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56
155화
빅토르 페트로프. 일명 ‘불곰’.
러시아의 암흑계를 주름잡는 마피아 세력, ‘드라콘’에서도 수완이 좋아 꽤 유명한 놈이다.
주로 한국에 마약과 불법 무기를 수출해 이득을 취하는 놈인데, 워낙 신출귀몰해 전생에서도 부산 경찰들이 머리 꽤나 싸맸었다.
심지어 이름과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강남파 소속이었으니 이놈의 정보를 알고 있었지.
“와꾸 한번 살벌하시네. 그리고 수출업이라.”
“예.”
“갑자기 제 머릿속에 뭐가 하나 떠올랐는데요.”
“뭐 말이죠?”
“혹시, 제가 밀수 현장을 경호하는 겁니까?”
내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쳐다보자, 강유찬은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해십니다. 클라이언트는 건전한 품목만 거래하시거든요.”
“허연 가루 같은 거 거래하게 생기셨는데, 건전한 거라? 이거 의욉니다.”
“하하…….”
“그럼, 그 거래는 누구랑 하는 겁니까? 회사에요? 아니면, 개인 거래?”
내 질문에 강유찬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불건전의 끝을 달리는 것들을 거래할 사람인데, 함부로 말을 꺼내긴 좀 그럴 거다.
“왜요. 품목은 건전한데, 거래처는 건전하지가 않나 봐?”
히죽거리면서 벗고 있던 선글라스를 슬쩍 다시 쓰자, 강유찬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걸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국제파에요?”
정광제가 수장으로 있는 국제파.
강유찬은 내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 살짝 놀란 눈치였다.
“그게 무슨…….”
“아니 뭐, 떳떳하게 말을 못 하시길래 그냥 한번 던져봤습니다. 아님 말고요.”
“하.”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흘린 강유찬이 경고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국제파는 부산의 뒷골목을 꽉 잡고 있는 대형 조폭입니다.”
“아, 예.”
“그리고 그 수장은 굉장히 위험한 인물입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사람이니, 혹시 부산을 돌아다닐 생각이라면 조심해야 하실 겁니다.”
“되게 잘 아시네요?”
끄덕.
“서울의 강남파와 마찬가지로, 기업으로의 전환을 노리고 있는 조직이니까요.”
“그래요?”
“예. 그러니 9시까지는 최대한 국제파와 엮일 일은 만들지 말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에이, 뭘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잖습니까. 서울에서 강남파를 그렇게 개박살 내셨는데.”
음. 팩트긴 하네.
“그러니까 강유찬 씨 말은, 여기 부산 바닥에서 국제파는 건드리지 말아라? 이겁니까?”
“맞습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허허. 이거, 날 너무 잘 파악했네.
당부를 남긴 강유찬은 이내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거래를 위해 준비할 것들이 좀 있어서요.”
“아이고, 예. 알겠습니다. 배웅은 못 나가드리겠네요. 옷이 이 모양이라.”
“…….”
강유찬은 잠시 내 반팔 셔츠와 반바지, 슬리퍼를 위아래로 훑더니 말했다.
“근데 이 대표님. 안 추우십니까?”
“예?”
“이 겨울에 그렇게 입고 해수욕장에 오는 사람은 대표님 말고 없을 겁니다.”
그 말에 뒤를 힐끗 보니, 바다 안에서 노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 이게 밀레니엄 시대 혁신의 첫걸음 아니겠습니까.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쇼.”
“음. 알겠습니다.”
대충 헛소리를 내뱉으며 강유찬을 돌려보낸 뒤, 나는 다시 선베드에 누웠다.
작년 여름에 못 놀아서 이렇게라도 기분 좀 내려고 했다.
그런데 저렇게 꼽을 주다니.
저번부터 느낀 건데, 강유찬 저 새끼 아주 싸가지가 없단 말이지.
뭐, 나도 매한가지지만.
어쨌든 저놈은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는 느낌인데, 마음속 깊은 곳에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저게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사회적 모습이지.
쪼록.
그렇게 속으로 강유찬을 씹으며 칵테일을 마저 음미했다.
날씨가 추워서 얼음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술이 안 들어가서 그런지 음료 자체가 얼어붙어 있었다.
“이런 씨…….”
아무래도 쉬는 건 여기까지.
나는 조금 전 들었던 강유찬의 말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후.”
뭐, 국제파를 건들지 말아 달라고?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내 추측 상, 국제파의 정광제는 주철수와 마찬가지로 선생 놈과 협력 관계일 거다.
