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끼익-.
차를 타고 횟집 앞에 도착한 정광제는 당황했다.
“저, 저거 샤따가 와 저라노?”
횟집은 셔터가 내려가 있었는데, 그 한중간이 불룩 튀어나온 채였다.
마치 안에서 누군가 강하게 들이받은 느낌이었다.
“세울까예.”
“어. 내리라. 씨바, 여서 우리 아들이랑 한 따까리 했는갑네.”
탁.
문을 닫고 내린 정광제가 수하한테 손짓했다.
“샤따 올리 봐라.”
“예.”
중얼대던 수하가 셔터를 올리자, 안에서 유리 조각이 후두둑 튀어나왔다.
정광제는 황급히 발을 빼며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 씨. 너무 격하게 논 거 아이가, 이거.”
구둣발로 유리 조각들을 슬슬 밀어낸 정광제가 부서진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안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성을 내질렀다.
“이야……. 그래도 쫌 치던 아들인데, 싹 다 디비 자고 있네.”
정광제는 허리를 숙여 기절한 한 사람의 부서진 손을 확인하곤 혀를 내둘렀다.
아직 애송이긴 해도 실력은 있는 녀석들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처참하게 당한 채였다.
“허. 임마는 뒤짔나.”
“숨은 쉽니다, 행님. 아니, 사장님.”
“에휴……. 좀 키워 볼랬는데, 한 놈한테 이래 털려 뿌면 우야노. 빙신들.”
슥.
“안 글나?”
정광제가 평온한 표정으로 멀쩡한 테이블에서 회를 집어 먹던 청년을 향해 물었다.
“뭐가.”
“이거, 니가 이랬제?”
“맞는데, 왜?”
“미친놈이가, 이거.”
질겅질겅.
반말을 찍찍하며 회를 우물거리는 청년을 보던 정광제의 이마에서 핏줄이 꿈틀거렸다.
“마, 니 맻 살이고? 반말하지 마라.”
“왜?”
“반말하지 마라고.”
“됐고, 그쪽이 정광제지?”
뿌득.
정광제가 앓는 소리를 내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생전 자기 앞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 새끼는 본 적이 없었다.
“쌔끼. 당돌하네. 임마들 혼자 다 눕힌 거 보이 실력도 있고 깡따구도 있는 거 같은데, 니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없나?”
“없다.”
“어유. 말뽄새 봐라. 이 씹새.”
열이 뻗친 정광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미친놈, 이주혁이 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빼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텁.
이주혁 앞의 접시에서 광어 한 점을 집어 먹은 정광제가 손을 탁탁 털며 물었다.
“니, 부산 바닥에서 뭔 깡으로 이런 짓을 했노?”
“정광제.”
“씨바, 어린 노무 쉐끼가 자꾸 반말을…….”
“‘불곰’이랑 거래하는 사람, 너 맞지?”
정광제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니 뭐고? 그 뺀질이 쉐끼가 말하드나?”
“뺀질이? 강유찬?”
“그래. 그게 아이면 니가 그걸 우째 안단 말이고.”
“맞나 보네. 그냥 찔러 봤는데.”
“…….”
꿈틀.
어린놈이 사람을 흔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순간 당황해서 저런 뻔한 수작에 걸려 들어 버렸다.
히죽 웃은 이주혁이 입을 열었다.
“다 알 만한 사람이 왜 이래? 그 새끼들이랑 나 담그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정광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거까지 안다꼬?’
이주혁의 말대로, 그 거래현장에서 정광제와 불곰은 이주혁을 죽이기로 했다.
어차피 거래도 해야 하고, 겸사겸사 이놈도 처리해 선생의 호의를 살 생각으로 말이다.
강 권사가 의뢰를 가장해 이주혁을 데려오고, 그 자리에서 거래를 마친 뒤 놈을 처치한다. 그게 이번 계획이었다.
그런데 저놈이 자기가 노려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단다.
그럼, 대체 부산엔 왜 내려온 건지가 의문이었다.
정광제는 눈앞의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걸 느꼈다.
“그라모 니는 와 여까지 온 기고? 니 쥑이 뿔 거 알면서도 말이다.”
“쯧쯧. 아직도 모르겠냐?”
“뭐를?”
“애초에 날 죽이려는 작전이 아니야. 정광제 너를 노린 거라고.”
그 말에 정광제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참, 내. 아야. 내가 그런 야트막한 수작질에 홀랑 속아 넘어갈 거 같드나?”
