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3
012화
청담동 나이트클럽 회장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젊은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내가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겠다. 그러니 팔아라.’ 이것이니, 어이없을 수밖에.
그런 황당함은 오래가지 않을 거다.
회장이란 사람. 꽉 막혀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불통의 아이콘이었다면,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화 중에 내 말을 끊고 자기 할 말만 했겠지.
내가 겪은 일명 꼰대들은 다 그랬으니까.
“어느 집안 자제인가? S그룹? 아니면 K그룹? 요즘 K그룹 셋째가 이쪽에 관심이 많다던데, 그 친구인가?”
“아닙니다. 그룹의 후광 같은 건 없습니다.”
인수 의사를 타진해 올 정도니, 돈 좀 있는 집안의 자제라고 생각하나 보다.
음……. 정확하게 말하면, 영웅의 자제지.
12명의 목숨을 구한 영웅의 외아들.
“투자로 돈을 제법 벌었습니다. 벌어둔 목돈으로 이제 제 사업을 하고 싶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자기 사업이라……. 좋지. 젊을 때일수록 도전하는 게 더 좋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며 회장이 소파에 몸을 기댔다.
“난 말이야. 자네만 한 나이에 미군 부대 근처에 있는 이태원에서 웨이터를 했었어. 미군들이 노래 크게 틀어 놓고 술 마시는 곳에서 서빙한 게 이 바닥의 시작이었지.”
“…….”
“이후로 미친 듯이 돈을 모았네. 웨이터를 하다 보니, 하루에 얼마가 흘러 들어오는지 보였거든. 그때 내 목표는 하나였네. 나만의 가게를 가지자. 그렇게 80년대 중순에 락카페를 만들었네. 장사가 잘됐어. 당시 락카페는 정말 선풍적이었거든. 그러다 흐름이 바뀌어서 나이트클럽의 시대가 왔네. 난 그때 가지고 있던 락카페를 모두 정리하고 여기서 나이트클럽을 차렸네.”
자신의 연대기를 읊고 있었다.
난 가만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여기도 재작년까지는 무척 잘 됐어.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테이블이 모자랄 정도였지. 이 앞에 줄 서서 기다리던 손님만 30팀이 넘었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구만.”
그 손님들이 이젠 홍대로 빠졌다.
젊은 사람들은 유행과 취향에 민감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노래와 술을 즐길 수 있는 홍대 클럽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클럽 문화를 주도해 갔다.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나이트클럽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특히 나처럼 돈을 만지는 사람은 숫자만 봐도 눈에 확 들어오네.”
“…….”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더구만.”
“……?”
용기? 무슨 용기?
“이태원에서 락카페로, 락카페에서 나이트클럽으로 이젠 다시 서구적인 클럽으로 바꿔야 하는데,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은 건지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더구만. 오히려 두려움이라는 게 생기네. 행여 잘되지 않으면, 애써 모은 재산을 까먹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말일세.”
회장은 시대에 뒤처진 게 아니라, 변화가 무서운 거다.
나이는 대략 60대 중반.
일반적인 회사원이라면, 정년퇴직을 맞이할 나이였다.
미래에야 인생의 시작은 70부터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보통 70이면,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기다.
귀농을 한다든지, 손자 손녀들을 봐준다든지 하면서 여생을 보낸다.
“신기하구만.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자네가 나타났으니 말이야.”
오. 나도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는지.
회장이 꼬았던 다리를 풀고 내 눈을 응시했다.
“그래. 얼마나 쳐 줄 수 있는가?”
이제 본격적인 협상 시간이다.
***
“200억이라…….”
꽤 많은 금액을 불렀다.
강남, 그것도 청담동에 위치한 나이트클럽. 내가 살던 시대라면, 700~800억까지도 호가했을 거다.
2000년대 중반이기 가능한 금액이지만……. 나한테 부담이 되는 건 확실했다.
“메디슨 포스터가 터져 줘야 해.”
물론 방향은 아래쪽이다.
아래로 수직 낙하를 해 줘야 내가 벌어들인 돈으로 나이트클럽을 매입할 수 있다.
음……. 아니네. 조금 부족하겠네.
차 떼고 포 떼면 좀 모자란 수준이다.
순간, 한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에이씨. 돈이 깡패네.”
깡패만큼 무서운 게 돈이다.
나이트클럽 회장은 자기 퇴직금만큼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의도인지, 200억에서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았다.