이번에 불곰 그 새끼와 거래하는 것도 정광제가 분명하고. 아마 거래하는 김에 거기서 나까지 처리해버릴 생각이겠지.
아니면 부당한 거래 품목을 나에게 뒤집어씌울 수도 있고.
그래서 강유찬이 내게 말한 당부는, 괜히 나대지 말고 얌전히 죽으라는 뜻으로 들렸다.
“흐흐.”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면 더 해주는 게 인지상정.
건들지 말랬으니 건드릴 거고, 엮이지 말랬으니 엮여야겠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접어 셔츠에 넣어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정광제 그 새끼부터 만나보자고.
***
정광제를 만날 방법을 고민하던 나는 한 횟집에 도착했다.
[사나이횟집]내가 통영에서 살던 시절, 중학교 때 알던 녀석 하나랑 해운대에 잠깐 들린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녀석이 이 가게 앞을 지나치며 여기가 국제파 조직이 운영하는 횟집이란 소문이 있다며 넌지시 말을 흘렸었지.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라서 이렇게 찾아오게 된 거다.
솔직히 그냥 바로 사무실에 쳐들어가는 게 빠르긴 한데, 강유찬 그 새끼한테 내가 정광제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진 않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구의 까까머리 남자 넷이 모여서 매운탕을 먹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등짝과 몸에는 문신이 가득한 게, 한눈에 척 봐도 깡패 새끼들이네, 이거.
민소매만 입은 채 두툼한 살을 드러낸 조폭들의 시선이 갑자기 나타난 나한테 날아들었다.
나는 그 시선들을 가볍게 넘기며 문을 잠갔다.
철컥.
그리곤 몸을 돌려 밝게 외쳤다.
“사장님, 주문할게요!”
“점마 뭐꼬?”
“예- 갑니다!”
앞치마를 매고 나온 사장이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다가왔다.
그 얼굴엔 조폭답게 칼자국이 몇 개가 길게 그어져 있었다.
“서울분이신가 보네예. 뭘로 드릴까예?”
“뭐 거창한 건 아니고, 당신네 대가리 좀 만나러 왔어.”
“예?”
“정광제. 그 사람한테 말 좀 전해주라. 나 좀 보자고.”
그 말에 사장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너 이 쉐끼, 누가 보냈노?”
“그냥 말만 전해줘. 괜히 덤비다 다치지 말고.”
“완전히 미친놈이네 이거? 야들아!”
사장의 말에 매운탕을 흡입하던 깡패들이 주섬대며 일어났다.
“진상 손님이 하나 왔다. 샤따 내리고 알아서 치아라!”
“예-.”
깡패들은 내가 한 명이라 만만해 보였는지, 여유로운 표정으로 건들대며 걸어왔다.
나는 한겨울에도 민소매만 입은 놈들을 보며 뭐라 한마디를 하려 했지만, 아까 내가 즐겼던 겨울 피서가 생각나 열려던 입을 닫았다.
“서울 촌놈. 니 먼데 여 와가 행패고?”
“행패는 무슨. 부탁 좀 하자니까 거칠게들 나오네.”
“하이고, 지랄은.”
턱.
내 앞에 마주 선 깡패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마. 니 자신 있나.”
“자신 있으니 혼자 왔겠지, 이 빙시나.”
사투리로 응수하자 놈은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누군지 아나. 송정동 금강불괴 김만…….”
“금강불괴는 지랄! 말랑카우겠지!”
놈이 방심하는 사이 나는 눈앞의 두툼한 뱃살에 정권을 날렸다.
펑-!
“끕! 어억…….”
털썩.
자신만만하게 미소짓던 놈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고!”
“마, 만재야!”
“얘가 니네 대장이냐? 뭐 이렇게 허약해?”
내가 히죽대며 쓰러진 놈을 툭툭 발로 치자, 나머지 깡패들이 쿵쿵대며 달려왔다.
“이 미친 새끼!”
한 놈이 주먹을 날리는 걸 확인했다. 어떻게 들어올지 모션이 다 보이는 뻔한 공격이었다.
나는 크게 휘둘러지는 주먹에 그대로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꽝!
“끄아아악-!”
손가락이 부서진 깡패가 길게 비명을 뽑아냈다.
이어 옆으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한 놈이 날 넘어뜨리려는 듯 몸을 낮추며 쇄도했다.
덥석!
내 허리를 양팔로 붙잡은 놈이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이야아!”
