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88
187화
고상미를 보내 달라는 내 요청에 가면남이 난감한 듯 뒤통수를 긁었다.
-그건 곤란한데.
“왜지? 우리한테는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적지를 조사하라 해 놓고, 막상 네 전력으로 지원해 주려니 아니꼽냐?”
내가 날카로운 투로 묻자 가면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상미 누…… 고상미는 정상적으로 써먹기 힘든 전력이다.
“성향 때문인가.”
고개를 끄덕인 가면남은 뒤쪽을 슬쩍 둘러보고 물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고상미가 찾아가서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나?
“문제라. 큰 문제는 아니었고, 그냥 우리 측 인원과 짧게 충돌이 있었다.”
-역시…….
가면남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또다시 이마를 턱 짚었다.
-다짜고짜 공격부터 했겠지? 그리고 가기 직전에 내 초대장만 툭 던지고 갔을 거고.
“어떻게 알았어?”
-항상 비슷한 패턴이거든. 당신도 그걸 보고 알았겠지? 고상미가 통제 가능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음. 자기 전력을 쓰고 싶지 않아서 한 거절은 아니었단 건가.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우리 팀원들만 갈아 넣을 순 없었다.
어디까지나 조직 간의 협력을 위한 일이니, 동등하게 하는 게 맞지. SA시큐리티 자존심이 있는데.
“상관없어. 고상미를 보내지 않으면 우리도 협력할 생각은 없다.”
가면남이 협력을 파토낼 가능성이 있음에도 내가 이렇게 강짜를 부리는 건 이유가 있었다.
저 녀석의 조직엔 고상미라는 무력이 있다.
그리고 가면남도 최고 수준의 해커이니,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시간을 들여서 얻으면 된다.
그런 녀석이 굳이 우리한테 접근한 건 딱 하나밖에 없다.
‘저 녀석이 알아내지 못하는 정보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애초부터 협력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정보에 관심이 있으니까 익명을 중시하는 해커 단체가 나한테 연락까지 취해 온 거다.
아마 리조트 로비에서 내가 놈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한 말을 한 것도 크겠지.
보통 사람은 물론 같은 해커라도 쉽게 서로의 정체를 알아내긴 힘드니까.
-음…….
내 생각처럼, 가면남은 제안에 관해 고민하는 눈치였다.
결국 녀석은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고상미를 보내지.
“좋은 생각이야.”
-대신 조심해라. 분명 고상미는 자기 부하들도 데리고 갈 테니까.
“부하들?”
의아한 마음에 묻자, 가면남은 또 뒤를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고상미를 따르는 사람들인데, 전부 정신이 나간 놈들이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라. 우리 쪽도 만만치 않으니까.”
왠지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접선 장소와 일시를 정하지.”
-좋아. 우리 쪽 인원은 인천으로 보내는 걸로…….
“잠깐. 그건 너무 정이 없지.”
-음?
씨익.
“우리 회사로 보내. 같이 식사라도 해야지.”
-……굳이?
이참에, 고상미와 부하들이나 좀 살펴봐야겠어.
* * *
[그 사람이랑 뭔 얘기했어?] [별 얘기 안 함.] [아닌 것 같던데……. 아, 우리 관계는 굳이 얘기 안 했어. 그냥 서로 알아 가는 사이라고 했으니까 기억해 둬.] [?]우리 관계는 무슨…….
민수진의 문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이쪽 집안사람들을 먼저 털어 보려고 했는데, 마침 가면남 쪽에서 서길석의 마약 공장을 던져 줬다.
하지만 그 공장을 박살 낸 뒤에 서윤희에게 접근하는 건 좀 무리다.
이 작전 후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확신할 순 없으니까.
그러니 공장을 치기 전에 한번은 만나 봐야 한단 소리다.
‘뜯어낼 정보는 다 뜯어내고 조져야지.’
그래서 고상미와 부하들을 SA시큐리티로 부른 거다.
그쪽과 우리 팀원들을 같이 공장으로 보내면 알아서 초토화시키겠지.
나는 그 사이에 서윤희와 만나 천칭자리 펜던트에 관한 정보를 얻어 내면 된다.
똑똑.
-행님. 저흽니더.
