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46
145화
나는 계좌 리스트를 쭉 훑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 이 계좌들은 돈세탁을 위한 차명계좌일 것이다.
소유주를 추적해도 노숙자나 빚이 있는 소시민일 가능성이 크겠지.
정 목사와 돈거래를 하는 놈들이 자기 명의로 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추적하다 보면 단서가 나올 거다.
이 건은 서해결 검사한테 부탁 좀 하고, 거기서 뭐라도 걸리면 내가 족치면 돼.
슥.
수첩을 품 안에 넣고 정 목사의 뒤를 따라 계속 이동했다. 그러던 중 저 앞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으, 으아!
이에 소리가 난 쪽으로 가 보니, 육중한 몸을 가누며 이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정 목사가 눈에 들어왔다.
놈은 나를 딱 마주치더니 기절할 듯 놀라 발을 멈췄다.
하지만 몸이 무거운 탓인지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 자빠져버렸다.
쿠웅-!
“으윽!”
왜 반대쪽에서 오는 거지?
뭔가 싶어 복도 건너편을 보니, 음흉한 미소를 짓는 남자 둘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뭐야.”
“우리 거니까 건들지 마라?”
낄낄대며 다가오는 배상훈과 백기준을 본 정 목사가 비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멀어지려 했다.
“X, X바알……! 비켜!”
다급한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정 목사의 뒤로, 투척 자세를 취하는 백기준이 보였다.
이어 정 목사를 향해, 백기준의 손에서 무언가 쏘아졌다.
양 끝에 작은 추가 달린 끈이었다.
휘리릭!
회전하며 날아온 끈이 정 목사의 발목에 적중했다.
추의 무게로 인해 끈이 돌면서 정 목사의 발목을 꽁꽁 묶어버렸다.
“아악!”
정 목사가 다시 한번 땅에 엎어졌다.
인성으로는 우리 부대에서 수위를 다투던 두 놈이 나한테 다가오며 말했다.
“흐흐. 우리가 잡았다?”
“성과급은 내 계좌로 보내주면 돼.”
“지랄. 오면서 다른 문제는 없었지?”
배상훈이 버둥대는 정 목사의 등짝을 밟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 새끼가 그 사람 많은 데 들어갔으면 골치 아팠을 텐데, 운 좋게 그 전에 마주쳤어. 딱 이쪽으로 오더라고.”
“그래?”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정 목사가 신도들 틈에 파묻혀 저놈 잡으란 식으로 나왔으면, 놓치는 건 물론이고 큰 낭패를 봤을 거다.
정 목사의 뜻에 따른다지만, 그래도 민간인이라 함부로 건들 수가 없거든.
나는 몸을 일으키려는 정 목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저 묶어. 다른 사람들 모르게 데려가야 하니까 입도 잘 막고.”
“오케이.”
“이거 놔 이 새끼들아! 으읍……!”
얼마 지나지 않아 정 목사는 팔다리가 묶이고 입도 테이프에 막힌 신세가 되었다.
“읍! 으응읍!”
“시끄럽다. 둘이서 이놈 챙겨 나올 수 있지?”
“어.”
“그럼 부탁 좀 하자. 난 애들 모아서 같이 나갈게.”
백기준이 내 뒤를 힐끔거리더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야. 근데 부장님은?”
“성자 잡으러 가셨다. 그놈 지키는 호위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 지금쯤 눕히고 성자 놈 데려오고 계시겠지.”
“그래? 알았다.”
콱.
정 목사를 통돼지 바비큐처럼 들쳐멘 배상훈과 백기준이 멀어졌다.
“흠.”
그러고 보니 부장님이 좀 늦으시네. 원래 같으면 진작 처리하고 성자 놈 끌고 오실 시간인데.
혹시 뭐 문제라도 생겼나? 가서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타닷-!
빠르게 달려 성자가 있던 방을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축 늘어진 거인만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망간 성자를 잡으러 나간 건가 생각하던 그때.
“음?”
뜬금없이 열려 있는 찬장 문이 눈에 들어오길래 허리를 숙여 안을 확인했다.
아까는 닫혀 있었던지라 혹시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내부를 본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이 새끼 봐라.”
찬장 문 안쪽으로, 길고 어두운 통로가 펼쳐져 있었다.
* * *
조금 전. 라세흠이 베드로와 한창 싸우고 있던 때.
성자이자 자신을 진용현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슬쩍 눈을 떴다.