그 대응으로 나는 오히려 흐름에 맞춰 땅을 박차 몸을 뒤로 날렸다.
투웅.
이놈이 허리를 꽉 붙잡고 있고, 내 몸은 공중에 뜬 상태.
이대로 있으면 등부터 바닥에 부딪히며 전투 불능이 될 거다.
하지만 이 공격도 마찬가지로 허접했다.
나는 오른쪽 팔꿈치를 상대의 머리 위에 갖다 대고, 살짝 허리를 틀었다.
“이럴 땐 팔까지 같이 잡는 거다.”
“?!”
몸을 뒤틀며 팔꿈치를 이용해 놈의 머리를 눌렀다.
내 몸보다 상대의 머리가 먼저 땅에 처박히도록.
콰앙-!
그렇게 한 놈을 보내고 몸을 일으키자, 남은 깡패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에 나는 씩 웃으며 손짓했다.
“뭐해? 안 들어오고.”
“…….”
잠시 자기들끼리 웅성대던 깡패들은 인상을 구기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니 쫌만 기다리라잉.”
“그래. 편하게 다녀와. 기다려줄 테니까.”
어차피 한 놈이 가게 셔터도 닫았고, 나도 나갈 생각 없거든.
우르르-.
주방에서 사시미를 하나씩 가지고 나온 놈들이 자신감을 회복했는지 날 보며 히죽거렸다.
“와? 사시미 보이 이제 간땡이가 쫌 서늘하나?”
“주둥이 자유분방하고 좋네, 근데 X밥들이 칼 잡아봤자 X밥들이지. 기별도 안 간다, 새끼들아.”
나는 목을 뚜둑 꺾으며 천천히 놈들에게 걸어갔다.
“그냥 한꺼번에 들어와라. 형 바쁘다.”
***
정광제는 통에서 껌 4개를 꺼내 씹으며 수하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래가. 어떤 미친놈이 사나이횟집에서 함 보자고 내한테 전했다, 이 말이가?”
“예. 행님.”
“이런 빙시 쉐끼야. 내가 사장님이라 부르라 캤제.”
“죄, 죄송합니더.”
“그라고, 니는 와 그딴 잡일을 내한테까지 갖고 오노? 안 그래도 바쁜데 죽고 싶나?”
움찔한 수하가 주눅이 든 채 설명했다.
“아니, 그게…… 금마 그게 행님한테 똑띠 안 전하믄 진짜로 큰일 날 끼라 카지 않십니꺼.”
“사장이라니까 새끼야, 사장. 그래가, 금마가 뭐라 캤다고?”
“내 이주혁이니까, 조용히 만나자고…….”
“뭐? 이주혁이? 금마가 지를 이주혁이라 카드나?”
정광제가 추궁하듯 묻자 수하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예! 제가 확실히 들었십니더.”
“허. 이주혁이가 내를 이래 직접 찾아왔다 그 말이가.”
갑작스러운 방문 소식에 당황하기도 잠시, 정광제가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하가 당황하며 물었다.
“와, 와 그라십니꺼.”
“아……. 이 쌔끼, 배짱 봐라 이거. 뭐 시간, 장소. 남긴 말 없었나?”
“장소는 그대로 사나이 횟집, 시간은 니가 이걸 듣는 즉시. 이래 말했십니더.”
빡!
“악!”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수하가 비명을 질렀다.
“이 쉐끼가, 행님한테 니?”
행님이라는 말에 수하는 작게 ‘사장이라면서예…….’라고 중얼거리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했다.
“아니, 그게 아이고…… 금마가 남긴 말 그대로 전한다꼬…….”
“됐고, 차 대기시키라.”
“예? 진짜로 가시게예? 그런 미친놈은 그냥 아들 시켜서 바다 내음 좀 맡게 해주믄 되지 않십니꺼. 그라몬 그냥 바지에 질질 지리면서 잘못했다고 빌 텐데.”
“그럴 놈이 아이다. 잔말 말고 대기시키라면 대기시켜, 이 씨…….”
“아, 예! 예!”
수하가 황급히 사장실을 나가고, 정광제는 껌 두 개를 더 꺼내 씹으며 중얼거렸다.
“이주혁이……. 이 늑대 쉐끼가 이빨 빠진 호랑이 하나 잡았다고 아주 기고만장한갑네. 감히 내를 오라 가라 해?”
그리곤 고무처럼 질겨진 거대한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생각했다.
‘만약에 별 볼 일 없는 놈이면, 그냥 우리 양식장 물고기 밥으로 던져줘 뿔 기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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