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39
138화
이주혁과 통화하기 조금 전.
국밥집 옆 골목에서 한광철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끈 뒤, 옆에 서 있던 윤건한을 보며 물었다.
“건한아.”
“예!”
갓 입대한 듯한 짧은 머리에, 싹 차려입은 정장.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이주혁이 한광철에게 경호로 붙였던 윤건한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차려입고 다닐 생각이냐? 너무 튀잖아, 인마.”
“경호원이면 꼭 이렇게 입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윤건한의 어리둥절한 말에 한광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007이야? 식당에서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 좀 편하게 입고 와.”
“아…….”
그 말에 윤건한이 아쉬운 탄식을 내뱉었다.
한광철은 그걸 보고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쁜 녀석은 아닌데…….’
분명 경호원으로 따라다니긴 하는데, 어딘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주혁이랑 같은 부대 출신에다, 녀석이 추천했으니 실력은 있을 거다.
그리 생각하며 한광철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때, 골목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음?’
혹시나 해 고개를 돌려 보니, 골목 안에서 웬 남자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한광철.”
모자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들의 손에는 쇠파이프와 각목이 들려있었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그들의 행색에, 한광철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너, 너희들 뭐야?!”
이런 그의 외침에도 남자들은 아무런 대꾸 없이 한광철을 향해.
“죽여!”
투다닥!
달려들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
한광철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한광철은 볼품없이 바닥을 굴러버렸다.
‘빌어먹을!’
그때,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괴한이 한광철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후웅-!
살벌한 소리가 울리자 한광철은 그대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퍽!
이후 묵직한 소음이 들렸다.
‘응?’
한광철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눈을 떠 보니, 윤건한이 손으로 쇠파이프를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거, 건한아!”
“아무리 부끄러워도 먼저 가시면 어쩝니까.”
방금까지 욕했던 007 복장이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이어 윤건한은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금방 끝내겠습니다.”
그리곤 곧장 윤건한이 남자의 가슴팍에 정권을 내질렀다.
뻥-!
“끄아악-!”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남자가 뒤로 날아갔다.
그걸 본 다른 남자들도 연장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에 한광철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 건한아! 일단 도망……!”
떵!
“미친…….”
말을 잇던 한광철은 윤건한이 주먹으로 쇠파이프를 꺾어버리는 걸 보고 입을 닫았다.
‘괴, 괴물이야 뭐야?’
“흡!”
윤건한의 묵직한 주먹이 옆에서 휘둘러지는 각목을 박살 내고 마스크를 쓴 괴한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이빨이 허공에 흩날리며 괴한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런 놈이 있다는 말은…….”
“핫!”
“우읏!”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던 남자는 한 번 더 날아오는 정권을 보며 팔을 들어 올려 막았다.
우득! 쾅!
“크악!”
하지만 두 팔로는 막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팔이 부러진 남자의 얼굴에도 주먹이 꽂혔다.
한광철은 그 광경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주혁이와 같은 부대원이래서 그냥 싸움 좀 잘하는 수준인가 했는데, 이건 그냥 숫제 괴물이었다.
윤건한이 이 정도라는 건, 자칭 부대의 에이스였던 이주혁은 더 하다는 뜻이 아닌가.
무슨 간첩이라도 상대하는 부대인지, 개인 무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허…….”
어느새 열댓 명쯤 되던 남자들은 절반 이상이 땅을 뒹굴고 있었다.
최소한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진 채로 말이다.
“도, 돌아간다… 모두 복귀해!”
타닷!
남은 남자들은 나왔던 골목으로 다시 도망쳤다.
상황이 종료된 걸 확인한 한광철은 기력이 빠져 무릎에 손을 짚었다.
“허…….”
“괜찮으십니까?”
윤건한의 물음에 한광철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덕분에 살았다. 근데 건한아.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뭐 말입니까?”
“너희 부대원들도 다 너만큼 하냐?”
한광철의 물음에 윤건한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저보다 더 센 분도 계십니다.”
“하, 진짜 무슨 수령 동지 모가지라도 따올 생각인가.”
라세흠이 교관 시절 정말 그 임무를 받은 적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윤건한이 침을 꿀꺽 삼켰지만, 한광철은 그를 눈치채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혁이 전화를 받자, 한광철이 다짜고짜 물었다.
“네가 전역한 부대……. 대체 뭐 하는 데냐?”
-네?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날 노린 습격이 있었어.”
-습격이요? 다친 덴 없으세요?
한광철은 이주혁의 다급한 목소리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행히 멀쩡하다. 네가 경호로 붙여준 친구가 해결해줬어.”
-하…….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연락 드리려고 했거든요.
“연락?”
-아무래도 선생 놈이 저와 관련된 사람들을 노리는 것 같아요.
윤건한과 한광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당분간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리려 했죠. 건한아. 듣고 있냐?
옆에 슬쩍 와 있던 윤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당분간 아저씨 밀착 경호다. 철저하게.
“알았어. 맡겨둬라.”
한광철은 ‘밀착 경호’라는 말에 싸한 걸 느끼고선 이주혁에게 물었다.
“밀착 경호가 뭐냐?”
-더 경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하는 거죠. 보면 아실 거예요. 당분간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알았다, 알았어. 언제까지 칩거하면 돼?”
-제가 연락드릴 때까진 어지간하면 몸을 숨기고 계세요. 아셨죠?
“그렇게 하마.”
전화를 마친 한광철이 사라지지 않은 의문에 입안에서 혀를 굴렸다.
‘……밀착 경호가 진짜 뭐지?’
어쩐지 불안한 울림을 주는 단어에, 한광철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
나는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대련실로 향했다.
