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2
191화
척.
나는 남자가 들어간 컨테이너 문을 살폈다.
만약 저곳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약 제조 시설이라면, 지금 차림으론 들어갈 수 없을 거다.
최소한 저 사람들의 작업복을 뺏어 입거나, 아니면 아까처럼 구라를 쳐서 속여 넘겨야 하는데.
‘안 되겠다.’
아무래도 거기까진 조금 무리다.
괜히 건드렸다가 밤에 진행할 작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마 내가 찾아야 할 정보도 이 건물 안에 있겠지.
일단 위치를 확인했다는 거에 만족하고, 저기는 그냥 애들한테 쓸어 버리라고 해야겠어.
“흠…….”
나는 브리핑을 위해 머릿속으로 내가 지금까지 이동한 곳을 지도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창 꽁냥대고 있을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공장 관리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부장님과 고상미가 팔짱을 끼고 있는 게 보였다.
이거 아주 흐뭇하구만.
내가 다가가자 관리자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 다 둘러보시고 오셨습니까?”
“예. 그리고 뭐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관리자는 내 지랄을 예상했는지 진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에 나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물었다.
“물건 생산은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까?”
“예? 물건이라면…….”
내가 무표정하게 쳐다보자 관리자는 이해했다는 듯 낯빛이 달라졌다.
“아, 서 사장님 쪽에서 나오신 분이셨습니까?”
관리자가 갑자기 아까보다 더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내심 미소를 지었다.
‘낚였구만.’
혹시 이놈이 마약 제조 시설까지 관리하나 싶어 슬쩍 떠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뭔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하긴, 대놓고 공장 부지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시설을 관리자가 모르는 게 이상하지.
이 새끼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만든 마약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관한 정보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다.
천칭자리 펜던트를 넘겨주는 곳도 관리자인 이놈이 알고 있을 거고.
작전이 시작되면 이놈도 붙잡아야겠다.
나는 뒤에 뻘쭘하게 서 있는 부장님을 돌아봤다.
“물건은 다 고르셨습니까?”
“어.”
“그럼 슬슬 돌아가시죠.”
내 말에 부장님이 눈썹을 까딱였다.
볼일은 다 봤냐는 제스처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할 거 다 했고, 나머지는 그냥 팀원들에게 맡겨야겠어.
씨익.
준비는 여기까지. 이제 작전 시작이다.
* * *
아그작.
부장님이 야무지게 닭강정을 씹어 먹었다.
그 옆에서 고상미도 지지 않고 입안에 닭강정을 쑤셔 넣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을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어떻게 식사량도 비슷하냐.’
분명히 저녁으로 회와 매운탕을 배부르게 먹고 왔을 텐데, 식후 닭강정까지 풀코스로 조지고 있다.
근데 하나 집어먹어 보니 맛있긴 하더라.
저벅.
난 혼자 걸음을 옮기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잠깐 돌아보고 올 테니 두 분도 좀 놀고 계세요.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요.”
내 말에 부장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왜? 나랑 같이 가.”
“혼자 생각할 게 있어서요. 팀원들도 슬슬 도착할 테니, 제가 적어 놓은 건물 위치 숙지하고 계시면 됩니다.”
“어. 알았다. 근데…….”
부장님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둘만 데려와 놓고 자꾸 혼자 빠지는 느낌이다?”
“기분 탓입니다. 잠깐만 둘러보고 올 거예요.”
대충 둘러대고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눈을 굴리며 양쪽의 상가 건물을 살폈다.
내가 굳이 여기 인천까지 와서 저녁을 먹은 이유는 하나다.
‘여기가 야쿠자들의 본거지인가.’
한국에 거주하는 야쿠자들은 대부분 인천에 모여있다.
서울에 강남파, 성남에 삼합회, 인천에 야쿠자란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원래 같으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테지만, 예전에 들었던 성자와 정 목사의 대화가 신경 쓰여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다.
분명 선생의 손이 일본까지는 닿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과연 그게 진짜인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일본엔 영향력을 뻗치지 못한 건지,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큰 단서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뭐라도 나올까 싶어 상가와 골목을 살살 돌아다녔다.
“흠…….”
하지만 한참을 다녀도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야쿠자처럼 생긴 남자들이 몇 보이긴 했는데, 뭔가 느낌이 팍 오진 않는단 말이지.
