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62
161화
레드 마피아 드라콘의 간부, ‘불곰’ 빅토르 페트로프.
그는 은신처로 사용하기 위해 준비했던 가짜 여관에 숨어있었다.
-배는 준비해드렸습니다. 해경들의 수색 지역도 한 군데 비워놨으니 그쪽으로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다.”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어떻게 보면 곤경에 처하신 게 제 탓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스께는 큰 도움을 받았다고 잘 말씀드리지.”
-부디 잘 돌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강유찬이 유창한 러시아어로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빅토르는 적당히 대답한 뒤 불쾌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말마따나, 빅토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건 강유찬의 지분이 크기 때문이었다.
강유찬이 그 한국인 한 놈을 죽이라는 의뢰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타국에서 경찰에 쫓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분간 한국 쪽 사업은 축소해야겠군.’
붙잡힌 말단 놈들이 무슨 정보를 뱉을지 모르니, 빅토르는 본국으로 돌아가면 최소 일 년은 한국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을 계획이었다.
빅토르가 돈이 든 캐리어로 시선을 돌리던 그때, 누군가 그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접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러시아어에 빅토르가 총을 내려놓고 말했다.
“들어와.”
달칵.
문이 열리고, 빅토르의 수하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산을 뜨기 위해 빅토르가 다시 불러모은 조직원들이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수하들을 확인하던 불곰이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너희들이 다야?”
“예? 그렇습니다.”
“남은 인원이 이것뿐이라고?”
분명 처음에는 서른 가까이 됐었다.
하지만 지금 아지트로 모인 인원수는 열댓 명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항구에서 부상을 당한 대여섯 명은 경찰에 잡혔을지 몰라도, 나머지 열 명이 보이지 않았다.
설령 추적 탓에 오지 못한다면 연락을 했을 텐데, 그마저 없었다.
‘일단 빠져나간다.’
의문이 들긴 했으나, 여기서 죽치고 녀석들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총격전이 일어난 이상, 경찰 조직은 철저하게 사건을 조사할 것이다.
아무리 뇌물을 먹었다지만, 총이라는 민감한 소재의 사건이 터졌으니 범인을 잡기 위해 움직일 터.
최대한 빨리 이 나라를 떠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은신처로 쓰던 여관을 떠나려던 빅토르는, 순간 위화감을 느끼고 멈칫했다.
“잠깐.”
“예? 무슨 일이십니까.”
“조용히 해봐.”
수하들을 침묵시킨 빅토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조용하다.’
분명 수하들이 오기 몇 시간 전까지는 인기척이 없진 않았다.
비록 여관으로 위장한 은신처긴 해도, 어쨌든 유지를 위해 직원은 고용해놨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건물 전체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너무 고요해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위치가 노출됐나?’
빅토르는 왠지 불안한 느낌에 품 안의 권총을 꺼내며 수하들에게 말했다.
“다들 총 꺼내라.”
“예?”
“뭔가 이상하다. 이건…….”
빅토르가 말을 잇던 그때.
쨍그랑!
창문을 깨고 무언가가 날아 들어왔다.
깜짝 놀란 빅토르의 눈에, 방 가운데 떨어진 무언가에서 연기가 팍 터져 나오는 게 보였다.
‘연막탄……!’
푸쉬익-!
빅토르와 수하들이 있던 방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젠장!”
이를 악문 빅토르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일단 빠져나간다!”
단단히 꼬인 상황에 빅토르는 수하들을 복도로 먼저 내보냈다.
그 순간.
퍼억-!
“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앞장서 나가던 수하의 머리가 옆으로 홱 꺾이며 고꾸라졌다.
그에 빅토르는 황급히 다시 방 안으로 몸을 숨겼다.
‘뭐지? 총인가?’
빅토르는 매캐한 연기에 쿨럭대며 우왕좌왕하는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빨리 나가!”
“예, 예!”
소매로 입을 가린 수하들이 총을 들고 정신없이 방을 나갔다.
