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86
185화
우재성의 사무실.
라세흠은 고개를 숙인 채 우재성의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라세흠 부장님.”
“……어.”
“하실 말씀 없습니까?”
입맛을 쩝 다신 라세흠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갑자기 공격받은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라세흠과 상대의 짧은 싸움으로 로비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걸 막지 못한 라세흠도 책임이 있는 건 맞지만, 사실 회사에 뜬금없이 들이닥친 사람의 잘못이 아닌가.
우재성도 그 점은 이해하고 있기에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부장님. 부장님의 실력은 최고 수준 아니셨습니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그 여자는 왜 제압하지 못하신 겁니까? 설마 봐주신 건 아니죠?”
그 말에 라세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혀. 내가 전력을 다한다고 쉽게 잡힐 실력이 아니었어.”
“……네? 그게 정말입니까?”
우재성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SA시큐리티의 비대칭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라세흠의 힘으로도 제압하지 못하는 상대라니.
만약 그 여자가 다른 세력의 일원이라면, 앞길에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부장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적일까요?”
“음…….”
라세흠은 자신을 고상미라고 소개한 여자의 성격과 말투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놓고 우리를 적대하는 느낌은 아니었어. 애초에 방문 목적이 주혁이를 만나는 거였으니까.”
“그렇습니까? 그 말은 SA시큐리티와 연대하기 위해 찾아온 것일 수도 있겠군요.”
갑자기 등장한 제3의 인물에 우재성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녀가 이주혁을 만나려는 목적이 뭔지 아직은 모르기 때문에 명확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럼…….”
똑똑.
우재성이 뭐라 말하려는데, 누군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벌컥.
한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로비 꼴이 왜 저러지?”
“음?”
들어온 남자를 본 라세흠이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 인턴. 왔어?”
“…….”
남자는 전 강남파 이사이자 현 SA시큐리티의 인턴, 마종석이었다.
마종석은 라세흠을 불편한 눈으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누가 난동이라도 부렸나?”
“아, 그게…….”
그 물음에 우재성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부장과 어떤 여자가 싸워서 저렇게 된 거라고?”
“그렇습니다.”
“흠.”
잠시 생각하던 마종석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그 여자의 생김새를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그건 왜?”
꿀꺽.
“……짐작 가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그래? 머리는 뒤로 묶었고, 뺨 쪽에 긴 흉터가 있었다. 몸도 보통이 아니었고.”
“젠장. 아니었으면 했는데……. 분명 나 이상으로 강했겠지?”
“그렇지? 넌 나한테 발렸으니까.”
마종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마녀가 왜 여기 나타난 거지?”
“마녀? 아는 사람이냐?”
“아마도.”
진지한 얼굴로 마종석이 설명했다.
“보통 PMC나 용병단에는 코드네임이라는 게 있다. 알고 있겠지.”
“어.”
“그리고 숫자가 아닌 코드네임으로 불리는 자들은 주로 나 정도의 실력자나 일개 단의 리더들에게 붙는다.”
“넌 뭐였는데.”
“블랙맘바였다. 어쨌든, 베테랑 중 베테랑들에게만 붙는 게 코드네임이란 말이다.”
슥.
“내가 한창 현역이던 시절, 러시아에 파견을 나가 그쪽 용병들과 같이 움직인 적이 있었다. 녀석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지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예였다.”
“그래서?”
“거기 정예들도 하나같이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생각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전해 들었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사람이 있는 막사로 찾아갔다.”
“처맞았겠지.”
“그래. 처맞았다. 박살이 났지.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그쪽에서 바바 야가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용병이더군.”
그 설명을 듣던 우재성이 중얼거렸다.
“바바 야가라면…… 러시아 민담에서 등장하는 마녀 아닙니까?”
“맞다. 그만큼 그 여자가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거고.”
“흠. 그래? 그 여자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거물이네. 그것도 해외파 거물.”
라세흠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작전 수행하는 건 실제로 본 적 있나?”
“물론. 그걸 본 우리 쪽에서는 그 여자를 와이퍼(Wiper)라고 불렀었다.”
“와이퍼?”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청소해 버렸거든.”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거구만.”
라세흠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절대 엮이고 싶지 않군…….’
위험한 냄새가 강하게 풍겨 왔다.
탁.
우재성이 메모하던 종이를 내려놓고 말했다.
“일단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얘기를 해 봐야겠습니다.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을 때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꼭 끌어들여야 하나?”
라세흠의 조용한 반론에 우재성이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말씀을…… SA시큐리티는 소수 정예인 만큼 그 구성원의 질이 중요합니다.”
“음. 그렇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라세흠은 계속 직감이 경고하는 걸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아닌 것 같은데…….’
* * *
러시아의 전설적인 용병 출신이자 해커 조직 언노운의 리더 고세운의 경호대장.
고상미가 팔짱을 낀 채 투덜댔다.
“대화만 하고 왔다니까.”
“아니, 그렇다고 날 기절시키고 초대장도 마음대로 가져가?”
고세운이 인상을 찌푸리며 질책했다.
고상미가 라세흠에게 던진 명함.
사실 그건 고세운이 미리 준비해 놓은 걸 그녀가 멋대로 가져간 것이었다.
“어차피 전달할 생각이었잖아. 귀찮은 일 미리 해 준 건데 왜 이렇게 짜증이야? 죽을래?”
“음. 그렇긴 하지.”
고세운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소감은? 이주혁은 어떤 사람이었어?”
“못 만났어. 자리에 없어서.”