“안 믿어 주면 나야 땡큐지. 그냥 네 모가지 따면 그만인데.”
정광제는 이주혁이 너무 자신의 패를 다 까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숨기면서 교묘하게 말했으면 절대로 믿지 않았겠지만, 오히려 저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니 진짠가? 싶은 의구심이 생겼다.
“그럼 이바구나 함 들어 보자. 니 말고 내를 와 죽인단 말인데?”
“돼지를 왜 키우냐?”
“음?”
뜬금없는 질문에 정광제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주혁이 마지막 회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살찌워서 먹으려고.”
“우리 국제파가 돼지다…… 이 말이가?”
“아니, 정확하겐 수뇌부만 도려낼 생각이겠지. 니들은 태생적으로 깡패들이라 선생의 말을 얌전히 따르지도 않을뿐더러, 대가리가 커지니까 줘야 할 먹이도 예전보다 늘어났거든.”
“…….”
“내가 주철수를 친 게 누구 뜻이라고 생각하냐?”
“허…….”
정광제는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입을 덮었다.
왜 그 가정을 생각 못 했을까.
처음엔 강유찬이 이주혁을 죽이라길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놈은 주철수를 경찰에 넘겼고, 거기서 죽게 만든 원인이니까.
그런데 그게 이주혁 저놈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선생의 숙청 명령이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
하지만 주철수는 그렇다 쳐도, 자신까지 죽이려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여기서 굳이 내를 죽인다고? 부산 경제 전체에 손을 뻗고 있는 내를?’
분명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으나, 정광제의 머릿속은 이미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씨바. 내 세력을 그대로 흡수할 자신이 있다는 기가?’
그럼 부산은 누구 손에 들어가는 걸까?
강유찬 그 새끼인가? 아니면 눈앞의 이 애송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대던 정광제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래. 니 말대로라면, 니는 선생의 오더대로 주철수를 쳤다는 기제?”
“글쎄.”
“그라고 이번 숙청 대상은 내란 소리고.”
정광제는 이주혁의 눈빛을 살피곤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그라믄 니는 내한테 이런 말을 왜 해 주는 긴데. 의도가 뭐고?”
“의도라.”
“내보고 튈 수 있으면 튀어 보라 이기가? 그거 아이면 뭐, 내랑 손잡자고?”
“그 거래 현장, 강유찬도 올 거다.”
“당연히 오겠지.”
씨익.
이주혁이 웃음을 짓더니, 이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서 강유찬을 죽여 버리자.”
“뭐, 뭐?”
“선생 쪽에선 그 새끼 혼자 올 거다. 따까리들이 붙어도 몇 안 되겠지. 그놈들까지 전부 처리하면, 놈을 죽여도 그걸 선생한테 전달할 사람은 없다.”
파격적인 제안을 한 이주혁이 계속 설명했다.
“선생이 너한테 알려 준 작전은, 거래가 끝나고 불곰 쪽이랑 같이 날 치는 거였다. 맞지?”
“……어, 그렇지.”
정광제는 순간 대답하면 안 될 질문에 대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다시 이주혁의 말에 집중했다.
“거래가 끝나고, 강유찬이 날 치라고 신호를 보낼 거다. 그때 국제파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뭐? 와?”
“그때 내가 강유찬의 모가지를 딸 거니까.”
“이 쉐끼, 대책 없는 놈이네, 이거.”
“선생이랑 강유찬. 그 새끼들이 날 자꾸 쥐고 흔들려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야.”
“허……. X팔.”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 정광제가 잠시 서서 고민하더니, 주방에서 눈치를 보는 사장에게 말했다.
“마, 여 다 정리해 놔라이.”
“예, 예.”
“가자.”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가게 바깥으로 나갔다.
“잘 생각해 봐.”
뒤에서 이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더 들어 봤자 괜히 머리만 아플 것 같았다.
‘아주 뭣 같은 소리로 날 현혹하는구만.’
정광제는 지끈대는 머리에 손을 얹었다.
솔직히 이주혁이 하는 말을 신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가능성이 있는 말 때문에 쉽사리 쳐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점마를 믿을 수는 없는데…….’
의심과 불안감이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왜인지 오늘이 인생에 있어 큰 분기점이 될 것 같았다.
“후…….”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정광제가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 일단은 지켜보자고. 강유찬이가 어떻게 나오는지.’
***
정광제가 차를 타고 떠나는 걸 확인하고,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우, 씨.”
