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65
164화
탁.
차에서 내린 황성빈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X발…….”
저 위로 이어진 산길을 보자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황성빈은 끝에 카메라가 내장된 만년필을 살피다 차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창문 너머로 이주혁이 두 팔을 머리 뒤로 올린 채 눈을 감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여유로운 포즈에 황성빈의 이마에 혈관이 툭 불거졌다.
‘개새끼네 진짜…….’
하지만 황성빈은 지금 SA시큐리티에 잠입해있는 상황.
이주혁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황성빈은 결국 욕을 삼키며 산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
저벅.
“허…….”
결국 몇 분을 걸어 올라가자, 황성빈은 돔 형태의 커다란 건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축구장이나 야구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물론 그 정도로 크진 않았지만, 체감상 그렇게 느껴졌다.
‘무슨 산 위에 이런 걸 지어놨어……?’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는데, 지금은 또 들리지 않았다.
황성빈은 만년필의 뚜껑을 돌려 카메라가 작동하는 걸 확인한 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턱.
안으로 들어가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음…….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그냥 돌아다니면 되나?’
황성빈이 눈치를 보며 슬슬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덩치 큰 남자 둘이 다가와 둘러쌌다.
“……?”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 그게, 지나가다 보여서 구경이나 좀 할까 해서…….”
당황한 황성빈이 대충 말을 지어내자, 남자가 무전기로 누군가에게 연락하더니, 황성빈의 인상착의를 대충 설명했다.
이내, 남자가 무표정하게 손짓했다.
“따라오십시오.”
“아, 예.”
황성빈은 일단 카메라가 주변을 다 찍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주혁에게 협력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했다는 증거를 가져가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남자들을 따라가며 내부를 살펴보니, 대체 뭐 하는 곳인지 복도도 더럽게 길었다.
‘이주혁이 노리는 걸 보면 선생이랑 분명 관련이 있는 곳일 텐데…….’
그렇게 얌전히 복도와 계단을 올라가자, 차가운 인상의 한 남자가 위층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황성빈 씨.”
“강 권사? 당신이 왜 여기…….”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강유찬이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당신이 여기 왜 온 겁니까? 이주혁이 안산으로 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혹시 황성빈 씨랑 같이 온 겁니까?”
“예…….”
황성빈이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 그걸 들은 강유찬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황성빈 씨는 여길 최대한 열심히 조사해야 하는 상황이군요.”
“아, 예. 그래서 이것도…….”
카메라가 내장된 만년필을 꺼내던 황성빈이 멈칫했다.
“설마 그거…….”
“…….”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버럭 소리를 지르던 강유찬이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황성빈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병신같이…….’
이 카메라에 강유찬과 대화하는 장면이 다 찍혔을 것이다.
여기서 강유찬을 만날 줄 몰라서 당황한 탓에 카메라의 존재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
민망함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황성빈에게 강유찬이 핀잔을 줬다.
“황성빈 씨. 뭔가를 할 땐 두 번 이상은 생각하고 하세요.”
“……예.”
“이주혁이 그 카메라를 주면서 정확히 뭐라고 지시했습니까?”
“이 건물의 내부 구조를 다 찍어오라고 했습니다.”
“후……. 만년필 주십시오. 일단 방금 찍힌 영상은 제가 지울 테니, 황성빈 씨는 가지고 나가서 다시 들어오세요.”
황성빈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불안감이 들었다.
영상을 지우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혹시 이주혁이 삭제한 흔적을 발견하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점을 말하자, 강 권사가 이것까지 말해줘야 하냐는 듯 눈살을 팍 찌푸렸다.
“그 정도는 알아서 적당히 둘러대세요. 하나하나 다 말해드려야 합니까?”
“아, 예…….”
“일단 건물 내부는 다 찍어가십시오.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강유찬이 여기 있다는 건 꽤 중요한 시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이주혁한테 다 공개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었다.
