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서울강남경찰서 내의 취조실.
송태석 과장은 피곤함에 한숨을 팍 내쉬었다.
“하……. 씨.”
며칠간 집에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성자와 정 목사를 관리하다 보니, 점점 사람이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쩍 하품한 송태석은 취조실 안에 앉아있는 전용갑을 불만스럽게 쳐다봤다.
이주혁의 말대로 철저하게 감독하고 있어 아직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슬슬 체력의 한계였다.
하지만 소홀히 할 순 없었다. 종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까.
이주혁은 그런 사태를 우려한 건지 둘의 철저한 보호를 요청했고, 그 탓에 송태석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새끼는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시키는 건지…….’
끼익.
“송 과장님.”
“아, 서 팀장.”
그때, 취조실 문이 열리며 형사지원팀 팀장 서한결이 정 목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처음엔 서해결 검사 동생이라길래 깜짝 놀랐었지.’
서한결 팀장이 이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배는 더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서해결 검사가 동생에게 부탁해 준 덕에 송태석이 과로로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턱.
서한결이 정 목사를 송태석의 맞은편 의자에 앉혔다.
첫인상과는 달리, 지금은 십 년은 늙은 듯 초췌한 인상이었다. 투실투실하던 얼굴에도 살이 꽤 빠진 상태였다.
계속 선생이 자신을 살해할 거라고 말하며 불안에 떨더니, 며칠 새 살짝 맛탱이가 가 버린 모양이었다.
송태석은 얼굴을 한번 문지른 뒤 물었다.
“정민수 씨.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왜 부른 겁니까.”
송태석은 아직도 곱게 협조하지 않는 정 목사를 보며 인상을 팍 찌푸렸지만, 이젠 짜증을 낼 기력도 없었다.
“뭣 좀 물어보려고 불렀습니다. 중요한 거니까 제대로 답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송태석은 침울한 표정의 정 목사를 향해 물었다.
“수첩에 적혀 있던 계좌는 추적해 봤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거기로 송금했다는 증거가 없어서 말입니다.”
“…….”
“아는 게 없진 않을 테고. 뭐라도 좀 던져 주셔야겠습니다.”
하지만 송태석의 말에도 정 목사는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봐요. 정민수 씨.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뭐가 말입니까.”
“저희 측에서 당신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이유를 없애지 말아 주시죠. 쉽게 쉽게 갑시다. 나도 X팔, 계속 관리해 주기 귀찮으니까.”
그에 정 목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송태석이 반쯤 진심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탓이었다.
“알겠습니다. 제, 제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드리겠습니다.”
정 목사는 갑자기 자신의 벨트를 풀고 쭉 뽑더니, 쇠로 된 버클의 한 부분을 꾹 누르고 돌렸다.
그러자 안에서 USB처럼 생긴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툭.
송태석은 책상 위로 떨어진 그걸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개X끼가……. 이런 걸 꿍쳐 두고 있었어?”
드르륵-!
정 목사의 옆에 있던 서한결은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나는 송태석을 보고 그를 진정시켰다.
“송 과장님. 참으십쇼.”
“하.”
이 와중에도 정민수 목사는 자기 패를 꽉 쥔 채, 간만 보고 있었다니.
‘이래서 사기꾼 새끼들은…….’
이마를 턱 짚은 송태석이 화를 눌러 삼켰다.
몸이 피곤한 탓인지 순간 자제력을 잃을 뻔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송태석은 정 목사의 USB를 챙겨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노트북에 꽂았다.
딸깍.
USB를 뒤지던 중. [영상]이라고 되어있는 폴더를 발견해 그리로 들어갔다.
폴더 안에는 이름이 숫자로 된 영상 파일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 ‘13’이라고 적힌 영상을 하나 눌러 봤다.
꾹.
잠시 로딩 시간이 지나고, 이내 송태석의 눈앞에 누군가 몰래 찍은 듯한 영상이 펼쳐졌다.
‘뭐지? 식당 같은데.’
고급 식당의 룸. 그 안을 CCTV처럼 비추는 구도로 찍힌 영상이었다.
그렇게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던 송태석은 미간을 팍 구기며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탁!
“설마, 여긴……?”
***
사격장 내의 가장 높은 건물.
그 옥상에서 백기준은 스코프로 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끝이 없네. 징글징글한 새끼들.”
팀원들이 돌입한 창고 건물로 총을 든 두 사람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혀를 찬 백기준이 조준을 위해 숨을 참은 뒤,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퉁-!
발사된 고무탄이 오른쪽 사람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그에 달려가던 남자는 공중에서 반 바퀴 돌며 땅에 처박혔다.
남자는 그대로 기절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고무탄이라 해도, 가스를 이용해 발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냥 뚫고 지나가는 실제 총알과는 달리 고무탄은 피격당한 곳에 힘을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에, 그 충격량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옆에 있던 동료가 쓰러진 걸 본 다른 남자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몇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백기준이 보일 리가 만무했다.
그런 백기준의 옆에서 저격 소총이 한 발 더 발사됐다.
퉁!
그러자 기절한 동료의 옆에서 경계하던 남자도 뒤로 붕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백기준은 옆에서 총을 발사한 남자를 힐끗 보며 말했다.
“오……. 좀 쏘시네.”
“이래 봬도 해외 용병 출신이다.”
남자의 이름은 마종석.
선생의 의뢰를 받고 강남파의 이사로 들어갔으며, 지금은 이주혁과 협력해 움직이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게 적군의 증원을 막은 둘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주변을 정찰했다.
