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기강 잡기를 마친 뒤, 나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이동했다.
“나랑도 한 판 붙읍시다!”
“됐습니다.”
중간에 고상미의 부하들이 대련을 요청했지만, 가뿐하게 씹어 주고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공장 위치는 확인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길 치는 건 오늘 밤입니다.”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가 있는 거냐?”
배상훈의 말에 고상미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좀 더 준비하고 갈까요?”
“준비는 무슨. 위치를 알았으면 바로 가야지.”
당연한 듯 말하는 고상미에 부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돌입은 오늘 밤에 할 거고, 그 전에 인원을 나눌 겁니다.”
꽤 큰 공장이기도 하고, 너무 많은 인원이 뭉쳐서 이동하면 눈에도 띈다.
그래서 난 각 팀에서 한 명씩 붙여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서로 경쟁심도 생길 거고 친목도 다질 수 있겠지.
물론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슥.
나는 고상미와 눈을 마주친 뒤 부장님을 향해 말했다.
“우선, 부장님과 고상미 씨가 한 조로 움직일 겁니다.”
“뭐?”
부장님이 당황하며 팔짱을 풀었다.
“왜?”
“뭐가요.”
“왜 내가 저기랑…… 같이 움직이냐고?”
“두 사람이 우리 전력의 메인이니까요. 적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 드롭할 예정이거든요.”
“아니…….”
뭐라 말하려던 부장님이 입을 다물었다.
불만은 있지만, 그렇다고 부장님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내 의견을 깔아뭉갤 사람은 아니지.
그렇게 나는 대충 비슷한 녀석들로 조를 꾸렸다.
솔직히 인원을 나누는 건 고상미의 요청이라 작전에 별로 중요한 건 아니거든.
“그리고 저는 방직 공장으로 운영되는 낮에, 그쪽을 찾아갈 겁니다. 개인적으로 볼일도 있고 공장의 내부 구조도 알아 올 생각입니다.”
“그래?”
“그래서 말인데, 부장님과 고상미 씨도 따라오셔야 합니다.”
“뭐?”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질문 있는 사람?”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작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줘야 할 만큼 초짜가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우리 목표는 마약 제조 시설의 파괴니까, 내 볼일만 다 끝내면 알아서 때려 부수게 둘 거다.
그다음엔 우리 송 과장한테 부탁해서 수습하면 되는 일이고.
“질문 없으면 슬슬…….”
“잠깐! 질문 말고 불만은 있다.”
그 외침에 어떤 놈인가 확인해 보니, 어느새 정신을 차린 대머리가 엉망이 된 얼굴로 손을 들고 있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불만인데?”
“내가 상미 누님과 같이 움직이고 싶다. 바꿔 주길 요청한다.”
“기각한다.”
“뭐?!”
“다들 알아서 시간 되면 공장으로 오시면 됩니다.”
당황한 대머리를 가볍게 무시한 뒤 대련실 문을 열고 나갔다.
고상미와 함께 날 따라오던 부장님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근데 우리 둘은 왜 데려가는 거냐? 족치는 건 밤이라면서?”
“따라와 보면 아실 겁니다. 아, 일단 옷부터 좀 깔끔하게 갈아입어요.”
“……옷은 왜?”
씨익.
“오면 안다니까요.”
그럼 출발해 볼까.
* * *
“그래. 내가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어.”
툭.
민수진은 핸드폰을 던진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한숨을 내쉰 민수진이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파닥파닥.
“으……!”
그동안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고 했던 말이 떠올라 자괴감이 들다가도, 사람 마음을 속이고 가지고 논 이주혁에 대한 적대감이 솟아났다.
그것도 민수진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그녀를 가족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이주혁에게 가장 짜증 나는 점이 이거였다.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얘기를 하든가.’
생각만 해도 열받는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지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이주혁은 자신만 보면 빌빌 기던 다른 남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행동도 과하지 않았고 가식도 없었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거다.
보통 남자가 이주혁처럼 굴었다면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잊었겠으나, 지금은 쉽지가 않았다.
잊으려고 하니 자꾸 이주혁과 그 여사장 둘이서 잘되는 꼴이 떠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꾸욱.
주먹을 꽉 쥐던 민수진이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솔직히 이제 와서 이주혁을 붙잡기엔 너무 구질구질하다.
하지만 그를 이용해 집안에서 독립한다는 민수진의 목표를 이룰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었다.
‘설득해 보는 거야.’
매몰차게 떠나긴 했지만, 가족의 뒤를 캐는 걸 도와준다면 이주혁도 받아 주지 않을까.
어차피 가족에 대한 정은 없었고, 죄책감도 없다.
잠시 고민하던 민수진은 이내 이주혁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문자 확인하는 대로 연락해. 할 말 있으니까.]* * *
나는 라세흠 부장님과 고상미를 태우고 인천의 방직 공장에 도착했다.
“내립시다.”
“어.”
시동을 끄고 내리려는데, 민수진에게 문자가 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또 뭐야?’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 싶어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란히 서 있는 부장님과 고상미를 쳐다봤다.
부장님은 간만에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고상미도 블레이저와 바지 세트를 입은 상태였다.
그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들었다.
“잘 어울리네요.”
“닥쳐.”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쓸어올린 부장님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대체 우리가 왜 약혼한 사이인 척을 해야 하는 거냐?”
부장님의 말대로, 지금 두 사람은 가짜로 약혼한 사이다.
이 방직 공장에서 별자리 펜던트까지 취급한다는 말을 듣고 떠올린 작전의 일환이다.
