쓰인 사람들한테 전부 연락해서 충분한 보상을 대가로 계약서를 만들어 놨습니다. 이걸 제출하면 국세청에서도 문제 삼긴 힘들 겁니다.”
“오호. 좋네요.”
만족스럽네. 확실히 본인의 동의가 있는 거래였다면 억지를 부릴 순 없겠지.
하지만 우재성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
“대표님. 우린 대체 누굴 상대하고 있는 겁니까?”
충분히 의문이 들 만하다.
서울 최대 조직을 뒤에서 움직이고, 삼합회와도 연관이 있으며, 정부기관에까지 청탁을 넣을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아득한 느낌이네.
“저도 정확히 그놈의 정체는 모릅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어차피 내가 놈보다 한발 앞설 수 있다.
엿을 먹으면 더 큰 엿으로 돌려주면 되고, 무언가를 빼앗기면 나도 놈이 가진 걸 더 많이 뺏어 버릴 거다.
끄덕.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보고드릴 게 있는데, 왕후성이 성동구 쪽으로 이동했답니다.”
“성동이요?”
성동. 성동구라.
예전에 들은 기억이 난다.
몇 달 전, 강남파에 의해 조직이 와해된 고광목한테 미추리파 밑에 들어가 후일을 도모하라고 말했었다.
결국 고광목은 미추리파의 세력을 집어삼켜 재기에 성공했고, 미추리파의 잔당들은 성동구 어딘가로 도망쳤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흥신소의 보고서 중 최근 다시 조직원들을 모으고 있다는 게 있었는데, 왕후성이 그리로 갔다라.
‘씨를 말리려는 건가.’
미추리파. 강남파엔 비비지 못해도 2군 정도는 되는 조직이었다.
수장인 신덕수도 고광목과 치고받고 하던 놈이니 실력은 있었고.
선생 놈과 왕후성은 아마 놈이 방해가 될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거기부터 시작해 서울의 조직들을 정리할 생각이겠지.
‘미추리파…….’
어차피 나가리 될 거, 삼합회 쪽 인원수나 좀 줄여 줬으면 좋겠네.
***
“으아아-!”
미추리파의 보스, 신덕수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덤벼드는 남자를 메쳤다.
쿵!
“컥!”
“X발……. 이 새끼들 뭐야?!”
임시로 지내던 사무실에 연장을 쥐고 들이닥친 놈들.
놈들이 난데없이 수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두셋을 상대하던 종배가 배에 칼을 맞았다.
“끄악!”
“종배야!”
미추리파의 2인자, 종배의 부상에 신덕수가 그리로 달려가려 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무언가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다.
그리고 무언가가 종배의 머리통에 틀어박혔다.
쩍-!
“이런 썅!”
손도끼에 맞은 종배의 목이 뒤로 꺾이며 쓰러졌다.
그걸 본 신덕수의 몸이 굳었다.
도끼를 던져서 사람 대가리에 꽂아 버리는 건 생전 처음 본 탓이었다.
‘무슨 힘이……!’
도끼가 날아온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검은색 셔츠에 피로 물든 흰 정장 바지를 입은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신덕수가 땅에 떨어진 칼을 주우며 긴장했다.
도저히 맨몸으로는 상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퉤.”
피바다가 된 사무실 바닥에 침을 탁 뱉은 왕후성이 신덕수를 보며 물었다.
“신덕수?”
“어디서 보낸 놈이냐. 고광목이야?”
“고광목. 네 다음 차례네.”
그 입에서 나온 말에 신덕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 다음이 고광목이라고? 그럼 저놈은 누가 보낸 거지?’
쩍.
왕후성은 머리에서 뽑아낸 피가 뚝뚝 흐르는 도끼를 어깨에 올리고 손짓했다.
“들어와. 대가리니까 잡놈들과는 뭔가 좀 다르겠지?”
신덕수가 그 건방진 태도에 이를 갈며 칼을 고쳐잡았다.
“이 개새끼. 그 아가리부터 찢어 줄게.
승산은 거의 없었다.
설령 운이 좋아 저 귀신같은 놈을 이긴다 해도, 주변에 남은 적들에게 당할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녀석들의 복수를…….
퍽!
“……!”
갈비뼈가 박살 나며 내장이 헤집어지는 감각에 신덕수가 눈을 크게 떴다.
“컥.”
비틀거리며 가슴팍을 보니, 몸 안으로 들어간 도끼날과 툭 튀어나온 자루가 보였다.
고통이 느껴짐과 동시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역시 수준 이하네. 그나마 이제 남은 게 고광목…….”
경멸이 담긴 그 목소리를 끝으로, 신덕수의 의식은 끊어졌다.
***
다음 날.
회사 로비에서 흥신소로부터 날아온 문자를 확인했다.
‘미추리파도 당했나.’
내 예상대로, 선생 놈과 삼합회를 뒤에 업은 왕후성은 서울에 남은 조직을 정리했다.
서로 이권을 다투느라 약해져 있던 조직들은 그대로 다 공중분해 돼 버렸고.
예전에 내가 보스를 조져 놓은 데가 몇 군데 있긴 한데, 그렇다 쳐도 너무 무력하네.
그만큼 왕후성의 세력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탁.
“흠…….”
핸드폰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품 안에서 진동이 거세게 울렸다.
꺼내 확인해 보니 고광목이 건 전화였다.
내 생각이 맞다면, 슬슬 작전팀 녀석들을 불러 모을 때가 온 거겠지.
꾹.
“여보세요?”
-이주혁!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 웬 미친놈들이 습격했다.
전화 너머로 고광목이 다급하게 말했다.
