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53
152화
“……!”
우재성은 황성빈의 눈빛이 떨리는 걸 보며 내심 미소지었다.
‘정말인가 보네.’
이주혁의 말대로, 황성빈은 정말 선생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선생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잠시 말문을 잃고 있던 황성빈이 시치미를 뗐다.
우재성은 그런 그를 향해 피식 웃으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숨길 필요 없습니다. 황성빈 씨.”
“…….”
“저도 그 사람과 협력하고 관계니까요.”
그 말에도 황성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말한다고 덥석 신뢰하진 않으리라.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라, 우재성은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증거도 없고, 언질도 없었을 테니까.”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우재성이 침묵하고 있는 황성빈에게 물었다.
“그런데 황성빈 씨. 선생이 정말 황성빈 씨를 아무 기반도 없이 여기 잠입시켰겠습니까? 이런 적지에?”
“허.”
“강남서에 스파이로 투입됐을 때도 내부에서 돕는 인물이 있었잖습니까?”
우재성의 말에, 황성빈은 마음이 흔들렸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약은 친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우재성은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일수록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재성은 황성빈의 반응을 확인하곤 남은 차를 쭉 들이켠 뒤 문 쪽을 손짓했다.
“제 용건은 여기까지. 다음에 마저 얘기하시죠.”
“……예.”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저를 찾아오시고요.”
황성빈은 답할 말이 마땅치 않은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드륵.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우재성이 턱을 어루만지면서 생각했다.
‘단순히 신뢰를 쌓는 걸로는 부족하기는 해.’
이주혁이 이 부탁을 할 때 이야기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역으로 정보를 흘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황성빈과 신뢰 관계가 되어야 했다.
그건 단순히 약을 치는 걸로는 부족한 상황.
확실히 이런 쪽은 아무래도 전문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응?’
대화를 곱씹던 우재성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SA시큐리티에 이런 우재성의 고민을 가장 명쾌하게 해결해 줄 사기꾼 출신이 한 명 있었다.
‘사발 이사.’
말빨로 사람들을 현혹하던 그 사람이라면, 황성빈 정도는 어떻게든 속여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우재성이 핸드폰을 꺼냈다.
***
강유찬과 대화했던 방에서 복도로 나온 나는 강예원을 찾기 위해 복도를 둘러봤다.
그러자 저 멀리서 소주병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강예원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날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야기는 다 끝난 거야?”
“어. 나 보자고 했다며.”
“응. 미안한데 직원휴게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어? 이 손님들 서빙만 좀 마무리하게.”
“그러지, 뭐.”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강예원을 뒤로하고 휴게실로 향했다.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꽤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평소처럼 실없는 소리였다면 그냥 복도에서 하고 말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휴게실로 이동해 잠시 기다리고 있자, 강예원이 물 묻은 손을 털며 후다닥 달려 들어왔다.
“미안. 좀 늦었지?”
“어. 늦었지.”
내 자연스러운 핀잔에 강예원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한테 잠시 너랑 얘기 좀 한다고 말씀드리고 왔거든. 그래도 마침 너 왔을 때 얼굴 보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으실까.
내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강예원이 맞은편에 털썩 앉으며 본론을 꺼냈다.
“근무 시간이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너희 회사 있잖아. SA시큐리티, 맞지?”
“어. 맞는데 왜?”
“혹시…… 거기 일자리 하나 있을까?”
그 말에 순간 표정이 이상해졌다.
뭔 소릴 하나 했더니만, 취직시켜 달라는 거였어?
“여기서 일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왜 다른 데 취직하려고?”
“아. 풍원한정식을 그만둔다는 건 아니고, 사장님이 이번에 영업일을 좀 바꾸셨거든. 알고 있어?”
“그랬지. 일요일은 쉰다고 하시더라고.”
부장님과의 훈련을 위해 가게를 그냥 하루 쉬어버리는 여자, 임유나.
보통 주말은 다들 쉬고 싶어 할 텐데, 일요일에도 가게에 나와서 운동이라니 참 대단하단 말이야.