“아니, 무조건 직접 만나야 하는데…… 그럼 초대장은 누구한테 전달했단 거야?”
씨익.
그 물음에 고상미가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한테.”
“뭐?”
“거기 직원인 것 같더라고. 근데 아주 내 취향이야. 특히 강한 게.”
“……그런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
고세운은 누군지 모를 그 남자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걔네랑 일하자.”
“누나. 그렇게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니까. 이주혁이 그놈의 끄나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
“그건 아니야. 내 감이 말해 주고 있어.”
“후……. 이미 결정을 내렸구나?”
보통 머리를 쓰는 부분은 고세운이 도맡아 하지만, 고상미가 이렇게 강력하게 주장할 때는 이유가 있었다.
“하긴, 이주혁도 그놈을 적대하는 듯한 말을 하긴 했지.”
“뭐 어쨌든, 일단 접촉해 보자고.”
고상미의 확고한 말에, 결국 고세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리더의 동의를 받은 그녀는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전화 너머로 힘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누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에 고상미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장 튀어와. 오랜만에 놀러 가게.”
* * *
저벅.
“여자 친구분 선물하려고요?”
나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여자를 보며 살짝 놀랐다.
민기형의 아내, 서윤희.
여기서 바로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여자 친구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한테 선물할 생각입니다.”
내가 자연스럽게 대꾸하자, 서윤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몇 가지 추천해 줄까요? 아니면 먼저 둘러보실래요.”
“먼저 보고 영 모르겠다 싶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천천히 보고 말해 줘요.”
서윤희를 다시 돌려보낸 뒤, 나는 먼저 관심 없는 목걸이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바로 별자리 펜던트 쪽으로 가면 너무 노리고 온 티가 나니 말이야.
짤랑.
그렇게 목걸이를 보다 한 사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유나 씨 선물로 하나 사 갈까?’
생각해 보니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다.
나는 내가 보기에 괜찮은 목걸이 하나를 골랐다.
딱 깔끔하고 예쁜 느낌이었다.
“그게 마음에 드세요?”
“어, 네.”
계속 그 목걸이만 살피고 있어서 그런가, 어느새 서윤희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아, 혹시 제가 귀찮게 하는 건가요?”
“전혀 아닙니다. 혹시 이거 괜찮나요?”
서윤희는 내가 고른 목걸이를 보더니, 살짝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혹시 여성분한테 선물하실 건가요?”
“맞습니다.”
“여성분한테 주기엔, 아무래도 조금 밋밋하죠?”
“그런가요?”
밋밋하다니. 깔끔하게 괜찮지 않나?
“그것보단 이게 더 낫죠. 한번 보시겠어요?”
그 뒤로 약 30분간 서윤희에게 끌려다니며 여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관해 교육받았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네.
“……그러니까, 선물을 하실 거면 이런 게 낫죠.”
“음. 그럼 이걸로 하겠습니다.”
“더 안 보셔도 되겠어요?”
“네. 그냥 이걸로 하겠습니다.”
“계산은 나가기 전에 하면 돼요.”
지친 나는 그냥 예쁘고 화려한 걸로 골라 쇼핑백에 담았다.
나중에 유나 씨 만나면 전해 줘야겠어.
쇼핑백을 챙긴 뒤, 서윤희가 다른 손님에게 향하는 걸 확인하고 별자리 펜던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슥.
벽에 있는 유리 진열장 안에는 종류별로 나란히 펜던트가 놓여 있었다.
중앙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점이 찍혀 있었고, 얇은 은색의 선이 점들을 이으며 별자리의 모양을 만들었다.
“흠…….”
꽤 수가 많길래 황도 12궁이라 불리는 열두 개의 별자리가 다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놓여 있는 펜던트의 종류는 11가지밖에 없었다.
중간에 하나가 텅 비어있었다.
‘없다.’
가장 중요한 천칭자리 펜던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것만 다 팔린 건가? 말이 안 되는데?
그렇게 내가 또 하나를 한참 보고 있어서 그런가, 서윤희가 또 다가와서 물었다.
“이것도 저희 야심작 중 하나에요. 혹시 손님 별자리가 뭐예요?”
“천칭자립니다.”
“아……. 천칭자리요.”
내 구라가 담긴 대답을 들은 서윤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별자리에 맞춰서 추천해 드리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천칭자리 펜던트는 물량이 없네요.”
“그렇군요.”
물량이 없다라. 왜지?
누군가 대량으로 구매하기라도 하나?
그렇다면 그건 천칭자리를 조직의 표식으로 사용하는 선생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 돌려 물어봐야 하나.
나는 일단 되는 대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천칭자리이기도 하고, 지인이 천칭자리 목걸이를 찬 걸 봤는데 예쁘더라고요.”
“아, 정말요?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 말에 자연스럽게 검은색의 카드를 꺼냈다.
민수진한테 사실상 반강제로 뜯어낸 서명백화점의 VIP 카드였다.
서윤희는 그 카드에 적힌 이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어머. 우리 딸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나는 서윤희를 몰랐던 척하며 같이 놀랐다.
“설마 서윤희 사장님? 사장님이 왜 손님들을 보고 계시는 겁니까?”
“아, 제 취미가 매장 관리라. 놀라셨다면 미안해요.”
머쓱한 웃음을 짓던 서윤희가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랑은 무슨 사이……?”
여기서 갈림길이다.
사실대로 별 사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약혼자라고 말해 도박을 노려보든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답하려던 그때.
“엄마?”
그 목소리에 몸을 돌리니,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주혁?”
민수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와 서윤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인상을 확 구겼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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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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