빅토르는 좁아진 시야 속에서도 돈이 든 캐리어를 한 손으로 꽉 붙잡았다.
‘대체 누구지? 경찰? 경찰이 연막탄을 사용했던가?’
빅토르는 총을 든 손의 소매로 입을 가리고, 반대 손으로 캐리어를 끌며 연기로 가득한 방을 탈출했다.
그러자 뿌연 복도를 뚫고 있는 수하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객실이 있는 좌우를 경계하며 걸어가던 빅토르는, 순간 앞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듣고 고개를 홱 돌렸다.
“아악!”
“뭔가 이상합니다! 앞에 가던 녀석들이 사라졌습니다!”
겁에 질린 수하의 말에 빅토르가 버럭 소리쳤다.
“보이면 그냥 쏴버려! 손에 든 건 장식이냐!”
“윽. 예!”
그때, 빅토르의 뒤를 따라오던 수하가 뭐라 말했다.
“@#%.”
“?!”
빅토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X발.”
뒤에서 오는 게 수하라고 생각했는데, 빅토르가 들은 건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언제 뒤에서 덮쳐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빅토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거기 앞에…….”
고개를 돌려 조금 전 호통친 수하를 부르려던 빅토르는, 복도의 인기척이 모두 사라진 걸 알고 얼굴을 굳혔다.
“Блять(X발).”
벌컥!
빅토르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쥔 채 옆에 있던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흡!”
그리고 열려 있던 창문 너머로 캐리어를 던지고, 그대로 뛰어내리기 위해 달렸다.
객실은 3층이었지만, 이대로 여기서 붙잡히는 것보단 운에 맡기겠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빅토르의 계획은 곧바로 무너졌다.
“%@#$%?”
창문 바깥에서 누군가 줄을 타고 내려오더니, 손에 있던 새총 같은 무언가를 탁 튕겼다.
뻑-!
“컥…….”
그와 동시에 이마에 강한 충격을 받은 빅토르의 눈깔이 뒤집혔다.
‘제기랄…….’
쿵.
***
일요일 오전. 나는 우재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주신 리스트는 확인해봤습니다. 거물들이 엄청나게 엮여 있더군요.”
“그렇던데요. 대충 훑어봐도 아는 이름들이던데.”
판교신도시의 사전 투자자들. 그중엔 우리나라의 정·재계에서 활동하는 유명인들이 꽤 많았다.
재개발이 이루어질 거란 사실을 미리 알 만한 사람은 선생뿐이다.
그럼 이 투자자들은 선생 놈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거지.
하지만 이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함부로 건들 순 없다.
사회적 입지가 단단할뿐더러, 다짜고짜 너 선생이랑 붙어먹었지! 라고 한다 해서 사람들이 신경이나 쓸까.
우선 선생 놈이 저지른 범죄부터 증명할 수 있어야, 거기 엮인 다른 인간들도 잡아 처넣을 수 있다.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대표님도 인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만으로는 이 기득권층의 사람들을 끌어내리긴 힘들겠죠.”
“흠…….”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괜찮은 생각이 스쳤다.
선생 놈의 죄를 증명해야 이 리스트에 있는 놈들도 잡을 수 있다.
근데 이걸 역으로 생각한다면?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네.”
“선생 놈의 혐의를 입증하는 게 아니라, 이 리스트에 있는 놈들을 이용해 선생의 죄를 찾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린 우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 리스트에 있는 사람과 선생이 같이 엮인 범죄 행위가 있긴 할 겁니다. 만약 그걸 찾아낸다면…….”
“선생 놈을 매장시킬 수도 있겠죠.”
“좋은 생각이네요. 솔직히 여기서 뒤 구리지 않은 인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높으신 분들이 다 그렇잖습니까.”
눈 옆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슥-. 쓸어넘긴 우재성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그럼 그쪽은 제가 맡아서 알아보겠습니다.”
“심부름센터를 만드셨나 봅니다.”