거짓말도 일이다, 일.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내면서 상대한테 정보를 얻어내려니 머리가 다 아프네.
사실 대부분이 즉석에서 만들어 낸 구라다. 정광제도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겠지.
하지만 방금 대화의 목적은 이뤘다.
바로 정광제에게 의심을 심어 주는 것.
이로써 놈은 강유찬과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을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벌떡.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닥의 유리 조각을 쓸어담던 사장이 움찔했다.
“쫄지 마. 용건 다 끝났으니까. 그리고 기절한 척하고 있는 새끼들도 일어나서 니네 형님 도와라.”
그 말에 바닥과 테이블 위에 드러누워 있던 깡패들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나는 문 쪽으로 향하며 내 눈치를 보는 사장의 어깨를 턱 잡았다.
“사장님.”
“어, 예?”
“맛은 있는데, 서비스가 영 별로네. 장사 열심히 하셔야겠어.”
“죄, 죄송…….”
사장을 뒤로하고 가게 바깥으로 나왔다. 문은 이미 박살 나서 없었다.
‘오케이. 이 정도면 일단 약은 충분히 친 것 같고…….’
이번 싸움은 좀 빡셀 거다.
어떻게 보면 이번 경호 의뢰는 선생 놈의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의뢰를 수락한 이상, 날 죽이기 위해 꽤 열심히 판을 짜 놨겠지.
러시아 놈들까지 엮였으니 총은 무조건 나올 거고.
하지만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히죽.
전쟁 준비는 나도 해 놨거든.
이름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생체병기들로 말이다.
***
빠빠빠-!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 흥겨운 트로트 가락이 울려 퍼졌다.
양팔을 들고 복도에서 춤을 추던 덩치가 핏대를 세우며 열창했다.
“어언-제나, 나를~ 어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아-트으~”
“이야.”
“잘한다!”
SA시큐리티의 팀원들이 탄 버스는 이미 광란의 도가니였다.
가는 동안 운동도 한두 시간이지, 더 이상 지루함에 못 이겨 운전대를 잡고 있던 팀원이 노래를 틀어 버린 것이다.
노래가 바뀌고, 이번엔 난쟁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느끼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말아쥐었다.
“비 내리는 호남서언~ 남행열차에~”
“호우!”
“얼큰-하다!”
.
.
그렇게 흥겨운 시간이 지나가고, 버스 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어느 순간 시커먼 남자들끼리 모여서 춤이나 추고 있다는 걸 느낀 탓이었다.
“에휴…….”
“X발. 이게 뭐하는 짓이냐…….”
다들 축 처진 가운데, 배상훈이 옆에 앉아 있던 덩치를 툭 치며 물었다.
“야. 부산에 뭐 놀 데 없냐?”
“그건 와예?”
“이번 작전 끝나고 놀게. 매일 이것들 얼굴만 보니까 토할 것 같다.”
“미친 새끼.”
“븅신.”
야유가 쏟아졌지만, 배상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통영이면 부산 자주 가지 않았냐? 추천 좀 해줘 봐.”
“아, 예. 자주 갔지예. 해수욕장도 있고, 뭐.”
“해수욕장이라. 흐흐……. 가서 수영복이나 사 놔야겠네. 그럼, 해수욕장 말고 밤에 놀 만한 다른 데는 없냐? 작전 끝나면 새벽쯤일 것 같은데.”
배상훈이 음흉한 표정을 짓자, 덩치도 히죽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물 좋은 데로 몇 개 알려 드릴께예. 흐흐…….”
“좋아……. 이 새끼, 기분이다. 형이 너는 데려가 줄게.”
“진짭니꺼?”
덩치는 잘생긴 배상훈에게 묻어 갈 생각에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그렇게 둘이 비밀스러운 거래를 마치자, 그걸 듣고 있던 모두가 분개했다.
“이 개X끼들!”
“니들만 가냐?!”
“저 새끼보다 지가 더 잘 압니더!”
“나도 데려가…….”
“팀원들. 주목.”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들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라세흠이 어느새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이것들아. 작전 시작도 안 했는데 놀 생각부터 해?”
“…….”
“작전이 일찍 종료되면 정식으로 대표한테 말해서 시간 받아라. 알았나?”
“예!”
분위기를 가라앉힌 라세흠은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투명의자 자세를 잡으며 다짐했다.
‘무조건 빠르게 끝낸다. 무조건!’
30대 노총각, 라세흠의 두 눈이 투지로 타올랐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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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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