“너도 들었구나. 사실 내가 일주일 내내 나와서 일했거든. 그런데 이제 일요일은 휴업이라고 하니까 시간이 비더라고.”
“워커홀릭이야? 하루 쉬면 좋은 거지.”
내 말에 강예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음. 그게 사실…… 우리 가정 형편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 내가 가장 역할을 떠맡고 있는 상황이라서.”
“생각보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네.”
꽤 민감한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사실이니까?”
“아……. 그래?”
내 주변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보는 대강 조사해 놓은 상태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뭐, 사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인연이 있는 사람인데 도움을 주지 못할 이유는 없지.
“그럼 잘됐네. 안 그래도 우리 프런트 직원이 일요일에는 못 나오게 됐거든.”
“정말?”
사실 그런 말을 들은 건 아니긴 한데, 봉급만 더 챙겨 주면 그 친구는 바로 받아들일 거다.
“이번 주부터 바로 가능해?”
“당연하지!”
“그럼 일요일 담당으로 출근해. 급여는 섭섭하지 않게 챙겨 줄 테니까.”
“고마워. 정말…….”
뭐라 말하려던 강예원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안 그래도 요새 나 같은 무경력은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단 말이야.”
“뭐, 나도 아는 사람 뽑는 게 더 마음 편하니까.”
선생 놈이 내 주변에 무슨 작업을 쳐 놨을지도 모르고 하니,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더 낫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강예원의 사정 조금 더 조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믿었던 사람한테 뒤통수 맞기보단, 뒤통수를 맞기 전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실하게 체크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건 나중에 우재성한테 따로 말해 봐야겠어.
“할 말은 이게 끝이야?”
“어? 응. 끝이긴 한데……. 뭔가 미안하네. 좀 과한 부탁인가 싶기도 하고.”
“됐어.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뭘. 인수인계만 잘 받고, 일만 잘해 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어. 고마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이제 슬슬 복귀해. 나도 가야겠다.”
“가려고? 사장님은 안 보고 가?”
그 말에 살짝 고민이 됐지만, 안 그래도 요새 할 일이 많았기에 안타까움을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일이 바빠서. 다음에 뵈러 온다고 전해 줘.”
“꼭 말해 놓을게. 정말 고마워!”
“알았다. 그만 고마워해. 부담스럽다.”
대충 손을 내젓고 휴게실을 나섰다.
부산 출장은 아직 일정도 잡히지 않았고, 서울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도 남아있었다.
그건 바로 강남파의 전 실장, 남상민과의 면회.
이번에 칼을 맞았다길래 안 그래도 찾아가려 했는데, 주철수가 따르던 그 노인네 곽환성이 연락이 왔었다.
‘중요한 정보를 얻어 낼 수도 있으니 면회 전에 꼭 먼저 연락하라고 했었지.’
사실 자수시킨 입장에서 남상민 그놈과의 인연은 끝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또 엮이게 되네.
나는 가게 바깥으로 나가며 곽환성의 번호를 입력했다.
저번에 우재성과 이야기했듯 믿을 수 있는 영감은 아니긴 해도, 선생 놈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긴 하다.
적의 적은 아군이란 말이 있으니 일단은 협력해야겠지.
‘두 시간 정도 남았나.’
미리 약속한 면회 시간을 확인한 뒤, 곽환성에게 전화를 걸며 내 차로 향했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반드시 연락하라고 그렇게 강조를 한 건지 한번 들어 봐야겠다.
***
끼익-.
“후…….”
잠시 후, 나는 고민에 빠진 채로 서울남부교도소에 도착했다.
곽환성에게 한인석 변호사의 정보에 관해서 전해 들은 탓이었다.
그 양반, 솔직히 별거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
곽환성의 추측이긴 하지만,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남상민과 한인석을 죽이려고 한 사람은 선생이 맞을 거다.
‘그리고 한인석이 선생 놈의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선생 놈은 자신과 연관된 정보가 드러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괜히 자기 하수인들에게 잡혀서 정보를 불기 전에 목숨을 끊으라는 명령을 내린 게 아니거든.