남자의 본명은 전용갑. 20년이 넘게 사기를 전공한, 사기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저 괴물 같은 놈…….’
전용갑은 베드로에게 대등하게, 아니.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라세흠을 실눈으로 보며 치를 떨었다.
베드로는 전용갑이 일을 처리할 때마다 마약을 제공하며 꾸준히 세뇌한 녀석이다.
태생부터 엄청난 신체 능력으로, 지금껏 그 누구한테도 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배상훈이라고 소개한 저놈은 베드로를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몸부터 빼내야 해.’
아까 저놈의 발차기를 막은 팔과 어깨, 등이 욱신거렸지만, 이대로 기절한 척만 하고 있다간 잡히는 건 금방이다.
전용갑은 라세흠이 등을 보인 채 베드로를 붙잡는 걸 보고, 비밀 통로가 있는 찬장을 향해 재빠르게 기어갔다.
사사삭.
20년간의 도주 경력 탓인지, 전용갑의 움직임은 아주 조용했다.
몰래 찬장 문을 연 전용갑은 비밀 통로 안으로 몸을 구겨 넣고 다시 문을 닫았다.
탁.
“후……. X발.”
그래도 선생의 하수인 놈이 정 목사를 쫓아가서 다행이다.
아마 이주혁은 바깥의 저 괴물이 베드로와 자신을 잡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놈도 이 통로의 존재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달칵.
전용갑은 입구 옆에 놓인 상자 안에서 리볼버 한 정을 꺼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경찰에 뒷돈을 뿌려 구한 물건이었다.
실린더를 열어 실탄 다섯 발이 채워진 걸 확인한 전용갑이 총을 품에 넣고 다리를 잽싸게 움직였다.
자신이 꿍쳐둔 물건들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돈 같은 건 우선이 아니야. 그 수첩부터 챙긴다.’
선생이 종교를 운영할 때 사용하라고 알려준 미래 정보가 담긴 수첩. 그것만 있으면 돈은 알아서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갈림길에 도착한 전용갑은 수첩이 있는 오른쪽 통로로 발을 들였다.
그 순간이었다.
끼익-.
저 멀리 뒤에서 빛이 살짝 새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찬장 문을 열었다는 뜻이었다.
‘이런 X발!’
설마 그 괴물 같은 놈이 벌써 베드로를 쓰러뜨렸단 말인가?
눈을 굴리던 전용갑은 결국 왼쪽 쇠창살을 열었다.
수첩은 포기다. 그거 하나 얻으려다 붙잡히는 초짜 같은 짓은 할 수 없었다.
전용갑은 창살 안으로 넘어가 걸쇠를 건 뒤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헉……. 헉……!”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잠시 숨을 고르던 전용갑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
“음?”
타다닷!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전용갑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이런 미친……!”
괴물 놈이 어느새 잠가 놓은 쇠창살을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에 기겁한 전용갑이 품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총은 또 어디서 난 거야!”
그걸 본 라세흠이 발을 멈추고 몸을 뒤로 날렸다.
손을 부들부들 떨던 전용갑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억!”
예상치 못한 반동에 전용갑의 상체가 뒤로 확 꺾였다.
“X발……!”
전용갑은 얼얼한 손을 붙잡고 욕을 내뱉었다.
전과 때문에 군대를 가지 않은 전용갑은 생각보다 심한 반동에 당황했다.
통로가 꺾인 부분에 몸을 숨기고 있던 라세흠이 그걸 보고 히죽 웃었다.
“너, 미필이구나?”
“닥쳐!”
탕-!
전용갑은 총을 한 발 더 쏘고는, 몸을 추스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훅, 훅!”
“성자님, 같이 가요-.”
“X발!”
자꾸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달려가자 어느새 출구가 눈에 보였다.
전용갑은 뒤에 라세흠이 쫓아오지 않는 걸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X발……. 내가 총이 있는데 제 놈이 뭘 어쩌겠어?’
아무리 괴물 같은 새끼라도, 총 한 발이면 골로 가는 거다.
씨익 입꼬리를 올린 전용갑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지금까지 이동한 통로는 기도원의 뒤편 주차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후우…….”
전용갑은 자신이 나온 곳에 계속 총을 겨누며 주차되어있는 자신의 차로 이동했다.
이대로 탈출해 부산까지 도망가는 것까지만 성공한다면, 선생이고 뭐고 일본에서 다시 새 출발 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한 전용갑이 문을 열고 차에 오르는 순간.