누군가 얻어맞는 소리와 칼이 챙챙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게, 벌써 놈들이 서울광목파를 공격한 것 같았다.
“도움이 필요하다. 부탁인가?”
-그래. 부탁한다. 여기 우리 구역 폐건물이다. 재개발 준비하러 왔다가 포위당했어. 나 혼자면 몰라도, 내 동생들까지 당하게 둘 순 없다.
“근데 이걸 어쩌나. 부탁은 취급 안 하는데.”
-뭐?
고광목이 당황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몇 번 도움도 주고 같이 좀 뛰었다고 내가 동료가 된 줄 아나 본데, 그건 아니지.
-그, 그럼…….
“정식으로 의뢰해야지.”
어딜 공짜로 부려 먹으려고.
“우리 SA시큐리티는 의뢰비가 좀 비싼데, 괜찮겠어?”
***
쿵.
라세흠이 거대한 30kg짜리 덤벨 두 개를 내려놓았다.
그의 조각 같은 몸매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후. 이제 좀 살겠네.”
임유나의 눈치에 가게 일을 돕다 보니 운동을 제대로 못 했다.
그래도 저녁 시간이라도 근육을 좀 풀어주니까 몸이 상쾌했다.
당분간 지낼 방이 생각보다 넓어서 편하게 운동할 수가 있었다.
드르륵-.
“부장님. 식사하세요.”
“아이고, 예.”
임유나가 라세흠의 방문을 열고 말했다.
그녀는 라세흠의 벗은 상체를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가 웃통을 깐 모습은 미국에서 실컷 본 터라, 이제는 부끄럽다거나 하는 감정도 들지 않았다.
수건으로 몸을 닦은 라세흠이 옷을 걸쳐 입고 나왔다.
보통 직원들이 식사하던 공간에 들어섰다. 슬슬 밤이라 그런지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태섭이는 퇴근했어요?”
“아, 네. 부장님 계시니까 당분간은 출퇴근하시겠다고…….”
“이 새끼, 의도가 불순하네.”
탁.
라세흠의 식탁 위에 밥이 놓였다.
열댓 개가 되는 반찬. 라세흠은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야. 역시 여기가 비주얼 하나는…….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후루룩!
뜨끈한 닭 국물부터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도저히 정신 줄을 붙잡고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허겁지겁 음식을 들이켜는 라세흠의 맞은편에 임유나가 털썩 앉았다.
“음?”
“저, 부장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꿀꺽.
라세흠은 입안에 가득한 음식을 삼키고 물었다.
“부탁이요?”
“네. 요새 분위기가 흉흉하잖아요. 저도 저를 지키고 싶어서요.”
“제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하하.”
라세흠의 밥풀이 튀는 호탕한 웃음에도 임유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제 개인적인 부탁이에요. 더 이상 주혁 씨가 지켜 줘야만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지 않아요.”
“……진심이네요.”
“미국에선 다들 총을 들고 훈련하셔서 말을 못 꺼냈지만……. 부장님. 저한테도 싸울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간단한 호신술이라도 좋으니까요.”
“흠. 호신술이라.”
라세흠은 살짝 난감했다.
태생부터 강했던 그는 약한 사람이 강한 상대와 맞서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부대원들도 두들겨 패면서 몸으로 체득시킨 것이고.
라세흠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뗐다.
“솔직히, 호신술이 뒷골목에서 노는 조무래기들한테는 효과적일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상대해야 할 놈들은 그런 조무래기들과는 달라요.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지 모를 놈들입니다.”
“아…….”
“저한테 호신술을 배우는 건 좋지만, 큰 효과를 내진 못할 거란 말입니다.”
현실적인 라세흠의 말에 임유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부장님.”
“네. 너무 상심하진 마시고…….”
“호신술 말고, 복싱 같은 격투기를 제대로 배우는 건 어떨까요?”
임유나가 시선을 들며 물었다.
라세흠의 냉정한 평가에도 임유나의 눈빛은 확고했다.
“복싱. 복싱이라…….”
고민하던 라세흠은 사심 없이 임유나의 신체를 슥 훑었다.
운동을 한 건지, 일을 하며 단련된 건진 몰라도 팔다리 근육량이 일반적인 여성 이상이었다.
전체적인 신체의 밸런스도 좋았다. 운동을 시작하면 금방 실력이 늘 것 같았다.
‘복싱? 복싱은 애매해. 무조건 킥이 들어가야 한다.’
임유나의 다리는 유독 길었다. 거의 라세흠과 비슷할 정도.
저 리치를 썩히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 순간 라세흠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스쳤다.
‘무술’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련해 온,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
“태권도.”
“태권도요?”
“배워 보신 적 있습니까?”
“아, 네. 어릴 때 잠깐…….”
라세흠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럼 태권도는 어떠십니까? 제 전공 무술인데.”
“정말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하하. 안 그래도 제 기술을 전수해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임유나는 라세흠이 제안한 태권도를 보통의 태권도로 받아들였지만, 그가 말한 건 조금 달랐다.
ITF 태권도.
품새와 겨루기가 아닌, ‘무투’에만 초점을 둔 태권도다.
부대원들이 이를 수련한 라세흠의 기술을 몇 가지 카피하긴 했다.
하지만 다들 원래 수련하던 무술이 있던 탓에 라세흠의 기술을 완벽히 흡수한 ‘직계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이주혁은 따로 배우던 건 없어도 워낙 여러 가지를 흡수한 놈이라, 태권도의 진수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고.
“좋아요.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라세흠은 열정으로 가득한 임유나의 눈빛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요.”
이주혁을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혁아. 사랑싸움은 목숨 걸고 해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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