먼저 200억부터 맞춰야지. 조금 모자란 건, 어디서든 당기면 되고.
“그전에…….”
난 TV를 바라봤다.
PD노트는 내가 했던 제보를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았다.
다음 주 예고가 ‘황운석 박사의 진실’이란 타이틀이었다.
이런 제목이 나온 것도 충분히 대중을 흔들 만한 수준인데, 황운석 박사의 행보가 흔들거리는 여론에 지진을 일으켰다.
정식으로 방송불가 요청을 법원에 내면서, 오히려 수많은 추측만 만들어 낸 것이다.
원래 방귀 뀐 놈이 성질낸다고, 잘못이 있을수록 더 감추려 하고 싶어 한다.
그걸 정석처럼 보여 주고 있는 황운석 박사였다.
“방송만 타면 되네.”
305억이란 투자금이 얼마나 불어날까?
반 토막이 나는 건 확정일 테고……. 얼마나 더 큰 수익을 안겨다 줄까?
“기다려 보자.”
투자금의 향방은 다음 주에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내 수중에 떨어질 돈도 다음 주면 확실해진다.
이왕 내려갈 주가. 팍팍! 내려가라고 물 떠다 놓고 빌고 싶은 심정으로 하루를 보낼 때였다.
♪띵동.
찾아올 사람이 없는 집에, 처음 보는 인물이 찾아왔다.
인터폰 너머의 중년 남자는 내 기억엔 없는 사람이다.
“누구십니까?”
-아……. 저…….
잡상인인가?
-정운상가 건물주 되는 사람입니다.
“예? 아! 예.”
통영 후배들이 일하고 있는 그 건물의 소유주구나.
그런데, 여긴 웬일이지?
아. 아니다.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난 얼른 문을 열고 중년 남자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
.
마땅히 대접할 게 없어서 커피 믹스 한 잔을 내줬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별거 아닌 커피를 양손으로 받아 들며 자리에 앉는 그였다.
고급 양복에 비싼 시계.
걸치고 있는 것만 최소 2, 3천만 원은 될 거 같은 중년 남자는 상당히 겸손한 모습이다.
“반장님한테 얘기는 들었습니다. 주혁 씨라고 하셨죠?”
“네. 이주혁입니다.”
“그……. 이번 건은 정말 고맙습니다.”
건설자재를 덤핑으로 넘기려는 양아치들을 박살내 준 게 고맙다는 말이다.
“아닙니다. 반장님하고 제 후배들 건드린 놈 혼내준 거뿐이니까요.”
어느 사회에나 있는 모기 같은 놈들이다.
난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모기를 잡은 것뿐이다.
수고비도 든든하게 챙겼고.
난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커피 믹스를 내려놓는 정운상가, 조정운 사장은 아닌가 보다.
“그놈들 행패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저한테 찾아와서 죽이니 살리니 하고, 제 아내하고 딸 사진을 보여 주며 협박을…….”
“예?!”
순간, 목청이 올라갔다.
이런 씨X랄 놈들이 미쳤나.
깡패들도 가족은 안 건드린다는 불문율이 있다.
적어도 선을 지키자는 거다.
“아오! 썅!”
그때 반 죽여 놨어야 하는데……. 아니다. 돈 다 뺏고 어디 염전에 노예로 팔아 버릴걸.
내가 너무 자비로웠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장님한테 그런 줄 알았으면, 사정 봐주지 않는 건데……. 하…….”
이제라도 찾아내서 알래스카 같은 곳으로 보내 버릴까 생각할 때였다.
조정운 사장이 가방에서 널찍한 봉투 하나를 꺼내서 탁자에 놓았다.
“별거 아니지만, 받아 주십시오.”
“이거 참……. 이러시면…….”
이런 거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그래도 사람 성의가 있으니 내용물은 확인해야겠지?
‘무기명 채권?!’
오랜만에 보네.
내가 활동할 당시엔 시장에 사라지고 없어서 몇 장 못 봤는데, 그걸 내 집에서 볼 줄이야.
무기명 채권은 말 그대로 누가 채권자인지 기재되지 않은 채권이다.
이것의 장점은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다는 거고, 자금 흐름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나쁜 놈들의 검은돈으로 활용하기 높다는 말이다.
미래로 따지면 코인하고 비슷한 그런 거지.
“적당히 넣었습니다. 제 성의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십시오.”
성의가 과한데, 5천만 원짜리 채권이 20장이다.