부웅-!
“어?”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 차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이주혁의 후배, 돼지가 긴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 진짜 박는다?!”
“박아라!”
조수석에 있던 덩치의 말에, 돼지가 몸을 웅크리며 액셀을 더 밟았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난쟁이가 손잡이를 꽉 붙잡으며 욕을 내뱉었다.
“X바알……!”
그걸 본 전용갑이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으, 으아악-!”
후배들이 몰고 온 차가, 전용갑의 차를 그대로 박아 버렸다.
콰앙-!
* * *
나는 길게 이어진 통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비밀 통로 같은데…….
영악한 성자가 부장님이 싸우는 사이 이쪽으로 도망친 게 아닐까. 부장님은 그 뒤를 쫓아가신 거고.
일단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숙여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흠.”
통로는 두 갈래 길로 나누어져 있었다.
둘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부장님과 성자가 어디로 갔는진 파악할 수 있었다.
‘완전히 박살이 났네.’
통로 둘 중 왼쪽을 막고 있던 쇠창살.
거기 달린 잠금장치가 처참하게 파괴되어있었다.
이런 짓이 가능한 사람은 부장님밖에 없겠지.
성자는 이걸 잠그고 튀었고, 부장님은 이걸 그대로 부수고 추격했을 거다.
그래도 부장님이 놈을 놓칠 일은 없을 거다.
이런 단순 통로에 함정이 있어 봐야 부장님을 막을 순 없을 테니까.
‘뭐, 총 같은 게 있으면 시간 정도는 끌 수 있겠지만.’
나는 일단 쇠창살 쪽 말고, 뚫려있는 다른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교란 목적이라기엔 오른쪽에 쇠창살이 없는 게 이상했고, 또 굳이 통로가 하나 더 있는 걸 보면 여기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서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뜬금없이 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까 성자가 우리를 안내했던 방의 문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문손잡이를 잡고 당겨보니 쑥 열렸다.
잠금장치는 별도로 없는 자그마한 방.
어둡고, 창문 하나 없는 골방에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벽 한쪽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끼익-.
‘책?’
뭔가 중요한 게 숨겨져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안에 있는 건 책이 꽂힌 책장뿐이었다.
입구를 제외하고 삼면이 책장이라, 사실 서적을 가지러 오는 걸 제외하면 여기 올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이 공간 자체가 수상했다.
굳이 책을 이런 비밀스러운 공간에 채워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뭐라도 나올까 싶어 난 책장에서 책을 뽑아 확인했다.
[이단은 어째서 이단인가] [기독교의 기원] [신학과 인문학]책은 그냥 서점에서 볼 법한 종교 서적이 다였다.
하지만 이게 다일 리가 없지.
나는 꽂혀 있는 책들을 모조리 꺼내버렸다.
후두둑-.
‘이거네.’
그리고 보이는 텅 빈 책장 너머의 벽. 거기 붙은 손잡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 크기로 봤을 때 안의 공간은 금고 정도의 크기인 것 같네.
책장을 치우고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그 비밀스러운 공간 안에 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거기엔 번쩍거리는 금괴들과 현금 뭉치. 그리고 마약으로 보이는 약물과
‘수첩?’
어울리지 않게 웬 낡은 수첩 하나가 있었다. 정 목사의 수첩과 비슷한 크기였다.
일단 증거물로 남겨놓기 위해 수첩만 꺼내고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수첩을 펼치는 순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7년. 외환 위기 시작.].
.
.
‘빙고.’
미래의 정보가 담긴 수첩. 아마 성자가 선생 놈에게 받은 정보로 작성한 것 같은데.
수첩에는 주로 한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 한 사건에 시선이 닿은 나는 의아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만. 이거?’
[2007년. 바다 이야기 사태 종료.]원래 역사대로라면 2007년이 맞지만, 내가 개입한 탓에 바다 이야기는 작년인 2005년에 막을 내렸다.
정치계를 뒤흔든 사건의 여파도 슬슬 잠잠해지고 있었고.
그런데 여기 쓰여있는 건 내가 회귀하기 전의 역사였다.
만약 선생이 미래를 볼 수 있고, 이 수첩의 내용이 선생에 의해 쓰여진 거라면…….
히죽.
‘내가 변수였던 이유가 이거였냐?’
아무래도, 선생은 내가 바꾼 미래는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