여기서 펜던트를 관리한다면 분명 관리자가 있을 거고, 그 사람에게 천칭자리 펜던트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찾아가서 묻는다고 대답해 줄 리가 없기에, 나는 머리를 굴렸다.
부장님과 고상미는 민수진의 지인.
이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민수진의 추천을 받아 별자리 펜던트를 구하려 했지만, 왜인지 신부의 별자리인 천칭자리 제품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민수진은 수행원인 나에게 두 사람을 직접 공장으로 안내해 천칭자리 펜던트를 구매하라고 시킨 것이다.
……여기까지가 부장님을 고상미와 붙여 놓기 위해 급조한 스토리.
애초에 나 혼자 와도 되는 일인데, 고상미가 작전을 함께 진행하자고 강력히 요청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스윽.
나는 고상미가 음흉한 표정으로 슬쩍 부장님의 옆구리에 팔을 두르는 걸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어우, 보고 있기 힘드네.’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두 사람을 공장 안으로 안내했다.
“그럼 들어가시죠.”
“팔은 좀 치워라.”
“왜? 약혼자 사인데.”
“염병…….”
뒤에서 투닥대는 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작업복을 입은 관리자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아, 전화 주신 분이십니까?”
“맞습니다.”
인천까지 오는 길, 공장 측에 미리 연락해서 물건을 구매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관리자는 처음에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내가 민수진의 이름을 팔며 지랄을 하니 기겁하며 준비해 놓겠다 하더라고.
손수건으로 땀을 슥 닦은 관리자가 사람 좋게 웃으며 다가와 손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공장 관리자 조민수라고 합니다.”
“예. 천칭자리 펜던트는 준비하셨습니까?”
“아, 당연하지요.”
“일단 공장부터 안내해 주시죠. 물건들을 좀 둘러보고 싶네요.”
내 말에 관리자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페, 펜던트만 구매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문제라도 있습니까? 펜던트 사러 왔으면 얌전히 그것만 들고 가라 이건가?”
“아,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하하. 마음껏 둘러보셔도…… 됩니다.”
관리자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쯤 내가 진짜로 민수진의 지시로 온 건지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공장 관리자가 사장의 딸내미에게 직접 이 사람들의 말이 진짠지 물어볼 용기는 없겠지.
만약 정말 민수진의 지시였다면 내가 저놈 자릅시다. 한마디만 해도 관리자는 그대로 모가지일 테니 말이다.
“이쪽으로 가시죠.”
우리 셋은 관리자의 안내를 따라 공장 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들어갔다.
그러자 화학 약품과 합성수지 같은 냄새가 확 풍겨 왔다.
‘낮에는 제대로 제품도 생산한다 이건가?’
그렇게 온갖 산업용 장비들을 지난 우리는 [판매관리부]라고 적힌 공간에 입장했다.
책상과 전화기, 컴퓨터에 놓인 공간에 도착한 관리자는 자기 책상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기다란 상자를 열어 안에 나란히 놓인 펜던트를 보여 줬다.
“여기, 찾으시던 제품들입니다.”
“오호.”
목걸이 열두 개가 든 상자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천칭자리 펜던트도 들어 있었다.
“찾으시던 게 이거 맞죠?”
“맞네요. 그렇죠? 부장님.”
“어, 어?”
“한번 쭉 보고, 결정하시면 부르세요.”
시간을 끌어 달라는 뜻이 담긴 내 말에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수색을 시작해 볼까.
나는 땀을 닦는 관리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잠시 공장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예? 그건 왜…….”
당황하는 관리자에게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언젠가는 아가씨가 물려받을 공장입니다. 수행원인 제가 살펴보는 게 불만이신 겁니까?”
내가 또 억지에 시동을 걸자 관리자는 체념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아뇨. 저 혼자 가겠습니다.”
“네? 그래도 제가 안내를 해 드려야…….”
“제가 공장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릴 것 같습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위험한 장비들이 꽤 있어서…….”
뭐라 설명하려던 관리자가 내 싸늘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난 그대로 몸을 돌려 판매관리부를 나섰다.
저벅.
그럼, 어디부터 가볼까.
부장님이랑 고상미가 알아서 관리자를 붙잡고 있는 사이, 나는 공장의 건물 구조와 마약을 제조하는 시설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흠…….”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피는데, 저 멀리 바깥에 있는 웬 남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뭐지?’
목까지 올라오는 문신이 특징적인 남자가 앞치마 같은 걸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딘가 수상한 외모에, 표정과 인상 자체가 일반 노동자의 느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탁.
남자가 꽁초를 털고 침을 찍 뱉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한번 따라가 봐야겠어.
사삭.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의 뒤를 쫓아가다 보니, 중앙 건물이 아닌 옆쪽의 컨테이너형 건물이 보였다.
하지만 여기부턴 가는 길이 뻥 뚫린 공터라 대놓고 쫓아갈 수가 없었다.
‘잠깐 숨어 있을까.’
컨테이너 뒤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빼내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했다.
남자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다 옆쪽의 컨테이너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곳에서 아주 싸한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 * *
그 시각, 라세흠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펜던트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관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물었다.
“어떠십니까? 마음엔 좀 드십니까?”
“음. 괜찮네…….”
라세흠도 마찬가지로 어색한 표정을 한 채 고상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나?”
그 물음에 고상미가 입꼬리를 쭉 올리며 대답했다.
“그렇네. 자기야.”
“……!”
자기라는 호칭을 들은 라세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고상미는 장난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라세흠의 팔을 꽉 붙잡았다.
팔짱이라기엔 조르기 수준이었지만, 고상미는 나름대로 얌전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자기,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귓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에 라세흠이 이를 악물었다.
‘이주혁……. 돌아가면 죽여 버린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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