“네. 정식으로 영업 간판을 내걸진 않았지만, 충분히 굴러갈 정도로는 만들어놨습니다.”
“오호. 좋네요.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심부름센터를 굴리다가 꽤 중요한 정보를 건졌거든요.”
“뭡니까?”
우재성이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면 정말 큰 건일 텐데.
“강유찬. 대표님이 강 권사라고 생각하는 그 인물 말입니다.”
“예. 그 사람이 왜요?”
“어제 한인석 변호사의 금고가 있는 집에 들어갔었습니다.”
“강유찬이 말입니까?”
부산에서 금고 뭐라 하면서 떠나더니, 정말로 한인석의 금고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모양이네.
근데 한발 늦었다. 금고는 이미 내가 털어갔거든.
하지만 강유찬은 그 사실을 모를 거다. 내가 금고가 있었다곤 전혀 생각하지 못하게 위장해놨으니까.
주변의 먼지나 물건 배치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만져놓고 왔다.
“흠.”
강유찬이 금고의 행방을 모른다는 걸 어떻게 잘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
나도 금고를 얻지 못했다는 걸 강유찬에게 흘리면 꽤 혼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생각하다 보면 방법이 나오겠지.
나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재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면 리스트에 있는 놈들 조사 좀 부탁합니다. 고생해요.”
“네.”
탁.
우재성의 사무실을 나온 나는 내 사무실로 돌아갔다.
‘어우,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아프네.’
우재성 사무실에는 커피밖에 없어, 차나 한잔할 요량으로 사무실로 갔다.
철컥.
그렇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물을 끓이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문 열려 있습니다.”
-주혁아. 난데…… 잠깐 시간 돼?
응? 이 목소리는?
“어? 들어와.”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늘부터 새로 출근하게 된 강예원이었다.
얘가 내 사무실까지 찾아올 일이 있나?
물은 좀 넉넉하게 끓였으니, 차 두 잔 정도는 충분히 나오긴 하겠네.
저벅.
안으로 들어온 강예원이 내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와. 근데 사무실도 엄청 좋네. 너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너 월급 넉넉하게 챙겨줄 만큼은 되니까, 그만 두리번거리고 앉아. 차는 마시지?”
“어, 차? 음……. 마실래.”
“알았다.”
턱.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조심스레 소파에 살짝 몸을 기대는 강예원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토요일에 사무실엔 어쩐 일이야? 인수인계는 다 받은 거 아니었어?”
“그게…….”
강예원은 뭐라 말은 하고 싶은데 나오지 않는지 입술만 달싹였다.
“너답지 않게 왜 말을 못 해? 민감한 주제야?”
“어떻게 보면 그렇긴 한데…… 너한테 말하기 좀 민망하고 미안해서…….”
평소엔 미안할 만한 짓 잘만 하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런데?
“편하게 말해봐. 뭐든 괜찮으니까.”
내 말에 강예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에 강유찬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접근했어.”
이어지는 강예원의 이야기를 듣고 내 표정은 굳어졌다.
황성빈은 의심받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이젠 아예 내 지인을 이용해서 뒤통수를 치려고 하네.
순간 치미는 분노에 미간을 찌푸리자, 내 눈치를 살피던 강예원이 뭔가를 꾹 참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 돈이 필요해서 받아들였어. 정말 미안해.”
“사과하지 마. 너한테 화난 게 아니야. 내 사람을 건드린 게 짜증 나는 거지.”
그쪽에서 이렇게 나오니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게 내 고민을 해결할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유찬, 이 새끼가 나한테 빨대를 꽂으려고 작업을 쳐놨다면, 거기 또 맞춰줘야겠다.
그래. 내 정보를 그렇게 가져가고 싶다면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근데 그 사람이 그랬어. 한인석 변호사랑 금고에 대한 정보를 알아 오라고. 혹시 넌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강예원의 그 말에 난 진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물론.”
히죽.
아무래도 놈에게 아주 큰 빅엿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강유찬이 아니라 선생인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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