그러자 강유찬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 시설은 단순한 사격장이니까요.”
“음…….”
“그리고 애초에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이쪽으로 넘어온 물건에 위치 추적 장치가 달려있었을 확률이 높겠죠. 누군가 발설한 게 아닌 이상.”
“추적 장치 말입니까?”
“예. 아마 유력한 후보는…….”
뜸을 들이던 강유찬이 안쪽을 슥 쳐다보더니 화제를 돌렸다.
“이주혁은 이 시설의 구조를 파악한 뒤, 가까운 시일 내에 동료들과 함께 침투하려 하겠죠. 그 목표가 요인의 암살인지, 시설의 파괴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유찬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이주혁이 만약 여기로 쳐들어온다면, 절대 살아나가지 못할 겁니다.”
***
“우욱…….”
배상훈이 숨이 턱 막히는 표정으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앞에는 팔짱을 낀 라세흠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몸통이 비었잖냐. 제대로 가드 안 해?”
“끄…….”
라세흠이 핀잔을 줬지만, 배상훈은 명치를 정통으로 맞은 탓에 대답도 못 하고 골골댔다.
같이 맞서던 백기준은 이미 링 바깥으로 날아가 축 늘어진 채였다.
하지만 얼굴을 처박고 쓰러진 백기준을 챙겨주는 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라세흠은 다가와 배상훈의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래도 확실히 현역 때만큼은 올라온 것 같다? 너희 둘에, 한 명만 더 끼우면 나도 봐주면서는 못 이길 정도야.”
“하…….”
몸을 추스르고 일으킨 배상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이주혁한테는 멀었습니까?”
“음……. 뭐, 비슷해.”
내심 안도하던 배상훈은 이어지는 라세흠의 말에 멈칫했다.
“대련에선 말이야.”
“그럼…….”
“실전에선 아직 안 될걸? 걔는 현역 때보다 더 늘었어.”
“에이 씨. 걔는 대체 뭘 처먹었길래 그래요?”
자존심이 상한 배상훈이 투덜대자, 라세흠이 잠시 고민하다 한마디를 툭 뱉었다.
“글쎄다. 진짜로 뭔 약을 먹은 건지, 빡세게 들어오면 나도 힘들 것 같던데.”
“예? 그 정돕니까?”
“음. 솔직히 걔가 목숨 걸고 덤비면 힘들지.”
“허허.”
배상훈은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놈이 내 윗사람인 것도 서러운데, 이젠 주먹으로도 안 되네.”
“그것만 안 되냐? 돈도 이주혁이 더 많잖아?”
어느새 다가온 백기준이 하는 말에 배상훈이 눈을 치떴다.
“야. 내가 출장만 안 다녀왔어도…… 쯧. 됐다.”
“쓸데없이 싸우지 말고, 다들 모여 봐.”
라세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일단 운동을 즐기고 있던 팀원들이 링 근처로 모여들었다.
“뭔데요?”
“오늘 등 조지는 날입니다. 빨리 말씀하십쇼.”
“나 따라 뭣 좀 사러 갈 사람. 선착순 두 명.”
“뭘 말입니까?”
슥.
손가락을 편 라세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총.”
***
결국 라세흠과 같이 가는 건 배상훈과 백기준으로 정해졌다.
다른 팀원들이 딱 둘이지 않냐며 짬을 때린 탓이었다.
두 팀원은 죽상이 된 채 라세흠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부장님. 진짜로 총이랑 방탄복을 구할 수 있는 겁니까?”
배상훈의 물음에 라세흠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래. 나랑 아는 사인데, 이런 쪽으로 빠삭한 양반이 하나 있거든.”
“……설마, 불법적인 건 아니죠?”
“씁. 불법이라니. 어디까지나 합법에 발을 걸쳐 있다고.”