마음 같아선 여기 며칠 동안 머물면서 조사하고 싶어도, 곧 공장을 족쳐야 하니 계속 이 동네에 있을 순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이 마무리된 다음 시간을 내서 한 번 더 와 봐야겠다.
우웅-.
그때 배상훈의 번호로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거의 도착했다. 바로 공장으로 가면 되냐?] [일단 밥부터 먹게 주소 찍어 주는 데로 와] [난 참치회 ㅋ]탁.
핸드폰을 집어넣고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쳐다봤다.
씨익.
해가 지고 있었다.
* * *
방직 공장의 관리자, 조민수는 인부들이 퇴근한 공장에 혼자 남아 피곤한 눈을 꾹꾹 눌렀다.
안 그래도 일이 바쁜데 사람까지 보내다니.
‘쯧. 미리 말이라도 해 주든가.’
찾아온 사람이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의심을 직접 확인해 볼 깜냥이 되진 않았다.
조민수는 속으로 서길석을 욕하며 ‘작업실’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턱. 끼익-.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간 조민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필로폰을 제조할 때 나는 악취로, 아무리 맡아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이 냄새를 묻기 위해 방직 공장에 ‘작업실’을 만든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커튼처럼 쳐진 비닐을 치워 가며 한참을 들어가던 조민수는 목까지 문신으로 가득한 남자를 보고 불렀다.
“야. 작업은, 마무리돼 가냐?”
“예. 형님.”
조민수의 수하인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합성은 다 끝났고…… 이제 빻아서 나눠 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
입맛을 다신 조민수가 갑자기 떠올라 물었다.
“혹시 아까 누구 찾아온 사람 없었지?”
“예? 누구 말입니까?”
“없었으면 말고.”
조민수는 내심 안심했다.
만약 여기까지 들어와서 확인했다면, 조민수가 필로폰을 조금씩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이 서길석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에 고개를 휙휙 저은 조민수가 남자에게 손짓했다.
“애들한테는 빨리 마무리하라 전하고, 나가서 잠깐 얘기 좀 하자.”
“아, 예.”
끼익.
컨테이너 바깥으로 따라 나온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요? 오늘 표정이 영 구리신데.”
“야.”
조민수는 목소리를 낮추고 의미삼장하게 말했다.
“조만간 작업실 정리하자.”
“갑자기요?”
“서길석, 그 돈 귀신이랑 일하려니까 피가 말린다. 피가 말려. X발, 솔직히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한테 더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하죠.”
“솔직히 우리가 조금씩 삥땅 치는 것도 받아야 할 추가수당 알아서 챙기는 거지.”
그 말을 듣던 남자도 뭔가 맞는 말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떡하시게요?”
“그러니까 말인데…… 삼합회에 붙는 건 어떠냐?”
“삼합회요?”
“그래. 지금 재료 넘겨주는 것도 삼합횐데, 그럴 거면 그냥 아예 삼합회랑 손잡고 일하자는 거야.”
그에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거기서 우릴 받아 준답니까?”
“야. 우리가 거래 튼 지가 얼만데 당연히…….”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던 조민수가 순간 멈칫했다.
“음?”
“왜요?”
“아니, 저 뒤로 뭔가 시커먼 게…… 어?”
빠악-!
순식간에 달려온 누군가가 뛰어올라 앞에 서 있던 남자를 발로 차 버렸다.
“켁.”
남자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반으로 접힌 채 한참을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민수에게 괴한이 씩 웃으며 물었다.
“네가 조민수냐?”
“예, 예?”
“네가 조민수냐고.”
살벌한 질문에 조민수는 자기로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가 조민수 맞는데요.”
“그래?”
“잠깐 나랑 같이 가 줘야겠는데.”
괴한, 라세흠이 돌덩이 같은 주먹을 들며 선택지를 던졌다.
“조용히 갈래? 처맞고 갈래?”
조민수는 담배를 품에 다시 넣고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조용히 따라가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라세흠의 미소에 조민수는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X발……. 대체 뭐 하는 새끼야?’
우선 숙이고 들어간 뒤 상황을 보려던 조민수는, 이어지는 라세흠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일단 기절부터 합시다.”
“그게 무슨 소리…….”
쩍!
라세흠은 그대로 조민수의 턱을 돌려 버렸다.
의식을 잃은 조민수가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나올 때쯤 깨겠지?’
그리 생각한 라세흠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음?”
컨테이너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아까는 닫혀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는 건, 고상미가 말도 없이 먼저 컨테이너로 돌입한 것이다.