우리 본진과 조력자들을 보호할 인원이 빠지면, 총기도회에 갈 사람 수가 줄어든다.
수비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력이 모자라면 안 되겠지.
덜컥.
대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련하는 팀원들 뒤로 혼자 운동 중인 마종석이 보였다.
“마종석.”
“음?”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마종석이 운동 기구에서 내려와 다가왔다.
전직 강남파 이사이자 무력 서열로 한 손에 들어가던 놈.
해외 용병 출신인 데다 부장님이랑 잠시 비빌 정도는 되는 실력자다.
그리고 나쁜 놈인데 잘생겨서 짜증 나는 새끼다.
“따라와.”
빈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앉아.”
마종석이 의자를 빼 앉으며 물었다.
“뭐지?”
“슬슬 나가고 싶지 않냐?”
“음?”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참을 자연스럽게 우리 팀원들이랑 놀고 있길래 내가 먼저 물어보는 거다.”
도망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뭔가 나한테 딜을 거는 것도 아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를 놈이라 한 번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못 하는 마종석에게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설마 우리 애들로 실전 경험만 쪽 빼먹고 튈 생각은 아니지?”
그래서 계속 대련실에 붙어있던 건가?
내 의심에 마종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튄다고 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뭔데?”
마종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뒤로 기대앉으며 말했다.
“강남파가 무너졌는데도 너는 주철수 뒤에 있던 누군가와 싸우고 있지. 맞나?”
“그런데.”
“난 예전에 그 자한테 고용됐었다.”
“뭐?”
“오더가 떨어지면 주철수를 죽이라는 의뢰를 받고 강남파에 들어간 거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나왔다.
마종석이 내부에서 주철수의 목을 칠 칼이었다니.
전생에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혹시 주철수가 다른 뜻을 품을까 봐 그런 건가?”
“그런 거겠지. 어중이떠중이로는 주철수를 담글 수 없을 테니 나한테 맡긴 거고.”
“그래서, 그걸 사실대로 말한 이유는?”
나는 언제든지 튀어 나갈 수 있게 다리 근육을 긴장시켰다.
선생 놈한테 의뢰를 받았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놈이 무슨 의도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날 고용해.”
마종석이 몸을 다시 내 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충분한 보수만 주어진다면, 네가 그놈을 상대하는 걸 돕지.”
“내가 왜 그래야 해? 그것도 적한테 의뢰를 받았던 놈을.”
“의뢰는 끝났다. 선생이라고 했나? 호칭도 처음 듣는군. 주철수가 죽음으로서 나와 그놈의 계약은 끝났어. 너도 어차피 날 죽일 생각은 없지 않나?”
“흠…….”
솔직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상당한 강자인 마종석이 내 편으로 들어오면 써먹을 데가 많긴 하겠지.
하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문제인 거다.
내 고뇌하는 표정을 보던 마종석이 손가락을 펼쳤다.
“연봉 5억.”
“뭐?”
“솔직히 말하지. 네 말대로 여기 남아있던 건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서가 맞았다.”
“이 새끼가.”
“그 말은, 지금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강하다는 뜻이야. 5억이면 싸게 먹히는 거다.”
듣고 보니 그건 또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아는 최고의 괴물인, 라세흠 부장과 잠깐이나마 호각을 다퉜던 놈이니 말이다.
“날 의심하는 건 이해한다. 네 적수한테 의뢰를 받았었으니까. 하지만 난 용병이다. 내가 따르는 건 돈밖에 없단 말이지. 대신, 연봉을 포함해 너희 팀원들과의 지속적인 대련을 요청한다.”
대련이라. 실력 향상을 위해서 그것도 조건에 넣은 건가.
근데 이 새끼, 내가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에 안 드네.
“싫은데?”
“어?”
내가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마종석이 당황했다.
“우리 팀원들이랑 대련은 오케이. 대신 돈 관련해서는 다른 제안을 할게.”
“뭐지? 내 몸값은 그렇게 싸지 않아.”
“이탈리아에 있는 네 해외 계좌를 털어 봤는데, 지금까지 모아 놓은 의뢰비가 꽤 되더라?”
마종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예전엔 인터폴 같은 데 신고해서 막아버리려다가 놔뒀었지. 선생 놈 처리할 때까지 네가 잘하면 그건 손 안 댈게. 대신 이상한 짓 하다 걸리면 바로 공중분해 시켜버릴 거다.”
“하.”
허탈한 듯한 표정을 짓던 마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좋네. 잘 부탁한다. 마 인턴.”
인턴이라는 말에 마종석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인턴?”
“그럼 부장 자리라도 줄까? 아니다, 차라리 라 부장님하고 다이다이까서 부장 자리 데스 매치…….”
“이, 인턴 하겠다.”
피식.
아무리 마종석이라도 부장님은 무서운 모양이다.
하긴 부장님이 무섭지 않으면 그건 인간이 아니지.
“그럼 지금부터 첫 번째 임무를 줄게.”
“뭐지?”
“선생 놈한테 의뢰를 받았다고 했지?”
척.
“끊어졌던 그놈과의 인연을 다시 이어 붙여 보자고.”
“……다시 접촉하란 말이냐?”
“그래. 연락책을 찾아. 넌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 탈출한 뒤, 추적을 피하려고 도망 다녔던 걸로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말해주자 마종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알았다. 근데 그게 통할까?”
“통하지. 그놈은 우리 내부 정보를 알고 있는 너를 필요할 테니까.”
“꽤 위험한 작전 같은데…….”
“그래서? 하기 싫다고?”
이런 나의 도발에 마종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답했다.
“……바로 진행하겠다.”
고개를 끄덕인 마종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 좀 쐬겠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젠 내 차례다, 빌어먹을 선생 놈 새끼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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