“들어와.”
사무실 문이 열리고, 후배 녀석들이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동안 받은 훈련의 성과가 좀 있는지, 다들 근육의 모양새가 잘 잡혀 가고 있네.
맨 앞에 서 있던 덩치가 후다닥 다가오며 말했다.
“행님. 손님들 오셨십니더.”
“그래? 응접실로 안내했어?”
“그게 말이지예…….”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이 난감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분명히 행님 말씀대로 응접실로 안내할라 했는데, 그 쎄 보이는 누님이 부장님 어딨냐고 묻는 게 아입니꺼.”
“그래서.”
“저희들은 뭐 별 수 없이 전했지예. 그 누님이 부른다꼬. 그라니까 부장님이 썩은 표정으로 가가 뭐라 얘기 나누시더니, 갑자기 대련실로 다 같이 들어갔십니더.”
“여자랑 같이 온 사람들은 없었고?”
“있었으예. 근데 많지는 않고, 한 대여섯 명 정도?”
“전부 대련실로 들어갔다는 거지?”
드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실력 좀 볼까?’
.
.
.
쾅!
대련실 가까이 다가가자 벌써부터 큰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첫만남에 바로 불이 붙었나 본데?
끼익.
“배상훈! 배상훈!”
“이겨라-!”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링 위에서 배상훈과 고상미의 부하로 보이는 대머리 하나가 가열차게 한판 붙고 있었다.
웃통을 깐 대머리가 머리에서 김을 뿜어내며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우오오!”
쿵!
“큭!”
대머리의 돌진을 팔로 막아 낸 배상훈이 이빨 사이로 신음을 뱉었다.
“이 멧돼지 같은 새끼……!”
배상훈은 상대를 꽉 잡고 그대로 무릎을 쳐올렸다.
퍽! 퍽!
“뒤져!”
“크아아아! 누님! 제게 힘을 주십쇼!”
그 말에 무표정하게 둘의 싸움을 보고 있던 고상미가 건성으로 답했다.
“이겨라.”
“예-!”
눈을 빛낸 대머리의 허벅지 근육이 두꺼워지며 배상훈을 점점 코너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배상훈은 이마에 혈관이 돋은 채로 인상을 구기며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다.
“X발! 내가 왜 이런 남자 새끼랑 땀을 흘리면서……!”
몸을 구기며 배상훈이 겨우 대머리의 태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팔로 대머리를 거칠게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이제 좀 볼 만하겠네.’
배상훈의 베이스가 되는 무술을 킥복싱.
그중에서도 아웃파이팅이 녀석의 특기다.
거리를 벌린 이상 배상훈이 유리할 수밖에 없단 말이지.
드디어 뭔가 보여 주나 싶던 그때.
“그만!”
둘을 지켜보던 부장님이 소리쳤다.
“에이, 이제 좀 재밌으려는데.”
“뭐야. 언제 왔냐?”
내 야유에 부장님이 이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만 대표랑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에 배상훈과 대머리가 링 아래로 내려가고, 나는 다가온 부장님에게 물었다.
“좀 전에요. 근데 응접실로 올려보내랬더니 왜 갑자기 친선전이에요?”
“다 사정이 있다.”
부장님은 링으로 올라가는 다음 타자들을 보며 조용히 설명했다.
“저 여자가 들어오자마자 뭐라고 했는지 아냐?”
“고상미요? 뭐라던데요.”
“나랑 다시 한판 붙자더라.”
“한판 붙어 주지, 왜요.”
실력도 확인하고 이득 아닌가?
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부장님이 고개를 내저었다.
“싫어. 눈빛이 기분 나쁘다고.”
“그게 무슨…….”
“네가 한번 봐야 돼. 차라리 죽여 버리겠다는 눈빛이 낫다니까?”
“그냥 부장님한테 마음이 있는 거 아닙니까?”
히죽거리며 묻는 순간 부장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개소리하지 마라.”
“음.”
한마디만 더 하면 피를 볼 기세였다.
“그래서 둘이 한판 하는 대신 밑에 애들 싸움 붙인 겁니까?”
“어. 실력도 볼 겸.”
“어떻던데요?”