그러니 감방 내에서 그 두 사람을 대놓고 죽이라고 지시할 정도라면, 한인석이 꽤 중요한 내용을 알고 있던 게 분명하다.
물론 주철수의 뜻대로 움직인 한인석은 누구와 관련된 건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겠지만, 변호사인 만큼 똑똑한 양반이니 머릿속에는 들어 있지 않을까.
턱.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자, 교도관 한 명이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조용히 다가왔다.
“이주혁 씨 맞으십니까?”
“아, 예. 맞습니다.”
“이쪽으로.”
그 교도관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면서 어디론가 향했다.
역시, 분위기를 보니 제대로 된 면회는 아니네.
아마 곽환성이 매수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주철수한테 작업당한 노인치곤 아직 이 정도의 파워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파면 팔수록 괴담만 나오기에 마음이 영 찝찝했지만, 당장에 곽환성과의 협력으로 얻는 이득이 꽤 크다.
이렇게 면회를 프리패스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니 괜히 이쪽에서 먼저 의심하고 있다는 티를 낼 필요는 없겠지.
“여깁니다.”
앞장서 가던 교도관은 한 방 앞에서 멈췄다.
“이 면회는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예. 걱정하지 마십쇼.”
고개를 끄덕인 교도관이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나는 방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익숙한 면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이거, 반가운 얼굴들이시네.”
내가 히죽거리며 들어서자, 테이블 너머에 앉아 있던 남상민과 외꾸눈의 한인석 변호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염병.”
남상민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들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자. 두 사람 다 나한테 감정 있는 거 압니다. 근데 그때 상황이 그랬던 걸 어쩌겠어요? 난 주철수를 박살 낼 생각이었고, 둘은 주철수 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
“하지만 주철수는, 놈을 뒤에서 조종하던 누군가에 의해 죽었으니, 우린 딱히 적대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사실상 주철수에게 직접 버려진 한인석은 담담한 눈치였지만, 부장님한테 제압당한 뒤 자수한 남상민은 아직 앙금이 남은 얼굴이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죄수복을 입었는데?”
가시 돋친 남상민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자수 안 했으면. 주철수, 아니면 주철수를 뒤에서 조종하던 그놈이 남 실장 당신을 그냥 놔뒀겠어? 강남파 내부의 정보를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지도 모르는 사람을?”
“음.”
“오히려 그쪽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지금까지 살아 있던 겁니다. 남 실장님.”
남상민은 고뇌하는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일단 쓸데없는 토론은 나중에 하고, 한인석 변호사님이 알고 계신다는 그 정보부터 알아냅시다.”
“좋습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한인석이 날 보며 말했다.
“처음에 곽환성 대표님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땐 긴가민가했습니다. 애초에 저는 주철수 사장의 지시만 받던 고문 변호사였고, 그 뒤의 존재니 선생이니 하는 건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예.”
“대신 제가 맡았던 건 중에 가장 큰 건, 주요 인사들이 엮여 있는 건을 추려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가 나오더군요.”
“뭐였습니까? 그게.”
“지금 한창 진행 중일 신도시 사업 말입니다. 판교신도시.”
판교신도시라.
우리나라 신도시 중 가장 성공한 곳이기도 하고, 집값도 가장 비싼 곳이다.
아직 완공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그거랑 선생 놈이 연관이 있나?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인석이 설명을 이어 갔다.
“주철수 사장이 여러 건설 회사에 손을 뻗치면서 돈을 끌어모았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그 건설사들은 모두 판교신도시 사업에 일축을 맡은 곳이었고요.”
“그럼 설마…….”
“그 건설사들과 판교신도시에 일찍이 투자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제가 관리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선생은 내가 회귀하기 전의 사건까지 성자에게 알려 줬던 놈이니, 분명 판교신도시 건까지 알고 있었을 터.
영악한 선생 놈이 이 큰 건으로 아무런 이득도 취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 그 건설사와 투자자들을 캐다 보면, 분명히 놈과 관련된 정보가 있을 거다.
그것도 꽤 큰 정보가.
씨익.
“혹시 그 리스트,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