“이런 씨…….”
라세흠은 인상을 구기며 열린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탁!
그러자 저 안쪽에서 비명과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아악!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니, 고상미가 작업복과 마스크를 쓴 남자들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가세하려던 라세흠은 발을 멈추고 고상미의 전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호오.’
정글도 모양의 마체테를 든 남자가 악을 쓰며 고상미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에 입꼬리를 올린 고상미는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마체테의 날 옆을 손으로 쳐 흘렸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남자의 얼굴을 붙잡고 그대로 다리를 걸어 땅에 처박아 버렸다.
쾅!
이어 달려드는 남자의 멱살을 붙잡아 옆에 놓인 책상에 던져 버렸다.
“아악!”
와장창!
남자가 책상을 뒹굴자 올려져 있던 마약 봉지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죽여!”
“여자잖아! 쫄지 마!”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덤벼든 남자들이 손도끼와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상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피해 내며 여유롭게 라세흠을 돌아봤다.
“왔어?”
“말도 없이 먼저 들어가면 어떡해?”
라세흠의 말에 고상미는 땅을 박차고 책상을 이리저리 밟고 다니며 대답했다.
“뭐 어때?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지.”
“잡으라고!”
“개같은!”
남자들은 약이 올랐는지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농락하는 고상미를 잡기 위해 아등바등 쫓아다녔다.
그러다 어느새 나타난 라세흠을 보며 소리쳤다.
“넌 또 뭐야!”
“나? 쟤랑 같은 편.”
“X발!”
남자가 손도끼를 횡으로 확 휘둘렀다.
“뒤져!”
“어허. 이런 위험한 걸.”
라세흠은 가벼운 손날치기로 손도끼를 든 상대방의 손목을 강타했다.
빡!
“끄아아악-!”
도끼를 놓친 남자가 덜렁거리는 손목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라세흠은 남자가 놓친 탓에 허공을 날던 손도끼를 붙잡고 뒷면을 향하게 해서 던졌다.
휘리릭 날아간 도끼가 남자의 대가리에 틀어박혔다.
콰직!
묵직한 쇳덩이에 머리를 직격당한 놈은 그대로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그 사이, 고상미는 다섯 명이 넘는 남자들이 쫓아오는 상황에 지형지물을 이용해 아직도 도망치고 있었다.
“아직도 안 끝냈어?”
라세흠의 물음에 고상미가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끝났어?”
탁.
무기를 든 남자 대여섯 명이 달려드는 데도, 바닥에 착지한 고상미는 여전히 라세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봐.”
그 말을 남긴 고상미가 앞장서 달려들던 남자의 팔을 잡고 한 바퀴 돌리며 뒤로 던졌다.
이어 다음 사람의 팔을 쳐내고 목을 붙잡은 뒤, 옆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막아 냈다.
푹!
“아악!”
뻥!
고상미는 고통에 일그러진 남자를 발로 차 뒤에 있던 사람까지 동시에 날리고, 붙잡기 위해 덤비던 놈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주자, 머리를 잡힌 놈이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며 고상미의 손을 떼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악! 끄아악! X바알……!”
하지만 고상미는 오히려 더 힘을 줬다.
우득.
그러자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고상미가 축 처진 남자를 손에서 놓고서 살벌하게 웃었다.
“뭐 해? 안 들어오고.”
그 위압적인 모습에 남은 두 사람이 머뭇거렸다.
그러던 한 남자가 봉지 안에 담긴 흰 가루를 덥석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필로폰의 효과인 집중력과 인지 능력의 증가를 위해서였다.
“X발! 개 같은……!”
“개 같은 뭐?”
그런데 고상미가 약효가 돌길 기다려 줄 이유는 없었다.
탓! 콱! 콰직!
그녀는 팔다리를 채찍같이 휘둘러 그들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 버렸다.
보통 사람들은 반응하지도 못할 속도였다.
“…….”
라세흠은 그걸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솔직히 그동안 행동이 비호감이라 의식하진 않았지만, 고상미의 강함은 순수한 무도인으로서 매력을 느낄 만했다.
성별과 외모를 넘어, 일정 분야의 정점에 다다른 인물에 대한 끌림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라세흠이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자, 반응을 살피던 고상미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
“왜? 반했어?”
그 말에 라세흠의 마음은 짜게 식었다.
‘매력은 개뿔…….’
라세흠은 순간 흔들린 마음에 자괴감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여자는 아니다. 정말로.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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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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