잠시 고민하던 부장님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는지 물구나무를 서서 돌아다니던 대머리를 가리켰다.
“상태는 좀 메롱이긴 한데, 실력은 괜찮다.”
“우리 애들이랑 비교하면요?”
“거의 비슷한 정도?”
“흠…….”
고상미를 제외하고, 대머리를 포함한 총 여섯 명.
저 녀석들이 그 정도 실력자라면, 앞으로의 작전에 꽤 큰 도움이 될 거다.
이거…… 어떻게든 우리 쪽으로 감아서 써먹어야겠는데?
가면남도 가진 능력에 비해선 좀 허술한 면이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잘 꼬시고 속이면 호구로 만들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중앙에 나섰다.
“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 중 고상미가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당신이 이주혁?”
“네. 접니다.”
“흐음……. 너도 꽤 강하네?”
고상미의 호승심이 담긴 눈빛을 받는 순간 본능적으로 부장님 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래도 부장님만 하겠습니까. 하하.”
“그런가?”
그 눈빛이 다시 부장님에게 옮겨갔다.
‘이 새끼……!’
‘방생하지 마십쇼.’
고상미는 꼭 부장님과 잘됐으면 좋겠다.
누가 봐도 천생연분이잖아?
부장님이 눈으로 하는 욕을 받아 넘기며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작전에 관해선 들으셨습니까?”
내 물음에 고상미를 포함한 녀석들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전? 우린 그냥 가래서 온 건데.”
“그렇군요.”
가면남 이 새끼, 이런 건 미리 설명을 해 놔야지.
또 귀찮게 작전을 브리핑해야 되잖아?
“그래서 우리가 뭘 할 거냐.”
나는 대충 마약 제조 공장 습격 작전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 싹 처리하고 공장을 불태우면 된다는 거네.”
“좀 과격하긴 한데, 목표로 하는 건 비슷하지.”
내 말을 들으며 씩 웃던 대머리가 옆에 있던 고상미에게 말했다.
“누님. 이거 누님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 아닙니까? 간만에 한국에서 재미 좀 보겠어요.”
“그렇네.”
고상미가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언제 시작하는 거지?”
“너무 급하게 진행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법입니다. 고상미 씨?”
“음?”
“잠깐 얘기 좀 하시죠.”
그에 고상미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이쪽으로. 다른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그렇게 고상미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부장님이 황급히 다가와 불안한 듯 말했다.
“뭔데? 둘이서 뭔 얘길 하려고?”
“별거 아닙니다.”
“진짜지?”
“예. 그러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부장님을 쫓아내고, 나는 고상미와 함께 대련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혹시 누가 엿들을까 해서 비상계단 문까지 열고 들어갔다.
날 마주 보고 선 고상미가 팔짱을 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으슥한 곳까지 데려온 거야? 혹시 첫눈에 반했나?”
“뭐요?”
뻔뻔한 말에 순간 당황할 뻔했지만, 이어지는 고상미의 말에 난 안심할 수 있었다.
“너도 꽤 강해 보이긴 하는데…… 너무 곱상하게 생겼어. 미안하지만 그런 거라면…….”
혹시 오해할까 봐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건 전혀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흠. 그래?”
고상미의 얼굴 자체는 모난 곳이 없었지만, 나는 외모보단 성격을 보는 편이라…….
이런 사람은 나보단 부장님이 더 어울리지?
씨익.
“고상미 씨. 당신이 라세흠 부장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고상미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고상미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 언젠가는 나한테 쓰러질 테니까.”
무슨 야만인이야? 쓰러뜨리고 전리품으로 취하겠다, 이건가?
“그래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부장님에 관해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겠다, 이겁니다.”
그 말에 고상미는 살짝 혹한 듯 미간을 꿈틀거렸다.
“정말?”
“일단 들어 보시죠.”
조용히 내 계획을 말해 주자, 고상미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리고 이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
“그렇죠?”
이렇게 고상미부터 우호적인 관계로 끌어들이게 되면, 그 밑에 녀석들은 알아서 따라오게 될 거다.
결국엔 내가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패가 추가되는 셈이란 말이지.
히죽.
‘부장님. 조금만 고생하세요.’
축의금은 넉넉하게 넣어 드릴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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