무려 10억이다. 성의로 10억을 주는 사람이 어딨어?
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10억을 꺼낼 정도로 부자인 사람의 얼굴이 핼쑥하다.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말도 못 하지요. 문창건설자재 박문창. 그 개X끼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이 일대 건물주들한테는 미친개로 불렸습니다.”
“미친개요?”
“한번 물면 놔주지 않았거든요. 공사만 들어갔다 하면, 자재 밀어 넣으려고 지랄을 하는데, 아무리 안 된다고 거절해도 막무가내로 밀어 넣었습니다. 저번에 오피스텔 지을 때는 아예 레미콘 차량 끌고 와서 콘크리트를 부어 버리더라니까요. 하……. 그렇게 해 놓고 자기들 콘크리트 들어갔으니, 자재비 달라고 지랄 발광을 하고요.”
그 새끼. 내 생각보다 더 악질이네.
콘크리트는 좋은 거 써야지. 안 그러면 층간 소음 당첨이야.
“지금 건설하고 있는 상가 건물은 안 건드리나 했는데, 건달들 데리고 와서 공사 자체를 못 하게 만들더군요. 이번엔 진짜 자재 받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아내 사진하고 딸 아이 등교하는 사진을 들고 와서 협박하더군요.”
들을수록 열받네.
안 되겠다. 이 새끼는 다시 잡아야겠다.
달러하고 엔화까지 접수하고 알래스카에 대게잡이로 보내든지 해야지.
“진짜 씹어 죽이고 싶었습니다. 딸내미 사진을 보니, 눈이 뒤집히더군요. 당장 머리통을 박살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깡패도 아니고, 일반인이 연장을 휘두르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이후에 올 후폭풍도 감당해야 하고.
저 사람 입장에선 내가 그 모든 걸 처리해 준 거다.
그 감사함이 오죽하겠나.
덥썩.
조정운 사장이 내 손을 잡았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
전생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죄송합니다.’ 였다.
돈을 갚지 못하는 사장들이 나를 만나면 제일 먼저 뱉었던 말이 그거였다.
‘고맙다라…….’
이건 이것대로 감회가 새롭네.
저렇게 진심 어린 표정으로 처음 보는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하다니…….
뭉클한 뭔가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나……. 전생에 깡패로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분명 경찰이었는데…….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뒤끝이 좀 있는 편이라, 박문창 그 새끼는 다시 잡아다 족칠 생각이고.
“이건 넣어 두십시오.”
난 탁자에 놓인 무기명 채권을 정중히 돌려주었다.
이 사람에게 난 은인이다.
자기 삶을 갉아 먹고 있던 박문창을 치워 준 은인.
은인은 모름지기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법이지.
“그래도 받아 주십시오. 성의를 표하고 싶은데, 제가 가진 게 돈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받아 주세요. 아! 혹시, 무기명 채권이라 그런 겁니까? 이거 불법 아닙니다. 정부에서 한창 채권 발행할 때 제가 따로 사 뒀던 겁니다. 뒤탈 없는 채권이니까 받아 주세요.”
그건 내가 더 잘 알지.
무기명 채권의 최고 장점인데.
“괜찮습니다. 돈 받으려고 한 건 아닙니다.”
“주혁 씨……. 주혁 씨는 제 속에 응어리를 풀어 준 사람입니다. 제가 어떻게라도 성의를 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상가 건설되면 1층은 공실로 비워 두겠습니다. 거기서 장사라도 하나 하시죠. 자금은 제가 대겠습니다.”
이 사람, 진심이네.
상가 1층이 얼마나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인데, 거길 선뜻 준다니.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어떤 식으로라도 정성을 표하려는 얼굴이다.
‘음……. 그러면…….’
한사코 거절하는 것도 대인배의 모습은 아니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으로 받아 줘야겠다.
무기명 채권을 다룰 정도면, 알아주는 부호일 테니.
“제가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어떤 사업입니까? 제가 도울 게 있습니까?”
“나이트클럽을 인수해서 홍대에서 유행하는 클럽으로 바꿀 예정입니다. 그사이 들어가는 자본이 조금 부족해서 은행 대출을 낄 생각…….”
“제가 내죠.”
“……?”
“제가 드리겠습니다. 은행 가지 마시고, 저한테 전화 한 통만 주십시오.”
“!!”
와. 이 사람 시원시원한 사람이네.
이래서 어른들이 그랬구나.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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