배상훈과 백기준은 내심 불안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부장님이 그 정도로 막 나가진 않을 거란 생각에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인적 드문 골목길을 따라 걷기를 한참. 슬슬 지칠 때쯤 둘의 눈에 뜬금없이 나타난 낡은 문 하나가 보였다.
라세흠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 잠시 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덜컥.
“잠겼는데요?”
“음. 그렇네.”
고개를 주억거린 라세흠이 손잡이를 꽉 붙잡고 그대로 뽑아버렸다.
우드득!
“뭐, 뭐 하는……!”
그걸 본 두 사람이 경악했다. 하지만 라세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당겨 열었다.
끼익-.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괜찮아. 물어주면 돼.”
“와…….”
손을 탁탁 턴 라세흠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배상훈은 정말 뻔뻔하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문 너머로 따라 들어갔다.
“계십니까-.”
어두컴컴한 내부를 둘러보니, 계산대 같은 것도 있는 게 뭔가를 파는 가게 같았다.
“어디 갔어? 이 양반.”
두 사람이 두리번거리는 사이, 라세흠은 당당하게 안쪽으로 걸어가 누군가를 찾았다.
백기준은 주위를 살피다 진열장 안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오.”
권총과 기관단총, 저격 소총 등이 놓여있는 걸 들여다보던 백기준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진열된 총들의 모든 총구 끝은 주황색 플라스틱이었다.
‘뭐야. 다 에어소프트건이잖아?’
총을 구한다는 게 이런 거 말하는 거였나 싶어 실망하던 그때.
“이런 염병할 새끼. 넌 어떻게 올 때마다 문짝을 해 먹냐?”
5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안쪽에서 나오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라세흠은 그 뒤를 따라 나오며 뻔뻔하게 되물었다.
“그러는 아저씨는 왜 올 때마다 문을 잠가놔요?”
“미친놈. 영업시간이 아닌데 문을 왜 열어놔?”
인상을 팍 구긴 남자는 배상훈과 백기준을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뭐 때문에 온 거야?”
“오랜만에 보는 건데 말씀을 섭섭하게 하시네. 아저씨 물건 좀 팔아드리러 왔수다.”
남자는 고개를 팍 저었다.
“됐다. 너한테는 안 팔아. 네가 내 물건들로 뭔 짓을 할 줄 알고? 그리고 돈은 있어서 말하는 거냐?”
“돈은 우리 대표가 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쇼. 그놈 돈 많아.”
“그래? 뭐 하는 사람인데?”
“내가 가르치던 놈.”
배상훈과 백기준은 그 부장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남자를 보며 서로를 쳐다봤다.
‘대체 누구지?’
라세흠은 익숙한 듯 터벅터벅 걸어가 진열장과 벽에 걸린 총들을 가리켰다.
“이것들 싹 다 줘요. 고무탄이랑 방탄복도.”
그 말에 남자가 당황했다.
“뭐,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냐?”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백기준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 부장님. 이것들 다 에어소프트건이잖습니까. 대체 이걸로 뭘 하실 생각인 겁니까?”
이주혁의 말대로면 이제 곧 총을 든 적들과 싸워야 할 텐데, 저런 거로는 상대할 수 없었다.
라세흠은 그 질문에 벽에 걸려 있던 총 하나를 집어 들고 씩 웃었다.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냐?”
“음…….”
백기준이 대답을 잠시 망설이는 사이 라세흠이 이어 설명했다.
“다 이유가 있으니까 여기 온 거다. 이게 그냥 에어소프트건 같지?”
“네.”
“그래 보여도, 사실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니다. 소프트건에 있어야 하는 파워 브레이크를 제거했거든.”
“설마…….”
전혀 소프트하지 않은 에어소프트건이다.
백기준이 아까 그가 달라고 한 고무탄을 떠올리며 입을 쩍 벌리자, 라세흠이 총을 툭툭 치며 씩 웃었다.
“고무탄이 놈들의 대가리를 다져줄 거다. 아주 화끈하게 말이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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