과거 마종석이 라세흠에게 잡혀 왔을 때, 그를 심문해 정보를 토해 내게 한 사람이 바로 백기준이기 때문이었다.
“…….”
“…….”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내심 상대방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에 팀원들이 사격장에 성공적으로 잠입한 것도 마종석의 덕이 꽤 컸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내부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본 영상은 황성빈이 찍은 게 아니라, 사실 마종석이 뒷문으로 몰래 침입해 가져온 것이었다.
마종석도 예전에 여기 몇 번 와 본 적이 있기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탁. 철컥.
백기준이 탄창을 갈아 끼우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은데……. 또 지랄하는 거 아냐?’
그러던 백기준의 눈에, 저 멀리 이주혁이 들어간 건물로 따라 들어가는 황성빈이 보였다.
마종석도 그걸 확인하더니, 총을 분해해서 챙기며 말했다.
“외부 인원은 다 처리한 것 같은데, 이만 내려가지.”
“그럽시다.”
백기준은 옥상에 꺼내 놨던 것들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난간에 탁 올라섰다.
그리고 가방에서 항상 함께하던 와이어를 꺼내 허리춤에 넣은 뒤, 히죽 웃으며 그대로 뛰어내렸다.
‘나도 슬슬 재미 좀 봐 볼까?’
***
강유찬은 이주혁이 벌써 나타났다는 사실에 이빨을 꽉 깨물었다.
‘황성빈이 넘어간 건가?’
원래도 그리 미덥진 않았지만, 설마 이 시점에 배신할 줄은…….
‘아니, 아니지.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주혁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애초부터 놈이 황성빈을 통해 거짓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황성빈은 충실한 사냥개 역할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성향.
머리 굴리며 뒤통수를 칠 깜냥이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
강유찬은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신도들을 미리 대기시켜 놓은 것도 혹시 이주혁이 예정보다 일찍 쳐들어올까 봐서였다.
턱.
강유찬은 책상 위에 놔뒀던 무전기를 집어 들고 신도들에게 지시했다.
“악한 자들이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예, 권사님.
-예, 권사님.
무전기를 내린 강유찬이 눈을 굴리며 여러 대의 화면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던 강유찬은 한 건물의 창문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지나가는 걸 발견했다.
‘저긴……!’
믿음단련장 창고.
실제로 쓰는 총기들과 탄약, 장비와 ‘성수’를 보관 중인 장소였다.
쿵!
책상을 내리친 강유찬이 다급하게 무전기를 들었다.
“지금 당장 창고로 이동하십시오! 그들이 우리의 성수를 더럽히려 합니다!”
-예!
-감히 성수를……!
신도들은 이 세상의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성수’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분개하며 움직이는 성도들을 지켜보던 강유찬이 들고 있던 소총을 꽉 움켜쥐었다.
무기는 잃어도 다시 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성수를 건드리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성수는 선생님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주혁 패거리가 탈취한다면 선생님께 이를 알리고 다시 받아 와야 하는데, 그건 강유찬이 용납하지 못했다.
‘이주혁은 반드시 내 선에서 처리해야 한다. 선생님이 믿고 맡기신 일이니 완벽하게 끝내야 돼.’
강유찬은 불안한 마음에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그렇다고 그가 직접 창고로 도우러 갈 순 없는 노릇이다.
CCTV를 확인하며 적들의 위치를 파악할 사람은 그뿐이었다.
그렇게 긴장하며 화면을 살피던 중.
쨍그랑-!
“……!”
신도 하나가 창고 건물의 1층 창문을 깨부수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게 강유찬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소음기로 줄어든 총성이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강유찬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상황을 분석했다.
이주혁과 그 동료들이 해외 용병을 상회하는 수준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는 실탄이 들어있는 소총을 든 신도들.
거의 특수부대 훈련에 필적하는 강도로 훈련받았을뿐더러,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해 주는 성수까지 투여했다.
신도들이 이런 상황을 대비해 훈련받은 대로만 움직여 준다면, 이쪽이 패배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할 것이다.
‘만약 변수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그렇게 화면만을 지켜보던 강유찬은.
-강유찬.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철컥.
강유찬이 소총을 견착하고 소리가 들린 창문을 향해 겨눴다.
‘분명 이 목소리는……!’
이주혁. 그놈이었다.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게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린 강유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분명 3층인데? 레펠이라도 탄 건가?’
그러자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이주혁의 웃음 섞인 물음이 들렸다.
-내가 너희 시설을 노리는 줄 알았어?
“…….”
잔뜩 긴장한 강유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을 흔들기 위해 하는 말이리라.
그리 생각하던 순간.
파앗!
창문 한구석에 총구가 나타났다.
“이런……!”
다다다닥!
뭔가가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강유찬은 묵직한 것들이 자신의 몸을 다져 버리는 걸 느끼며 뒤로 날아갔다.
퍼버벅-!
“크아악-!”
방아쇠를 당길 새도 없었다.
강유찬은 계속해서 날아드는 무언가에 의해 벽까지 밀려나 부딪혔다.
“커헉…….”
탁.
총을 떨어뜨린 강유찬의 몸이 주르륵 무너졌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널브러진 강유찬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레펠을 탄 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주혁이 눈에 들어왔다.
“반갑다. 강유찬.”
만면에 미소를 지은 이주혁이 터벅터벅 걸어오며 말했다.
“너, 나 담그려고 했더라.”
턱.
강유찬의 앞에 선 이주혁이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가 어떻게 저런 장비를 들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다가온 이주혁이 멱살을 턱 잡았다.
그러고는 강유찬을 벌떡 일으킨 뒤 히죽 웃었다.
“우선 맞고 시작하자.”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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